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마중

업로드 2024.02.20

* 으음 트친은 아니지만 트친같은 백호열러 생일축하연성

* 가볍… 가벼울… 듯?

* 모바일 작성


비가 내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였다. 호열이 달력을 보았다. 백호의 생일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창 너머로 비가 오는 모습을 본다.

봄비였다.


멍하게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다 정신을 차렸다. 백호가 체육관으로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 똑딱거리는 벽에 걸린 농구공 모양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백호가 훈련을 마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호열이 집에 오면 바로 데워서 식사할 수 있도록 저녁 준비를 한 뒤 옷을 챙겨입었다. 커다란 우산 하나에 중간 크기의 우산을 집어들었다. 커다란 우산의 손잡이를 팔에 걸고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굵은 소나기는 지나갔는지 밖에 나왔을 때는 토독하는 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가늘어져있었다. 가는 비가 내릴 뿐이지 비가 적게 오는 건 아니라서, 예기치 못한 비소식에 머리를 가리고 허둥지둥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빠보인다. 바쁜 사람들을 지나치는 호열의 걸음이 여유롭다.

집에서 체육관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가기엔 꽤나 거리감이 있었지만, 백호는 달리기 딱 좋다며 자가용을 두지 않았다. 백호가 매일 달렸을 길을 둘러보는 호열의 걸음이 가볍다.

팔에 걸친 긴 우산이 호열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다. 길을 따라가면 밑으로 하천이 흐르는데, 비가 내린 탓인지 흙탕물이 되어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종종 하천에 물이 범람하기도 해 하천가의 산책로를 내려가는 길목은 접근금지 표시된 물품들로 가로막혀 있었다. 비가 올 때마다 이런 수고로움을 겪는걸까. 호열이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 순간을 걷는 호열의 걸음이 느릿하다. 비가 내리니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백호에게 젖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데리러 왔는데 쫄딱 젖어있으면 서로 민망하잖아. 인적이 뜸한 틈을 타 호열이 쓰고있던 우산을 휘릭 돌렸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우산 끝으로 빗물이 튀었다.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백호는 여전히 농구를 좋아했고, 시즌이 끝나도 집근처 야외농구장에서 농구하기를 즐겼다. 야외코트기에 오가는 사람들 눈에 금방 띈 탓에 집 근처에 농구선수가 산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그는 순식간에 동네주민들과 농구시합을 하는 인싸선수가 되었다.

백호와 함께 사는데도 누구하나 연인으로 보지 않은 게 신기했다. 넉살 좋게, 혹은 능글맞게 그런 분위기를 느끼면 잘 빠져나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호열이 입을 우물거렸다.

지금은 시즌중이라 체육관에서 훈련. 백호와 같은 팀 선수들이나 관리자들도 호열이 백호의 연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함께였던 일명 불알친구 타이틀이 한 몫했다. 호열이 입을 우물거린다.


관계의 특수성을 알지만 한번씩 답답할 때가 있었다. 연인인데 친구취급을 받을 때라던가, 사귀는 사람 없으면 만나보지않겠냐는 대쉬받는 광경을 옆에서 볼 때라던가. 백호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려했지만 호열이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한참 활동하는 농구선수의 발목을 붙잡는 짓은 하고싶지 않았으니까.

천하무적이었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갔나. 성인이 되고, 동성연애가 허용되기 어려운 나라에서 동성연애를 하고 있자니 그렇게 당당하고 호승심 넘치던 호열도 세상의 눈치를 봤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화살은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 농구에 물이 올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연인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싫었다. 그래서 호열은 약해지기를 자처했다. 숨기를 자처했다. 백호가 안전하게 농구하는 환경을 바랐으니까.

그래서 호열은 이따금씩 답답했다. 우물거리는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흐른다. 그래도 참아야지. 한숨 쉬며 고개를 숙였던 호열이 시선을 바로했다. 멀지 않은 곳에 백호가 있을 체육관이 보였다. 빗물이 많이 튀진 않았는지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휴대폰에 반사되는 제 모습을 이리저리 살핀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짓는다.


- 호여라!

정확하게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도착했다. 호열을 알아본 팀원들이 손을 들어 아는체 했다. 호열이 사람 좋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백호가 씻고 나왔는지 따끈하게 익은 얼굴로 입술을 모았다.

- 어떻게 왔냐?

- 너 우산 안 가져왔잖아. 비 다 맞고 올 거 같아서 마중 나왔지.

그에 백호가 활짝 웃으며 너밖에 없다고 와락 끌어안았다.

- 진짜 친구라고 하기엔 애틋하지~?

아차. 호열이 난색을 표하며 백호를 밀어냈다. 밀려난 백호가 뚱한 표정을 짓는다.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호열이 말했다.

- 같이 사는데 비 맞은 생쥐꼴로 들어오면 청소가 귀찮잖아요.

호열의 말에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백호가 뚱하게 호열을 노려본다. 시선을 느낀 호열이 등 뒤로 백호의 등을 툭툭쳤다. 평소에도 이렇게 해왔는데 뭐가 불만이실까.

- 백호도 차를 타면 편할텐데.

누군가의 말에 호열이 그러게요, 하며 빠져나갈 타이밍을 찾았다. 그러다 목 위로 긴 팔이 걸쳐지더니 꽉 안는 힘에 놀라 위를 보았다.

- 백,

- 애인이 데리러오는 맛이 있는데 뭐하러 차를 타?

호열이 얼어붙었다. 흥! 하는 백호가 어이가 없었다. 흥이 아니야 백호야…!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머리를 굴리는데 앞에서 그랬다.

- 아. 역시 그렇지? 친구라기엔 너무 가까워보이더라.

- 그래도 잘 어울려.

- 언제부터 사귄거야? 호열 씨가 너 잘 챙겨주는 거 같던데 복받은 놈이야~

…엉?

호열이 얼빠진 표정을 했다. 백호를 올려다보자 흥 하더니 입을 연다.

- 우리 팀원들 중에서 우리사이 욕할 놈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겁먹지 마.

- …….

호열을 고쳐안는 손에 확신이 들어서있었다. 옅게 숨을 내쉰 호열이 그 품에 조금 더 기대며 대답했다.

- 응.


- 백호야.

- 눗?

- 왜 그랬어?

- 네가 사람들 만날 때마다 눈치보는 거 안 보이는 거 같지?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이 천재는 못 속여.

- 그치만 난 네가 걱정되서,

- 양호열.

- …….

- 호열아.

- …응.

큰 우산 속에서 함께 걸으면서, 백호가 호열의 손을 꽉 쥐었다. 호열이 움찔한다. 백호가 호열을 보았다.

-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할 필요도 없어. 난 너만 좋으면 다 좋아. 우리 사이를 추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애써 부정할 필요도 없고, 대쉬해오는 사람들 때문에 네가 상처받을 필요도 없어.

비가 내렸다. 백호가 우산 속 제 연인에게 말했다. 확신과 진심을 담아.

- 내가 좋아하는 건 너 뿐이니까. 천재는 가쉽따위에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호열의 손을 더욱 꽉 잡는다. 모를거라 생각했던  마음을 들킬 줄 몰랐는지 놀라던 호열의 눈가가 붉어져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봄비가 내리는 길가에서. 백호가 연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

호열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방울이 속눈썹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비처럼 떨어지지 않고 그렇게. 고개를 숙인 백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갠다. 작게 속삭인다.

- 마중 나오길 잘했네.

비가 내렸다. 우산을 타고 구른다. 비 속을 걷는 연인들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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