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미국… 좋아하세요?

업로드 2023.04.08

* 퍼슬덩O 원작X 애니X 설정빈약 참고

* 백호열은 친구를 위한 글

* 아니 나도 백호열 좋아는 하는데 태섭른 더 좋아해서 앞마당 멀티 이런건데.. 연성 비중만 보면 뭐 반반임..

 반반치킨 먹고싶다


백호가 미국으로 간다. 백호가 활동한 경기를 눈여겨본 미국의 어느 팀에서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다. 얼마간 미국에 머물면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합격하면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된다고. 먼저 미국행을 선택한 태섭 선배의 조언을 구했다. 복잡한 서류같은 건 학교와 농구부에서 도와준다고 했다. 개개인으로 챙겨야할 것은 아무래도 여권이라던가, 신분증이라던가, 개인물품 이런 것들.

백호는 해외를 다녀와본 적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가기 위해 여권이 필요한 건 백호 뿐이지만 혼자서 사진 찍으러 가는 게 무안했는지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왔다. 사진 찍을 필요가 없었지만 같이 찍었다. 아. 필요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타향살이 하는데 연인 사진은 있으면 좋을테니까. 딱딱한 표정의 증명사진이었지만, 괜히 좋았다. 사진 위로 보이는 얼굴을 엄지로 쓰윽 쓸어보았다. 무언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백호의 여권 사진은 내 지갑 속에 잘 자리잡고 있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정해졌다. 백호는 근처에 다녀오는 것 마냥 태연한 일상을 보냈다. 학교 수업을 대충 듣고, 농구부에 가서 농구를 실컷 하고, 마치면 함께 집으로 귀가하는 일상. 노을이 지는 길을 걸으며 백호의 손이 은근슬쩍 내 손등을 건드리면 옅은 미소가 그려지며 그 손을 맞잡았다. 백호를 힐끗 올려다보면 귀끝이 빨개진 것이 귀여웠다. 사귄지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백호는 여전히 쑥쓰러워했다. 나까지 덩달아 민망해져 괜히 시선을 돌려 앞만 보고 걷게 된다. 고백도 먼저 한 것도 백호였고 입술을 먼저 맞대온 것도 백호였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을 모른 척 했다. 여기가 동성간의 관계가 허락되는 해외도 아닌데. 괜히 소문이라도 났다간 백호의 선수생활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감출 수 있지만, 백호는 성격상 그렇지도 못했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그래서 모른 척 했다. 그랬더니 백호가 고백하는 날 그랬다.

- 너도 날 좋아하면서 왜 모른 척 하냐?

- 뭐라고?

- 난 너 좋아해. 너도 나를 좋아하면 된 거 아니냐?

- …….

그래도 사회적인 지위와, 위치와, 입지라는 게 있어. 백호야.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말 하면서 모른 척 덮어두고 거절을 해야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한편으로는 백호와 연인사이가 되길 바랐던 내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여태 살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살았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 주변의 눈치를 보며 고민해왔으면서. 그러면서도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껏 좋아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에. 그런 상대 역시 나를 좋아한다고 얘기해오면서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기에.

- …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데?

그래서 말을 돌렸다. 백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지만 당시로서는 그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눗… 백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오래걸리지 않아 답을 내밀었다.

- 네가 나한테 하는 것 보면 아무리 나라도 친구 이상의 행동이라는 거, 알 수 있어.

- …….

- 내가 아무리 주위에 가족 하나 없이 살아왔어도, 친구로서의 행동과 그 이상으로서의 행동에 대한 구분은 할 줄 알아.

- …….

너. 나 좋아하지.

나도 너 좋아해.

좋아한다고. 양호열.

짙은 눈썹과 강렬한 눈동자가 있는 힘껏 제 마음을 표현한다. 단호한 목소리가 표현한다. 긴장해서 손바닥이 축축한데도 꽉 잡은 손이 표현한다. 그런 백호의 눈썹을, 눈을, 입술을, 손을 차례로 보면서 나는 결국 웃어버렸다. 손을 마주 잡으며 그 눈을 보았다. 한 걸음 다가가자 당황하던 몸이 상체를 숙인다. 입술이 맞닿았다.

- 아무리 그래도 공개연애는 안 된다, 백호야. 괜히 들켜서 네가 좋아하는 농구를 붙잡는 건 싫거든.


백호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아침 비행기라 준비를 바지런히 해야했다. 백호를 닮은 커다랗고 빨간 캐리어에 갈아입을 여분의 옷과 생필품, 통관이 허락된 음식들을 챙기고 무엇 빠진 게 있나 손가락을 헤아려가며 확인했다. 백호는 아직 자고 있었다. 백호가 일어나 씻기 위해 알람 맞춘 시간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서 씻고, 캐리어를 정리하고 있다. 미국에 가면 만나지 못 할 테니, 가기 전까지는 내가 손을 보고 싶었다. 

"……."

캐리어를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미국에 가면 만나지 못 할 테니… 그럼 헤어지게 되는 걸까. 장거리 연애를 하기에 미국은 너무 멀었다. 국제 전화도 비용 문제가 있고, 해봐야 이메일 정도로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텐데. 시차도 정반대다 보니 연락마저 수월할 것 같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중학교 시절 만나 고등학교까지 함께 해왔지만 미국에 같이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백호와 만나는 시간을 조율하기 편하게 아르바이트를 맞춰서 해왔는데, 미국에 내가 가면 아예 처음부터 자리를 잡아야하는데 그럼 만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배부른 생각을 했다. 미국에 백호가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에 가서도 계속 만날지 알 수도 없는데. 

"……."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푸른빛이 도는 향수병이 손에 잡혔다. 백호가 내게 선물한 향수였다. 향수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불호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백호가 선물한 향수를 받아들었다.

- 이 향. 좋아. 네가 생각나거든.

- 나 향수 안 뿌리는 거 알잖아. 네가 써야지 왜 날 줘. 내가 생각나면 되려 네가 더 써야하는 거 아니야?

- 이 향수를 뿌리는 네가 좋으니까.

- …….

- 너를 좀 더 깊게 맡고 싶으니까.

- …….

향수를 살짝 뿌려 손목과 뒷목에 문질렀다. 은은하지만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이름은 모른다. 그저 백호가 나에게 어울리는 향이고, 이 향수를 뿌린 내가 좋다고 하니까. 그래서 받았다. 항상 은은하게 옆에 있어줘서, 은은하게 파도치는 바다가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백호에게 바다같은 존재였을까. 손목을 타고 오르는 향기 속에서 나는 잠시 어둡고 조용한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눈을 잠시 감고 향을 맡았다가 향수병을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내가 생각난다는 향을 가지고 그 먼 미국에서도 내 생각을 했으면 하는 생각에.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미국에 갔다가 돌아온다면, 다시 연인이 될 수 있을까. 미국으로 백호가 떠나면- 자연스럽게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헤어지게 되는걸까. 헤어지자고 얘기를 할까. 내가 해야할까. 기다리겠다고 말 해야할까. 백호가 기다려줄까. 캐리어의 짐을 챙기는 손이 자꾸 더뎌졌다. 은은하지만 시원한 향이 깊어졌다. 은은하게 파도치는 바다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 깊고 어두운 바다 속만 생각이 났다. 

"눗, 벌써 일어났어?"

"아."

뒤에서 들려오는 졸림이 가득 묻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짧게 깎은 머리를 벅벅 문지른 백호가 졸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크게 하품을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챙겨줬다.

"너 오늘 가는 날이잖아. 짐 빠진 거 있나 싶어서 확인하고 있었다."

"오. 고맙다."

"별 말씀을. 자. 씻고 나와."

"응."

욕실로 백호를 밀어넣고 그 문 뒤에 등을 기댔다. 괜한 상념에 빠진 걸 들킨 것 같아 한숨이 샜다. 웃는 얼굴로 보내줘야하는데 큰일이다. 나를 등지고 떠나는 백호를 생각하니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다. 최대한 밝게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하는데. 백호에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 무서웠다. 평생을 두려움 없이 살았던 양아치는 좋아하는 사람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도 없다.

"다 챙겼어?"

"응."

"어디 보자."

나를 보는 백호의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다. 호기어린 표정은 당장에라도 미국을 재패할 것 처럼 보였다. 빨간 캐리어를 손에 쥐어주고, 캐리어 위에 달아놓는 작은 가방에 여권, 신분증, 기타 중요한 서류 등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나를 빤히 보는 백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계속 가방만 뒤적였다. 

"… 다 챙긴 것 같네. 이제 가야지?"

"……."

"……?"

백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얼굴을 더듬더듬 만져봤으나 묻어나오는 건 없었다. 아까 씻을 때 확인도 해서 있을 리 없었지만. 잘 가라는 인사를 해야하나. 하지만 그 말을 내뱉으면 내가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내뱉으면 오늘과 같은 일상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말 하고 싶지 않았다. 인사를 건네야, 백호가 마주 인사를 하고 나에게서 등을 돌려 떠날 수 있을텐데. 구질구질하고 지리한 연애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도 아닌데 비련의 여주인공의 포지션을 떠올리는 이유가 뭘까. 떠나는 남주인공을 붙잡고 싶어도 붙잡지 못하고 바보같이, 멍청하게 멍하니 서있기만 하기 때문일까. 

"뭐… 잊은 거 있어?"

"……."

"백호야, 늦기 전에 얼른 얘기해야 찾아오지 않을까?"

백호가 입술을 비죽였다. 마른침이 삼켜졌다. 그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말은 어떤 말일까. 모르는 척 인사? 고하는 이별? 기다려달라는 희망? 백호가 입을 여는 순간이 영화 속의 슬로우 모션처럼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입술이 벌어지는 순간을 보는 내 심장도 거세게 요동쳤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 밖으로도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백호의 입술만 쳐다봤다.

"너."

"…어?"

"다 챙겼냐며?"

"어? 어."

"너만 챙기면 된다고."

"…뭐?"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의 박동에 가슴이 아파올 정도였다. 놀라 입을 떡 벌렸다. 백호는 흥, 하며 고개짓을 까딱하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가야지. 미국!"

"뭐어? 미국은 너 혼자 가는 거잖아, 백호야! 너는 농구 전형으로 가는 거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너는 나를 이렇게 보내고 혼자 있을 참이냐?"

바보처럼 크게 움찔거렸다. 못마땅해하는 시선에 잔뜩 모인 미간이 불만을 시원하게도 드러내고 있었다.

"뭘로든지 와. 같이 가. 너 혼자는 못 둬. 나랑 같이 가."

"아, 아니. 그렇게 얘기해도……."

억지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백호 너야 지원을 받아서 가는 거지만, 나는 맨 몸으로 그냥 가는건데. 돈도 필요하고 서류도 필요하고 여권도……아. 여권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던 백호가 떠올랐다. 사진 찍는 게 어색해서 내게도 찍으라고 한 줄 알았는데. 여권을 만들러 갈 때 혼자가 어색해서 내게도 발급받으라고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백호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 백호를 혼자 떠나보낼 나는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백호는 이미 미국에 가기로 한 순간부터 내가 함께 하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머리 한 구석에서 뭣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그간 내가 해왔던 온갖 아르바이트 이력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치열하게 싸웠다. 반짝반짝 빛나며 농구를 하는 연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민폐가 되지 않도록 살아남을 방면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렇게라도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함께할 수 있다면. 

백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홀린 듯이 그 손을 잡았다. 힘을 주어 당기는 팔에 그대로 딸려가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열이 오를대로 오른 복잡한 머리속이 순식간에 까맣게 묻혀 사라져버렸다. 은은하고 시원한 향이 우리 사이를 감싸안았다. 백호가 내 목덜미에 코를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뿌린, 네가 좋아하는 향을 그렇게 깊게 들이마셨다.

"같이 가. 미국."

"…응. 그래. 같이 가자. 미국에."

미국에서도 함께 하자.

함께 하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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