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 Septum (중격)
서로 싸우자고 했지만...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협력이잖아? 2023년 8월 18일 연성.
철권중의 리더 카자마 진과 레지스탕스의 리더 화랑의 비밀스런 회담의 이야기를 들은 미겔의 분노는 아주 대단했다. 철권중이 레지스탕스를 원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중요한 일에 간부 중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간 리더에 대한 분노였다. 에, 거절했으면 된거 아냐? 그 말에 분노폭발, 그를 때리려 달려들었으나 화랑은 잽싸게 책상을 넘어다니며 잘도 미겔의 공격을 피해다녔고 그런 둘을 다른 간부들과 백두산은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 거기서, 이 날다람쥐 같은게! "
" 서면 맞을게 뻔한데 왜? 아니, 무엇보다 다같이 갔다가 진짜 함정이었으면 어쩔려고? "
" 그런거 다 상정해서 준비 마치고 갔을거라고! 하여간에 너는 리더로서의 생각이... "
" 그래서 혼자 간거라고. 애시당초 나 하나 없다고 쉽게 무너지는 조직도 아니잖아? "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다니던 미겔이 멈췄다. 그가 멈춰서자 화랑도 도망을 멈추고 허리에 왼손을 올렸다. 리더 하나 없다고 무너질 조직 같았으면 진작에 내가 무너트리고 도망갔을걸? 그리고 내 폰을 해킹해서 연락할 정도니까 혼자 가는게 맞는거라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기를 원한걸테니까. 화랑의 말에 미겔이 하아, 한숨을 내쉬고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장난에 레지스탕스 사람들이 피해 받기를 원하지 않는거면 더 신중했어야지, 이 망할 놈의 리더가. 아, 진짜 왜 너를 리더로 밀었지? 그 말에 화랑이 웃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걸 알아차린 백두산이 한발짝 나와 손뼉을 쳐 자신에게 시선을 모았다.
" 자, 그럼 촌극이 끝난 것 같으니 다음 일 이야기를 하지 "
" 촌극이라니 너무하시네, 백두산씨 "
" 다음 의뢰자는 로슈포르 기업의 회장이다. 전쟁은 아니고 호위, 점령 임무인데...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정예부대로 2부대 정도만 갈거다 "
" 장소? "
" ...미시마 재단이 점거했던 로슈포르 기업의 유전 시추 시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안에 미시마 재단이 개발 중이던 로봇 병기가 잔뜩 깔려있다는군. 전쟁이 끝났음에도 시설 안의 로봇 병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지키고 있어 중앙 통제실로 접근 및 시추 기계의 재가동이 힘들어서 우리에게 의뢰를 했지. 우리의 목표는 시설 안의 로봇 병기를 모두 소탕하고 로슈포르 기업이 시추 기계를 재가동하고 안정화 될때 까지 그들을 호위하는 거다 "
" 그렇군. 석유 시추 시설인데 잔뜩 몰려가서 화기라도 잘못 다루는 순간 건물 폭발은 시간 문제니 소수 정예만 간다는건가 "
" 로봇 병기? "
화랑이 눈을 번쩍 빛냈다. 전세계를 배경으로 치루어졌던 모두가 아는 미시마 가 3자 전쟁. 그 전쟁의 잔재로 남은 로봇 병기라는 말에 화랑이 눈을 빛내자 미겔이 가볍게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한대 때렸다. 맞은 머리를 문지르던 화랑이 이내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손으로 책상에 놓인 지도와 시설 설계도 위에 올려진 모형으로 만들어진 레지스탕스의 부대 깃발을 몇개 가리켰다.
" 그럼 데려갈 부대는 M-1팀, R-1팀이네 "
" R-1팀? M-2팀이 아니라? "
" 아, 거기에 D-1팀 추가. R-1팀, D-1팀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돌발상황에 대처한다 "
" ...이유는? "
" 주인 없는 석유 시설이라니 당장이라도 점령하고 싶을테지... 만 내부의 로봇 병기가 나돌아다니고 있을테니 점령은 뒤로 미루고 근처에서 감시하면서 기회를 노릴거야. 누군가가 들어가 그 로봇 병기를 다 처리할 때까지. 그리고서 바로 뒤치기로 그 누군가를 처리하고 유전을 차지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놈들이 분명 있을테니까 "
" 그런거면 규모를 늘리는게 낫지 않나? "
" 광고할거야? 지금 시설 안의 로봇들 정리 중입니다 라고? 소수만 데려가서 우리도 너희들과 같은 생각으로 견제 중이다, 라고 어필하는게 편할걸? "
" 흐음... 내부에 M-1팀을 데려가는건 찬성이지만 D-1팀도 넣어. 내부의 도사리고 있는 병기들이 원거리 공격을 안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
" 헤에, 그럼 반반 섞는건? "
" 이견 없음 "
" 다른 사람들은? "
화랑과 미겔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간부들도 지금은 이견 없음을 표시했다. 백두산만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필요한 물자와 병기들을 머리 속에서 계산할 뿐이었다. 레지스탕스의 전략 회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백두산이 의뢰를 낚아오면 화랑과 미겔이 전략을 짜고 다른 사람들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의견을 제시한다. 특히나 시뮬레이션이 가장 중요했는데 이유는 화랑과 미겔, 두 사람이 제시하는 전략의 기준이 항상 자기 자신들에게 맞춰져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망갈 탈출 루트 정도는 준비하긴 하지만 그래도 빠듯했다. 물론 그 탈출 루트도 화랑, 미겔, 백두산이 손수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 식으로 짜기 때문에 불만이 없는거지만. 애시당초 탈출을 해야하는급박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하는게 리더의 역활인데 그러지 못하면 당연히 아래를 지키기 위해 위가 책임을 져야지. 화랑의 말은 확실히 자신의 위치의 막중한 책임을 아는 사람의 말이었다. 물론 백두산의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작전은 14일 후니 최소 열흘 전까지는 시뮬레이션 테스트 후 작전 수정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해주게나. 그럼 해산하지. 작전 시작 14일 전. 해야할 일이 많았다. 백두산의 말에 화랑을 제외하고 모두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텅빈 회의실에 남아있던 화랑이 지도를 보더니 이내 적을 나타내는 붉은색 사람 모형을 들어 툭 지도 위에 올렸다. 흐응, 화랑이 소리를 흘리다 이내 회의실을 나갔다. 목표 지점에 아군을 나타내는 푸른색 사람 모형과 적을 나타내는 붉은색 사람 모형을 동시에 놓아둔 체.
" 만나서 반갑군. 로슈포르 기업의 회장을 맡고 있소. 편하게 로슈포르씨라고 불러주면 좋겠군 "
" 반가워. 레지스탕스의 리더, 화랑이야. 이쪽은 전투 부대의 대장 미겔과 정보전략 부대의 대장 백두산 사범님. 그럼 좀 이르긴 하지만 간단하게 이번 작전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로슈포르씨? "
" 하하, 그래. 좋네 "
작전 실행 하루 전 모나코로 이동한 레지스탕스는 부대원들은 미리 작전 지역으로 이동해 지정된 시간에 바로 작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준비를, 핵심 인원 세 사람과 작전 설명을 위한 정보전략 부대의 인원 1명이 로슈포르 기업으로 향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로슈포르 회장이 있는 대회의실로 들어간 화랑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큰 직책을 가진 사람이자 의뢰인을 보고도 굽신거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려는 화랑을 보고 로슈포르 회장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화랑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낀 건 회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 잠깐, 당신 우리 아빠한테 할 말이 그것 뿐이야? 그것보다 태도가 건방져! "
" 리리! "
" 로슈포르씨, 이 아가씨는? "
" 죄송합니다. 제 외동딸인 에밀리 드 로슈포르입니다 "
" 반가워요, 리리라고 불러줘요. 미겔씨, 백두산씨 "
" 이봐, 나는 왜 빼먹어? "
" 당신같이 예의도 없는 사람은 똑같이 없는 사람 취급할 거거든요? "
화랑의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는 듯 따지고 든 사람은 마치 인형처럼 이쁜 외모를 가진 금발의 여성이었다. 화랑의 태도에 버럭 화를 낸 여성을 보고는 로슈포르 회장이 이마를 짚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백두산의 누구냐는 물음에 로슈포르 회장이 외동딸이라고 대답하자 화랑이 헤에, 소리를 흘리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살폈다. 그런 화랑의 태도에 또 다시 울컥한 그녀가 의도적으로 화랑만 빼고 인사를 건냈다. 그런 행동에 평소처럼 태클을 거는 화랑에게 다시 반박하는 리리의 행동에 로슈포르 회장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 난 로슈포르씨의 밑에 있는 부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인사도 통성명도 했는데 뭐가 문제야? "
" 그 태도가 문제라고! 완전 건방지잖아! "
"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레지스탕스와 로슈포르 기업은 일반 회사의 하청 시스템 같은 걸로 묶인게 아니야. 오히려 지금 급한건 로슈포르 쪽 일텐데? 그리고 지금 이런 시시한 일에 자꾸 시간 쓰면 내일 작전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건 괜찮아? "
" 리리, 그만하거라 "
로슈포르 회장의 말에 리리는 칫, 혀를 차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런 리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화랑이 신호를 주자 함께 따라온 정보전략 부대원이 지참한 노트북을 열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진입 전 시설 밖에서 호위를 할 인원부터 내부로 잡입해 중앙 통제실을 점거하는 내용까지 작전 설명이 모두 끝나자 백두산이 로슈포르 회장을 바라보았다.
" 시설 내부, 중앙 통제실까지 로슈포르씨도 같이 가실겁니까?
"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사진들이 말리더군. 그래서 자네들과 동행하는건 우리 회사의 시스템 엔지니어 2명일세. 나는 자네들을 기다릴거고 "
" 만약 개인 경비병들이 있다면 같이 와도 좋아. 물론 갑작스런 전투 발생 시 지휘권은 우리한테 있다는걸 명심하고 "
" 알고있네. 전투는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정답이니까 "
" 알아주니 고맙네. 그럼 미겔 "
" 내일 로슈포르씨 호위는 시설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DM-1 팀과 R-1팀이 맡을겁니다. 베테랑들로만 구성된 팀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내부 진입 시 시스템 엔지니어들의 호위는 저희 3명과 DM-2팀이, 건물 중앙까지 진입 후 중앙 통제실로는 백두산씨와 DM-2 팀의 일부 인원이, 나머지 인원들은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 중앙 통제실 밖에서 대기. 이 작전을 바탕으로 작전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은 6시간 정도. 내용에 이의라도 있을까요, 로슈포르씨? "
" 없네. 애시당초 레지스탕스를 믿고 의뢰한 거니 작전도 믿어야겠지. 다만 함께 내부로 진입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들의 안전에 신경 써주게 "
" 그건 걱정하지마, 레지스탕스가 죽는 일은 있어도 그들이 죽는 일은 없을테니까. 레지스탕스의 리더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그럼 작전 설명은 끝난 것 같은데 로슈포르씨는 내일 작전 지역으로 지정된 시간까지 와주면 돼. 혹시 모르니 오늘 같이 온 정보전략 대원 남기고 갈테니 내일 함께 와줘. 작전이나 다른 쪽으로 궁금증이 생기면 그에게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그를 통해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도 되니까 "
" 배려 고맙군. 알았네, 그의 오늘 1박 숙박과 식사는 우리가 책임지지. 혹시 원한다면 자네들과 미리 현장에 도착해 있을 팀들에게도 지원도 가능하다만 "
" 그건 추후 작전 성공 후 추가 보수라는 걸로 기대할게. 그럼 내일 보자고, 로슈포르씨 "
1시간 정도 작전 브리핑이 끝나고 로슈포르 기업의 건물에서 나온 화랑이 머리를 긁적이다 미겔에게 손가락 1개를 펴보였다. 한가지 돌발상황에 미리 대비해야겠는데. 그 말에 미겔이 얼굴을 찌푸리고 백두산이 돌발상황이 뭐냐며 질문했다.
" 아까 그 아가씨, 리리였나? 그 아가씨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요. 사범님 "
" 로슈포르씨의 외동딸이? "
" 착각 아니야? 좀 까탈스러운 것 같지만 어딜봐도 싸움 하나 못할 것 같은 부잣집 아가씨인데 "
"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나거든. 그 아가씨, 분명 싸움광이야. 그래서 아까 나한테 계속 시비 걸었던거야. 그걸 빌미로 싸워보려고 "
"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피곤하겠는데 "
" 내일 로슈포르씨가 그녀를 대동하지 않는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약 대동한다면 주의해야겠구나. R-1 팀에 넌지시 그녀의 감시도 추가하마 "
" 그리고... "
" 그리고 또 뭐? "
" ...아냐, 말이 빠를 필요는 없지. 그리고 발생 확률이 가장 낮은 돌발상황일테니까 "
태연하게 말을 하며 먼저 레지스탕스의 차량으로 걸어가던 화랑이 가만히 제 주머니 안에 얌전히 들어있던 폰을 꺼냈다. 한 달도 되지 않았던 그때 그 강렬한 장난감, 카자마 진과의 만남. 그리고 이번 의뢰의 장소는 미시마 재단과 관계가 있는 장소. 왠지 느낌이 좋단 말이야. 톡톡, 폰으로 제 이마를 두어번 두드린 화랑이 작게 휘파람을 부르며 다시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들 준비는 됐나? 미겔의 말에 DM-1 팀, DM-2 팀, R-1 팀이 힘차게 대답했다. 긴장하지 말고 작전대로만 가자. 그럼 DM-1 팀은 진입 준비, 다른 두 팀은 로슈포르씨와 관계자분들을 호위한다. 준비 시간은 30분. 서둘러! 미겔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대원들을 뒤로하고 화랑이 희미하게 보이는 시추 시설을 바라보다 힐끗 로슈포르씨와 그의 관계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화랑의 직감대로 그의 외동딸인 리리가 이곳까지 따라왔다. 뭐, 보나마나 가고 싶다고 엄청 졸랐겠지. 이걸로 전투광 아가씨 확정. 사범님이 R-1 팀에게 감시 임무도 추가했겠지. 화랑이 제 소지의 애총을 가볍게 다루는 사이. 리더, 준비 끝. 미겔의 말에 화랑이 힘차게 외쳤다.
" 그럼 작전명... 로슈포르의 숙녀들. 작전 시작! "
" 잠깐, 당신. 그 작전명 뭐야! "
리리의 외침을 뒤로 하고 레지스탕스는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작전을 실행했다. 차량을 타고 시설의 입구에 도착 후 진입. 화랑과 백두산이 앞장서고 중앙 통제실 진입 후 시추 기계의 재가동을 위해 함께 진입하는 로슈포르 시스템 엔지니어 2사람을 중앙에 두고 DM-1 팀 절반이 가운데. 그리고 미겔과 나머지 DM-1 팀이 후방으로 서는 포메이션이었다. 오전 11시 45분. 아직까지는 이상 없음. 이제 곧 중앙로비로 진입합니다. 어제도 함께 동행했던 정보전략 대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비의 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화랑이 그렇게나 기대했던 로봇 병기가 모습을 보였다. 육중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로봇 병기는 가장 앞의 화랑의 모습을 스캔하는 듯 하더니 기계음을 내뱉었다.
[ 침입자. 경고합니다. 경고합니다. 당신은 허가없이 이곳을 침입했습니다. 지금 당장 나가주십시요 ]
" 와우, 어디서 많이 본 병기인데? "
" 잠깐, 리더! 좀 이상합니다. 저 병기는 미시마 재단이 개발하던 병기가 아닙니다! "
" 맞아. 미시마 재단은 저런 인간형 병기는 아니었어 "
" G사다. G사의 잭-6 시리즈군 "
" 미시마 재단이 점거 했던 건물에 G사의 로봇 병기라. 그럼 의뢰인은 왜 저 병기를 미시마 재단의 로봇이라 생각했을까, 백두산씨? "
" 일반인이 미시마 재단과 G사의 로봇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이 곳을 점거했던 쪽이 미시마 재단이니 그쪽의 로봇이라 생각했던게 아닐까 "
" 뭐, 그건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전투 준비! 로슈포르 분들은 D-1 팀에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요 "
백두산과 미겔의 대화를 끝으로 화랑이 머리를 긁적이다 로봇 병기, 잭-6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미안하지만 나가야 하는건 그쪽이거든? 덤벼, 깡통 로봇. 이내 금속음과 충돌음 소리가 건물을 채웠다.
" 그들이 진입한지 얼마나 됐지 "
" 3시간 정도 됐습니다 "
" 아직도 3시간 이나 남은건가... 걱정되는군... "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회장님. 저희는 레지스탕스입니다. 의뢰인을 배신하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모토입니다 "
" 후후, 그런가. 그렇군 "
" 네, 그렇습... "
" 3시 방향, 출처불명의 항공기 접근 중! 속도 빠릅니다! "
평화로운 잡담도 잠시, 갑작스러운 보고에 레지스탕스 부대들이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그들의 머리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수송 헬기에 황급히 소속을 확인했다. 헬기의 꼬리에 붙어있는 마크, 그 마크를 확인한 누군가가 외쳤다.
" 철권중, 철권중 마크입니다! "
" 젠장, 빨리 백두산님께 연락 넣어! 불청객의 등장이다! 로슈포르분들도 일단은 저희 방탄차로 대피하십시요! "
" 알았네! 자, 다들 어서 대피하지. 리리, 너도 어서...리리...? "
진, G사의 잭 시리즈 기억하나? 라스의 질문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시마 가 3자 전쟁 중 미시마 카즈야의 G사에서 만들어 전쟁에 이용되었던 인간형 로봇 병기, 일명 잭 시리즈. 그 잭 시리즈를 만들었던 과학자는 자신이 최초로 만들었던 잭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G사의 후원을 받았고 그 보답으로 양산형 잭 시리즈의 설계도를 만들어 제공했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양산형 잭-6 였다.
" 그럼 G사의 잭 시리즈 말고도 다른 생체형 병기도 기억하나? "
" 기가스... 였나 "
" 그래, 전쟁이 끝난 후 남아있던 잭 시리즈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부셔졌지만 기가스만큼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지. 근데 최근 그 흔적을 발견했다 "
" 흔적이라고? "
" 정확하게는 기가스를 만들었던 연구자의 흔적을 발견한거지만. 그 연구자가 살아있다면 기가스도 같이 있을 확룰이 크겠지 "
" ...장소는? "
" 모나코의 대형 유전 시추 시설이다. 전 소유자는 로슈포르 기업이지만... "
" ...그렇군. 그곳인가 "
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시마 가 3자 전쟁 중 G사가 자금 확보를 위해 노리고 있는 장소 중 한곳이었던 그곳을 진이 먼저 급습해 점거하고 철권중까지 배치한 곳이었다. 본의 아니게 원 소유주였던 로슈포르 기업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런데 그곳은 분명 전쟁이 끝난 후 철권중의 배치를 해산시켰을텐데? 로슈포르 기업에서 아직도 재기동을 하지 않았다고? "
" 그래, 로슈포르 기업에서 이곳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그곳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
" ...어느 쪽이든 조사는 필요하겠군. 기가스의 일도 있고 하니 "
" 병력은? "
" 수송 헬기 1대에 탈 정도의 인원이면 되겠지 "
반은 즉석에서 정해진 작전을 진은 빠르게 실행으로 옮겼다. 폐를 끼친 로슈포르 회사의 상황을 원래 상태로 돌려주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생체형 병기를 만든 연구자가 도망가기 전 빠르게 잡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전장에서 보았던 생체형 병기, 기가스. 본래 인간이었을 그는 과도한 생체 실험과 반복되는 살육 끝에 결국 인간이 아닌 병기로 전략하고 말았다. 진, 자신도 전장에서 기가스를 보고는 기함을 토했을 정도로 최악의 병기였다. 다시는 기가스 같은 병기가 탄생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그 연구자를 잡아야만했다.
모나코로 향하는 수송 헬기에서 알리사가 건내준 시설 설계도를 보고 있던 진을 향해 알리사가 정보를 전달했다. 옥상에 헬기 착륙장이 있으니 저희는 옥상에서 진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전투가 있을 수 있으니 신중을 가해 전진을 추천합니다. 그래, 이견은 없어. 그러면... 그리고 순간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목표 지점 부근에 신원불명의 부대가 있습니다! 수는 2부대 정도! "
" 영상을! "
라스의 말에 조종사는 수송 헬기의 브라운관에 지상의 영상을 띄웠다. 꽤나 많은 수의 방탄차, 무장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 찍혀있는 문장은. 라스가 중얼거렸다.
" 레지스탕스...! "
" ...레지스탕스가 이곳에 있다라... 그들은 용병 부대야. 의뢰 없이 그들 스스로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어 "
"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건 로슈포르 기업 혹은 제 3자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있다는건가 "
" 레지스탕스에게 의뢰를 할 정도라면... 시추 시설을 점거한 무리들이 있다... 고 추측할 수 있겠군 "
" 그리고 그 시설에 기가스의 연구자가 포착됐지. 최악으로는 양산형 기가스가 다수 있을 수도 있겠어 "
" ...어느 쪽이든 전투는 피할 수 없겠군 "
" 계획을 조금 바꾼다. 알리사, 시설 진입 후 단독 행동을 허가한다. 기가스의 연구자를 찾아 생포하고 연구 기록들을 모두 기록하고 백업할 것 "
" 네, 알겠습니다 "
진이 눈을 감았다. 레지스탕스가 있다면 분명 리더인 화랑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던 그 짐승 같은 호승심 가득한 눈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전쟁과 전장을 장난감 가득한 놀이터라 표현한 그는 자신들과 마주치면 바로 적대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진이 다시 눈을 떴다.
" 지금 지상에 있는 레지스탕스 부대는 무시하고 우린 처음 목적대로 시설로 향한다. 또한 시설로 진입 후 레지스탕스와 마주칠 경우 잠시 대기한다 "
" ...괜찮을까 "
" 이곳이 전장이고 서로 전쟁 중이라면 전투가 맞지만 우리의 목표는 연구자의 생포와 기가스의 확인이다. 레지스탕스의 목표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데 괜히 적대할 필요는 없어 "
" ...그 판단이 정확하기를 바라지 "
진의 명령대로 수송 헬기는 지상의 레지스탕스를 무시하고 시추 시설의 옥상에 착륙했다. 시설로 무사히 진입 후 라스가 알리사를 바라봤다. 알리사, 작전을 시작한다. 혹시 레지스탕스가 아닌 일반인이 있다면 반드시 보호해라. 네, 알리사 보스코노비치. 작전을 시작합니다. 스캔. 철권중 소속, 안드로이드인 알리사가 작전을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인 그녀가 시설 전체를 범위로 잡아 생체 스캔을 시작했다. 목표로 예상되는 인물 포착, 다이렉트로 가겠습니다. 그럼 두분 모두 조심하시길. 아, 알리사. 시설 파괴는 최소로... 라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리사의 등이 열리고 제트팩 기관이 작동하더니 순식간에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 ...괜찮겠지, 라스? "
" 하아, 괜찮겠지. 그럼 우리도 간다 "
알리사가 날아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진로를 정한 그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보인 것에 혀를 찼다. G사의 잭-6 시리즈. 왜 이곳에 저 로봇 병기들이 있는거지? 분명 다 생산된 것들은 다 부수고 생산 공장도 모조리 파괴했을텐데. 라스의 말에 진이 제 장갑을 조였다. 기가스에 잭-6라, 조사할게 더 늘어났군. 전투 준비, 총기 사용은 최소로 줄이도록. 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을 포착한 양산형 잭-6들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 부수면서 아래로 내려가던 그들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잡혔다. 정말... 짜... 어디... 뭔가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뜻을 모두 알수 없었지만 약간 높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레지스탕스일까. 그리고 이내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 정말이지, 이런 것들이 아빠의 시추 시설을 점령하고 있었다니... 이 정도면 나 혼자여도 충분했을텐데 그 예의도 없는 사람의 팀에 의뢰를 하시다니... 아, 그렇다고 내가 싸우겠다고 하면 기절을 하셨겠지... "
" ...민간인? "
인형처럼 예쁜 외모를 가진 금발의 여성, 리리였다. 철권중이 나타나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잘도 이 시추 시설까지 온 그녀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곳까지 왔다. 자신이 부셔버린 잭-6의 파편 위에 서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던 그녀는 울리듯 들리는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드디어 만났어요. 철권중의 리더, 카자마 진! "
" 당신은 누구지? "
" 내 이름은 에밀리 드 로슈포르! 로슈포르 기업의 회장의 딸! 역시 철권중이 이곳에 나타난 걸 보니... 이런 로봇까지 동원해서라도 이 시설을 돌려주지 않으려는거죠? "
" 아니, 미안하지만 우린 그런 목적으로 이곳을 온게 아니... "
" 더 이상 그쪽 마음대로하게 두지 않겠어요! 카자마 진! "
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싸우려드는 리리의 행동에 나서려는 라스를 손으로 막은 진이 중얼거렸다. 이 쪽은 신경쓰지말고 현재 층 및 다른 층에 남아있는 잭-6의 처리를 부탁한다. 그런 진에 한숨을 쉰 라스가 대원들을 끌고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빠르게 처리하고 합류해라, 진. 리리는 진을 제외한 철권중의 일원들이 가버리자 더 이상 제멋대로 이곳을 어지럽히지 말라며 소리쳤지만 이내 진이 전투 자세를 취하자 입술을 깨물며 진에게 덤벼들었다.
" 뭐, 상관 없나요. 당신만 잡으면 될테니까! 반드시 아빠한테 사과하게 만들겠어요! "
" ...그쪽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건 인정하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임무 수행 중이라서 말이지. 제압하겠다 "
리리의 공격을 진이 차분히 막으면서 서서히 벽으로 몰고가기 시작했다. 진의 입장에서는 일반인, 그리고 이 시설의 원래 주인인 로슈포르 기업의 관계자인 이상 최대한 다치지 않게 제압해야했다. 마침내 벽으로 몰고 간 진이 리리의 양손을 한손으로 붙잡아 제압했다. 후, 한숨 같은 숨을 내뱉는 진에 리리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 이거 놔! 이 파렴치한... "
" 철권중과 나에 대한 원한이 있는건 알겠다만 이번 시설 점거는 우리가 아니야. 우린 이 시설에 있을지 모르니 다른 목표를 찾으러 온거다 "
" 거짓말! "
" 거짓말이 아냐. 그 증거로 이 시설에 깔린 로봇은 철권중이 아닌 G사의 로봇이다. 이 시설에 G사의 관계자가 숨어있을수도 있... "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벽에 금이 가더니 리리가 기대고 서있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꺄악? 갑작스레 무너지는 벽에 자세가 흐트러진 진이 리리를 놓쳤다. 읏, 리리가 그대로 공중으로 내던져지고 그녀를 구하러 달려들려던 진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뛰어오르는 거대한 몸체에 눈을 찌푸렸다. 아래층에 있던 잭-6가 위층으로 올라오기 위해 벽을 부순 것이었다. 부서진 잔해를 붙잡고 반쯤 올라오던 잭-6에 젠장, 답지 않게 입에서 거친 말이 나간 진이 잭을 무시하고 리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내리려던 찰나.
" 좋은 발판 고맙다, 깡통 로봇! "
갑자기 목소리와 함께 잭-6의 몸을 강하게 짓밟고 뛰어 올라와 잭-6를 밑으로 떨어트리고 리리의 손을 붙잡은 누군가가 안전하게 그녀를 안쪽으로 집어던졌다. 꺄아악! 다시 한번 더 들린 목소리에 진이 리리를 안전하게 받았다. 아으으... 두번씩이나 공중에 내던져진 리리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자마자 소리쳤다.
" 좀 안전하게 못구해주는거야, 당신? "
" 구해준 사람한테 지금 뭐라는거야, 이 말괄량이 아가씨가 "
바닥을 붙잡고 매달려있던 손의 주인공이 가볍게 올라오고 진은 붉은 노을빛과 하나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빛나던 짐승 같은 눈을 다시 보게되었다. 진의 품에서 내려온 - 당신은 언제까지 안고 있을거야! - 리리가 빠르게 달려 그, 화랑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그 발차기를 가볍게 피한 화랑이 혀를 찼다.
" 뭐, 예상은 했었는데 진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네. 이 싸움광 아가씨야! "
" 당신 의뢰인의 가족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
" 그 의뢰인의 가족이면 얌전히 안전한 곳에서 기다릴 것이지. 허락도 없이 작전 지역에 무단으로 난입해서 돌발상황을 만들어, 만들긴. 그래서 저 녀석 한대라도 때리긴 했어? 못때렸을걸~? "
" 으으으! "
자신의 말에 변명도 못하고 분함을 감추지 못하는 리리를 보며 키득키득 웃던 화랑의 시선이 진에게 향했다. 하아, 흥분으로 가득찬 숨을 내뱉은 화랑이 이를 들어냈다.
" 자, 그럼... 왜 이곳에 철권중이 있는지 아주 찬찬히 들어볼까, 응? "
그럼 진입할테니 작전대로 부탁한다. 백두산의 말에 화랑과 미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까. 백두산과 DM-1 의 일부 인원, 그리고 로슈포르 기업의 시스템 엔지니어 2명이 중앙 통제실로 향했다. 긴 복도를 지나 중앙 통제실의 입구에 도착하자 시스템 엔지니어들에게 미리 전달받은 카드키로 문을 연 백두산이 안을 훑고는 한 손을 들었다. 멈추라는 신호, 안에 무언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 신호에 모두가 긴장하고 백두산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 통제실 그 안쪽 가운데, 메인 컴퓨터로 보이는 곳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백두산이 의자의 등받이를 붙잡고 휙 돌린 순간 보인건 목에 찢겨진 상처가 있는 시체였다. 눈을 가늘게 뜬 백두산이 다시 GO 신호를 보냈다.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들어오고 백두산이 시체를 들어 바닥에 눕혔다.
" 보시기 힘드시겠지만 혹시 로슈포르 기업 소속의 사람일까요 "
자신의 질문에 고개를 내젓는 시스템 엔지니어들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백두산이 시추 기계의 재가동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다 바닥에 눕힌 시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사망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무언가에 베인 것이 아닌 찢겨진 상처, 목에 손자국이 있는 걸 본 백두산이 얼굴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손으로 목과 어깨를 붙잡고 말그대로 찢어버렸다. 그리고 사망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 이 시체를 만든 누군가는 아직 이 시설 어딘가에 있다는 것.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가는군. 그렇게 중얼거린 것도 잠시 백두산은 제 소지의 무전기가 울리자 버튼을 눌러 받았다.
[ 큰일입니다, 백두산님! 지금 철권중의 수송 헬기가 나타나 시추 시설로 향했습니다! ]
" 철권중이라고? "
[ 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
" 문제? "
[ 로슈포르 회장님의 따님이신 리리양이 사라졌습니다 ]
" 하아... 결국 화랑의 예감이 맞았나... R-1 팀은 이번 작전 종료 후 시말서 작성 준비하도록. 그녀는 우리가 찾도록 하겠다 "
[ 네, 알겠습니다 ]
외부팀과의 연락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두산은 중앙 통제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화랑과 미겔에게 지금 상황을 전달했다. 예상했던 돌발상황 하나와 발생할 확률이 가장 낮았던 돌발상황의 동시 발생이라. 일단 알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할게요, 사범님. 화랑이 멋대로 대답하고 통신을 끊어버렸지만 백두산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익숙하기도 했고 미겔이 알아서 조절할게 뻔했으니까. 아마 화랑이 혼자서 사라진 리리를 찾으러 다니겠지.
" 돌발상황이 발생했지만 우린 작전대로 이곳에서 로슈포르 분들을 지킨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
" 네! "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작업 중이던 엔지니어 중 한명이 급히 백두산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잠시 이것 좀 봐주시면... 그 말에 백두산이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그들의 말은 이랬다. 현재 데이터에 자기 회사의 데이터가 아닌 다른 데이터가 있어 확인해보니 아까보았던 그 로봇 병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데이터가 있으며 또 다른 데이터도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백두산이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야에 서서히 금이가는 것이 보이자 백두산이 외쳤다. 천장이 무너진다, 모두 조심하도록! 그와 동시에 천장의 일부가 와르륵 무너졌다. 다행스럽게도 중요한 기기나 사람들의 머리 위가 아닌 비어있는 공간의 천장이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 시설 파괴는 최소로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기기는 부셔진 것은 없습니까? "
" ...그래, 배려 고맙군. 자네는 철권중의 알리사인가? "
" 네, 저는 알리사 보스코노비치입니다. 당신은 레지스탕스의 백두산님이십니까? "
" 그렇다네. 그럼... 자네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
분홍색 머리칼과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아는 철권중의 안드로이드, 알리사가 등장하자 긴장한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그녀에게 총을 겨눴지만 이내 백두산의 신호에 하나둘 총을 내렸다. 레지스탕스 내부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과 마주하게 된 게 어떻게 보면 그녀에게도 천운이었다. 백두산의 질문에 알리사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그녀의 손이 바닥에 눕혀져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 저는 기가스 연구자의 생포와 그가 연구하던 기록들을 모두 회수, 백업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
" 그렇군. 그러고보니 왜 이 건물에 미시마 재단의 로봇이 아닌 G사의 잭-6가 있나 했더니... 이 자가 G사의 사람이었던 모양이군 "
" 네, 그렇습니다. 비록 그의 생포는 실패한 것 같지만... 그가 연구하던 기록들이 있다면 모두 가져가야 합니다 "
" 안그래도 여기 계신 로슈포르 엔지니어 분들이 데이터에 자신들의 데이터가 아닌 다른 데이터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 혹시 그 데이터가 아닐까 싶은데 "
" 그렇습니까? "
" 흠... 기가스라... 기가스면 이 상처를 충분히 만들수도 있겠어 "
백두산의 말에 알리사가 조심스럽게 시체의 곁으로 다가와 상처를 살폈다.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강한 힘으로 찢겨졌군요. 저 역시 기가스의 소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지, 이곳까지 오면서 기가스의 모습을 확인했나? 아뇨, 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건 우리 레지스탕스도 마찬가지일세. 그렇다면 기가스는 이 시설을 이미 벗어났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있을거라는 이야기군. 잠시 생각하던 백두산이 알리사를 바라보았다.
" 지금 상황에서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없을 것 같군 "
" 싸우지 않을겁니까? "
" 우린 우리의 임무가 있고 그 임무에 철권중과의 대립은 없으니까. 각자 필요한 것이 다르니 굳이 싸울 필요 없지 않나. 필요한 데이터는 여기 로슈포르 엔지니어 분들과 협력하게 가져가게. 어차피 로슈포르 기업에도 필요없는 데이터일테니 "
" 네, 이해했습니다. 저 또한 일반인분들은 다치지 않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협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알리사가 엔지니어들에게 가는 것을 바라보던 백두산이 흠, 숨을 내쉬고는 제 무전기를 들었다. 아아, 들리나? 백두산의 무전에 반응한 건 미겔이었다. 백두산씨, 중앙 통제실 쪽에 뭔가 큰 소음이 들렸는데 괜찮아? 그래, 상황이 조금 복잡하게 됐지만 말이야. 백두산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미겔에게 딱 한마디 건냈다.
" 철권중과 마주쳐도 적대하지 말고 그들과 임시 협동하는게 좋겠군 "
[ 흐음, 기가스라... 뭐 내 입장에서는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나. 근데... 화랑, 이 빌어쳐먹을 놈. 또 무전 꺼놨잖아! ]
" ...그쪽은 어쩔 수 없지. 그녀를 찾아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할 수 밖에. 그럼 수고하게, 미겔 "
미겔은 끊어진 무전기를 대원에게 넘기고는 한숨을 쉬었다. G사의 로봇이 나타나더니 그 싸움광 아가씨에 이제는 철권중까지 난입. 거기에 기가스? 진짜 이번 일에 돌발상황이 몇개나 끼어드는거야, 끼어들기는.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 화랑, 그 녀석이 카자마 진 보고 앞뒤 안보고 달려들까봐 걱정이네... 아, 정말 "
" ...꽤나 골치덩어리인가 보군, 그쪽의 리더는 "
" 이봐, 까도 우리가 까. 그래도 우리가 선택한 리더거든? "
미겔은 제 말에 끼어드는 3자의 목소리에 짜증을 내며 목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철권중의 라스였다. 중앙 통제실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선 레지스탕스와 마주친 라스의 뒤로 철권중 무리들이 있는 것을 본 미겔이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 ...그렇군. 우리가 찾던 기가스 연구자는 이미 사망했고 그 데이터는 현재 알리사가 확보 중. 다만 염려되는 건 연구자를 죽인 것 같은 기가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
" 그래, 백두산씨의 말로는. 뭐 그렇게되니 왜 이 시설에 잭-6가 깔렸는지 설명은 되는군. 3자 전쟁이 끝나고 도망다니는 과정에서 이 시설에 숨어 들어와 미리 빼돌린 설계도로 잭-6를 만들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을 생각이었나 "
" 다만 의문이 있군. 왜 기가스는 연구자를 죽였을까 "
" 글쎄... 음, 잠시... 야, 화랑! "
[ 일단 싸움광 아가씨 포획 완료. 그리고 여기 카자마 진이 있는데... 하아, 짜증나긴 하는데 일단 임시 동맹... ]
" 이미 백두산씨가 다 설명했거든? 넌 진짜 인이어 끄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툭하면 끄지! "
[ 시끄러워서 방해된다고. 귀에 끼고 있는 것도 귀찮은 판에 ]
" 이런 돌발상황에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맨날... "
라스가 무전기로 자기 부대의 리더와 말싸움 중인 미겔을 바라보았다. 한 조직의 리더와 간부가 서로 말싸움이라, 누가 보면 문제가 많은 콩가루 부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계급도 없는 용병 부대가 지금까지 질서가 잘 잡혀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일지도 모르겠군. 라스가 그렇게 생각하건말건 미겔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화랑과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제뿔에 지쳐 한숨을 크게 쉬어버렸다.
" 그래그래, 일단 알았으니까 찾던 목표물... 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여하튼 찾았으면 이제 복귀... "
순간 갑자기 시설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윽! 방관하고 있던 라스도 화랑과 무전 중이던 미겔도 레지스탕스와 철권중의 대원들도 일제히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큰소리였다. 뭐야...! 겨우 소리가 가라앉고 손을 뗀 라스는 바닥을 뚫고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들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 시설에 오기 전 최악의 상황으로 예상했던 양산형 기가스들이었다. 원본 기가스보다 크기가 작은 여러 명의 기가스가 바닥을 뚫고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칫, 미겔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 화랑, 또 다른 돌발상황 발생! 사이즈는 조금 작지만 기가스들이다! 대체 이 시설 마가 낀거야, 뭐야! "
[ 하하, 더 재미있는거 말해줄까? 우리 쪽은 원본 기가스인데. 미겔, 그쪽은 부탁한다. 사범님 쪽도 걱정되긴 하는데 뭐, 사범님이니까 알아서 잘 하시겠지. 그럼 화랑, 아웃 ]
" ...그러니까 네 말은 이 시설 어딘가에 G사의 기가스 연구자가 있고 그걸 알아보기 위해 왔다? "
" 그래 "
진의 말을 듣고 있던 화랑이 칫, 혀를 찼다. 자신을 보자마자 싸우자며 다짜고짜 달려들을 줄 알았던 진은 화랑이 의외로 얌전히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묻자 조금 놀랬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리더로서 지킬건 지킬 줄 아는 걸까, 아니면... 이곳이 전장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런 그의 뒤에서 리리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저 말을 믿는 거냐고 되물었지만.
" 이 시설에 G사의 잭-6가 있는 시점에서 저 녀석의 말은 진실에 가깝겠지. 아, 정말... 뭔가 느낌이 좋았는데 조금 빗나가네 "
" 뭔가요, 그 느낌이 좋았다는 건. 아, 그리고 당신! 아까 출발할 때 말했던 작전명 뭔가요! "
" 왜 갑자기 또 고상한 아가씨의 말투야? 아까처럼 반말하지? "
" 놀리지 마세요! 그것보다 제 질문에 대답해요! "
화랑이 리리와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하는 걸 진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소가, 상황이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그저 아는 지인과의 농담 따먹기로 보이겠지만 지금 이곳은 언제 어느새 누군가 습격할지 모르는 장소였다. 일단... 일반인도 있고 하니 라스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진이 무전을 위해 손을 귀로 가져가기도 전에 아, 잠시만. 이라며 화랑이 먼저 귀에 꽂힌 인이어를 톡 건드렸다. 아아, 미겔. 들려? 그리고 고막을 뚫을 기세로 인이어 너머로 분노한 목소리가 리리와 진에게도 들렸다. 화랑의 싸움광 아가씨라는 말에 리리가 분노해 발차기를 날렸지만 화랑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순간. 괴성과 함께 진과 화랑의 사이에 커다란 무언가가 떨어졌다. 진이 걱정하고 예상했던 기가스였다. 그와 동시에 미겔들의 상황도 전해들은 화랑이 웃으며 뭐라 이야기하고는 그대로 인이어를 떼 바닥에 집어던졌다.
" 미겔들이 있는 곳에도 사이즈는 좀 작지만 다수의 기가스들이 출현했다는데? "
" 이쪽이 오리지날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군 "
" 그래, 전장에서 봤을 때랑 조금... 다른데. 분명 기가스는 생체 병기일텐데 머리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기계 파츠는 뭐지? "
" ...그런가, 그렇게 된건가 "
"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말해! "
" 간단해. 연구자가 기가스와 잭-6를 합친거다. 아마도 기가스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었겠지 "
"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가스의 통제력을 잃고 그대로 살해 당했다... 하, 비참한 최후네! "
" ...기가스를 포획... 혹은 처리하겠다. 그쪽은 어쩔거지? "
" 우리의 임무는 이 시설을 로슈포르 기업에 돌려주는거다. 그러기 위해선... 이 녀석이 이곳에 남아있으면 안되겠지. 처리한다! "
진과 화랑이 자세를 잡았다. 등과 몸 여기저기에 기계 파츠가 달린 기가스가 다시끔 포효를 하더니 제 앞에 있는 화랑이 아닌 뒤의 진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의 언어도 아닌 짐승의 소리를 내며 마구 공격해오는 기가스의 공격을 막아내던 진이 빈틈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반응하는 기가스에 진이 눈을 찌푸렸다. 이성없는 생체 병기일텐데, 그때 전쟁 중에 만났던 기가스와는 다르다.
" 이봐이봐, 사람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지 말라고! "
화랑이 뒤에서 높이 점프를 해 내려찍기로 기가스의 어깨를 공격했지만 충격 따위는 없다는 듯 등의 파츠가 열리더니 그곳에서 나온건 머신건이었다. 이런 미친? 화랑이 외마디 욕설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가 있었던 자리에 총탄이 박혔다. 머신건은 자동 요격 장치라도 함께 달려있던건지 집요하게 화랑을 쫓아다니며 공격했다. 그 와중에도 화랑은 혹시라도 건물의 철근 같은 곳에 맞아 탄환이 도탄되어 자신이나 진이 피격당하는 걸 막기위해 탄환의 궤적을 계산해 움직였다. 저 머신건은 탄환이 무제한이야, 뭐야! 화랑의 외침에 조조해진 진이 빈틈을 노려 다시 한번 더 날린 주먹은 그대로 기가스의 손에 잡히고 말그대로 진은 기가스에게 벽으로 던져졌다. 윽! 벽에 내던져져 그대로 부딪치고 떨어진 진이 욱씬거려오는 등의 통증에 신음하기도 전에 기가스가 그 육중한 몸을 이용해 달려드는 걸 가까스로 피한 진이 벽이 무너져 투둑 파편과 먼지가 흩날리는 걸 바라보았다.
" 칫, 뭐야. 저거. 내가 알던 기가스가 아니잖아! "
" 아무래도 기계 파츠들로 인해 판단력과 맷집마저 좋아진 것 같군. 미리 예측이라도 하는건지 공격이 다 막히고 있는데 "
" 지가 안드로이드야, 뭐야! 후, 그래도 못이길 정도는 아니지만 "
" 저건 그래도 G사가 잭-6와 함께 차세대 병기로 만들던 완성품이다. 결코 얕볼 상대가 아냐 "
" 얕본다라, 얕보고 있는건 상대 쪽 인것 같은데. 감히 날 무시하고 너만 노리는 것 같은데. 아니면 프로그래밍이라도 됐나? 철권중을 먼저 노리도록 말이야 "
"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은건 사실이군 "
그때 시설이 크게 흔들리면서 고층의 철골들이 우당탕탕 큰 소리를 내며 시설 중앙 로비로 떨어졌다. 젠장, 이러다가 의뢰 달성해도 여기 수리비로 다 나가겠는데... 음? 철골들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반쯤 박힌 걸 힐끔 쳐다본 화랑이 후우, 숨을 내뱉었다. 일단 뭐든 좋으니까 저 기가스부터 제압하자고! 벽의 파편에 깔려있던 기가스가 순식간에 일어나 다시 진에게 달려들었다. 파괴 본능만 남아있어야 할 기가스는 기계 파츠로 그 파괴 본능을 필요한 순간에만 쓰게 됐고 그건 생각보다 버거운 감당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체력만 깎아 먹던 지루한 공방전도 잠시.
" 당신들, 사람이 없어져도 너무 걱정을 안하는거 아닌가요? "
천장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 가운데에 기가스가 걸어온 순간 그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기가스의 머리 기계 장치를 발로 부순건 다름 아닌 리리였다. 참으로 우아하게도 낙법을 하며 바닥에 착지한 리리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아빠 시설 부수지마시죠! "
" 와우, 도망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
" 그런 농담은 그만해요! 여하튼 부셔야할 건 부셨으니 이제 상대하기 쉬울 걸요? "
" 부셔야 할거라고? "
" 그쪽이 집어 던진 인이어 용케 안부셔졌어요. 근데 그 인이어로 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받아보니... "
리리의 말은 이러했다. 화랑이 집어 던진 인이어가 용케도 고장나지 않았고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연결해보니 철권중의 알리사라는 여성이 개조된 것으로 보이는 기가스의 설계도를 발견, 분석이 끝나 정보를 전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녀가 레지스탕스와 함께 있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왜 내가 아닌 화랑에게 연락한거지? "
" 소형 기가스가 중앙 통제실에도 소수긴해도 나타났고 민간인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통신 기능이 고장났다고 하더군요 "
" ...그렇군 "
" 내용은 알겠는데 상대하기 쉽다는건 뭐야? "
" 어, 그녀의 말로는 머리의 장치는 네비게이션 같은 분석장치... 라고 하던데요? "
리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서게 갑자기 기가스가 괴성을 지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닥치는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진과 화랑이 전장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했다. 이성 없는 분노로 주변의 모든 것을 분쇄해버리는 파괴본능. 기가스의 공격에 이리저리 튀는 시설의 파편을 피하면서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비게이션이라는 표현이 정답이군 "
" 어디서 공격이 오고 어디를 공격해야하는지 알려주는 말그대로 네비게이션이 없어지니 본모습 돌아왔네 "
" 막무가내로 공격하는게 오히려 대처하기 편하지 "
" 그럼 떨어트려보실까? "
" 떨어트린다고? "
생포는 포기하라고! 그렇게 외치면 기가스에게 달려드는 화랑을 보던 진이 한숨과도 비슷한 숨을 내쉬곤 자신도 기가스에게 달려들었다. 이유없는 파괴본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던 기가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언가에 본능대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주먹을 가볍게 피한 화랑이 힘찬 기합과 함께 발차기로 그 거구의 기가스를 공중으로 띄워버렸다. 이봐, 로슈포르 아가씨. 기가스 떨어트릴테니까 협조해! 나한테 명령하지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가스가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오른손으로 기가스를 공격한 리리가 우아한 동작으로 돌려차기를 날려 기가스를 부셔진 벽까지 날려버렸다. 한발짝만 뒤로가면 그대로 떨어질 상황에 처한 기가스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마지막 공격을 날린건 진이었다. 그만 쉬어라, 그렇게 중얼거린 진이 날린 주먹에서 검붉은 번개 같은 것이 튀는 것을 본 화랑이 눈을 가늘게 뜬 것도 잠시 진의 곁으로 다가와 중앙 로비 시설로 떨어지는 기가스를 바라보았다.
" 근데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기가스가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
" 끝은 이 시설이 해줄테니까 "
" 이 시설이 해준다고? "
잠깐의 공중 부양 후 기가스는 중앙 로비로 추락했다. 그 추락의 여파로 시설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철골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중앙 로비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G사의 잭-6와 기가스들로 인해 위층은 어느 정도 한계였고 이내 추락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철골들과 잔해들이 그대로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철골 서너개가 기가스의 몸에 박히는 것을 시작으로 시설의 잔해들이 그대로 기가스를 덮쳤다. 큰 소음은 이내 침묵이 되었고 잔해 속에 움직임이 없는 걸 알아차린 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 ...이용만 당하다 죽는 삶이라면... 끝내주는게 예의겠지 "
이겼다고 좋아할 줄 알았던 화랑이 낮은 목소리로 씁쓸하게 중얼거리는걸 들은 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화랑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그럼 다 끝난 것 같으니까 이만 내려가볼까? 도망가지말고 따라와, 싸움광 아가씨. 그 말에 리리가 왜 또 그렇게 부르는거냐며 화를 냈지만 화랑은 웃으면서 리리의 화를 한층 더 돋굴 뿐이었다. 먼저 앞장 서가는 둘의 모습을 보던 진이 제 인이어를 눌렀다.
로슈포르 엔지니어들의 호위 및 사태 정리를 위한 소수의 인원을 미겔과 함께 남기고 - 철권중 쪽은 라스가 남았다 - 의뢰 달성 보고를 위해 의뢰인과 D-1 팀, R-1 팀이 있는 캠프에 도착한 화랑은 백두산과 철권중의 진, 알리사가 로슈포르 회장과 이야기 하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봤다. 공식적으로 레지스탕스의 리더는 화랑이지만 의뢰 수락 및 보고는 모두 백두산이 담당했다. 이번 일은 돌발상황이 너무 많다보니 보고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아마 자세한 내용은 서면으로 전달하게 될거다. 진짜 돌발 상황이 몇개나 나온거야... 정리도 머리 아프겠는데. 잭-6 파편들과 기가스들, 거기에 시추 기계와 중앙 통제실은 그 와중에도 멀쩡하긴 하지만 - 중앙 통제실이 약간 부셔지긴 했으나 기기는 멀쩡했으니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 시설 자체가 반파 상태니 시설 보수만 해도 최소 1년이려나. 그나마 카자마 진, 저 녀석이 원인 제공자라면서 사과와 함께 수리비를 모두 부담한다 했으니 다행이지만. 역시 미시마 재벌, 돈은 넘쳐 나나보네. 그렇게 생각하던 화랑의 시야에 결국 아버지에게 된통 호통을 듣고 당분간 외출 금지를 당한 리리가 들어왔다.
" 여, 로슈포르 아가씨. 잠깐의 일탈은 기분 좋았어? "
" 으으으, 시끄러워요! "
" 물어봤었지? 왜 작전 이름이 로슈포르의 숙녀들인지. 죽기전에 꼭 봐야할 영화에 뽑히기도 한 프랑스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가져온거야 "
" 영화라구요? "
" 그래, 진짜 옛날 영화지만 한번 보는 걸 추천해. 나름 볼만하거든 "
" ...뭐 생각은 해보죠 "
뾰루퉁한 그 말에 화랑이 리리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번 일은 아가씨 잘못인거 알지? 가족 걱정시키지 말라고. 나야 뭐 예상은 했지만. 아니면 정말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레지스탕스에 들어올래? 간부급으로 쳐줄게. 그 말에 리리가 크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 조직은 안들어가요! 그 말에 크게 웃은 화랑이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나름 외출 금지 - 말도 없이 안전 지역을 벗어나 위험한 작전 지역으로 난입한 것 치고는 약한 벌인 것 같지만 - 당한 그녀를 위한 화랑만의 위로 방식이라는 걸 그녀는 알까나. 리리가 다시는 보지말죠! 를 외치며 가는 걸 본 화랑이 로슈포르 회장과의 대화를 끝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백두산에 풀어진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 얘기는 잘 끝나셨어요? "
" 그래. 현장에 남은 인원은 잭-6와 기가스들의 잔해 처리가 끝나는데로 복귀할거다. 철권중에서도 처리를 도와준다니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우린 현 시간부로 작전 종료를 선언하고 본부로 복귀한다 "
" 네 "
로슈포르의 숙녀들 작전 종료. 짐싸라, 돌아가자! 화랑의 외침에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환호를 지은 것도 잠시 R-1 팀은 시말서랑 추가 훈련 준비해라! 라는 백두산의 말에 절반이 절망의 소리를 내는 걸 본 화랑이 싸움광 아가씨 덕분에 20명이 고생하네, 라며 킥킥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진과 눈이 마주쳤다. 200m는 떨어진 곳에서 알리사와 뭔가 대화를 하던 진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말이 없던 화랑이 씨익 웃으며 오른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마치 쏘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고는 그대로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다음번에 전장에서 만나자는 뜻을 담은 행동을 진은 알아차렸을까.
후아암, 지친다~ 하루 지나 레지스탕스 본부로 복귀한 화랑과 백두산이 본부로 들어가는 문을 벌컥 연 순간, 안쪽의 누군가가 백두산에게 달려들었다. 우왓! 놀란 화랑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든 누군가가 백두산을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 오랜만이야, 백! 이번에 모나코까지 다녀왔다며? 엄청 고생하네! "
" 아, 뭐야! 아저씨, 왜 여기있어? "
" 하하하, 내가 못 올 곳 온 것도 아닌데 너무 차갑지 않나! 응? 백의 제자! 자네도 있었나? "
" ...리. 여기는 무슨 일로 온건가? "
"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마시자고, 응? "
" 남의 본부에 와서 술까지 마셨어, 이 아저씨? "
" ...화랑아, 가서 물 좀 가져오거라 "
" 마실거요, 뿌릴거요? "
" ...둘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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