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 연습글1

미완성

정우성은 이명헌이 없으면 안된다.
그것이 둘을 아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불문율이었다.
머리보다 몸이 우선적으로 나가는 정우성에게는 그를 대신 해줄 두뇌가 필요했고, 그 역할은 이명헌이 했으니깐 둘이 합쳐서 100의 인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너흰 영원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왔다. 영원이라는 표현은 사람간의 관계 속에선 없는 것이었다.

영어 단어집을 정리하던 명헌의 손 끝에 killing sacred cow라는 문장이 멈췄다.
신성한 소 죽이기. 다른 말로는 고정관념 타파라고 한다.
명헌은 제 상황과 퍽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느끼기에는 스스로 소중하다고 콧대를 들고 다니던 소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자유를 누비는 소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주인의 줄에 매달린 동물이었다.
그 줄을 붙잡는건 주인의 몫이었다. 줄을 끊고 훨훨 날게 해줄 것만 같던 주인의 칼은 소의 목을 향한다.
명헌은 언젠간은 우성의 칼이 저를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영화같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별만을 생각했지 지금처럼 볼품 없는 모양새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축의금은 10만원을 냈다. 그것이 딱 적당했다.
괜히 전애인이라고 구질구질하게 100만원, 200만원을 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티내고 싶진 않았다.
물론 최근 시작한 집 인테리어로 꽤나 쪼들리기도 했다만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은 명헌이었다.
고등학교 선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런 사이가 오늘 명헌의 역할이었다. 만나면 축하한다. 한마디를 건네면서 악수를 하는 정도의 그런 사이.
축의금을 내고 식권도 챙겼다. 식사 꼭 하고 가시라는 우성의 친구 - 얼굴만 아는 사이인 산왕 후배였다 - 에게 웃어주기까지 했다.
일련의 행위 동안 은근슬쩍 홀을 둘러보았지만 우성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신부 대기실에서 너무 예쁘다 따위의 말을 건네면서 사진을 찍고 있겠지.
명헌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성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은 있었다.
다만 우성의 반응이 예상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나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아 할까, 아니면 진짜 왔냐면서 비꼴까.
아무래도 좋았지만 마지막은 조금 마음이 욱씬거리는 기분이었다. 우성이 자신을 비꼬는 상상은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을 정도로 불가능할 일이라는걸 몇년동안 지켜본 입장에서는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전애인 결혼식에 가는데 가장 하지 말아야하는 행위는 뭐가 있을까요? 같이 도망치기 말고는 다 하십시오
'전남친 결혼식'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 발견한 지식인 답변이 떠올라서 혼자 쿡쿡 웃었다.
다행히 축하로 가득한 결혼식에서 웃는 행위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였으므로 아무도 명헌을 신경쓰지 않았다. 둘의 관계를 아는 일부만 어깨를 툭툭 치고 갔을 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명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성이 울면서 이별을 고했을 때, 아니 그 전부터 이미 생각해왔던 풍경이었다.

"신랑 입장!"
사회를 맡은 현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식장을 울렸다. 현철이 긴장 많이 했나봐. 라고 속닥거리는 동오의 말에 긍정의 끄덕임을 준 뒤 신랑이 나올 문을 쳐다보았다.
나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웅성웅성거리는 하객들에 박수 소리가 부족해서 신랑이 아직 안나오는 것 같다라며 현철이 열심히 둘러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벌컥- 문이 열리고 우성이 보였다. 뻑뻑한 문이 잘 안열렸던건지 우성은 반동으로 갸우뚱하다가 이내 중심을 잡고 버진로드에 발을 올렸다.
역시 연예인 끼가 있다니깐.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도 전혀 떨리거나 하는 표정 없이 우성은 당당하게 버진로드를 걸었다.
그 뒤는 보지 않았다. 명헌의 오늘 역할은 이걸로 충분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는 이제 홀을 나와 식사를 대충 한 후 주차가 별로라고 투덜거리며 퇴장해야한다.
음식이 입으로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먹었다. 이게 샐러드인지 잡채인지 깐풍새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입에 쑤셔넣었다.
곧이어 식을 보고 온 친구들이 와서 하나씩 접시에 올려주는 것들도 전부 꼭꼭 씹어서 넘겼다.
바보같이 굶거나 눈물을 흘리면서 씹지도 않고 넘기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형들! 다 왔네요! 고마워요!"
정신 없이 인사를 다니던 우성이 테이블로 도착한 때였다.
입에 묻은 갈비 양념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래. 결혼 축하한다."
오늘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막이 내리고 퇴장할 때였다.

대부분 이별 사연은 영원을 약속한 부분부터 말하던데, 명헌에게는 그런 시점이 없었다.
항상 끝을 염두해두고 아슬아슬 이어온 관계였다.
오히려 둘을 지켜보는 남들이 너희는 평생 갈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원래대로 라는 말이 맞겠다. 명헌은 우성과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다.
우성의 인생의 궤도가 잠깐 거꾸로 돌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관계는 전부 우성이 붙잡고 있었다. 명헌은 그저 우성의 줄에 매달려 있었을 뿐이었다.
줄을 끊거나 놓거나 아니면 칼을 휘두르거나. 뭐 어떤 행동을 하든 결과는 같았다. 영원히 줄을 붙잡을 순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별이 될지 그저 그랬던 사랑이 될지는 우성의 행동에 달렸었다. 명헌은 우성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저 따라줄 생각이었으니깐.
안타깝게도 우성과 명헌의 관계는 그저 그런 추억으로 끝났다. 이별로 인한 아픔은 숭고한 피에타가 아니라 그저 종이에 살짝 베여서 밴드를 붙이기도 애매한 그런 통증이었다.
그거면 되었다.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니깐. 가장 현실적인 이별을 했다고 명헌은 생각했다.

정우성 [저 형 집 앞인데]
정우성 [잠깐 이야기 괜찮죠?]

전애인이 연락하는 것도 보통 사람들에게 흔히들 일어나는 일이다. 결혼한이 붙으면 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크게 달라질 일도 아니라고 명헌은 생각했다.
약속 장소는 집 앞 편의점. 카페나 술집도 아닌 편의점이라는 약속 장소가 퍽 우성답다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어."
"그냥 결혼식 와줘서 고맙다고 하려구요."
"그래 축하해."
보통 결혼식 와줘서 고맙다고 따로 불러내나? 의아했다. 사실은 결혼식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겠지만 그거밖에는 답이 없었다.
"잘 살아. 아내분 예쁘시더라."
"형 그게...."
"너 좋아했던 것도 입었더라. 화이트 수트. 잘어울렸어"
아차, 실수했다. 연애할 때 우성이 나중에 자기는 결혼식 때 화이트 수트를 입을 거라고. 형은 검정 나는 화이트!라며 웃었던 그때가 떠올라서 전애인 티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걸 또 기억하네."
"잘못 말했어."
"형 이제 말투 안이상하네요. 옛날처럼 안써요?"
"뭐,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깐."
거짓말은 아니었다. 우성과 헤어지고 나서부터는 어미를 붙이지 않았다. 어미를 쓴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25살때까지, 그 중 1년을 제외한 나머지는 우성과 있었으니깐.
어미를 쓰면 우성이 생각나서 싫었다.
"형 사실 그런 이야기 하려고 부른게 아니라..."
"뭔데."
"나 이거 진짜로 결혼하는거 아닌거 알죠."
"무슨 소리야 그게."
"집안에서 시킨거에요. 그때 말했잖아. 할아버지가 계속 결혼시키려고 한다고. 결혼 신고도 안했고, 나 곧 헤어질꺼에요. 그 사람도 그럴려고 나랑 결혼식 한거야. 그니깐..."
"그걸 지금 나한테 왜 말해 우성아."
"나 형 아직 좋아해요. 형도 나 아직 좋아하잖아. 그니깐 이번 일 다 끝나면 나랑 다시 만나줘요."
"우성아. 정신차려."
아니. 사실 정신 차려야하는 것은 명헌 본인이었다.
오늘의 역할은 친한 듯 안친한 선배. 그게 명헌이었으나 고작 이런 말로 흔들리고 있었다.
남은 인연이, 남은 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명헌은 허상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스스로 너무나도 비참하고 찌질했다.
"헛소리하지마. 우리 헤어진게 벌써 2년째야. 그냥 친한 선후배로 남자며."
"내가 잘못했어요. 그때는..."
우성의 사연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명헌은 자리를 떴다.
우성의 말이 맞았다. 명헌은 아직 우성을 사랑한게 맞는 것 같았다.
우성의 변명을 들으면 곧바로 그를 용서하고 그를 품에 안으며 둘 다 확신을 갖지 못하는 거짓 약속에 고개를 조아릴 것이 분명했다.
그게 분했다. 명헌은 다시 둘만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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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의 염소

    마음이 찢어질것 같아요.. 다음편 예정이 있으실까요? 제발 있으시길....... 계속되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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