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꽃길
업로드 2023.04.01
* 퍼슬덩만 보고 백호열은 탐라에서 움짤이나 캐릭터 연관성 관련 연성 위주로 봐서 캐붕 주의
하늘하늘하게 부는 바람 새로 보이는 벚꽃잎의 향연에 강백호가 문득 시선을 돌려 그것을 바라본다. 날이 좋았다. 농구하기 좋은 날씨. 농구를 생각하자 전신에 힘이 돌면서 근육이 팽팽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등쪽의 통증에 눗, 하며 어깨를 수그린다. 아직 농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이 천재의 컴백을 이렇게 오래도록 막아도 되는거야? 강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농구하지도 못하는데 날만 좋아서는, 흥. 하고 창가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친구들이며 농구부 친구들이 주고 간 선물들로 가득한 상두대 위로 커다란 손을 뻗는다. 손에 잡히는 농구잡지를 휘리릭 훑는다. 이번 달의 주목할 선수, 미국으로 진출하는 선수, 농구와 관련된 온갖 가쉽까지…
아. 농구하고 싶다.
밖을 보니 농구하러 뛰쳐나갈 것 같아서 농구잡지를 잡은 건데 잡지에 커다랗게 자리한 선수들의 사진을 보니 더욱 열이 끓어오른다. 도움이 되지 않아 농구잡지를 침대 밑으로 툭 던져버린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등이 확 눌리는 바람에 찌르듯 솟아오르는 통증에 혼자 부르르 떨며 입술을 악문다. 슬쩍 옆으로 돌아눕는데 아, 하필 창가로 돌아눕는 바람에 푸르다 못해 청량해보이는 하늘이 강백호의 한 눈에 들어온다. 창문 끝으로 온몸을 펼쳐 연한 분홍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벚꽃나무가 보였다. 농구도 못하는 좋은 날씨따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엄한 하늘만 노려보다 큼, 큼 하며 조심히 몸을 일으킨다. 창가에 다가가 벽에 고개를 툭하고 기댔다. 벚꽃나무가 줄을 이어서고,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과,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병원 근처에 늘어선 벚나무길을 걸으며 연신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고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긴다.
"……."
강백호가 하하호호 하는 사람들 밑, 떨어져내려 길을 덮은 벚꽃잎들을 내려다보았다. 희고 연분홍빛을 내며 길을 꾸며내는 벚꽃잎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에 수없이 밟히고 지나간다. 어린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그 위를 신나게 달려간다. 바람이 한 번 불어올 때마다 수많은 벚꽃잎들이 영화처럼 흩날렸다.
사진 찍으며 웃는 사람들
싸온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웃는 사람들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그 속에서 강백호는 오롯이 혼자였다.
봄따위.
괜히 시려오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강백호가 몸을 돌렸다. 왜 들여다봤을까. 강백호의 시선이 병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향했다. 4월 1일. 한참 봄을 만끽하는 시기. 그리고 자신의 생일. 같은 날인 만우절은 잠깐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정도인 날. 만개한 벚꽃잎이 흩날리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날.
그리고 그 속에서 혼자인 자신.
짙은 눈썹이 처진다. 이런 생각은 농구천재 강백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고개를 열심히 저어댔지만 햇빛을 등진 병실의 그림자와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을 등진 채 서있는 자신에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천하의 강백호도 집어삼키기에 충분한 크기로 자라고 있었다. 강백호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농구잡지도 별로 재미없고, 간식은 너무 많이 먹으면 간호사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그렇다고 땀 흘리며 움직일 수 도 없고. 때마침 욱씬거리는 통증이 어림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입술을 삐쭉거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에 빠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답답해진다.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에 천하의 강백호가 무력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는 뭘 해야할까. 무엇을 해야 이 답답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농구는 지금의 강백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응? 거기서 뭐해?"
"눗? 호열이?"
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양호열이 열린 병실 문 앞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양 손에는 종이가방을 잔뜩 들고 있는 채로. 강백호 역시 눈을 댕그랗게 떴다.
"손이 없으니 노크하기 어려워서 불렀는데 대답도 없어서 자는 줄 알았더니."
"아. 미안."
강백호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가벼운 숨을 뱉은 양호열이 옅게 웃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침대 위로 종이 가방을 얹는다. 침대 옆 바닥에 어질러진 농구잡지들을 줍고 정리해 상두대 위로 올린다. 강백호가 종이가방으로 다가왔다. 아까까지 자신을 집어삼키려던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뭐냐?"
"뭐긴. 생일 선물 배달이지."
"생일 선물?"
"너 설마 병원에 오래 있었다고 네 생일도 까먹은 건 아니겠지?"
"그, 그럴리가!"
당황한 강백호가 크게 외친다. 양호열이 웃으며 그래그래, 다른 건 잊어먹어도 생일을 잊어먹으면 안되지. 하며 대답한다. 종이가방 속에 담긴 생일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침대 위로 늘어놓았다. 강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포장된 선물을 하나하나 뜯기 시작했다.
"누가 준 거야?"
"우리가 준비한 것도 있고, 농구부 사람들이 준비한 것도 있고."
강백호를 슬쩍 보던 양호열이 그런 적 없다는 것 처럼 시치미 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소연이가 준 선물도 있고."
"눗…소연이가!"
선물 포장을 뜯는 강백호의 손이 빨라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양호열이 피식 웃었다.
선물은 다양했다. 말이 생일선물이지 만우절과 겹치는 날이라 이게 생일선물이 아니라 장난치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선물들도 많았다. 분명 섭섭이일거야. 틀림없어. 그리고 친구놈들도 빠지지 않았겠지. 재활을 마치고 돌아올 강백호를 위한 농구물품들도 있었다. 중학생 시절 양호열과 친구들끼리 단촐하게 지냈던 생일 파티가 떠올랐다. 지금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생각에 코 끝이 찡해지는 기분이다.
"밖에 날씨 좋더라. 농구하고 싶어 죽겠지?"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강백호가 고개를 들었다. 씨익 웃는 양호열이 얄미워 빽 소리지른다.
"두고보라고! 이 천재님이 빠르게 회복해서 코트로 복귀해줄테니!"
"그래, 그래. 응원해. 백호야."
"……."
강백호가 물끄러미 양호열을 올려다보았다. 선물을 뜯으면서 들떠하기도 하고, 장난이 다분한 선물을 보며 발광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던 양호열이 그런 강백호를 물끄러미 마주보았다. 아, 이런 눈빛에 약한데 나는. 양호열은 괜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도록 몰래 숨을 골랐다. 강백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봤다. 여전히 맑은 하늘에, 흩날리는 벚꽃잎들,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강백호가 양호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가자."
"어딜?"
제게 내밀어진 커다란 손에 진중한 눈빛에 두근거리면서도 압도된 양호열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시커먼 남학생 둘이 손을 잡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고 장난으로 무마시켜야한다는 생각은 떨리는 숨과 함께 삼켜졌다. 강백호가 양호열의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손이 생각보다 작았네, 너."
"네가 큰 거야."
"싸움은 그렇게 잘 하는데."
"싸움과 손의 크기는 별로 상관이 없지 않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을 두드리는 멘트에 양호열은 강백호의 손 안에 쥐어진 자신의 손을 빼고 싶었다. 이대로가면 자신의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아서. 강백호의 마음에, 말에 거짓이나 상대를 속이기 위한 것은 없다. 강백호는 말과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강백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웃, 눗 등의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고, 덩치만 큰 농구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양호열은 강백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어떻게든 견디고 일어서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좋아하는 농구를 위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뛰는 사람. 친구들과 농구부 사람들과는 티격태격해도 타인에게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 항상 앞을 보는 사람. 머리색처럼 붉은 열정을 품은 사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양호열은 깊어지는 감정만큼 이루어질 수 없는 절망을 속으로 씹어삼켰다. 강백호에게 쥐어진 손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입 안에서 좋아한다는 말이 맴돌았다.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쓸쓸해하는 그 표정을 보면서 팔을 뻗어 그 커다란 덩치를 꽉 끌어안아주고, 옆에 내가 있다는 말을 해주고,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싶은 그 순간 채소연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현실로 제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평생 강백호 모르게 하고 싶은 감정은 이렇게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오는 손길에 무참히도 무너지고 만다.
"야아, 백호야. 손은 왜 잡는거야?"
"눗……."
강백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손 안의 손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농구공을 오래간 잡느라 손가락에 가득 박힌 굳은살이 양호열의 손등을 만지자 전신의 솜털이 일어선다. 좀 더 자신을 만져줬으면 하는 파렴치한 생각에 빠지려는 것을 억지로 끌어내린다.
"시커먼 남자 손 잡아서 뭐 좋다고?"
"뭐?"
양호열은 한쪽 눈썹을 치뜬 강백호의 날카로운 시선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강렬한 눈빛에 약하다고, 나.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자신의 손과 밖을 내다보길 반복하더니 긴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양호열의 손은 꼭 쥔 채.
"백호야??"
"가자."
"그러니까 어딜??"
신장 차이만큼 다리 길이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는 걸음 걸이에 양호열이 강백호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좇는다. 강백호가 양호열을 돌아보았다. 씩 웃는 얼굴은 평소의 자신만만한 농구천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강백호의 얼굴이었다.
"꽃길!"
"어?"
얼빠진 대답을 하는 새에 병원 밖에 당도해 내리쬐는 햇빛에 양호열이 강백호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린다. 맑은 날씨에 벚꽃나무길이 둘을 반기듯 바람에 꽃잎을 실어보낸다. 후두두 떨어져 팔랑거리는 꽃잎비를 보는 양호열의 얼굴이 멍하다.
…백호에게 오는 것만 생각해서 오늘 날씨도 전혀 몰랐네.
그래, 봄인데. 왠지 봄 하면 강백호가 떠오르고, 강백호 하면 봄이 떠오르는데. 왜 잊고 있었을까. 생일마저도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한 계절인데 왜 몰랐을까. 마주한 봄을 바라보는 양호열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봄이라도 타나, 괜히 눈물까지 날 것 같아 제 옆에 우뚝 서있는 강백호를 올려다본다. 무언가 결의라도 다지는 듯한 진지한 표정은 강백호에게 낯설기도 하면서 짙은 수컷의 향을 풍기는 듯 했다. 양호열은 그 짙은 수컷의 향에 잠식되는 기분을 느끼며 여전히 잡고있는 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힘주어서 마주잡아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해본다. 채소연의 언급에 눈에 띄게 헤벌레하던 강백호를 애써 떠올린다.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라는 달콤함에 한껏 취해보고싶다가도 현실에 쨍하고 정신을 차린다. 입 안으로 살을 깨문다.
"가자."
"어? 어??"
강백호는 그런 양호열을 아는지 모르는지 잡은 손을 이끌어 벚꽃잎비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강백호와 양호열이 눈에 익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해보인다. 양호열은 괜히 맞잡은 손이 사람들에게 이상한 시선이라도 닿을까, 그것이 강백호에게 다른 영향을 미칠까 싶어 제 손을 비틀어 빼려했다.
"배, 백호야. 손은……."
"응?"
차원이 다른 악력을 이기지 못해 양호열이 겨우 내뱉은 말을 들은 강백호가 양호열을 내려다봤다. 난처해하며 주위를 훑는 시선에 강백호 역시 시선을 훑는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문제냐?"
"뭐?"
억지로 빼내려는 손을 콱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긴 강백호의 시선이 양호열을 관통했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반대쪽 손으로 주먹을 꽉 쥔다.
"사람들이 보잖아. 이러면 나중에 너한테 무슨 소문이라도 나면,"
"너는 소문이 나도 되고?"
"왜 말을 돌리는 거야.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볼 거야."
"흐응."
입술을 삐죽이며 주위를 훑던 강백호가 뭐가 문제냐는 듯 양호열에게 말했다.
"여기저기 다 손잡고 걷는 사람들 뿐이야. 여기에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만 있어.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를 이상하게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냐?"
"그, 그건."
"넌 나랑 이러고 걷는 게 싫으냐?"
"아, 아냐! 좋아! 너무!"
다급하게 외치다 제가 한 말을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급하게 강백호의 눈치를 본다. 그런 양호열을 보던 강백호가 씨익 웃었다.
"좋으니까 손 잡고 가자고. 꽃길."
"……."
자신이 외친 좋아, 와 강백호가 이해한 좋아, 는 다른 의미인 듯 했다. 양호열은 속으로 완전 녹아 흘러내린 멘탈로 강백호가 신나게 손을 쥐고 흔들며 꽃길을 걷는대로 따라 걸었다. 이미 녹을대로 녹아버린 바람에 귀 끝이 빨개진 상태로 앞만 보는 강백호를 보지 못 했지만.
흐물렁해진 양호열을 보던 강백호가 속으로 웃었다.
호열이도 눈치가 없을 때가 있네.
강백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봄을 자랑하듯 파란 하늘과, 그 하늘 위로 가득 수놓아진 벚꽃, 바람이 불 때마다 놓아주는 꽃잎이 흩날리는 날씨가 강백호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날이 좋았다.
벚꽃길을 걷기 좋은 날씨였다.
강백호가 기분 좋게 웃었다.
-fin
제대로된 캐해 없이 연성하려니 정말 .................................................................. orz
퍼슬덩 보기 전에 커플링 잡게 되면 분명 백호열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원작은 부담스러워서 안보고 퍼슬덩만 봤더니 백호열 지분 없어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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