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양호열은 사랑이 가볍다

업로드 2024.02.05

* 백호열 트친 생일축하연성

이전작 강백호는 사랑이 무겁다 양호열 편

** 마찬가지로 백-> 쏘 ->탱 묘사 있음


양호열은 사랑이 가볍다. 아무나 쉽게 만난다는 뜻은 아니었다. 쉽게 헤어진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저, 양호열의 사랑은 우선순위 앞에 둘 정도로 무거운 감정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 …….

오십번 반하고, 오십번 고백하고, 오십번 차이고 오십한번을 도전하는 강백호를 보고있으면 그가 갖고있는 사랑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강백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점에서야 금새 사랑에 빠지는 일명 금사빠로 보겠지만- 솔직히 백호군단의 리액션이 그 이미지에 한몫하고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강백호는 그 인상에, 그 키에,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운명을 믿는 이였다. 이걸 귀엽다고 해야할지, 순진하다고 해야할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양호열의 사랑은 가벼웠다. 양팔 가득 끌어안아도 넘치는 강백호의 무거운 사랑과는 다르게. 가느다란 실에 풍선처럼 매달려 두둥실 떠있는 양호열의 사랑은 한없이 가볍다. 언제든 놓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햇빛에나 겨우 비치는 그 가느다란 실이 양호열의 가벼운 사랑을 지탱하는 목숨줄이나 다름 없었다.

순간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하늘로 사라질 법한  풍선과도 같이 가벼운 양호열의 사랑은 언제든 우선순위 뒤로 미루어질 준비가 되어있다. 언제부터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벼운 사랑.

무거운 사랑에 겨워하면서도 그 무거운 사랑을 추구하는 순진한 첫사랑을 위해서라면 제 사랑따위 뒤로 밀어둔 채 그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사랑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느다란 실을 놓지 못 하는 것은, 일종의 미련이고 일말의 희망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던 그것. 강백호가 오십번 째 차이고 실연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백호군단과 함께 실컷 비웃어주면서, 발끈하는 강백호를 다독이고 달래줄 때 은근히 가져보는 가벼운 사랑.

눈치 채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그런 가벼운 사랑.

양호열에게 사랑은 가볍다.

한없이.

놓지도 못 하면서.


양호열의 손에 쥐어진 가벼운 사랑을 매단 실이 더욱 가늘어진다. 둥실 떠오른 사랑이 더 높은 곳까지 떠오른다. 강백호가 채소연을 보는 그 시선에서 읽은 무거운 사랑탓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금방 고백하고 금방 차이고 금방 실연의 눈물을 흘려야하는데, 강백호의 무거운 사랑이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닿고 있었다. 부피감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실을 놓칠 뻔한 걸 저도 모르게 다급히 붙든다. 우선순위를 생각하면 더 뒤로, 더 위로, 더 가볍게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순간 그러지 못했다.

수 년간 지켜봐온 얼굴인데 그 변화조차 모를까.

강백호가 전하는 무거운 사랑을 모르는 채소연은 그저 웃어주고, 그를 받아주었다. 농구라는 새로운 세계로 강백호의 손을 잡아 이끌어낸다. 양호열은 하지 못 하는 것을.

양호열의 가벼운 사랑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밀려난다.

밀려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가벼운 사랑일지언정 소중한 것이다. 저마다 기준이 되는 무게가 다를 뿐이고, 강백호가 정의하는 무거운 사랑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랑일지 몰라도 양호열에게는 아니었다.

양호열은 처음으로 사랑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우선순위를 미룰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강백호와 양호열의 관계는 적어도 강백호에게 있어 절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채소연은 강백호에게 여신이나 다름 없었다. 숫기도 없고, 무드도 없고 눈치도 없어서 종종 그를 곤란하게 했으나 강백호를 밀어내지 않았다. 강백호에게 농구를 알려주고, 함께 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처음으로 가볍기만 했던 사랑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알고있다. 그렇기에 한없이 가벼운 사랑으로 무거운 사랑 탓에 시야가 꽉 막힌 강백호의 시선에서 여태 벗어나지 않았나.

가벼운 사랑이 작은 바람에도 금방 날아가버릴 듯 위태로웠다. 실을 놓을듯 말듯 하면서도 결국 놓지 않는다. 이 가벼운 사랑에 무게감이 더해질 일은 없어야했다.

그게 강백호의 사랑과 행복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양호열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사랑이니까.


양호열은 채소연에게서 무거운 사랑을 보았다. 강백호를 닮은 그 무거운 사랑은 강백호를 향해있지 않았다. 그게 좋은건지 싫은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강백호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서태웅을 더 싫어했다. 노골적인 질투와 열등이 느껴졌다. 채소연. 그리고 농구.

강백호에게 주어진 두 태양이 모두 자신을 봐주지 않으니 싫을 수 밖에.

이대로라면 강백호는 언제나 그랬듯 차이는 엔딩이어야 하는데 채소연은 강백호의 그 무거운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자신을 향한 어색한 애정이 애정의 감정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무거운 사랑을 하는 사람은 제가 끌어안고 있는 그 무거운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주는 사랑을 보지 못 하니까.

…양호열의 가벼운 사랑을 여태 보지 못한 강백호처럼.


어째서인지 예전처럼 강백호가 얌전히 차이기만을 기다리기 어려워졌다. 이전까지의 일과와는 다르기 때문일까. 강백호의 무거운 사랑을 눈치채지 못 했을 뿐, 채소연은 농구하는 강백호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서태웅을 볼 때면 애정가득한 시선으로 응원을 했다. 양호열은 그것을 느낄 때마다 가벼운 사랑을 매단 그 얇은 실을 꽉 쥐곤 했다.

서태웅을 보는 채소연의 시선을 강백호가 모를 리 없었다. 강백호가 느낄 그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서태웅만 마주하면 으르렁대는 것이 단순한 라이벌 의식만 있었으면 했다. 다른 곳을 향한 무거운 사랑을 보면서도 자신의 무거운 사랑을 주지 않았으면 했다.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했다. 질투하지 않았으면 했다. 채소연을,

서태웅을 좋아하는 채소연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했다.

서로가 벅차도록 끌어안은 무거운 사랑이 향한 방향이 다를 거라면. 마주할 수 없을 거라면.

주고 받을 수 없을 거라면.

가벼운 사랑이 하늘에 둥둥 떠다녔다. 가느다란 그 것을 움켜쥐고, 애써 우선순위에서 미뤄본다.

봐, 백호야.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걸.

네가 가장 소중히 하고 싶은 걸.

너를 이토록 뜨겁게 만들어주는 걸.

내 가벼운 사랑을 봐주지 않아도 좋아.

농구공은 너만을 필요로 하잖아.

성장해갈 너를 위해 필요하잖아.

제발 상처받지 마.

상처받을 거라면 농구만 해줘.

내 사랑을 평생 못 알아봐도 되니까.

- 너무 무겁게 사랑하지 마, 백호야.

힘들어하지 마.

상처받지 마.

너를 사랑해줄 사람을 사랑해.

-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잖아? 그 무거운 사랑을 주고받는 게?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양호열은 강백호에게 농구공을 던졌다.

제 사랑을 던지지 못 해 농구공을 던졌다.

채소연이 이끌었지만 스스로 내딛은 길.

강백호를 가장 강백호와 어울리게 하는 것.

농구하는 강백호는 무거운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무거운 사랑이 시야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눈 앞의 골대에 달려가게 만든다. 타오르게 만든다. 농구를 사랑하게 만든다.

이것으로 강백호가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항상 진심이었던 강백호가 정말 진심을 다한 상대인 채소연에게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속을 다 태워도 티조차 내지 못 하고 채소연의 사랑을 응원한다는 소리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강백호에게 농구를 보냈다.

농구하는 강백호에게 백호군단은, 양호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알았다.

가벼운 제 사랑을 놓아줘야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좋았다.

강백호가 상처받지만 않는다면 이토록 가벼운 양호열의 사랑은 그저 놓아버려도

놓아버려도

놓아……

버려도……

나는……

- …너무 무겁지 않은 그 사랑은, 너랑 해도 되는거냐?

아.

농구공을 건네는 바람에 강백호의 시야가 트여버렸다. 겨우 붙잡고 있던 실을 꽉 움켜쥐었다. 

공을 던지는 행동에 버벅대며 받아낸다. 우물쭈물하다 다시 공을 던진다. 강백호가 공을 받는다. 다시 보내고. 받고. 주고. 받는다. 농구공을.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고 받는 연속의 과정에서 사랑을 느낀다. 얼굴이 붉어진다.

주어지는 무거운 사랑을. 건네지는 가벼운 사랑을. 주고. 받는다.

사랑을 주고 받는다.

입을 맞추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숨이 달았다. 강백호의 무거운 사랑이 전해지면서, 양호열의 사랑 역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둘의 무게가 비슷해진다. 강백호의 무거운 사랑이 떠오르고, 양호열의 사랑이 내려앉는다. 균형을 이룬다.

사랑을, 주고 받는다.

양호열의 사랑은 가볍다.

강백호의 사랑은 무겁다.

두 사랑이 만나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양호열은 이제서야 깨닫는다.

제 사랑이 한없이 가벼웠던 것은 강백호의 사랑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제 더이상 양호열의 사랑은 가볍지 않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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