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 썰 모음 4
철권 6 기반 진화랑 1개(짧음),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 AU 기반 진화랑 1개. 2023년 8월 23일 연성.
1. 철권 6기준으로 데빌진으로 보름달이 뜨는 밤에 화랑에게 위로 받으러 오는 썰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진의 무의식이 데빌진 모습 그대로 화랑을 보러 온다는 설정)
그래, 벌써 그럴 때인가. 레지스탕스의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에 화랑은 하늘 높이 떠있는 둥그런 달을 보다 조용히 자신을 방문할 방문자를 위해 제 방의 창문을 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날개짓 소리와 함께 나타난 건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그 괴물의 모습을 한 카자마 진이었다. 처음 이 모습을 한 진이 제 앞에 나타났을 때 진심으로 놀랐던 화랑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창문턱에 발을 대고 방으로 반쯤 몸을 내밀어 저에게 손을 내민 진의 손을 잡았다. 제 손을 잡자 반대편 손으로 화랑의 허리를 붙잡은 진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오늘은 또 어딜 가는건지. 또 다시 난데없는 공중 산책을 하게 된 화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달이네. 탐스러운 둥근 보름달의 빛이 환하게 세상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런 화랑의 말에 잠시 정지 비행(호버링)을 하며 달을 바라보던 진이 이내 다시 날개를 움직여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곳은 바닷가였다. 안전하게 착지하여 자신을 놓아주는 진에 화랑이 살짝 거리를 벌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바다가 반짝였다. 잠시 파도 소리를 듣던 화랑이 입을 열었다.
" 넌... 카지마 진이야? "
" ...... "
" 아니면 괴물? "
" ...... "
" 진짜... 매번 보름달이 뜰때마다 나타나서 어쩌자는거야, 너 "
" ...... "
" ...하아, 그래. 매번 이런 식이지... 진짜 답답한 자식 "
이리와, 진. 화랑이 두 팔을 벌리자 괴물의 모습을 한 진이 그대로 비틀거리며 다가와 화랑의 품에 안겼다. 그런 진의 등을 화랑이 이제는 익숙하게 천천히 두드렸다. 그래, 괴물의 모습을 한 진이 화랑을 데려와 하는 건 자신을 위로하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름달이 뜬 밤, 제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고 온지는 모르지만 강제로 창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거의 납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끌고 나온 괴물의 모습을 한 진에 놀랐던 화랑은 땅에 내려오자마자 진을 공격했지만 진이 방어조차 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제 발차기가 맞기 직전 겨우 멈추고는 경계를 했었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진을 보던 화랑은 진이 울고 있지 않지만 마치 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을 선포하고 온 세상의 적의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진의 진의조차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화랑은 본능적으로 진을 품에 안고 어색하게 그 등을 두드렸다.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행동에 제일 놀란건 화랑이었지만 진은 거부하지 않고 그 위로를 받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토닥토닥 두드리는 그 말없는 위로를 받는 진에 결국 화랑도 말없이 그렇게 그를 위로했었다. 그 후 진은 보름달이 뜬 밤이 되면 반드시 화랑을 찾아왔고 화랑의 위로도 계속 되는 것이었다.
" 너 말이야... 난 네가 무슨 생각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건지 아직도 모르겠거든? "
" ...... "
" 무엇보다 너 같이 선한 녀석이 날 보자마다 폭언하는 거 보고 속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
" ...... "
" 하지만... 넌 이유없이 이런 짓을 할 녀석은 아니니까. 분명... 이유가 있겠지 "
" ...... "
" 내가 열받는건 이유도 모른 체 네 뒤를 쫓아야한다는거야. 그러니까 약속해, 이 모든 일이 끝나고나면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나서 전부 털어놓는거다 "
" ...... "
" 난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널 외면하지도 않을테니까 "
언제나 널 정면에서 마주하고 생각할테니까 너도 피하지말고 날 똑바로 바라봐. 그 말을 들은 진이 느리게 눈을 깜박이고는 자신도 화랑의 등에 팔을 두르곤 날개를 움직여 다시 날아올랐다. 아, 오늘은 끝이네. 화랑은 생각했다. 그 생각대로 다시 방까지 자신을 데려다 준 진을 바라본 화랑이 창문을 닫기 전 잠시 머뭇거리다 중얼거렸다.
" ...잘 지내라. 죽지 말고 "
" ...화랑 "
그리고 이내 들린 제 이름에 놀란 화랑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은 날개를 펄럭이며 사라져버렸다. 창문턱에 남겨진 검은 깃털을 조심스럽게 손에 든 화랑이 한숨을 쉬며 탁, 창문을 닫았다. 바보같은 자식,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2.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 AU로 인간형 의태 괴수 화랑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기사 진
(괴수: 인간 말살 목표(보통 로봇 같은 형태)/기사: 그런 괴수 말살 목표. 보통 괴수는 여왕괴수가 만듬)
이 힘은 너에겐 숙명일지도 모르겠구나. 내 사랑하는 아이, 진... 부디 이 힘이 끝까지 발현되는 일이 없이 계속해서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을 계속 지켜주렴. 오늘도 꿈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난 진이 눈을 비비기가 무섭게 벌컥 문이 연 장본인은 진과 같은 하이랭커 기사 클래스의 화랑이었다. 일어났어. 자기보다 먼저 선수를 치는 진의 말에 화랑이 작게 웃다 진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그 이상한 꿈이라도 꾼거야? 화랑의 질문에 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레 어머니가 괴수의 습격에서 자신을 구하고 사라진 후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진이 제 안의 초상 능력을 깨닫고 제가 지내던 고아원을 습격한 괴수를 단신으로 피투성이가 되면서 모두 처치한 후 지원을 온 다른 기사들에게 발견된건 유명한 일화였다. 그 이후 진은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최연소 기사가 되고 기사로서는 드물게 검이 아닌 체술을 구사하는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중앙 기사단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화랑이었다. 진이 검붉은 번개와도 같은 힘을 두르고 파워로 승부를 보는 체술의 기사였다면 화랑은 푸른 바람과도 같은 힘을 두르고 스피드로 승부를 보는 체술의 기사였다.
체술의 성격만큼이나 본인들의 성격도 달랐다. 진이 조용하지만 상대적으로 누구에게나 유한 성격이었다면 화랑은 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까칠하고 무시하기 일수였다. 진이 이 중앙 기사단에 오기 전에 화랑은 정말 실력은 있으나 인간관계가 파멸적이라 극히 한정적인 임무에만 쓸모있는 계륵같은 기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진이 오고 나서는 진과 함께 본격적으로 임무를 나가게 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나아졌다. 화랑이 진에게만 마음을 여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에 검이 아닌 체술을 구사한다는 것이 자신과 비슷하기에 그렇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 일어났으면 빨리 밥 먹고 대련 가자고! "
" 우리 어제 임무에서 복귀하지 않았어? "
" 하루 쉬면 몸 굳는거 알아, 몰라? 여하튼 빨리 일어나! "
" 알았어, 알았어 "
화랑의 닥달에 진이 웃으며 일어섰다. 진의 말대로 둘은 어제 임무에서 복귀해 휴식이 필요했지만 역시나 화랑은 몸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듯 했다. 제 말에 진이 군소리 없이 일어나는걸 본 화랑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자자, 오늘은 가볍게 1시간만 하자고. 정말 1시간 맞지? 물론 내가 지면 또 모르지.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 화랑의 오른 손목에는 푸른색 두건이, 진의 왼 손목에는 붉은색 두건이 묶여있었다. 진과 몇번의 임무에 파트너로 동행하면서 그를 완전히 인정하게 된 화랑이 진에게 준 것이었다.
식당에서 아침 식사 후 대련 전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쉬던 둘의 근처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봐, 진! 임무는 잘 다녀왔어? 쉬는 날이면 대련 좀 해줘. 글쎄, 이번에 만난 괴수가 너처럼 접근전 위주더라고. 참고 좀 하게, 부탁할게 응? 화랑보다는 부드럽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진의 곁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진을 보던 화랑이 하아, 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 실력이 어느 정도 되야 상대를 해주지. 아직도 객관적인 판단이 안되나? "
" 뭐? 지금 뭐라고 했냐, 화랑? "
" 다시 한번 더 이야기 해줘? 대련이라는건 실력이 비등비등한 둘이 해야지. 실력차가 너~무 나는 인간이랑 해봤자 서로 도움이 안되거든? "
" 시끄러워! 나도 이번 임무에 나가서 괴수를 깨나 잡았다고! "
" 아하, 그래? 어떤 괴수? 영식? 형(TYPE)? 아니겠지. 댁 실력으로는 1000번대 양산형 괴수겠지. 대련을 하고 싶으면 적어도 양산형이 아닌 77형 상위괴수라도 잡고 와. 그게 서로의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
" 이 자식이 진짜! "
" 왜 나랑도 싸우게? 난 진이랑 다르게 안봐줘. 몇달 병동에서 푹 쉬고 싶으면 덤비던가! "
" 화랑 "
점점 서로 목소리가 커져가는 상황에 제동을 건 사람은 진이었다. 조용히 화랑을 부른 진이 말없이 바라보자 칫, 혀를 찬 화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기분 잡쳤다며 휙 식당을 나가버렸다. 한번 더 자신을 부르는 진의 목소리에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화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의 뒤로 사람들의 뒷담화가 들려왔다.
진짜 민폐라니까. 인간 불신자, 여전하네. 오직 진한테만 착하게 굴고 우리한테는 완전 찬바람이지. 완전 트러블 메이커. 진이 아니었으면 이미 진작에 어디 변방으로 쫓겨났을텐데. 젠장, 언젠가 저 건방진 얼굴에 칼을 꽃아줄거야. 화랑을 욕하는 소리들을 듣던 진이 하아,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사람들을 향해 양해를 구하고는 황급히 화랑의 뒤를 쫓았다.
화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걸 본 진이 다가가기 무섭게 화랑의 일갈이 들어왔다. 넌 바보냐? 뻔히 도움이 1도 안될게 보이는데 그걸 가만히 듣고 대련까지 해주려고? 그걸 인간의 단어로 호구라고 하던가? 화랑의 말에 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옆에 앉았다. 나한테는 도움이 안될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에겐 도움이 될거야. 그로인해 기사가 1명이라도 더 살아돌아오면 분명 괴수에게서 사람 1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겠지. 난... 모두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 화랑. 그 말을 듣고 있던 화랑이 양손을 들고 푸욱 한숨을 쉬는 동작을 취했다.
" 정말이지 너는 인간의 가능성을 너무 믿는다니까. 아무리 잘해줘도 자기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걸 알게되면 바로 배척하는게 인간들인데 "
" 하지만 너도나도 사람이잖아? "
자신의 말에 갑자기 입을 다무는 화랑에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아, 그래. 그랬지... 지금은. 더욱더 알다 모를 화랑의 혼잣말을 들은 진이 뭔가 더 이야기하기 전에 벌떡 일어난 화랑이 진을 힐끔 쳐다봤다. 그래서 대련할거야, 말거야? 그 자식들보다 내가 먼저 예약한거 알지? 그 말에 웃은 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계속 이렇게 지낼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사건은 갑자기 발생했다. 괴수 섬멸을 위해 함께 파견된 둘은 임무 중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진이 정신을 잃은 사이 체내의 무언가 발현됨과 함께 괴수는 물론이고 화랑마저 그 힘에 처참하게 당해버린 것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진은 피투성이가 된체 정신을 잃어버린 체 제 손에 목이 붙잡힌 화랑을 보며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떨어야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지, 난... 뭘 한거지...? 중앙 기사단으로 돌아온 화랑은 즉시 치료실로, 진은 같이 파견 되었던 군인들에게 구속되어 구금실에 쳐박혔다.
만 하루를 구금실에 쳐박혀있던 진은 다음과 같은 즉결심판을 받았다. 생존자의 목격 장면과 녹화 영상을 통해 그대의 몸 속에 마치 괴수와도 같은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정말 괴수일 가능성도 있으나 인성 및 지금까지 기사로서 달성한 업적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 당신을 기사 생존률 1%인 최악의 지역, 속칭... LAST DAY ON EARTH 지역으로 단독 파견을 명령합니다. 중앙 기사단에서 가장 멀고 생존률 최악의 지역으로의 파견, 하지만 이건 누가봐도 노골적인 추방이었다. 괴수인지 인간인지 모를 진에게 싸우다가 죽으라는 사실상의 자살 임무. 하지만 진은 그 결정에 반발을 하기는 커녕 순순히 받아들였다. 딱 하나의 부탁을 남기고.
" ...화랑 "
진의 부탁은 화랑을 보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3일 째 의식불명 중 이라는 말에도 상관없다는 말에 진의 화랑의 면회는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치료실로 들어간 진은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고스란히 마주했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산소 마스크까지 쓴 화랑이 눈에 들어오자 질끈 눈을 감았다 뜬 진이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나온 화랑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 나 오늘 LAST DAY ON EARTH 지역으로 떠나. 아마... 돌아오지 못하겠지. 내... 내 안에... 괴수의 인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 괴수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사람인지 괴수인지의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을 내 손으로 죽이게 될까봐 그게 더 무서워... 그러니까... 지금까지 고마웠어, 여러가지로. 연락... 할테니까... 그럼 간다, 화랑 "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끝으로 손을 뗀 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갑자기 제 옷소매를 낚아챈 힘에 멈칫한 진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이건 무슨 개소리야... 너 어딜 간다고? 자살 특공대가 꿈이었냐...? 거긴 AAA급 기사도 갔다가 한달만에 비명횡사하는 곳이잖아...! 진이 다시 몸을 돌리자 보인건 반쯤 몸을 일으켜 진의 옷자락을 붙잡고 남은 손으로 산소 마스크를 반쯤 벗은 화랑이었다. 의식을 되찾은 직후 갑자기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것 때문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화랑을 본 진이 황급히 말리려 했지만 오히려 화랑은 진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 너 그렇게 순순히 죽으러 갈거냐?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 뭐? 괴수 인자? 그래서 너 괴수야? 아니잖아! 너만큼 인간을 좋아하고 헌신하는 인간이 어디있어! 근데 알지 못하는 힘이 있다고 괴수 취급 당하면서 죽으라고 내쫓기잖아! 화도 안나냐! "
" ...... "
" 내가 말했지, 인간은 자기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는걸 알게되면 바로 배척한다고. 어때? 지금 이 지경까지 와서도 아직도 인간에게 헌신하고 싶어, 응? 진 "
" ...... "
" 하아... 도망칠래? "
" 뭐? "
" 거기 가서 한달만에 나가 뒤질 바에야 도망쳐서 어디 변두리 행성에서 괴수 잡는게 낫지 않겠어? 그렇게 지내다보면 운 좋게 괴수가 아닌걸로 판정되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선택해. 도망칠래, 아니면 순순히 거기가서 내가 한달만에 네 부고 소식 듣게 만들래? "
" ...난... "
화랑의 말에 진은 머뭇거렸다. 자신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기에, 일부로 외면했던 두려움이 화랑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진을 덮쳐왔다. 이딴 인간들 지켜줄 필요 있어? 화랑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린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그 목소리를 비집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 속에서 자주 듣던 그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 부디 이 힘이 끝까지 발현되는 일이 없이 계속해서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을 계속 지켜주렴. 인류를 사랑하고 지켜라. 그래, 나는... 기사야. 괴수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는 기사. 진의 손이 제 멱살을 잡은 화랑의 손과 겹쳐졌다.
" 미안해, 화랑 "
" 야 "
" 인간인지 괴수인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기사야. 기사로서 사람을 지켜야해.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
" 하아, 마마보이 같은 자식... 아, 몰라. 이제 마음대로 해. 나가 뒤지든 말든 "
진의 멱살을 놓은 화랑이 그에게서 휙 등을 돌려 다시 누웠다. 그런 화랑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이 제 왼 손목에 묶여있는 붉은색 두건을 바라보다 이내 화랑의 시야에 들어오도록 팔을 내밀고는 이내 나가기 위해 병실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순간. 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진의 눈에 여전히 저에게 등을 돌린 상태지만 용케도 여전히 묶여있는, 화랑 자신의 피가 묻은 파란색 두건이 감긴 오른팔이 보였다. 곧 보자. 그 말에 웃은 진이 그래, 라고 답하며 병실을 나섰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자신이 죽을 장소인 LAST DAY ON EARTH로 떠났다. 그리고 화랑은.
" ...멍청한 인간들 "
진이 병실을, 중앙 기사단을, LAST DAY ON EARTH로 떠난지 얼마나 됐을까. 화랑은 벌떡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제 머리에 감긴 붕대를 뜯었다. 하아, 진짜 맞아주는 것도 힘들었네. 하지만 덕분에 그 녀석 안에 깃든 게 뭔지도 알았고... 결과는 내가 원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벌어진 일이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치료실의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 움직이면 안된다는 말을 하는 간호사를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손을 움직이자 간호사의 몸과 머리가 그대로 분리되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에 치료실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화랑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곧 이 중앙 기사단 본부는 인간들의 커다란 관이자 여왕의 새로운 둥지가 될테니까.
" 일단 본부 실드부터 끊고... 아, 그 전에 통신망부터 끊어야겠네. 둥지화가 되기 전에 날파리들이 몰려오면 내가 다 귀찮으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 일할게, 여왕님 "
진이 LAST DAY ON EARTH에 도착한지 한달이 되었다. 화랑이, 모두가 예상한 것과 달리 진은 죽지 않고 용케 살아있었다. 진이 죽지 않은 이유는 다른게 없었다. 생존룰 1%의 이 지역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는 리나 라스, 샤오유같은 다른 기사들이 있었고 진은 그들과 함께 밀려드는 괴수들을 죽여가며 살아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수학이 있었다. 리와 라스, 그리고 그녀가 남긴 흔적을 통해 진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것이었다. 여왕 괴수로 태어났으나 인류를 사랑하여 괴수를 등지고 인류를 수호했던 이레귤러 여왕, 카자마 준. 자신의 어머니의 정체를 확인한 진은 어째서 꿈 속에서 어머니가 힘의 발현에 대한 우려와 인류를 수호하라는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괴수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아이의 몸에 남은 괴수의 인자가 진을 집어 삼키고 괴수가 되어버릴까 그녀는 그것이 걱정스러웠던 것이었다. 비록 괴수인 어미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괴수가 아닌 사람으로 인류를 수호하는 수호자가 되기를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알게 된 진은 후련함과 동시에 제 몸의 실제로 괴수의 인자가 있다는 사실에 씁쓸함도 느꼈다.
진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화랑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다.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이제서야 겨우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있겠다고 진은 생각했다. 기사단 건물의 통신실에 앉아 화랑의 코드를 입력하고 잠시 있으니 화면에 화랑의 얼굴이 떴다. 여, 부고 소식인 줄 알고 마음 졸였네. 그 말에 진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어깨를 으쓱 들여보였다.
" 여기도 어엿하게 사람들이 버티면서 사는 곳이야. 잘 지냈어? 화랑 "
" 그래, 나도 나름 바빴어. 이것저것 새로 생긴 애들 살피고 여기저기 바꾸는 중이거든 "
" 새로? 신입 기사라도 들어왔나 보네 "
" 뭐, 비슷해 "
" 여기와서... 나에 대해 알아낸게 있어 "
진은 화랑에게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했다. 이레귤러 괴수 여왕에게서 태어난 아이며 사람이지만 몸에 괴수의 인자가 있다는 것. 최대한 담담하게 말한 진이지만 화랑의 반응이 조금 무서웠다. 화랑은 진이 괴수가 아닌 인간이라며 괴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는걸 부정했으니까. 하지만 진의 생각과 달리 화랑의 반응은 참으로 담백했다.
" 그래... 뭐, 난 이미 알고 있었지만! "
" ...뭐? "
" 언제쯤 알아차릴지 내가 다 궁금했다고. 그래도 조금 의외네, 설마 LAST DAY ON EARTH 지역에 인간의 편을 들은 그 이레귤러 여왕의 흔적이 있을 줄이야. 영식 오우거에게 습격당한 직후 그런 곳으로 잘도 도망쳤네. 놀랄 노자야. 역시 여왕은 여왕인가? "
" 자... 잠깐만 화랑, 무슨 말을 하는거야...? "
순간 화랑의 화면에서 뭔가 큰소리가 울려퍼졌다. 어, 잠시만... 야. 나 지금 통신 중이잖아. 살살해, 살살. 이미 늦었나. 어, 미안. 지금 여러가지로 바쁜 상태라... 보여줄까? 너도 그리웠을거 아냐. 중앙 기사단. 물론... 네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화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화면이 반전 되었다. 그리고 거기 비춰진 중앙 기사단은 진이 기억하는 그 중앙 기사단이 아니었다. 인간의 혈액으로 벽을 칠한 것 같은 색과 메인 제너레이터를 감싸고 있는 육벽 같은 것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괴수들. 눈으로 보았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 이걸로 중앙 기사단은 전멸. 어때? 나 꽤나 노력했다고. 한달 만에 중앙 기사단을 전멸시키고 둥지화 시키라니. 진짜 무리한 명령을 한다니까 내 여왕은 "
" 화랑, 너... 설마... "
" 너 같은 사례가 있는데 왜 아니겠어. 있잖아, 진. 괴수에겐 인간 혐오가 본능적으로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나 역시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런 내가 왜 너한테는 그렇게나 살갑게 굴었을까? "
" ...괴수... "
" 내가 그리고 네가 살기 재미있는 세계는 무엇인가 한참 생각했어. 그리고 도달한 건 역시 인간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었어. 네가...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내 여왕의 명령을 끝까지 미루고 또 저항했겠지. 하지만 이제 됐어. 너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인간의 편을 들테니까, 나는 괴수의 편을 들게 "
" 화랑! "
" 여왕 괴수 아자젤의 제 1영식이자... 인간형 괴수 블러드 탈론, 화랑. 아자젤 여왕님을 대신해 온 세계에 선전포고를 하겠다.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말살. 자, 저항해봐! 나를, 우리를, 즐겁게 해줘! 그리고 멸망의 길을 걸어라, 인간들아! "
우리의 침략은 이미 시작했으니까. 화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사단 건물에 불길한 사이렌이 소리가 울려퍼졌다. 읏, 이를 악문 진이 화면을 뒤로하고 통신실을 나가기 직전 화랑의 말이 진의 마음을 울려퍼졌다.
" 어서와, 진.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이 유일한 인간형으로 남을 수 있는 세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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