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화랑] 썰 모음 3

진화랑 2개, 데빌진화랑 1개3 2023년 8월 8일 연성.

1. 이름에 맞게 꽃을 주식으로 하는 화랑과 그런 화랑에게 꽃을 선물하는 진 (현대 AU)

화랑이 꽤나 진지하게 보고 있는 건 색색의 꽃들이었다. 흐응, 꽃집 앞에서 멈춰선 화랑이 제법 진지한 눈으로 꽃을 훑는 것을 본 주인이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본인이 들으면 오글거린다며 질색팔색한 소리긴 하지만 그의 외모는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지나가다 한번씩 돌아볼 정도로 잘생긴 외모니까. 아니, 잘생긴 정도가 아니라 뭔지 모를 색기까지 갖추어져 있는 외모라고나 할까나. 한참 꽃을 훑어보던 화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새하얀 꽃잎을 가진 수선화였다. 저걸... 5송이 정도만. 화랑의 말에 알바생이 아주 정성껏 예쁘게 피어난 수선화를 5송이 골라 포장해서 화랑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가게에 온 손님이 존대는 커녕 반말을 해대고 있었으나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주인은 다음에 또 오세요, 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환대했다. 그렇게 꽃을 들고 가던 화랑의 손이 꽃잎 한장을 따더니 그대로 입에 넣었다. 차갑고 희미한 단맛. 이거 같은 수선화인 은방울 수선화랑 곁들어서 먹으면 단맛이 좀 더 많이 날 것 같은데. 그 얇디 얇은 꽃잎을 어금니로 짓이기며 제 갈길을 가는 화랑의 주식은 바로 꽃이었다.

" 화랑 "

" 음? 진? 바~쁜 재단 대표가 툭하면 한국 온다, 너? "

제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선 누가 봐도 고급 차 안의 뒷자석의 유리창이 반쯤 열리자 보인 사람은 카자마 진이었다. 제 사범인 백두산과 미시마 재단의 간부인 리 차오랑의 인연으로 진과 안면을 트게 된 이후 일본의 미시마 재단의 대표로 하루하루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고 있을 진은 이상하리만큼 툭하면 자주 화랑을 찾아왔고 그때마다 화랑은 재단에 일이 어지간히 없는거냐, 그만 좀 와라. 하고 축객령을 입에 담곤 했지만 진은 1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진의 태워줄까 라는 말에 화랑이 잠시 눈을 굴리다 자리 좀 만들어봐. 라며 말하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하여간에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뭐든지 다 자동이냐.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화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파악한 진은 작게 웃으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랑이 차에 타자 역시나 문은 자동으로 닫혔다.

" 한국에서 회의가 있어서 왔다가 얼굴이나 볼까 하고 온거야. 근데 그 꽃... "

" 응? 아, 내 식사 "

" ...여전하구나 "

진의 말에 화랑이 수선화의 꽃잎을 한장 따 입에 넣었다. 차갑고 희미한 단맛이 입에서 멤돌다 사라졌다. 남들이 볼 때는 확실히 이상했지만 화랑에게는 이것이 식사였다. 화랑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었고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꽃이었다. 갑작스런 원인 모를 섭식장애 - 그를 진찰한 의사는 고아원 시절 학대를 당한게 아닐까 추측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 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화랑이 막무가내로 먹을 수 있어 보이는 것은 닥치고 입에 넣었다 토하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유일하게 찾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꽃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화랑이야? 미시마 재단이 주최한 파티에 가서도 음식은 커녕 식탁에 장식되어 있던 이름 모를 꽃을 한송이 뽑아 꽃잎을 먹던 화랑을 본 진의 첫 질문을 화랑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힌 질문이었지. 괜시리 떠오른 그때 그 기억을 다시 뒤편으로 밀어넣은 화랑이 다시 한장을 더 따서 입에 밀어넣었다.

" 그거 수선화잖아, 무슨 맛이지? "

" 차갑고 희미한 단맛이 나 "

" ...근데 정말 그런 걸로 식사가 되는건가? 운동 선수로서 필요 칼로리와 영양분은... "

" 저번에도 말했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꽃으로도 필요 칼로리와 영양분은 채워지거든? 너무 신경쓰지 마시죠, 스폰서님? "

" ...화랑 "

" 그렇게 불려지는거 싫으면 너도 내 식사로 그만 트집 잡으라고 "

한국인 태권도 선수인 화랑의 스폰서가 일본의 미시마 재단인 것은 꽤나 큰 화재였던 모양이었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도장으로 하루에 수십통의 전화가 왔으나 이 전화들은 모두 화랑의 사범인 백두산의 일갈과 그와 인연이 있는 리 차오랑의 발 빠른 대응으로 소란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국적을 떠나 실력 있는 선수를 지원하는 것이 미시마 재단의 뜻이라면서. 그 때문일까, 최근에는 영국의 천재 복싱 파이터인 스티브 폭스도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화랑의 스폰서라는 단어에 정색을 한 진은 화랑의 일갈에 결국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집을 잡는게 아닌 걱정을 해서 한 말이라는 걸 화랑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걱정을 받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은 자기가 내 스폰서인건 맞는데 왜 스폰서라는 단어를 싫어하는거야?

" 아, 여기서 세워줘 "

" ...그래 "

화랑의 말과 진의 신호에 차는 부드럽게 갓길에 섰다. 으챠, 덕분에 편하게 잘 왔다. 잘가라. 대충 손을 흔들고 몸을 돌린 화랑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랑.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샌가 차에서 내린 진이 가만히 화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화랑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진이 이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잘가. 다음에 또 보자. 진의 말에 싱거운 소리를 하기는, 이라며 살짝 웃은 화랑이 손을 흔들며 도장 방향으로 사라지는 걸 본 진이 한숨같은 숨을 토해냈다. 화랑. 진이 다시 화랑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이게 왠 장미꽃이야? "

며칠 후 화랑은 도장으로 배달된 한송이 붉은 장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쁘게 잘 포장된 장미를 손에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화랑이 배달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으나 이름은 없었다. 다만 주소 만은 정확하게 도장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뭘까나... 잠시 고민하던 화랑은 이내 조심스럽게 장미 꽃잎을 한장 따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화랑의 눈이 커졌다. 뭐지, 이거...? 뭐야, 이거... 엄청 달고 맛있잖아...! 여지껏 먹어왔던 여러 꽃들 중에 최고로 맛있는 장미였다. 뭐지, 장미를 처음 먹는 것도 아닌데... 그때 먹었던 장미보다 지금 이 장미가 몇만배는 더 맛있어...! 화랑은 순식간에 장미를 먹어 치웠다. 그리곤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부족해, 한참 부족해. 화랑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랑의 아쉬움을 달래듯 그 다음 날에도 장미꽃이 한송이 배달되었다. 화랑은 이번에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렇게 매일 하루하루 장미꽃이 배달오고 화랑은 하루에 한송이씩 장미를 먹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화랑의 몸이 더 이상 다른 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다른 꽃의 잎을 먹은 화랑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꽃잎을 토해냈다. 뭐야, 이 쓴맛... 아니, 쓴맛 정도가 아니라... 목으로 넘기기가 무섭게 몸 자체가 꽃잎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하, 미치겠네. 화랑이 쓰게 웃었다. 다음 날, 또 다시 배달된 장미꽃을 가만히 들고 있던 화랑이 입을 크게 벌려 꽃을 한입 가득 물어 씹었다.

" 안색이 별로네? "

" 닥쳐 "

3개월 후 화랑을 다시 만난 진은 안색이 나빠진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와 같은 권유로 진의 차에 올라탄 화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다 이내 중얼거렸다. 더 이상 꽃도 못먹겠어. 그 말에 진이 뭐? 라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아, 다시 한숨을 쉰 화랑이 속내를 털어놨다. 3개월 전부터 도장으로 꼬박꼬박 하루에 한번씩 장미꽃 한송이가 배달되길래 그걸 먹었더니... 몸이 다른 꽃을 못받아드리고 있어. 장미꽃에 뭐 약이라도 발랐나... 아, 진짜. 그걸 또 배고픈데 잘됐다고 덥썩 먹은 내가 등신이지... 어휴...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이 입을 열었다.

" 근데 처음에 왔을 때는 그렇다치고 그 다음부터는 왜 먹은거지? "

" ...맛이 달라 "

" 맛? "

" 그래. 뭐라고 할까나... 맛이 진하다고 해야하나... 꽃들은 맛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있어도 희미해서 실질적으로 맛을 본다는 것 보다 살려고 먹는거나 다름 없거든. 근데 그 장미꽃은 맛있었어. 마치... 누군가가 직접 해준 음식 같은 느낌...? 여하튼 그런 느낌이었어. 그래서 내 몸이 거기에 길들여진거겠지. 너 같으면 맛있는 음식 먹다가 맛도 없고 씹는 맛도 없는 음식 먹으면 목으로 넘어가겠냐? "

" ...그렇구나. 그럼 화랑, 이건? "

그러면서 진이 건낸 것은 붉은 장미꽃이었다. 가시와 줄기가 깔끔하게 손질된 장미꽃에 인상을 찌푸린 화랑이 됐다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진이 장미꽃을 든 손을 내리지 않자 결국 장미꽃을 빼앗듯이 받고는 오늘 몇번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 ...먹고 차에다 토해도 원망마라 "

" 원망 안해 "

조심스레 꽃잎 한장을 뜯은 화랑이 입에 밀어넣고 천천히 꽃잎을 씹었다. 그리고 화랑의 눈이 커졌다. 이 장미, 이 맛은... 3개월 동안 매일같이 먹어온 그 장미의 맛이었다. 휙, 화랑이 황급히 진을 바라보았다.

" 맛이 없을리가 없지. 내가 널 위해 손수 기른 장미들인데 "

" 진, 너... "

" 넌 괜찮다고 했지만 난 네가 항상 걱정됐어, 화랑. 그래도 넌 꽃이 아니면 안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널 위해 손수 기른거야. 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

꽃을 먹던 네가 너무 이뻐서 첫눈에 반했거든. 아, 왜 많은 꽃들 중에서 장미를 골라서 기른줄 알아? 넌 꽃처럼 그저 이쁘기만한게 아니라 가시가 있는 장미 같았거든. 너는 나를 그저 스폰서로 보고 있는지 몰라도... 난 진심이야. 진이 화랑의 손을 잡아 손등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윽, 진이 진심이라는걸 깨달은 화랑의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졌다.

" 아, 젠장... "

" 화랑 "

" 어차피 난 이제 네 장미가 아니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고... 아, 진짜! 그래, 네 마음 다 먹어줄게. 후회하지마! "

진이 화랑의 손에 들려있던 장미의 꽃잎을 뜯어 화랑의 입으로 가져갔다. 화랑은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꽂잎을 받아먹었다. 달아, 화랑이 중얼거렸다. 화랑을 향한 진의 사랑은 달콤하고 진하기 그지 없었다.


2. 철권 7, 데빌진 스토리모드에서 데빌진이 기절한 화랑을 데리고 도망갔다면?

드디어 찾았다, 진! 정말 재미있는 인간이라고 데빌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처참할 정도로 깨지고도 이 인간은 두려움은 커녕 계속해서 자신에게 도전해온다. 아마도 이 몸의 원 주인을 쫓아오는 듯 했지만 마주하는 것은 항상 자신이었다. 봐, 지금도 이 인간 앞에 서 있는건 데빌인 나잖아? 데빌은 자신의 공격에 쓰러지면서도 끝끝내 다시 일어나 파이팅 자세를 취하는 인간, 화랑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아자젤과 동귀어진 하는 과정에서 몸의 원주인인 진은 힘을 다한 듯 의식조차 돌아오지 않았고 덕분에 데빌은 간만에 두통 하나 없이 온전하게 화랑과의 싸움을 즐겼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그는 계속해서 일어나 덤벼들었다. 하지만 슬슬 체력의 한계가 온 듯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시선에 데빌이 천천히 화랑에게 다가가던 순간. 총소리와 함께 바닥에 총탄이 박혔다.

뭐? 놀란 화랑과 달리 데빌은 놀람보다는 자신을 방해했다는 불쾌감이 더 컸다. 자신을 잡겠다며 몰려드는 파리같은 것들. 그리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뭔가를 가만히 바라보던 데빌은 갑자기 저를 걷어차는 힘에 그대로 밀렸다. 바보야, 도망쳐! 데빌을 걷어차고 그대로 공중에서 터진 무언가의 폭발에 휘말려 쓰러진건 화랑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싸우고 있었으면서, 몸의 원주인인 카자마 진을 내놓으라며 자신을 원수 보듯이 하더니. 호인인건지 아니면 카자마 진이 그렇게나 소중한 것인지. 데빌이 가만히 쓰러진 화랑을 보다 날개를 펼쳤다. 지금은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순순히 도망갈 생각이었지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 세례에 결국 데빌은 참지 못하고 주변을 레이저로 초토화를 시켜버렸다. 주변이 불에 휘말리고 모래 먼지로 시야가 가려졌을 때 데빌의 시선이 다시 화랑에게로 향했다.

모든 인간을 다 자신의 발밑에 굴복 시켜도 이 인간만큼은 자신의 곁에 두고 굴복시키고 싶다. 자신에게 몇번이고 쓰러져도 두려움 하나 없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맨몸으로 덤벼오는 유일한 인간, 화랑. 다른 그 누구보다 너의 공포는 분명 나를 만족시키고도 남겠지. 데빌이 웃으며 화랑의 팔을 잡아 일으키더니 그대로 품에 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날아가면서 항상 호승심이 섞인 표정만 보다가 정신을 잃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왜 몸의 원 주인인 카자마 진이 화랑과 대치 했을 때 제 안에서 날뛰는지 데빌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정말 감정이 다채로운 인간이라고 데빌은 생각했다. 희노애락이 너무나도 선명한 인간, 아마도 이런 점이 그와 자신의 관심을 끈거겠지. 정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며 부딪친다. 솔직할 정도로 뻔히 보이는 감정은 확실히 마음을 흔들기 충분하다. 그 감정을 보고 있던 데빌의 입에서 순수하기까지 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3. 섹피 AU로 선조귀환 삵 화랑른 (결국 진화랑 될거니까... 이것도 길게 쓸 예정있음)

뭐야, 이거 뭐야. 왜 사람들의 얼굴이 다... 동물로 보이는거야! 갑작스런 이상현상은 대회 진행 중 발생했다. 화랑이 자신의 상대였던 스티브와 아주 열띤 시합을 펼쳤고 공격이 동시에 크로스 카운터로 들어가면서 둘이 동시에 다운. 시합의 결과는 무승부가 되었다. 아으... 또 급하게 공격하러 들어갔다고 사범님한테 된통 혼나겠네. 하여간에 이놈의 호승심. 스티브에게 제대로 맞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려보려던 화랑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과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 화랑, 괜찮아? "

" 어, 괜찮... "

이내 자신의 눈에 들어온 비상식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분명 목소리는 스티브인데, 저에게 내밀어진 상처 많은 손도 분명 스티브의 것인데 왜 얼굴이 사자의 얼굴이지? 어라...? 자신을 바라보는 화랑의 눈에 당혹감과 혼란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스티브가 다시 한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화랑은 말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충 손을 흔들고는 링 위를 나서는 걸 본 스티브의 코 끝에 향이 스쳤다. 이 향은, 자신의 숨겨진 본성을 끓어오르게 하는 이 향은... 설마 화랑 너...

이를 악문 체 화랑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급하게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간간히 복도를 지나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게 빠르게 대기실로 향한 화랑은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힘 조절 없이 문을 닫았다. 쾅,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자마자 화랑이 문에 기대 주르륵 주저앉았다. 아, 진짜.

" 뭐야, 진짜... 한두명 정도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왜 스티브 녀석은 사자고, 다른 사람들은 원숭이냐고... 아, 머리 정통으로 맞아서 뇌라도 이상해졌나... 무엇보다 몸이 이상하게 너무 무거워... "

" 화랑? 괜찮아? "

아무리 격렬한 격투 직후라고 해도 이상하게 너무 무거운 몸에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은 것도 잠시 문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랑이 퍼득 고개를 들었다. 카자마 진이었다. 맞다, 이 자식도 있었지. 쓰게 웃은 화랑이 눈을 감고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다 눈을 떴다. 그리고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 뭐야, 뭔일이라도 났어? "

" 아니, 다른 사람들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해서... 괜찮아? "

"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

" ...들어간다? "

" 자, 잠깐! "

아, 무식하게 힘만 좋아가지고! 문에 기대있던 화랑이 안으로 밀리는 문에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황급히 일어나 대기실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묵직한 향이 화랑의 코 끝을 자극했다. 이 자식 향수 같은 거 쓰나? 아니, 그럴리가 없을텐데. 근데 뭔가... 토할 것 같아. 화랑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진이 황급히 다가가려 했지만 그보다 화랑의 외침이 더 빨랐다.

" 오지마, 진! "

" 화랑, 아프면 빨리 병원으로... "

" 하, 까딱 잘못하면 정신 병원 갈지도 모르겠는데. 애시당초 사람들 얼굴이 동물로 보이는게 정상일리가 없잖아 "

" 뭐? "

" 스티브는 사자로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원숭이로 보여... 이게 정상이 아니잖아. 그리고 진, 너 향수 같은 거 썼냐? 너한테서 향 같은게... 너무 독해서... 토할 것 같은데... "

" 이건 향수 같은게 아냐. 너한테서도 향이 나고 있으니까 "

" 무슨 소리야, 난 그런 거... "

" 화랑, 난 뭘로 보여? "

" 뭘로 보이냐니, 그게 무슨... "

영문 모를 진의 말에 고개를 든 화랑은 움찔, 그 답지 않게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건 분명 진일텐데. 그 얼굴은, 눈은 동물의 것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오렌지빛의 세로 동공인 걸 본 화랑이 마른침을 삼켰다. 화랑, 나는 뭘로 보여? 다시 한번 더 날아온 질문에 화랑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을 토해내듯 내뱉었다.

" 뱀... "

" 그래. 난 뱀목 중종... 혼현은 반시뱀이다. 네가 내 향... 그러니까 페로몬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화랑, 너 선조귀환으로 반류가 된거야 "

" 아, 씹...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뱀목 중종? 혼현? 페로몬? 무슨 동물을 말하듯이 말하는거야, 너... "

" 동물과 인간의 혼, 특성을 갖고 태어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반류라고 부르지. 스티브는 사자로 보인다고 했지? 그 녀석은 고양이과 중종으로 혼현이 사자야. 그래서 얼굴이 사자로 보인거지. 그 밖에 원숭이로 보인 다른 사람들은 반류가 아닌 원인들이고 "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그 반류인지 원인인지 그거 때문에 지금 내 눈에 모두가 동물의 얼굴로 보이는거라고? "

" 갑자기 반류로 각성해서 혼란스러운 건 알지만 화랑, 일단 이쪽으로 "

자신에게 내밀어진 진의 손을 바라보던 화랑이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 속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반류, 원인, 혼현, 선조귀환. 모두 화랑의 머리 속에는 없는 지식들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화랑 자신이 진에게 반드시 가야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 같은 것을 받은 것 처럼. 으득, 이가 갈렸다. 화랑. 한번 더 진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열린 문으로 또 다른 향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 젠장. 화랑이 중얼거렸다.

" 새치기 할 생각하지마, 카자마 진 "

"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

" 화랑을 선조귀환으로 각성 시킨 건 나야. 나와의 대결을 통해 각성됐다고. 그러니 받아가도 내가 먼저겠지 "

" 난 화랑을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아 "

" 하, 그래? 그럼 네 페로몬이나 감추지 그래? "

진과 대치하고 있는 건 방금 전까지 화랑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스티브였다. 하아, 스티브에게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경계의 페로몬에 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스티브는 진에게 화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를 선조귀환으로 각성 시킨게 자신이니까 소유권이 자기한테 있다고? 언제부터 반류의 세계에 그런 법이 있었지? 진이 매섭게 스티브를 노려보았다. 스티브의 입에서 그르렁, 마치 사자처럼 위협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에 뒤질새라 진의 입에서도 쉬익, 뱀의 위협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둘에게서 페로몬이 더욱 더 강하게 흘러나오자 결국 참지 못한 화랑의 몸이 무너지면서 입에서 위액을 토해냈다.

" 화랑! "

" 건드리지마! "

둘이 동시에 화랑을 부축하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거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종 둘의 페로몬에 괴로워 위액까지 토해내는 그 순간에도 화랑은 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거부의 말이었다. 콜록, 콜록... 아, 젠장... 손으로 대충 입을 훑은 화랑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 진짜... 도대체 알아듣지 못할 소리나 해대고...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어 "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화랑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소리쳤다. 반류인지 원인인지 알게 뭐야! 날 우습게 보지마! 이딴 이상한 향에... 내가 질 것 같냐! 화랑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리고 그런 화랑의 모습에 둘은 전율했다. 진짜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 절대로 꺾이지 않을 그 자존심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중종 둘은 물론이고 알게 모르게 열려 있는 문으로 셋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반류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걸 화랑은 알고 있을까? 하아, 하아. 호기 좋게 외치긴 했지만 스티브와의 시합과 선조귀환의 각성으로 이미 잔뜩 지쳐있는 화랑의 정신은 한계였다. 아... 간신히 정신을 다잡으러 노력한 것도 잠시 흐릿해진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 ...미안하지만 두 사람 모두 물러나주겠나? "

" 사범... 님... "

" 고생했다, 화랑. 쉬거라 "

지금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고 든든한 사람. 백두산의 등장에 화랑의 눈이 완전히 감기고 앞으로 쓰러지려는 것을 받아 든 백두산이 흠, 숨을 흘리며 화랑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자신의 제자가 선조귀환이라. 정말이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티를 내지 않았다. 앞으로 화랑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면 오늘의 일은 그저 헤프닝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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