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empty heart

* 세계관 특성 상 심장(하트로 지칭)을 넣고 꺼내고 하는 게 자유롭습니다.

우리 생각하는 펄떡이는 심장의 이미지가 아닌 하트 모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있지,

보통 사람은 하나의 하트를 가지고 있고, 서로 운명의 상대가 정해져있어서 언제 만나든 알 수 있잖아?

서로에게 맞물리도록 하트를 교환하게 되어있고.

그런데 말이야,

그 하트가 아예 비어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이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야. 어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강백호X양호열

empty heart

wrriten By. 뮤가


진화라는 이름의 개조, 개발이 이루어진지 1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면서도 고장나거나, 녹이 슨 부분을 기계 부품으로 교체하며 평균 수명 100년 시대에서 1000년 시대를 만들어내었다. 신체의 대부분을 온갖 기계로 바꿔가며 오랜 수명을 살아가면서, 예전부터 있었던 로망을 버리지 못한 인간들은 저마다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심장으로 또 다른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요컨대 ‘운명’을 느끼게 한 상대에게 자신의 ‘하트’를 주고, 상대의 ‘하트’를 받는 것이다.

‘운명’을 버리지 못해 기계화된 문명에 최적화된 마음 교환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하트’를 마음대로 꺼낼 수 있었다. ‘하트’를 꾸밀 수도 있었다. 일명 하꾸라고 불리는 이 문화는 청소년부터 중장년에 이르러 노년기까지 사람을 낭만과 꿈의 세상으로 이끌기 충분했다. 상대에게 주는 내 심장. 상대에게 받는 심장. 하트 교환식이라 불리는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를 마치고 나면, 서로의 ‘하트’를 자신의 빈자리에 채워넣고 충만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다시 꺼내서 꾸미고, 다시 넣을 수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분홍색의 하트 이모티콘처럼 생긴 그것은, 종이로 하트를 접은 것처럼 각진 외형이기도 했고, 톱니바퀴처럼 생긴 것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다 달랐다는 뜻이다.

‘하트’는 심장이었다. 운명의 상대와 교환식을 하기 전까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중심. 감정을 만드는 공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활력이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트’가 있었다. 간혹 ‘하트’의 빈자리와 ‘하트’가 완벽히 맞물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상대의 ‘하트’가 들어가면 꼭 맞물려 인간으로 하여금 더한 운명을 느끼게 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빈자리와 ‘하트’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다. 언젠가 만나게 될 자신의 운명이 제게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 같았다. ‘하트’를 빈자리에 맞물릴 때 불편한 쌉싸름함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달콤하게 맞물리게 될 것이다.

빈자리가 맞물리지 않는 것은 괜찮았다. 그래도 운명의 상대를 만나, 그의 ‘하트’를 받아 빈자리에 끼우면 해결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그 ‘하트’ 자체가 없는 것은 괜찮지 않았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호열에게는 ‘하트’가 없었다.

‘하트’와 ‘운명’에 빠진 이 세계에서, 오직 호열 단 한 명에게만.

‘하트’는 심장이었다. 심장이 없는 인간이 살 수 있는가? 일단 호열은 여태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고, 살아있었다. ‘하트’가 없음에도.

‘하트’가 없는 것을 안 것은 태어난지 310년에 이루어진 정기검진 때였다. 대부분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있으면 그때그때 센터에서 수리나 교체를 했으므로 개중에라도 뒤늦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게 있어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호열은 근래에 우측 팔이 불편해 수리를 하고, 다가오는 정기검진일 때 확인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정 나이별로 진행하는 검진항목이 달랐는데, 이 때의 호열은 신체 전체를 스캔할 수 있는 때였다. 스캐너가 전신을 훑고, 수리한 부분이라던가 교체한 부분이 잘 연결되어있는지, 더 낡은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던 중 이상신호음이 울렸다. 검진담당자가 검사실 너머에서 고개를 갸웃하고, 주위 담당자들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호열은 혼자 어리둥절하게 앉아 담당자들의 부산스러운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검사실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재검을 요청하자 호열이 자리에 누웠다. 스캐너가 다시 호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지나가며 그의 몸을 스캔했다. 옹기종기 모인 담당자들이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손을 올려 턱을 쓸거나 했다. 호열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띄워지고, 모든 검사가 끝난 후 결과를 듣는 진료실에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 ‘하트’가 없으신데요?”

“뭐가 없다고요?”

호열이 저도 모르게 제 가슴께를 더듬었다. 마찬가지로 저도 모르게 되묻자, 의사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이전에 했던 검진 결과들도 확인을 해봤거든요? 그런데 ‘하트’가 없어요. 그 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근데 이것도 자세히 보니까 뭐랄까… 희미해요. 그전까지의 검진에서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아서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혹시 최근에 ‘하트’와 관련해서 다른 이벤트라던가 그런 게 있었나요?”

“아뇨…….”

검진을 시발 진짜 대충하고 있었잖아? 호열이 속으로 욕을 삼켰다. 스캐너에서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면 다 정상이야? 의사의 대답이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트’가 희미했던 건 뭔데? 나 희귀병 환자였어? 나도 모르던 사이에? 시발개발새발 호열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욕을 속으로 짓씹어댔다. 기가 막힌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는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면 입 밖으로 꺼낼 말이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단 지금은 별 증상이 없다고 하시니, 경과를 봐야할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은 저도 처음인데다 학회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상태라서… ‘하트’가 없는 인간이라니.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요? 이건 연구감이에요. 혹시 저희 센터에 주기적으로 내원하셔서 검진을 꾸준히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이미 희미했던 ‘하트’가 사라졌다는 것은 다시 생길 수도 있다는 가설을 두고 관찰을 해봐야할 것 같거든요.”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뭐 약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술적인 방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케이스가 없으니 일단 연구관찰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거다. 호열은 의사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자신의 ‘하트’의 빈자리를 그려보았다. 하꾸를 한 것도 아니고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하트’를 꺼내서 보여주고 한 적도 없는 호열은 자신의 ‘하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빈자리에 얼마나 맞물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검진에서도 별 얘기 하지 않았었고 검사한 사진을 딱히 받아간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알 리 없었다. 연구관찰을 위해 자신이 있는 이 센터로 오라는 말은 그냥 흘려들었다.

자신에게 ‘하트’가 없다.

호열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실 하나였으니까.

꼭 다음 검진때도 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어린 목소리를 다시금 흘려들은 호열이 집으로 향했다. 보통 200년이 지나면 성인 취급을 하니 성인이 된지 한참 된 호열이 혼자 자취생활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오자 서늘한 공기가 주인을 반겼다. 익숙한 위치에 자리한 스위치를 켜자 방이 밝아진다. 호열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고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하트’가 없는 것에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터 사라져있었는지 모를 자신의 ‘하트’. 그전에도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원래부터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 같았다. ‘하트’가 심장이긴 했지만 존재가 희미하다고 해서 몸이 병약하다던가 잔병치레가 잦다거나 하진 않았다. 여태 호열이 살아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랬다. 병약은 커녕 주먹으로 학교를 평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하트’가 없어도 살만한 듯 했다. 몸이 안 좋아지는 조짐도 딱히 보이지 않았고, 신체 일부의 불편감이 있으면 제때 수리를 하거나 교체를 하면 그마저도 다 사라졌다. ‘하트’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바닥에 앉았던 몸을 뒤로 해 그대로 누운 호열이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트’를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며 자신은 어떻게 꾸몄고 네 ‘하트’는 어떻고… 하며 까르르 웃던 학교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때의 호열은 어땠나.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서 이후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호열은 그 모든 행위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감흥도 없었다. ‘하트’의 모양이 어떤지, 빈자리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언제 만날지 모르는 운명의 상대를 꿈꾸며 ‘하트’를 꾸미는 일련의 모든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가? 그건가보다.

호열이 가만히 납득했다. ‘하트’가 없는, 당시에는 희미했을 호열이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트’는 심장이요, 자신을 이루는 중심이자 감정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호열은 감정이 없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트’가 없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고, 그때 만날 이를 위해 ‘하트’를 꾸미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레어 하고,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 자신의 ‘하트’에 불편해하면서도 달게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호열에게는 ‘하트’가 없으니까.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감정의 결여. 부재.

단지 사람들에게 시니컬하다는 이미지를 주는 게 감흥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하트’가 없어서였구나. 호열은 빠르게 납득했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호열은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원래 자신의 성향 때문일지, ‘하트’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양가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호열은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부정하고 자시고 할 일도 아니기도 했다. 개인의 사정에, 생각에 감놔라 배놔라 참견할 생각도 없었다. 그건 그 개인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그걸 왜 나한테 주는거야?”

“…어?”

자신에게 내밀어진 ‘하트’를 보며 호열이 물었다. 상대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내 운명의 상대가 호열이 너인데… 너는 아니야? 하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호열이 예쁘게 꾸며진 ‘하트’를 보다 상대를 보았다.

“그 운명의 상대라는 거,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 진짜 운명이 아닌 거 아닐까?”

호열이 손을 내민다. 상대의 손바닥 위에 놓인 ‘하트’ 위로 상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감싸도록 올려주었다. 상대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하트’를 소중히 쥔 모습을 만들어낸 호열이 옅게 웃었다.

“미안. 넌 내 운명의 상대가 아닌가봐. 너는 나를 보면서 운명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를 보면서 운명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 나 아닌 다른 운명의 상대를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에 상대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 없는 일은 아니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보통 운명의 상대를 언제든, 어디서든 마주치면 알 수 있다는데. 간혹 그 운명의 장난질로 인해 쌍방 운명이 아닌 일방 운명인 경우가 있었다. 오늘의 호열과, 그 상대처럼.

쓸쓸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던 호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지금까지 몇 번째야, 대체.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하트’가 비어있어 운명의 상대가 있을 수가 없는데 어째서인지 호열은 잊을만 하면 운명을 언급하며 ‘하트’를 내밀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트’의 빈자리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 것은 운명의 상대가 가진 ‘하트’ 때문이기에 사람들은 빈자리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운명의 하트교환을 위한 ‘하트’ 자체가 없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호열은 ‘하트’의 부재로 인해 감정적 결여가 있을지언정 눈치가 없진 않았다. 자신의 비어있는 ‘하트’ 소식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신을 향한 시선이 어떻게 변할지 잘 알았다. 그래서 호열은 ‘하트’가 없다는 것을 숨겼다. 친한 사이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군단 녀석들이 알면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호열은 만일에 대비하고 싶었다.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친하게 치내온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호열이 ‘하트’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하트’가 없다는 건 알지 못했다. 그걸 알았을 때 친구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을 생각하면 호열에게도 상처가 될 것 같았기에. 그래서 숨겼다. 운명도, ‘하트’도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것만 어필했다. 군단 녀석들은 호열을 납득했고, 더 캐묻지 않았다. 호열은 안도했다. 이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친한 친구들에게 비밀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힘들었다.

웃기지.

‘하트’가 없는데 ‘마음’이 힘들 수 있다니.

‘하트’와 ‘마음’이 별개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호열은 생각했다.

아무튼 몇 년 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호열이 미소를 지었다. 피곤한 생각은 더이상 하지 말자. 지금은 친구들 만나서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것에 집중하자. 이런 생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

호열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커다란 ‘하트’ 위로 쏟아지는 술기운에 눈을 깜빡였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꽤나 들어간 알콜의 기운에 뇌가 구르는 것이 퍽 느려졌다. 눈을 다시금 느리게 깜빡이며 제게 내밀어진 ‘하트’와 그 상대를 보았다. 고개를 들어야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그 눈이, 시선이, 표정이. 열렬한 사랑을 외치고 있었다. 조금, 아니, 좀 많은 알콜의 기운과 함께.

“…취했어?”

“누웃… 아니.”

“근데 이걸 나한테 내미는 거야?”

네가… 내 운명이니까.

백호는 그렇게 말했다.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그렇게 말했다. 호열은 말없이 백호를 올려다보았다. 백호, 백호. 강백호. 그래. 강백호는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100년 즈음부터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니까, 최소 210년 이상은 만난 사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장난도 많이 치고, 놀고, 먹고, 자고.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사이.

호열은 백호와 군단 녀석들과의 시간을 떠올렸다. 군단 녀석들 하나하나와 여태 만났던 시간을, 함께했던 순간을 생각해본다. 백호와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내밀어진 ‘하트’를 보면서 호열이 생각을 마치고 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와 큰 키에 비해 순수한 친구다. 비어있는 ‘하트’에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충격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덜 받았으면 했다. 그러니 호열은 최근에 있었던 고백 상황과 같은 말을 꺼낸다.

“그걸 왜 나한테 주는거야?”

옅은 웃음음 덤이었다.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제스쳐. 나는 네 운명이 아니라는 제스쳐. 내가 운명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거부의 제스쳐였다. 백호가 후눗, 하더니 당혹스러워한다. 여태까지 ‘하트’를 거절당했던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호열은 조금 씁쓸했다. 운명의 상대를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면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상대는 자신을 운명으로 느낀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조금은 미안해졌다. 거절하는 것도 민망하기도 했고. 이 순간이 친구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만큼 무안했다. 괜히 어색한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지만, ‘하트’가 없는 운명의 상대를 맞이하는 게 더 싫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백호에게.

호열의 말에 당혹스러워하던 백호가 표정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네가 내 운명이니까.”

“음… 백호야, 내가 보니까 있잖아. 그 운명의 상대라는 게, 내가 느껴도 상대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운명의 상대라는 건, 상대도 느끼고 나도 느끼고 그래야하는 거잖아? 그래서 서로의 ‘하트’를 주고받는 하트교환식으로 서로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거고… 백호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겠어?”

아 진짜 무안하네. 호열이 속으로 생각했다. ‘하트’가 없다는 사실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거기에 관심 없는 별종 취급을 받는 게 낫지. 호열은 백호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하트’를 거절함으로 인해 한동안 서로 어색하고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주거리가 되어 회상하며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백호가 상처받는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엉?”

“네가 아직 나를 운명의 상대로 인식할 수 없는 때 일수도 있잖아. 당장 오늘 밤 11시가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1년 뒤가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네 운명의 상대가 되는 게.”

“…백호야?”

“난 네가 내 운명이었으면 좋겠어. 호열아.”

“…….”

보통 호열이 그렇게 얘기하면 눈물을 보이거나 아쉬워하면서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그 뒤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호열이 입을 다물었다. 백호가 많이 들이대는 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여기서도 이럴 줄은 몰랐지.

“그게 언제가 될 줄 알고 기다려? 그 사이에 운명의 상대가 바뀔 수도 있잖아.”

“바뀔 일 없어.”

“얘가 왜 안 부리던 고집을 피우지? 백호야. 우리 사이를 생각해. 우리 친한 친구사이잖아. 우리가 운명의 상대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야. 나 괜한 걸로 너랑 친구사이 어색하고 불편해지는 거 싫다.”

“눙…….”

백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호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상처 주고 싶지 않은데 왜 또 상처를 주게 만들지. 호열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친구사이를 들먹였으니 적당히 알아듣고 백호가 물러나길 바랐다. 그러다 여전히 내밀어져있는 ‘하트’를 보았다. 섬세는 개나 준 투박한 손길이 다 보이는 엉성하게 꾸며진 ‘하트’. 그러나 그것이 백호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하꾸라는 것을 호열은 알았다. 백호가 군단 녀석들과 하꾸를 하면서 그렇게나 똥손이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꿋꿋이 꾸며나가던 표정이 생생했다. 그래,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 저런 모습이었겠지. 뒤에서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호열이 생각했다. 백호가 꾸민 어색하고 투박한 ‘하트’에 시선이 머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팍 들었다.

“그래도 난 네가 내 운명이었으면 좋겠다.”

“백호, 너…….”

원래도 끈질긴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심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걸까. 호열은 백호가 곯아떨어지고 깨어났을 때, 오늘 일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기억할지 고민했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차라리 이후에라도 백호가 뻗어서, 자고 일어나면 필름이 끊겨서 이제 제가 할 말과, ‘하트’를 내밀었던 일 모두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얘기를 하면, 오히려 술이 깨는 거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은걸까. 호열은 끝까지 고민했다. 그리고 걱정했다. 그러나 이 얘기를 하지 않기엔 백호가 너무 끈질겼다. 호열은 어느 순간부터 백호에게 자꾸 물러지려 했다. 자신을 다잡은 호열이 백호를 다시 보았다. 술기운이 깃든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열의 입술이 열렸다.

“난 네 운명일 수가 없어, 백호야.”

“…어째서?”

달싹이는 입술에 백호가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호열이 작게 말했다.

“나는 ‘하트’가 없으니까.”

“뭐?”

“놀랐어? 그치. 아무래도 그렇지? 나조차도 놀랐는데 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백호야. 나 진짜 ‘하트’가 없어.”

“…….”

“그래서 여태 운명을 말해오며 ‘하트’를 내민 손을 거절해왔었어. 오늘의 네 ‘하트’도 그렇고. 내가 ‘하트’를 받으면, 내 ‘하트’를 줘야하는데. 줄 ‘하트’가 없어서. 백호야. 나는 그래서 네 운명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

“…….”

“이런 거 얘기하면, 분명 나를 이상하게 볼 테니까…, 이 얘기까진 안 하고 싶었는데…… 백호 네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너무 끈질겨서…….”

쓰게 웃으며 말을 흐리는 호열을 보며 백호가 느리게 숨을 내뱉었다. 여즉 내밀어진 제 ‘하트’를 내려다본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크고, 감정이 풍부한 백호를 이루는 커다란 ‘하트’를. 고개를 숙인 호열에게, 백호가 ‘하트’를 쥔 제 손을 호열의 가슴께까지 가져다댄다. 호열이 고개를 든다. 눈이 마주친다. 찰나의 순간에. 백호가 호열의 가슴께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너한테는 크겠지?”

“백호야?”

“운명이라면 빈자리에 ‘하트’가 완벽하게 맞물릴 거라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어?”

“자기 ‘하트’도 빈자리에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서로가 운명의 상대여도 빈자리에 상대의 ‘하트’가 완벽히 맞물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생각까지는 해본 적 없는지 호열이 불퉁하게 대답했다. 백호가 술기운을 숨으로 다시 내뱉었다. ‘하트’를 한 손에 쥐고, 자유로운 손으로 호열의 손을 잡아올리고는 제 ‘하트’를 잡게 했다. 백호의 ‘하트’를 쥔 호열의 손끝이 떨리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호열의 반대쪽 손도 잡아올려 양손 가득 ‘하트’를 쥐게 했다. 커다란 백호의 ‘하트’가 호열의 양손 가득 잡혔다. 강렬한 붉음으로 빛나는 그것을 호열이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백호가 양손으로 제 ‘하트’를 쥔 호열의 뺨을 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호열이 드물게 흔들렸다. ‘하트’의 부재로 감정적 결여 상태인데도. 백호의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백호가 그런 호열을 나지막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하트’는 말이야. 상대의 빈자리도, 내 빈자리도 모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커. 네 ‘하트’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든, 아예 존재하지 않든… 나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뜻이야.”

“…….”

호열의 눈이 커졌다. 백호가 씩 웃었다.

“어떠냐. 이래도 네가 내 운명이 아니라고 말할 셈이냐?”

“…나, 정말로 운명을 느껴본 적이 없어. 네 ‘하트’를 받아도…….”

“운명이 정말로 모두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해?”

“…….”

호열이 입을 다물었다. 백호의 자신만만한 눈빛에 더이상의 부정적인 말도, 상처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운명은 말이야, 때에 따라서는 내가 잡고 이끌기도 하는 거야. 운명을 느껴본 적 없는 호열이 너에게, 내 ‘하트’를 나눠주고 나를 네 운명의 상대로 만드는 나처럼.”

어때. 운명을 함께 만들어보지 않을래?

백호가 씨익 웃었다. 호열이 그 모습을 멍하게 보았다. 백호의 크고, 따뜻하고, 붉은 ‘하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 백호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짓는다.

“그래, 백호야.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비어있는 ‘하트’도, 내 운명도. 너의 운명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양손에 가득 쥐어진 ‘하트’가 따뜻했다. 비어있는 빈자리를 채워나간다. 따뜻해. ‘하트’라는 거, 따뜻한 거였구나.

호열이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가 그 이야기의 끝이야. 응? 그러고 어떻게 됐냐고? 아, 그래. 그게 있었지? 하트를 꾸미는 것만 생각했지 개조에 손을 댈 생각을 누가 해봤겠어? 온갖 저명한 이식수술의사며 하트전문가며 이 흥미로운 커플의 하트분리개조이식수술에 손을 들었고 하트가 비어있던, 빈자리만 있던 친구는 상대에게서 하트를 받고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는 운명을 느끼면서 서로의 빈자리에 서로의 하트를 완벽하게 맞물리고 잘 살고있다 하더라고. 어때, 잘됐지?

응? 그럼 두 개의 하트 얘기는 뭐냐고? 아아. 그건 다른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하하. 알겠어. 아무튼 그건 다른 친구의 이야기라서, 다음에 알려줄게.

아무튼 잘 되서 다행이다.

그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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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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