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시선

업로드 2023.04.05

* 쓰는 백호열은 모두 친구(들을)를 위한 글

* 연성폭주기관차 시절 연성


강백호는 제 옆을 걷는 양호열을 내려다보았다. 앞을 보며 걷는 친우는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평소에는 예리해서 걸려오는 시비를 잘 파악하는 편이었는데. 강백호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뭔가 다른가? 잘 모르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키 차이가 났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농구부에 들어가서 운동을 했더니 강백호는 키가 조금씩 더 크고 있었다. 양호열도 한창 성장하는 고등학생이기에 중학교 시절보다야 키가 컸다지만 강백호가 키가 너무 불쑥불쑥 자라는 바람에 그렇게 티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예전보다 더 높아진 시야에서 내려다보는 친우의 모습을 강백호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햇빛을 받으면 갈빛을 띄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양호열의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으면 어두운 녹빛을 띄었다.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멍하게 그의 머리통만 봤던 기억도 났다. 농구를 좋아하는지 물어오는 채소연의 머리도 햇빛을 받으면 녹빛을 띄었다. 강백호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 그래서 그 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빛을 내는 걸까? 강백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강백호의 시선이 조금 내려갔다. 아르바이트도 여럿 하고, 중학교 시절 쌈박질을 일삼았던 양아치였던 것 치곤 피부가 희었다. 붉은기가 도는 자신의 피부와는 확연히 다른 피부색상에 여름의 등굣길에서 나란히 걸을 때 반팔 교복 소매 아래로 스치는 자신과 친우의 팔을 떠올렸다. 나기를 기골이 장대한 자신과는 달리 평범하고, 평균적인 신체크기의 차이는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봐도 컸다. 그래도 주먹질하는 손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상처를 달고 있었지만 제 한 손만으로도 감싸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만나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하던 중, 자신에게 달려드는 주먹을 잡아챘을 때의 감촉을 떠올려보았다.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도 한 손으로 잡아챌 수 있을 정도의 차이였을 거라 생각했다.

싸움을 일삼고 아르바이트를 자주 하는 친우의 몸은 잔근육이 많았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에 비하면 덩치도 있는 편이었다. 그 옆에 자신이 서게 된다면 그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정도로 보이겠지. 강백호는 자신의 키와, 덩치를 친우의 키와 덩치에 비교해본다. 옆으로 나란히 세우니까 머리로는 잘 연상되지 않는다. 어차피 품에 들어오는 덩치니까, 하고 강백호가 잘 그려지지 않는 나란한 실루엣을 지워버리고 제 앞에서 몸을 맡겨 기댄 친우의 몸을 상상한다. 아. 이렇게 생각하니까 훨씬 잘 된다. 키가 최소한 20cm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강백호의 키는 계속 자라고 있었으므로 정확한 수치 비교는 어려웠다. 대충, 그정도라고 하면. 

온전히 자신의 앞으로 몸을 기대면 전신이 다 가려질 것이다. 뒤에서 보면 강백호 혼자 서 있는 것 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다리 길이가 차이나지만, 강백호의 몸이 훨씬 두꺼우므로 잘 서면 앞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을까. 불쑥 강백호의 옆구리 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혀를 내미는 얄궃은 모습을 상상한다. 

제 품에 쏙 숨어서 고개를 들면, 자신은 고개를 숙이고 친우를 바라보겠지. 항상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한결같은 시선을 보내며 웃어보일 것이다. 강백호는 가슴께가 간질간질하는 감각을 느꼈다. 이건 뭘까. 강백호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꽉 쥐어보인다. 고개를 드니 드러나는 흰 목에 시선을 빼앗긴다. 톡 튀어나온 목울대는 그가 분명한 남성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에 비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흰 목을 보던 것을 멈추고 앞을 보며 걸었다. 오래가지 않아 다시 시선을 돌려 흰 목을 내려다본다. 흰 목은 항상 서늘해보였다. 친우의 머리색이 검어서 그럴까. 그 왜. 그런거 있지 않나. 흰색과 검은색은 너무 상반되는 색이라서, 서로의 색을 더욱 극대화시켜보인다는. 그런 거. 아닌가? 

목이 희니 자꾸만 시선이 갔다. 한여름의 햇빛 아래에서 땀을 흘리면 잠깐 발갛게 익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나. 흰 목으로 땀방울이 흐르는 상상을 해본다. 강백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비해 작으니까, 자신에 비해 얇으니까, 자신에 비해 하얀빛이니까……. 

친우가 들으면 눈썹을 찌푸리면서 실례야, 백호야. 하며 곤란하게 웃을 법한 생각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

양호열은 소리없이 제 목에 손을 대는 강백호의 행동에 당황했다. 방심했다. 친구의 옆이라 너무 안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시비라도 걸렸으면 당장 목을 졸렸을 것이다. 양호열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강백호의 손목을 쥐었다. 붉은기 도는 손목을 걸어쥔 하얀 손을, 강백호가 물끄러미 보다 눗?! 하며 화들짝 놀란다.

"미, 미안!"

"무슨 일 있어? 깜짝 놀랐네."

다급히 떨어지는 손길에 양호열이 머쓱하게 제 목을 문질렀다. 강백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손과 양호열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뭔가 의도하고 한 행동은 아닌 모양이었다. 백호 녀석, 정말 엉뚱하다니까. 양호열이 웃었다. 

"뭐라도 묻었어?"

"아, 어…어어……."

강백호가 큰 손을 쥐었다 폈다. 머리카락이었다. 함께 그것을 보던 양호열이 푸핫 웃었다.

"전혀 몰랐네. 머리카락 떼줘서 고마워, 백호야."

"으, 으응……."

그럼 갈까? 하는 양호열의 뒤를 느릿하게 따라 걷는다. 강백호가 제 손을 쥐었다폈다 반복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양호열의 흰 목을 내려다보았다. 강백호가 손을 다시금 쥐었다폈다. 뭘 어쩌려고 했던걸까. 강백호는 알 수 없었다.

-fin

무자각 강백호가 양호열의 뒷 목 보고 홀리는 걸 보고 싶었던 거라 짧다..

강백호가 왜 이리 진중해보여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런 강백호가 좋네요 강백호라고 맨날 우끼끼 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 보다는 깐지나는 모습도 보여주는 게 좋잖아요

그래서 이게 깐지나는 모습이에요?

뿌엥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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