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덩

[ㅅㄹㄷㅋ/백호열] 그 비디오에는 사랑이 있네

 

일반인 친구를 텔레비전에서 만날 거라 상상해본 적 있나? 일어날 수 있으니 각오해라.


일반인 친구를 텔레비전에서, 그것도 이역만리 머나먼 타지의 기숙사, 어수선한 거실, 먼지가 치밀하게 낀 바닥 깔개에 앉아 반 시간 전 데운 팝콘을 우적거리며, 두 시간 전 다녀온 외출의 전리품을 비디오 녹화기에 넣은 뒤 먹구름 색 브라운관이 빨강 파랑 초록빛으로 물들었을 때 만날 거라 상상해본 적이 정말로 있나?

적어도 강백호는 해본 적 없다.

전자레인지 팝콘이 입 안에서 뭉개지다 말았다. 귓가를 채우던 와작와작 소리가 텔레비전의 영화 소리로 교체되었다. 주인공인 남자 배우가 뭔가를 하고 있다. 산을 타는 중인데, 이제 막 오른 참이라 조금 전까지는 산기슭 어귀에 있었다. 강백호가 리모컨을 들어 일시 정지를 눌렀다.

되감기, 일시 정지, 재생.

등산로 초입으로 걸어가는 주인공. 주변에는 산에서 내려온 자와 지금부터 오르려는 사람이 두어 명씩 짝을 지었고, 조금 떨어진 도로에서는 간이매점 하나가 장사 중이다. 일시 정지. 재생. 매점 주인장이 방금 손님에게 비닐봉지를 건넸다. 봉지를 받은 등산객이 뒤돌아 산으로 간다. 정지, 뒤로, 정지, 재생. 손님은 챙이 큰 모자에 품이 큰 등산복 차림이다. 정지, 재생. 등산을 취미로 두기에는 조금 젊은 느낌이다. 영점오 배속. 자기 의지로 온 것도 아닌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 확대는 왜 안 된담. 얼굴이 거의 손가락 반마디 정도다.

그래도 강백호는 확신했다.

저거 호열이다.

이역만리 머나먼 고향의 벗이 지금 비디오 영화에 나오고 있다.

…왜? 


두 시간 전 외출에서 강백호는 학교 인근의 시내를 돌아다녔다. 미국이라고 모든 게 다 별천지는 아닌 것이, 공기의 냄새와 계절의 양상, 거리의 행인이 고향과는 확연히 다르긴 해도 익숙한 구석이 있기는 했다. 가끔 사 먹는 햄버거라든가 콜라, 물 빠진 아스팔트, 새로 산 티셔츠에 찍힌 원산지: 중국, 미국까지 당도한 고국의 전자제품 따위에서 강백호는 익숙함을 느꼈다. 정겨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디오 대여점도 익숙하다. 내부 구성은 좀 다르다만.

기숙사에 적응하고 새로운 훈련 방식에 적응하고 교통수단과 길과 언어를 익히는 동시에 친구도 몇 사귀느라 눈코 뜰 새 없었던 매일이 어느 순간 눈 깜빡, 코 찡긋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막연히 다리나 떨어대면서 때우는 공백이 아니라 진짜 여유 시간이. 강백호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한가함을 즐길 만큼 부지런했고, 바로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갔다.

여기가 영어권 국가임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코트에 발을 들이자마자 파울을 당한 심정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을 꽉 채운 건 순 미국 영화뿐이다. 아니, 미국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죄 영어 제목인 건 확실하다. 강백호는 아무 비디오나 끄집어내 계산대로 가봤다.

“이 영화, 글자 있어요?”

그러자 같은 인종의 가게 사장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영어 자막 말하는 거야? 어떤 건 나오고, 어떤 건 안 나오고, 영어 더빙도 있고 그렇지. 곽 뒤에 표시되어 있어.”

강백호는 못 들어먹었다. 눈치 빠른 사장이 물었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그 정도는 알아들은 강백호가 얼른 답했다. 너희 나라는 이쪽에 조금 있을걸. 사장이 안내해준 선반에는, 선반 구석에는 딱 세 개의 곽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빈 껍데기다. 아, 이거 저번에 치운다는 게. 빈 곽을 치우고 남은 두 비디오. 하나는 공포, 하나는 슬래셔.

강백호는 울고 싶어졌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선반만 바라보자 사장이 흘끔거렸다. 눈가가 촉촉한 거구의 남성이 슬슬 어깨마저 떨기 시작한다. 너 담배 피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강백호는 성실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 나가서 오른쪽, 담배 가게 있거든. 거기 주인장한테 내가 피우는 담배 달라고 해. 그거 사서 다시 와. 일주일 뒤에.”

딱딱한 억양으로 딱딱 짚어준 말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이해 못 했다. 그래도 발 뻗을 자리는 본능의 영역으로 알아차리는 강백호라, 일주일 뒤 담배 한 갑을 쥐고 다시 찾아가니 사장이 각이 진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물물교환하듯 각자 손에 쥔 물건을 바꾸었다.

“일주일 뒤에 반납해.”

사장은 부연 설명 없이 자리를 떴다. 봉투 안에 곽 없이 견출지만 달랑 붙인 비디오 네 개와 곽에 든 비디오 한 개가 있다. 견출지에 적힌 영어 단어… 드라마, 음악, 예능 방송…. 그리고 곽에 적힌… 익숙한 고국의 글자….

나중에야 알게 된 얘기로, 이 사장님은 외국인 학생 사이에서 귀인으로 통했다. 그분이 가진 유통망에는 결점이 없어. 네가 지옥이든 우주든 어디서 왔다 한들 그곳 광고지라도 구해올 분이야. 분명 유학 초창기 때 누군가 말해줬겠지만 영어라서 못 알아들었거나 강백호라서 까먹거나 했을 거다. 예상치 못한 호의를 받은 강백호는 기쁨의 사자후를 지르며 사장님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으로 감사를 표출했고, 중장년에 접어든 후로 거의 정적으로 살아온 사장님은 갑자기 몰아친 폭풍에 강백호만큼 비명 지르며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상당히 정정하신 분이며 명줄을 당길 수준까지 놀라지는 않았으므로 결론적으로 사장님의 건강에는 아무 문제 없다. 이웃 가게에서 경찰을 부를 뻔했지만 그것도 잘 설명되어서 강백호도 문제없이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쨌든 이게 지금까지 일어난 이야기다.

콧노래를 부르며 씻은 강백호가 기숙사 공용 거실에서 비디오를 재생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그래도 여전히 양호열이 나온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가설을 세워보려던 강백호는 생각 잠깐 하다가, 그냥 수화기나 들었다. 생각이란 건 몸뚱이로 해결 안 될 때나 하는 짓이다.


 

“그걸 봤다고? 거기서?”

아득히 먼 이에게서 아득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비디오 속 인물이 양호열임을 확인받은 백호가 얼른 이어 질문했다.

“그렇다니까. 너 언제 영화 일에 발 들였냐? 새 일 시작했으면 말이라도 해주지.”

“아니, 그거 내가 원해서 나온 것도 아닌데….”

가벼운 한숨. 근심이나 분노로 나오는 게 아닌, 조금은 민망한 일, 가오 상하는 일을 들켰을 때나 뱉는. 그 정도는 금세 읽은 강백호가 더 짓궂게 놀렸다.

“화면발 잘 받던데 왜 그러냐. 너 평소에 나 얘기하는 것만 듣고, 네 얘기는 별로 하지도 않고, 네가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뒷북으로 네 기별을 접하네… 내 친구는 지금 영화 스타가 됐는데…. 와, 참 섭섭해, 그치?”

마지막 말을 뱉고 보니 강백호는 자기가 정말로 서운했단 걸 깨달았다. 많이는 아니고 살짝. 그것을 간파했는지 양호열이 목소리를 바꿨다.

“뒷북 아니야, 백호야. 네가 제일 처음 알았다. 애들한테도 말 안 했거든. 애초에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원래라면 거기서 소품 담당만 할 예정이어서….”

넋두리 같은 설명이 시작됐다. 우연히 접한 영화사 구인 공고, 현장직임을 감안해도 꽤 쏠쏠한 수당, 찔러나 보자는 맘으로 보낸 이력서, 호출, 합격, 출근, 시발, 때려치우기에는 할 만한데 남더러 하라고는 못 하는, 여전히 쏠쏠한 급여, 그래서 계속 욕하면서 다니다가 어느 날 감독 겸 사장이 놀지 말고 머릿수나 채우라며 카메라 앞으로 밀어버리고는 액션….

“사장이 돈 많은 괴짜야. 머리에 꺼내야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무조건 빨리 찍고 다음 영화 찍으러 가야 한대. 알랑방귀 뀌는 직원은 천재라서 그렇다는데, 결과물 보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너도 봤다며? 되게 이상하지 않더냐.”

“어- 뭐- 극장에 걸릴 일 없겠다 싶었지.”

솔직히 양호열을 찾기 전까지는 영화보다 팝콘 식감이 더 재밌었다. 저예산 티가 나는 건 그러려니 했지만 배우도 썩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닌 듯하고, 줄거리도 난해한 건지 그냥 매력이 없는 건지 헷갈릴 만큼 단조로웠다. 영화가 한 시간 안팎의 짧은 작품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비디오로 갈아탔을 거다.

“거의 그 회사 금고에나 보관될 영화지. 대여점 쪽으로 조금 유통된다고는 들었는데 그게 미국도 포함일 줄이야.”

허를 찔렸다는 듯 산뜻한 웃음이 전화선을 타고 울렸다. 거기다 강백호한테 들키기까지 하다니. 역시 천재 눈은 속일 수 없나 봐. 네가 진짜 천재다. 여기 있는 가짜 천재 좀 어떻게 해줘라, 백호야- 양호열의 투정에 강백호가 코를 긁었다. 그동안 전화하면서 들어주는 쪽은 호열이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듣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좋게 묘했다. 호열의 영화사 업무와 직원 욕을 골고루 들어준 백호는 좋은 하루 보내라며 통화를 끝냈고, 이제 하루를 끝내려 널브러진 거실을 정리했다.

네 개의 비디오를 봉투에 담은 백호가 마지막으로 호열의 영화 비디오를 손에 들었다. 역시나 저예산으로 뽑은 듯한 영화사 상표. 다음날, 일정을 마무리한 백호는 담배와 과자와 주스를 사 대여점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 물건을 늘어놓은 후 최대한 몸을 옹송그려 연약함을 피력했다. 어제의 소동을 두 사람 다 잊지 않았다.

사장이 눈썹을 까딱였다. 강백호가 공손히 두 손으로 비디오를 내밀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상표를 쿡 눌렀다.

“여기 이 그림, 이 회사, 영화, 더 가져올 수 있어요?”


 

친구가 민망해하는 본인 출연 영화를 왜 보는가? 보는 사람은 재밌으니까.

영화 감상은 괜찮은 취미가 됐다. 강백호는 일주일에 네다섯번쯤 대여점으로 가 가게 일을 거들었다.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사장이 낡은 천 가방을 계산대 뒤편에 올렸다. 천 가방을 들고 귀가하는 백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빠르다. 기숙사생 누군가 거실을 쓰고 있으면 언제 끝나냐고 엄청나게 눈치를 줬고, 백호의 땡깡은 만국 공통어 수준이라 보통은 순순히 자리를 떴다.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영화 관람에 동참했다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다며 두 번의 실수를 피했다. 평범하게 보는 거면 몰라, 관객이 자꾸 리모컨을 꾹 잡은 채 텔레비전을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와 소리 지르며 영화를 멈추고 재생하고 되감기하고 똑같은 장면을 느리게 빠르게 여러 번 보다가 제멋대로 키득대는데 이쯤 되면 영화가 이상한지 쟤가 이상한지 갑자기 우주에서 버림받은 기분이 된 자신이 이상한지 알 수가 없어져서 현명한 이는 강백호가 비디오와 함께 거실에 떴다 하면 얼른 자신의 든든한 아군인 침대로 달려갔다. 이십 대 남자가 바글바글한 기숙사치고 이곳에는 항상 현명함이 넘쳐흘렀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강백호는 요즘 거실이 자주 비워져서 참 좋다고만 여겼다.

녹화기가 비디오를 뱉었다. 한 시간가량 돌아간 비디오는 따끈따끈했다. 점차 식어갈 동안 두 손으로 꾹 비디오를 감싸 잡았다. 기계의 발열은 익숙하다. 녹화기 사용법도 그렇고. 그리고 이 안에 든 것, 꺼멓고 딱딱한 각진 플라스틱 안에 든 인물이 제일 익숙할 거다. 아니, 비디오 속 양호열은 조금 낯선 면도 있다. 아무래도 영화 장르에 맞춰 분장해야 하니까. 몇 초 안 되는 순간을 위해 양호열은 왈패처럼 차려입거나 어색한 정장을 입기도 했고, 공상 과학 작품에서는 머리카락을 은색으로 덮기도 했다. 그것뿐인가. 어떨 때 양호열은 외국인이 되기도, 귀신이 되기도, 상인, 좀비, 재물, 실험체, 거지, 우주인, 학생, 수색대 등등이 되었다. 그렇게 곱게 꾸민들 주인공의 뒤에서 흐릿한 인영으로 어슬렁거리는 게 다였다. 그래도 강백호는 양호열을 놓치지 않았다. 그를 보는 게 제일 좋았다.

그거야, 나는 걔 친구니까. 강백호가 비디오를 품에 껴안고 벌렁 바닥에 누웠다. 네모난 플라스틱은 이제 미지근하다. 천장의 전등이 누르스름히 빛났다. 가슴 위 비디오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저 노란빛이며 건조한 바닥이며 이 건물과 바깥 모두 이제는 익숙하다. 낯섦은 거의 사그라들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다. 만족스러운 일상이다. 농구야 뭐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살이도 유쾌하고, 일상이 알차며 방금의 영화도 정말 즐거웠다. 양호열을 봤으니까.

그런데 요즘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쩐지 속이 허했다. 비디오만큼의 공간이 상반신에 뻥 뚫린 기분이다. 으음. 괜히 비디오를 가슴팍에 눌렀다. 그리움일까. 호열이 없는 것도 익숙해졌다지만 익숙함마저 가리지 못하는 존재감이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양호열은 익숙하다기 보다는 정겨운 쪽이다. 만나면 기분 좋고, 생각나면 보고 싶고, 못 보면 서운해지고….

응?

강백호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뭔가 잡힐 듯 말 듯 머리에 떠오를락 말락 한다. 피부에 닿은 깔개가 까슬하다. 손톱으로 허벅다리를 벅벅 긁었다. 뭔가 느낌이 올락 말락… 뭘까… 이 마음… 음….

나 지금 서운한가.

말이 되나? 싶다가도 말은 되지 싶다. 거 영화에서 얼굴 잠깐 봤다고 만난 걸로 칠 수는 없으니. 양호열을 자주 보지만 진짜로 본 게 아니라 점점 서운해지나 보다. 망했다. 이게 바로 향수병이구나. 유학 선발대 송태섭이 해준 경고가 이거였지. 향수병은 언젠가 꼭 온다고. 고지서처럼 감기처럼 반드시 온다고. 나 감기 안 걸리는데? 라고 반응하니, 태섭이 질려하는 눈으로 백호를 꼬라봤었다.

“그럼 사랑이라고 해. 너 그거 하나는 끝내주게 많이 하잖아.”

사랑. 달콤쌉싸름한 단어를 뱉은 태섭이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돌연 식당 탁자에 이마를 처박았다. 한나 보고 싶어어어- 이번에는 강백호가 송태섭을 꼬라봤다. 상사병은 지가 걸려놓고선. 강백호는 그가 사준 딸기 셰이크를 촙 홀짝였다. 그때는 아직 태섭의 경고가 와닿지 않았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섭섭….

향수병은 이렇게 갑자기 오는구나….

비디오를 만지작거리던 백호가 몸을 일으켜 다시 녹화기를 켰다. 왠지 지금 엄청 보고 싶어졌으니 또 봐야겠다. 가짜 만남이 그리움을 더 심화시키는 걸 알지만, 당장 보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인가. 그건 내일의 자신이 해결할 문제다. 강백호는 리모컨을 들어 빠르게 호열이 나오는 장면으로 이동했다.


 

비디오 호열은 왔을 때처럼 갑작스레 떠났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앞에서 강백호가 입을 벌렸다. 리모컨을 든 손에 힘이 풀렸다. 이것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돌려봤는데도 양호열이 안 보였다. 찾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양호열이 없다.

왜 갑자기?

결국 감독이랑 대거리했나? 그만 좀 부려 먹으라고 주먹다짐이라도 했을까? 아니면 일을 그만뒀나? 이번만 잠시 안 나오는 걸까? 어디 아프나?

호열이 전화를 안 받는 통에 가설만 한가득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주에 도착한 새로운 영화, 여기서도 양호열이 없다. 행방 묘연에 소식까지 끊기니 강백호의 생각이 안 좋은 쪽으로 뻗어갔다. 그러다 백호 군단에 한 차례 연락을 돌렸을 때 ‘호열이 저번 주에 나랑 같이 밥 먹었는데?’라는 말을 듣자 안심한 동시에… 엄청나게 대박 완전 무시무시하게 서운해졌다. 결국 강백호는 또 양호열 소식을 다른 곳에서 들은 거 아닌가?

새 소식이 있으면 연락이라도 주지. 달라진 게 없더라도 잡담은 나눌 수 있잖아. 우리 사이인데. 양호열이 의외로 강백호에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 그 만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슬퍼져서, 강백호의 의욕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팀 동료나 같은 기숙사생이 눈치 볼 정도로, 무뚝뚝한 대여점 사장마저 향수병 왔냐고 물어볼 정도로.

향수병. 생각해보니 강백호는 고향의 모든 것보다는 양호열 하나만 그리웠다. 이걸 향수병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거다. 강백호는 침울하게 향수병은 아니지만 무진장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백호의 손에서 먼지떨이를 가져갔다. 자그만 상자를 하나 찾아 강백호에게 들고 있으라 시켰다. 그 안에 그동안 백호가 본 비디오를 죄다 털어 넣었다. 주전부리도 조금 채우고는 등을 떠밀어 가게 밖으로 보냈다.

“넌 운동선수니까 운동하라는 말은 필요 없겠지. 그거 보면서 쉬든가 해. 이번 주는 안 나와도 좋아. 오고 싶으면 오고.”

사장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를 보여준 걸 테다. 그 슬픔의 원인이 정확히 상자 안에 있지만. 어차피 밖에서 할 것도 없으므로 백호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품 안의 상자가 덜걱댔다. 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상심에 젖을 줄은 몰랐는데. 양호열을 발견해서 좋았는데. 그 재미없는 영화에서 양호열이 나오는 일 초가 너무나 재밌었는데. 그를 찾아낼 때 터지던 전율, 금세 읽어내린 표정에서의 정겨움, 색다른 차림에서의 낯섦, 그것을 실제로도 보고 싶던….

기숙사에 도착할 즈음 익숙한 얼굴 둘을 발견했다. 같은 층의 기숙사생인데, 아직 강백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저들끼리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인사를 하기에는 피곤한 상태라 백호는 적당히 담장 뒤에 숨어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가까워지면서 말소리가 들렸다. …야, 난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어. 강백호는 그 남자가 온 걸 아나?

뭔데 내 얘기를 하지? 뭔 남자?

…텔레비전?

담장을 빠져나온 백호가 서둘러 뛰어갔다. 텔레비전. 남자. 두 단어만으로 이상하게 심장이 쿵쿵거렸다. 뭔가 느낌이 올락 말락, 눈으로 보기 전까지 확신하면 안 되지만-

“아.”

강백호 선수! 기숙사의 현관 앞. 양호열이 어제도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인사한다. 못 보던 가방, 못 보던 옷. 그러나 만면에 가득 찬 저 미소는 언제나의 그것이다. 변함없이 좋아하는 미소.

“많이 놀랐냐. 귀띔하려 했는데,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

익숙한 풍경, 그리웠던 사람. 두 가지 다 백호에게 낯설지 않지만 한데로 합쳐지니 이상하게 낯설었다. 강백호가 대답 없이 입만 뻐끔거렸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쿵쿵거린다. 뭐지, 이거. 너무 오랜만에 봐서일까. 그동안 비디오 속 양호열에게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눈앞에서 양호열이 움직이고 말하는 게… 정말 이상했다…. 진짜 너무 이상했다….

“백호야?”

감당이 안 될 만큼….

심상찮음을 감지한 호열이 쑥 백호 앞으로 다가왔다. 아 뭔가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입이 안 떨어지고 머리가 새하얘지고 너무 가까운 거 같아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은데 이 근육도 평소보다 말을 안 들어서 다리를 움직인다는 게 팔까지 들썩여서 상자가 덜컹 양호열도 움찔 그제야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저 으앗,

상자가 떨어졌다. 밀봉 안 한 상자에 비디오가 와르르 쏟아졌다. 아주 건전하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 비디오. 그런데 특정 인물이 계속 출연하는.

강백호는 양호열의 영화를 꾸준히 찾아본다는 소리는 전혀 안 했다.

미리 했더라면 그나마 쉽게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었을까.


 

“설마하니 비디오 전부가 풀린 줄은 몰랐네. 그 감독 할리우드에 관심 있었나….”

예상외로 상황은 쉽게 타파됐다. 따지고 보면 친구 나오는 영화 좀 찾아본 게 뭐 대수인가? 거기다 호열은 비디오가 대여점에 자연스레 입고 된다고만 생각했다. 백호가 굳이 굳이 대여점 사장에게 부탁해서 보는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일주일에 네다섯번 무상노동을 하고 거실에서 기행을 벌이는 것도 전혀 몰랐다. 침묵이 돈 된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강백호는 호열 몰래 땀을 닦았다. 아니 근데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찔리고 있지.

“이제 전 직장이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만, 망했으면 좋겠다.”

양호열이 쾌활하게 저주를 날렸다. 호열은 직접 만나서 들려줄 셈이었는지 백호의 앞에서 그동안 숨겼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미국 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단다. 백호를 만나려고. 목표액을 다 채우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갔고 잠깐 휴식 좀 취하다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끊었다더라. 너 좋은 동네에 사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들은 지금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 있어서 날씨가 그대로 전해졌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호열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그래서 너는 여기서 뭐가 제일 나았어?”

호열이 비디오에서 시선을 떼 백호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기 직전 백호가 무서운 반사신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왜 긴장하고 있지. 어쩐지 아까부터 호열을 마주하는 게 어렵다. 애꿎은 바지만 꾹 쥐어뜯었다. 무슨 할리우드 대스타를 만난 것마냥, 온몸이 삐질삐질, 심장이 울렁울렁…. 강백호는 가자미눈으로 상자를 흘겨보고는 비디오 하나를 꺼냈다. 나는 이거.

“그래? 신기하네. 오컬트 장르가 너한테 맞다니.”

“너 거기서 제일 오래 나왔으니까….”

“그랬나?”

그랬나 보다. 호열은 별 말없이 자기도 비디오를 꺼내 들었다.

“난 그나마 이게 제일 좋았어.”

“그거 무슨 내용이더라.”

“코미디인데, 세 학생이 밤에 학교로 갔다가 서로를 귀신으로 착각해서-”

“아아아- 알겠다. 낮 장면에서 너 학생으로 나왔지? 머리 안 올리고.”

“…그랬던 거 같지?”

“인상이 확 달라서 되게 신기하더라.”

백호가 히죽 웃었다. 말 몇 마디 나누니 긴장이 풀려갔다. 역시 너무 오랜만에 봐서 적응 못한 거였나 보다. 조금씩 신나진 강백호는 비디오를 하나둘 꺼내며 간단한 감상을 읊었다. 영화 이야기를 할수록 강백호는 예전처럼 말이 많아지고 양호열은 예전보다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상함을 느낀 백호가 호열을 보니 이제는 이쪽이 시선을 피했다.

“왜 그래?”

“아니, 잠깐만….”

양호열이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아, 강백호- 호열이 고개를 홱 돌려 상기된 얼굴로 백호를 봤다. 아까보다 더(그것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니!) 다정한 미소에 강백호의 긴장감이 다시 훅 피어올랐다.

“너는 무슨, 나 나오는 장면만 돌려봤냐. 내 얘기만 엄청 하네!”

호열의 등이 들썩였다. 호탕한 웃음이 기숙사 상공을 채웠다.

“내가 거기 나와봤자 얼마나 나온다고. 뭐 유별난 짓을 했다고. 영화 얘기를 하라더니 내 얘기만 종일 하네.”

내가 그렇게 좋니, 백호야. 호열이 아예 백호 쪽으로 몸을 틀었다. 등받이에 팔을 올려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시선이 직격으로 꽂혀 백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좋냐니,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지금까지 이거 본 이유가 다 너 때문이었는데. 네가 좋으니까 계속 본 거지. 네가… 좋…으니까….

문득 강백호는 상자 속 비디오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다. 못해도 두 자릿수는 채웠다. 작품성은 순화해서 표현하면 망작. 정말 자신이 저만큼의 비디오를 봐왔나? 한 편 한 편이 시간 아까운 영화를?

친구가 민망해하는 본인 출연 영화를 왜 보는가? 보는 사람은 재밌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수십 편을 냅다 보는 경우는… 없지….

“…너 왜 아무 말 안 해.”

양호열이 강백호의 다리를 톡 건드렸다. 할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방금 떠오른 생각을 막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야 호열아 사실 내가 향수병 걸린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나 봐! 나 상사병 걸렸어! 상대는 너야! 사랑한다!’

침묵은 돈이다. 강백호는 이 순간 백만장자다.

꼭꼭 걸어 잠근 입과는 다르게 몸에서는 감정 상태가 그대로 표출됐다. 얼굴은 풀코트 뛰다 온 것처럼 뜨겁고 땀도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바지는 원래 구멍 없는 바지였는데 머지않아 찢청이 될 예정이다. 오돌오돌 떨기까지 하는 백호를 보던 호열은 흠, 콧바람을 내더니 그의 건강을 걱정해줬다.

“백호 너 긴장했어?”

호열이 백호의 속내를 살짝 헛짚었다. 백호는 제발 이걸로 대화 흐름이 바뀌길 바라며 냉큼 대답했다.

“어, 어. 그런 거 같다야.”

“뭐 때문에 긴장한 거야. 여기 너랑 나만 있는데.”

“하하하핫그러게말이다.”

“좀 가져가 줄까?

“뭐를?”

“긴장. 잠깐 귀 좀 대봐.”

강백호가 귀를 대자 양호열이 그대로 볼에 입술을 쪽 붙였다 뗐다.

강백호가 양호열을 보자 어두운 사위에도 미친 듯이 타오르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어떠냐, 백, 홉.”

양호열이 태연히 말을 하려다가 삑사리가 났다. 헛기침 두 번. 침 삼키기 한 번.

“어떠냐, 백호야. 나도 이제 엄청 긴장되거든. 너는 좀 나아졌냐.”

“……그건 모르겠는 데에….”

너 꼭 안아봐도 되냐……. 강백호가 어느샌가 벤치에 무릎 꿇고 앉았다. 양호열이라고 뭐 다를 건 없었다. 여기가 로맨스 비스무리한 영화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키스나 갈겼을 테다. 그러나 여긴 영화도 아니고 이미 호열의 돌발행동으로 두 사람 다 허용범위를 초과해서, 포옹조차도 결국 어물거리다 양손을 꼭 잡는 걸로 그쳤다.

전해지는 맥박이 너무 빨라서, 언제 놓아야 하는지 잘 몰라서, 이쪽은 아직 계속 상대를 잡고 싶어서 두 사람은 저녁이 밤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야외서 그러고 있으면 누군가 산통을 깰 법도 했으나, 이 기숙사에는 알다시피 전부 현명한 청년뿐이라. 그들은 진작에 커튼을 치고 제 할 일이나 열심히 했다. 그래서 두 사람도 열심히 손이나 잡았다. 


그래서 이 전개는 해피인가 새드인가. 적어도 확실한 한 가지. 이 커플은 사귄 지 일주일 만에 장거리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

출국장 앞에서 강백호는 양호열을 터뜨릴 기세로 꾸와악 끌어안았다. 이대로 어디 한 군데가 진짜로 터지면 출국 못하겠지. 그래도 역시 건강하게 보내주는 게 제일이라 강백호는 마지못해 양호열을 놔주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백호의 얼굴을 닦아주며 양호열은 가는 길에 이렇게 못생겨서야 되겠냐며 키득거렸다.

“넌 아무렇지도 않냐. 우리 겨우 칠 일째인데.”

“나도 아주 아쉽지. 근데 나는 사귄다는 사실만으로도 되게 좋거든. 너보다는 괜찮은 거 같네.”

“씨, 그런 말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벌써 보고 싶어지는데 어떡해. 나 더 이상 비디오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아- 양호열 가지 마! 그냥 불법 체류해! 내가 기숙사에 감쪽같이 숨겨줄게!”

너 쬐만해서 숨겨도 절대 안 들켜! 다시금 안겨 오는 강백호에 양호열이 웃는 듯 하다가 백호의 귀가 가까워졌을 때 속삭였다. 백호야.

“내가 선물 하나 줄까.”

“선물?”

“나 원래 거기서 소품 담당이었댔잖아. 그거 기억하면서 거기 있는 비디오 전부 다시 봐 봐. 그러다 보면 시간 훅 갈 거다.”

그럼 나 없는 동안 건강해라. 어리둥절한 백호를 두고 호열은 인사한 후 출국장으로 떠났다. 백호는 닫힌 문을 오래 바라보다가 떼지지 않은 걸음을 떼며 겨우 기숙사로 돌아갔다. 연애하면 세상이 아름답다더니 이게 뭔가. 심장에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처럼 너덜너덜한데! 한껏 침울해진 강백호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매트리스의 용수철이 삐걱거리고 침대에 올려뒀던 상자가 기우뚱 백호 쪽으로 기울여졌다.

킁. 베개에 잠시간 파묻혔던 백호가 몸을 일으켜 상자를 뒤적거렸다. 옷도 안 갈아입은 상태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거실로 갔다. 왜냐면 지금 양호열이 엄청 보고 싶으니까. 텔레비전에 익숙한 상표가 뜨고, 곧이어 백호가 늘 빨리 감기로 건너뛰었던 장면이 시작됐다. 소품 담당이랬지. 어디까지가 소품이고 어디까지가 기타 등등인가. 애초에 왜 양호열이 소품을 유심히 보라 했는지도 짐작이 안 갔지만, 강백호는 끈덕지게 영화를 지켜봤다. 그리고 영화 시작 십 분 만에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어?”

리모컨 위 손가락이 빠르게 일시 정지를 눌렀다. 강백호는 공을 던지듯 신속하게 손가락을 놀려 원하는 장면으로 도달했다. 주인공 집에 자리한 선반. 선반에 놓인 인형 여러 개. 인형은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흔하디흔한 생김새지만, 그중 하나의 머리털이 빨갛다. 조금 어색한 걸로 보아 일부러 기성품에 털실을 얹은 것 같다.

곧이어 주인공이 집을 나섰을 때 복도에서 굴러다니던 거뭇한 농구공, 으슥한 골목길에 휘갈긴 ‘천재 ’ 낙서, 주인공이 도달한 건물은 십 번가에 자리했으며, 문에 적힌 호수는 백호네 집 호수와 똑같았다.

“…양호열 이 나쁜 자식아.”

백호의 눈물샘이 영원히 열려버렸다.

“이러면 더 보고 싶잖아….”

강백호의 취미는 그대로 유지됐다. 백호는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거실로 가 비디오를 틀며 오도카니 감상한다. 가게 일을 돕는 것도 계속하지만, 새 비디오를 들여와달라는 부탁은 사라졌다. 사장이 슬픔은 가셨냐고 물었을 때 강백호는 그건 아니지만 더 큰 행복을 알았으며 지금은 그걸 위해 견디는 중이라 말했다. 강백호가 두 자릿수의 영화를 두 자릿수를 채울 정도로 돌려보고 나니 계절은 이미 바뀐 지 오래였다.

누군가는 일상을 영위하고 누군가는 새 시도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때와 다른 차림으로 강백호가 입국장 앞에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다.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여러 번. 마침내 강백호의 얼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강백호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렸던 이를 껴안았다. 안긴 이 또한 간절히 바라고 또 보고 싶던 이를 마주 안았다. 백호가 호열의 손에서 여행 가방을 넘겨받고, 두 사람은 그때처럼 손을 맞잡은 채 그들이 살아갈 곳으로 발을 떼었다.

이곳은 미국. 수많은 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려 당도하는 곳. 크고 작은 소중한 꿈이 도착하는 곳. 공항을 오고 가는 꿈들은 저마다 특별하고 빛나는지라, 그 하나로 이어진 어떤 연인의 모습은 그다지 유별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다. 인파에 섞인 흔한 덩어리였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들의 눈은 당장 눈앞의 이에게만 닿으면 되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행복해지는 길인데.

그들은 기꺼운 맘으로 배경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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