[진화랑] 썰 모음 6
진화랑 2개, 진화랑라스 1개. 2023년 9월 10일 연성.
1. 자존심 쎈 화랑이 유일하게 약한 모습 + 어리광 부리는거 보고 싶어서... 독감 앓는 중인 화랑과 간호하는 진. (화랑 어린시절 날조)
더워, 뜨거워... 천천히 눈을 반쯤 뜬 화랑이 으, 낮은 소리를 내며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 몸 상태에 화랑은 직감했다. 아, 올해도 왔나. 화랑은 연례행사처럼 매년 지독한 여름 감기에 시달렸다. 올해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진짜 전조도 없이 매년 이런다니까... 화랑이 겨우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제 방문 앞으로 가 문고리를 잡으려는 찰나.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렸다. 시간이 되었으나 일어나지 않는 화랑에 백두산이 직접 방까지 온 것이었다. 물론 쟁반에 약과 물이 담긴 텀블러, 그리고 요구르트와 바나나를 넣고 직접 갈아 만든 주스를 담은 체. 매년 화랑이 여름 감기에 시달리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 다운 준비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체 눈을 반쯤 뜬 화랑을 본 백두산이 낮은 한숨을 쉬고는 화랑을 다시 침대에 앉게 했다.
좀 늦었구나, 올해는 무사히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손으로 대충 이마를 짚은 백두산은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주저없이 화랑의 손에 주스가 든 컵을 쥐어주었다. 입맛이 없을테지만 빈 속에 약은 금물이니 간단하게라도 속을 채워야했다. 화랑이 왼손으로 눈가를 비비다 주스를 천천히 마셔갔다. 함께 넣은 요구르트 덕분에 삼키는건 어렵지 않았고 이내 깨끗하게 비워진 잔을 손에서 빼낸 백두산이 그 빈 손에 텀블러와 감기약을 쥐어주었다. 으... 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화랑이 낮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이내 약을 물과 함께 목으로 넘겼다. 그리곤 털썩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리는 화랑에 백두산은 푹 쉬라며 텀블러만 침대 옆 협탁에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백두산이 제 소중한 제자인 화랑을 간호하지 않는 이유는 화랑이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백두산이 싫다기 보다는 저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화랑의 생존 본능과도 비슷한 의중 때문이었다.
화랑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부모가 버린건지, 아니면 부모가 죽어 고아원으로 흘러들어온건지 화랑 본인도 몰랐다. 제일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미 고아원에 있는 자신이 보였기에. 그가 있던 고아원은 지원이나 기부금을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았기에 항상 가난했고 약도 충분히 상비 되어있지 않아 가벼운 감기는 약 대신 그저 따뜻한 물과 제 이불을 뒤집어쓰고 저절로 낫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립된 작은 섬과 비슷한 고아원의 환경에서 약한 아이들은 항상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백두산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가 되고나서도, 매년 지독한 여름 감기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곳에서 자란 화랑이 절대로 약한 소리,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몸에 박혀버린 어린 시절의 잔재는 쉽사리 털어지지 않기에.
약 기운에 취해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은 화랑의 눈에 협탁에 놓인 텀블러 외에 쟁반에 놓인 뚜껑이 덮힌 그릇이 보였다. 뚜껑 위에 놓인 약을 물끄러미 보다 텀블러 위에 올린 화랑이 뚜껑을 열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는 그건 계란죽이었다. 제 제자가 깨어날 시간에 맞춰 조용히 죽과 약은 놓고 간 것이었다. 잠시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낮은 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깨끗하게 죽을 비워내고는 쟁반을 들어 문 밖에 내놓았다. 텀블러 위에 놓인 약을 바라보던 화랑이 이내 화장실로 가 약을 변기에 던져놓고 물을 내렸다. 새끼 손가락 손톱 크기의 약이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다. 약은 싫어, 내가 점점 약해져간다는 반증처럼 느껴지니까.
후, 비틀거리며 침대에 앉은 화랑이 오늘 한번도 만지지 않고 얌전히 협탁에 놓인 폰을 들어 잠금을 해제했다. 역시나, 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프다며? 백두산씨에게 들었어. 갈까? 그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답장도 없이 핸드폰을 다시 협탁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마치 아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이불, 그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아픔을 혼자 참고 견디던 고아원의 그때 그 아이가. 깜박깜박, 천천히 눈을 깜박이던 화랑이 눈을 감았다.
화랑... 화랑? 괜찮아? 잠깐... 이마 좀 만질게. 무뚝뚝하지만 낮은 목소리가 들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이불 속에서 반쯤 얼굴을 내민 화랑의 이마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자신보다 낮은 체온의 손이 시원했는지 무의식 중에 그 손에 이마를 비비고 있자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아직도 열이 있네... 약 또 안먹었지? 기분은 알지만 필요할 땐 먹어야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뜬 화랑이 열에 들뜬 얼굴을 하고는 초점을 맞추려 애를 썼다. 으음... 흐릿한 초점에 비춰진 사람은.
" 지이인...? "
" 응, 나야. 괜찮... 지 않나보네 "
열에 들뜬 목소리가 마치 애교라도 부리듯 제 이름을 늘어트리며 부르자 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항상 남들 앞에서 강한 척하는 화랑은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크게 다쳐도, 3일만에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도 항상 이런 건 아무렇지 않다며 병원이나 주변사람의 만류에도 퇴원해버려 혼자서 상처의 고통을 감내하곤 했다. 그런 화랑이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진이었다. 진의 문자에 그 어떠한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의식 중에 화랑이 진의 기다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물론 오라는 답장도 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의 자존심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화랑이 멀어지려는 진의 손을 잡아 그 손에 마치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볐다. 오직 아플 때만 보여주는 화랑의 약하고 애교있는 모습. 열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화랑이 남에게 기대는 유일한 순간.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자신 뿐이라는건 기쁜 일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 평상시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 응? 화랑 "
" 으음, 지이인... "
손, 팔을 타고 올라온 손이 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방에 들어오기 전 백두산에게서 받은 감기약을 꺼내들었다. 10개 중 2개가 비어있는 감기약을 보다 1개를 포장지에서 꺼낸 진이 제 입에 약과 물을 머금고 화랑의 뒷목을 받친 후 그대로 입을 맞췄다. 열기로 반쯤 벌리고 있는 화랑의 입에 약과 물을 흘러넣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화랑이 목으로 넘기는 걸 본 후 입술을 뗀 진이 자신도 약을 먹고는 그대로 화랑의 옆에 누워 그를 품에 안았다. 따뜻한 온기에 화랑이 다시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진의 품을 파고 들었다.
" 이런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건강한 네가 더 좋으니까. 빨리 낫자, 화랑 "
제 가슴에 머리를 비비며 여전히 늘어지게 이름을 부르는 화랑에 진이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랑이 지독한 여름 감기를 떨쳐낸 건 이틀 뒤였다.
2. 진에 대한 집착을 버린 화랑과 그와 한판 싸우려는 라스, 그리고 반대로 화랑에게 집착하게 되어 라스를 견제하는 진으로 진화랑라스.
음? 저건... 라스의 눈에 익숙한 누군가가 스쳐지나갔다. 혼란이 끝나고 겨우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세상에서 진은 책임자가 모두 사라진 미시마 재벌의 총수로 재취임을 한 후 미시마 재벌의 모든 재력과 권력을 사용하여 세계를 원상복구 시키고 있었다. 그 일의 내부 조력자로 오퍼레이션 라이트닝 작전을 함께한 리 차오랑, 라스 알렉산데르손, 알리사 보스코노비치가 있었고 외부 조력자로는...
" 라스 아냐, 잘 지냈나? "
" 그래, 그쪽이야말로 괜찮게 지낸 모양이군 "
자신을 불러 세운 장본인의 얼굴을 확인한 화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밝게 인사하는 화랑에 라스도 가볍게 인사말을 건냈다. 진의 외부 조력자는 그 레지스탕스였다. 라스의 반란군과 더불어 G사에 대항하는 세력이었던 레지스탕스의 리더인 화랑은 모든 일이 끝난 후 앞으로의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진에게 다 끝나고 자기랑 한판 붙으면 도와준다는 황당한 조건을 들이밀며 진의 부탁을 수락했다. 진에게 원한이 있던 미겔도 일단은 세계를 원상복구 시킨 후에 생각하자며 복수심을 겨우 누그러트렸고 백두산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 여긴 무슨 일이지? 진에게 용건이 있나? "
" 그 자식한테 부탁 받은 지역의 보수가 얼추 끝나서 말이야. 보고서 전달 겸 얼굴이나 좀 보려고 왔건만... 오늘도 바쁜 모양이란 말이지 "
하긴 다 자업자득이니 어쩌겠어. 의도가 어떻든 뼈 빠지게 일해야지. 화랑의 말에서 진이 그에게도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말했다는 걸 알아챈 라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들은 후 그는 진에게 과연 뭐라고 했을까, 괜히 궁금해진 라스였다. 그래서 돌아가는건가? 그 말에 화랑이 고개를 흔들었다.
" 여기까지 온게 억울해서라도 기다렸다가 얼굴이라도 보고 갈까 싶은데 마땅히 있을 만한 곳이 없단 말이지 "
" 흠... 아, 그렇지. 오퍼레이션 라이트닝 작전 때 생각한건데... 너는 강한 것 같단 말이지. 어때, 가볍게 대련 정도 해보는 건? "
그 말에 화랑의 눈에 순식간에 불이 튀었다. 지금이야 성숙해지고 무조건 대결, 싸움을 부르짖지는 않는다지만 강자와의 싸움을 항상 갈망하고 즐기는 건 여전했다.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울 때 그가 얼마나 강한지 인지한 화랑이 이런 라스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호승심을 끌어올린 화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스가 그를 끌고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임시 본부로 쓰고 있는 건물이어서 제대로 된 장소가 있을리 없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였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인만큼 크기도 크고 깨끗한 대피소에 화랑이 휘파람을 불었다.
" 여기 부셔져도 괜찮아? "
" 부술 생각인가? "
" 싸우다보면 그럴수도 있잖아? 그리고 솔직히 나보다는 당신이 더 부술 것 같은데. 당신도 그쪽 집안 출신이잖아? "
" 뭐... 그렇지 "
" 솔직히 1도 상관없긴 하지.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더 중요한거 아니겠어? 그 자식처럼 "
진을 에둘러 그 자식이라고 말하는 화랑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라스는 화랑이 자세를 잡자 생각을 멈췄고 이내 두 사람이 격돌했다. 화랑과 싸우는 와중에 라스는 생각했다. 자신처럼 초인이라 불리는 미시마의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주 받은 데빌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는 정말 이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하다고.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그 강함에 흥미가 생겼다.
" 싸우는 도중에 매너없이 무슨 생각하는거야, 라스! "
" ...미안하군 "
" 아, 조금 열 받았으니까 기어 올린다! "
그 말과 동시에 화랑의 공격 템포가 아까보다 훨씬 빨라졌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봐주고 있거나... 아니면 간만 보고 있던건가. 진짜... 재미있네. 그런 화랑의 공격에 라스 본인도 제대로 싸우기 위해 그를 따라 기어를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순식간에 둘 사이에 끼어들어 공격을 막았다. 뭐야. 으르렁, 마치 호랑이가 위협을 하듯 소리를 낸 화랑의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 진! "
" 왔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라스와 싸우고 있던거야? "
" 바쁜 누구씨가 나쁜거 아냐? 그나저나 왜 끼어드는거야, 이제 좀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
" 여기가 어딘지를 생각해. 여차하면 사람들을 수용해야하는 곳이 엉망이 되면 곤란해 "
" 쳇, 그건 그렇지만... "
둘이 공격하는 그 찰나 중간에 끼어들어 공격을 막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게 진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한껏 사나운 호승심을 품고 있던 화랑은 진을 보자마자 바로 자세를 풀었다. 그리곤 곧바로 진과 사담을 시작하는 화랑을 본 라스도 자세를 풀었다. 조금... 아쉽군. 그렇게 생각한 건 라스 뿐만이 아니었는지 화랑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런 그를 보던 진이 작게 웃으며 올라가자는 말에 화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스에게 기회가 되면 다음번에, 라고 말하고 진과 함께 대피소 밖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라스는 순간 화랑의 허리에 감기는 팔과 힐끔 자신을 노려보는 진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보니 일부로 사이에 끼어들어 자신과 화랑의 싸움을 막은 것. 그리고 라스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화랑하고만 대화를 나눈 것. 그걸 전부 조합하면 나오는 결론은. 설마, 저 카자마 진이...
" 나를 견제하고 있다고...? 화랑, 그의 관심을 끌까봐...? "
화랑은 강한 자에게만 관심을 가진다. 그 전까지 화랑의 관심과 호승심은 오직 진에게만 향했지만 같이 공투를 하는 과정에서 진만큼이나 강한 라스와도 인연이 생겼다. 그 사실이 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걸 알게 된 라스가 작게 웃었다. 정말 재미있다. 지금까지 화랑이 뒤를 쫓는 걸 보고 그가 진에게 집착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화랑이 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이 화랑에게 집착하고 있을 줄이야. 정말... 재미있네. 자, 그럼... 어떻게 해볼까. 아니, 내쪽에서 뭔가를 할 필요는 없지. 이미 다음번에 라는 언질을 받았으니까. 내가 가지 않아도... 그가 내 쪽으로 오겠지. 라스가 천천히 대피소 밖으로 향했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3. 스토리&플레이 티저 트레일러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진에게 내민 손의 주인공이 화랑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어서... 죄책감에 악몽을 꾸는 진의 손을 잡아주는 화랑으로 진화랑. (동거 중)
점점 가라앉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물 속으로. 점점 멀어지는 빛을 진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올라가야 한다고 머리에선 외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몸은 그저 밑으로 가라앉기를 바라는 듯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지친걸까. 미시마의 저주 받은 데빌의 피. 그것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진은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죄책감은... 있다. 아무리 아자젤을 불완전하게 강림시켜 소멸시키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였다지만 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아아, 들린다. 자신들은 정말 죽었어야 했냐며 절규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 역시도 죽어야한다고... 그래, 차라리... 죽어버리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나도... 지옥행일테니 결국 어느 쪽이든 벌을 받는건 같겠네. 그래, 차라리 나도 여기서...
헛소리하지마, 이 자식아. 순간 물 밖에서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렇게 죄책감이 든다면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갚아, 도망치지마! 그리고...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해, 혼자서 다 감당하려들지 말고! 많이 듣던 목소리, 항상 자신의 뒤를 따라붙는 목소리. 데빌에게 침식 당한 그때도 자신을 부르던 그 목소리. 저도 모르게 뻗은 손을 물 밖에서 들어온 손이 붙잡더니 자신을 위로 끌어올렸다. 그제서야 숨이 막혀왔다. 벌린 입으로 물이 마구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 정신차려, 진! 그 목소리와 함께 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식은땀이 주륵 이마를 타고 흘렀다. 가슴이 찢어질 듯 밀려오는 통증에 진이 입을 크게 벌려 심호흡을 했다. 분명 숨을 쉬고 있는데 산소가 입으로 폐로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괴로워...! 그 순간 누군가가 한 손으로 진의 코와 입을 막았다. 진, 천천히 숨셔. 아니다, 내가 말하는대로 해. 들이마시고... 내쉬어. 그래, 좋아.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진은 충실히 목소리를 따라서 숨을 쉬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겨우 숨이 돌아온 진을 확인한 누군가가 손을 떼고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 이제 좀 진정됐어? 과호흡이라니, 또 악몽이라도 꾼거야? "
" ...화랑? "
" 그래, 나다. 일단... 손부터 펼까? "
그 말에 진이 제 오른손을 확인했다. 제 오른손이 화랑의 왼손을 꼭 쥐고 있었다.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세게 쥐고 있다는 걸 확인한 진이 황급히 손에서 힘을 빼자 화랑이 제 왼손을 쥐었다폈다를 반복했다. 잘게 떠는 손을 본 진이 황급히 일어나려는 걸 막은 화랑이 가볍게 왼손을 털고 진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 일어나기에는 아직 일러. 좀 더 자라 "
" 하지만... "
" 시끄러워, 네가 깨어 있으면 나도 못잔다고... 잠들 때까지 손 잡아 줄테니까 "
그러면서 이번엔 오른손을 펼쳐 자신의 왼손을 붙잡는 손에 진이 손을 펼쳐 깍지를 꼈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손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묘하게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점차 진의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변하고 잠이 든 걸 확인하자 진의 눈을 가린 왼손을 뗀 화랑의 눈에 왼손의 상처가 들어왔다. 데빌의 힘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진이었지만 가끔씩 이렇게 진의 정신이 약해질 때면 데빌의 흔적이 나타나곤 했다. 오늘은 자신의 손을 붙잡은 진의 오른손이 데빌의 것으로 변하면서 그 날카로운 손톱에 제대로 찍히고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손으로 용케도 진에게 피를 안묻혔네. 모르는게 낫지, 알게되면 이 바보같은 녀석은 또 죄책감에 시달릴테니까. 후우... 잠은 다잤네. 작게 중얼거린 화랑이 오른손에 힘을 줘 조금 더 강하게 진의 손을 잡았다.
" 괜찮아. 내가 항상 옆에 있을테니까 "
그나저나 이 자식이 깨어나기 전에 상처부터 치료하고... 아, 뭐라고 변명하지. 붕대 감고 있으면 틀림없이 의심할텐데... 하여간에 묘하게 이상한 곳에서 눈치가 빠르니까 이 자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랑이 낮은 한숨을 쉬었다. 둘에게 유독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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