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놀

바다의 뼈.

백호열

가끔 거대한 기억을 남기는 날이 생기지 않아? 예를 들어 파도와 바다가 어디에서 분리되는지 같은 것 말이야, 내 최초의 기억은 해변가의 포말이었어. 바위의 으슥한 틈새나 심해의 그림자 따위는 모르는 가벼운 공기. 그래서 말이야, 내가 태어난 장소가 어디다 라고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게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같이 말을 하게 되면 더 답이 없지. 왜. 너도 태어난 곳을 말하라고 한다면 어머니의 뱃속이라고 하겠지만 너의 유전자 단위로 말하라고 한다면 과연 어디가 뿌리인지는 알 수가 없잖아. 그게 정말로 분리가 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지겠어? 이거랑 그게 별 반 다른 말은 아냐. 나한테는. 나는, 나의, 무슨 시작에 대해 큰 생각은 하지 않아. 태중의 사고를 떠올린다던가 하는 어떤 철학적 분별성이 있는 시작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어떠한 의식도 의지도 없이 산다는 말은 아니라는걸 알아주었으면 해. 당연하잖아? 다시 돌아갈까. 네가 물었지 내가 무엇이냐고. 그러게 말이야. 그건 사실 말한들 전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네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지부터가. 말하라고? 들어보겠다고? 하하. 좋아. 그러면, 그건 말이야. 자….

 

여기를 봐.

하나미치.

 

파도의 몰아침을 본 적 있는가?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얕고 부드러운 흐름 같은 것이 아니라, 철의 몸체를 씹어먹을 듯한 아가리의 파도를.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흔히들 물에 대해 경의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 했거늘, 여기 이 아이, 쌍방의 흐름에 문제 없으나 별 반 다르지 않음의 사이에서 딱 하나 어그러짐으로 모든 사회에서 합치를 거절당한 사쿠라기 하나미치에겐 경의도 우르름도 숭배도 없다. 남는 것은 동그랗게 퍼지는 사람의 그림자와 태양이 구겨진 뒤 자동으로 켜지는 가로등의 인공적인 불빛이다. 그래서 이 소년, 불타버리라 말 들은 머리를 실제로 태우지는 못하고 차라리 나가 죽으라는 말도 않는 청소년에게 왜 파도와 바다에 대한 말을 서두로 엮었느냐면, 이유는 아주 담백하다. 그저 그가 바닷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부친의 사업이라는 사정으로, 하나미치는 수도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다. 천운인지 슬픔인지 누구도 그를 배웅하지 않았으니 최소 거기엔 그를 피곤하게 만들던 무리 역시 그를 마중하러 나오지는 않았다. 일상의 한 조각, 떠올리기엔 조그마하고 무시하기에 묵직한 의식성, 이런저런 망상 틈에서 야반도주를 꿈꾸며 어디론가 미련없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낮에, 적법한 수속을 거쳐, 올바르게 차에 타 멀고 먼 곳으로 흩어지는 기분이란 하나미치의 생각보다 그렇게 시원하진 않았다.

부친의 조그만 은색 세단 뒤로 조그만 트럭 한 대가 세간을 싣고 덜덜거리며 따라붙었다. 하나미치는 조수석의, 뒷좌석에 그릇이며 뭐며 트럭에서 넘치는 짐을 포장해 넣은 상자를 싣기 위해 앞으로 바짝 당긴 그 시트의 조수석에 앉아서 반쯤 무릎을 당겨가지고 구겨 앉아있었다. 이게 하나미치에겐 어떤 부끄러움이나 음울함을 안기지는 않았다. 이 풍경은 두가지의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의 부친이 자신의 실패를 하나미치에게 말 할 정도로 유약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었고, 둘은 그나마 개인파산을 할 정도로 사업이 몰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수습 가능한 것을 넘어 재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터를 잡기 위해 떠나는 행위는 어떤 풍취마저 일으키곤 했다. 부친은 하나미치를 옆에 태우고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버지. 응. 우리 어디로 가? 

부친이 하나미치의 여상한 말에 웃었다. 그걸 이제야 물어보냐? 그도 그럴 것이 하나미치는 아버지가 짐을 싸라 해서 쌌고 타라고 해서 탔다. 이 틈에 왜? 라는 말은 없었다. 사실 하나미치가 인간사이에 치여서 피곤에 쩔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태생이 사랑이 많아 그 중 제일인 가족을 신뢰하는 힘 역시 커서일지도 모른다. 하나미치는 코 끝으로 흥 하고 숨을 뱉어냈다. 물어보면 안 돼? 투덜거림에 가까운 소리였고, 사춘기 청소년들이 으레 그러하듯 아랫입술을 툭 밀어내면서 말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로 유치하고 귀엽게만 보였다. 부친은 옆눈으로 하나미치의 얼굴을 보다가 웃고야 말았다. 알려주랴? 그러나 하나미치는 정작 그 답이 돌아왔을 때, 차창에 이마를 댄 채 빠르게 지나가는 심심한 풍경을 보면서, 됐어요, 하고 일갈했다. 부친이 와르르 웃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이후 부친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고속도로를 타고 두어차례 휴게소에 들리면서 틈틈히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아주 먼 곳으로 가는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도착했을 때는 꽤 깊은 밤이었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아주 좁지도 않았다. 다만 원래 살던 곳이 아닌지라 풍기는 위화감까지 뭐라고 따질 수는 없었다. 적응의 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칠이 벗겨진 트럭에서 짐을 내려 일전보다 간소해진 가구를 옮기고 어떻게 옮길 때 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튕기는 세간은 급한대로 주방 겸 거실 한쪽에 몰아넣으면서, 이사를 위한 플라스틱 상자를 다시 펴 트럭 위에 싣는 내내 하나미치는 이 동네에서 풍기는 짠 바람냄새가 자꾸 코를 간지럽힌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은 그에 맞는 향내가 있다. 하나미치가 이 땅에 내려앉아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소금기 묻은 공기였다. 잘못 맞으면 멀쩡한 물건까지 녹을 슬게 만드는, 그러나, 그것까지 하나미치가 알 필요는 없으니, 됐다. 욕실에서 나와 물 묻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는 하나미치에게 부친이 말했다. 하나미치. 응, 아버지. 학교는 모레 가보자. 응. 하나미치는 그렇게 말하고 물걸레질 한 바닥을 밟으며 이불 두 채를 꺼내 깔았다. 그리고 자야 했는데. 이상하지. 하나미치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남는 것은 누런 가로등 불빛과 시커멓기만 한 풍경 뿐이었는데. 이 알 수 없다는 감각이 하나미치의 어깨를 붙잡은 채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나가서 이 곳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마저 생길 것 같았다. 하여서 하나미치는 그 마음에 순응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미치가 말했다. 아버지. 응. 나 산책 좀 다녀올게요. 부친은 하나미치를 바라보더니, 시계를 보았다. 아니 사실 시계를 보고 싶었으나 시계 역시 엉망으로 쌓여있는 세간살이 틈에 묻혀있었으므로 그걸 뭐라고 따져 볼 수는 없어서 부친은 꽤나 곤란하다는 얼굴로 하나미치를 향했다. 하나미치는, 사실 이미 현관까지 나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물 먹은 긴 머리가 눈가를 어설프게 가리고 있었다. 부친은 삼십초 남짓 하나미치의 ‘산책’ 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너무 멀리까지 나가지 말고. 덧붙이는 말이 한결같아서 하나미치는 알았어요, 하고 현관문을 열고 미지의 동네로 빨려들어갔다.

 

이 곳은 바다의 접경이다. 정확하게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면인 섬에서 거기가 거기 아니겠느냐고. 구불구불하던 도시의 골목과 달리 이곳은 아주 직관적으로 편안하게 길이 나 있었다. 포장사정은 좋지 못하지만, 하여간 사람 발로 다니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소리였다. 하나미치는 그렇게 길을 따라 어그러진 벽을 손바닥으로 짚으며 야밤행진을 계속했다. 부스러지는 물의 소리와 짭짜름한 윤기가 이 넓은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그 쪽에 조예는 없었지만, 아마 하나미치가 그 부분에 관심이 있었다면 하나의 설치미술 같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사람과 비슷하게 일 대 일 스케일로 만들어놓은 해변가의 예술적인 조형도시. 실제로 살게 된다는 감각이 희붐하게 번지다 못해 아주 흐릿하여서 그런 감상이 들게 된 탓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로. 이 감각에는 하나미치의 뇌를 찌르는 물비린내가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미치는 물의 냄새를 쫓아 발을 움직였다. 길은 곧았고 어려움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가든 길은 계속해서 물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미치의 탓이 아니다. 물의 탓이다. 강의 상류에서 허리를 지나 바다에까지 흘러가는 순리성. 하나미치 역시 몸 안에 물을 품고 있어서 그 길을 따라 움직이고 만다.

 

가끔씩, 본인도 모르게 순응하게 되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미치에겐 오늘이 그 날이었던가. 지극한 시간이므로 뭐라 표현할 길이 없음에 애닳은 시선을 보낸다. 저 멀리 새 모이를 던져주듯 드문드문 떨어진 기암이 바다의 한 곳을 채우고 있다. 풍광은 말미. 어슴푸레한 야광충의 날갯짓만으로 해변의 가장자리를 예상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하나미치의 코 앞에 와닿는다. 대해大海의 경이로운 감각까지는 잘 모르겠다. 밤바다는 가끔씩 눈을 가려버리곤 하니까. 그를 대신하듯 빼곡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하나미치의 뺨을 스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미치에게 공기는 손으로 쥘 수 있는 유형의 무언가였다. 모든 설명과 사고의 흐름이 또렷함과 두어걸음 거리를 둔 채 느리게 쫓아오는 것만 같아. 하나미치는 깜빡거리는 정적의 자연 틈을 헤집으면서 슬리퍼에 모래를 묻혀가며 젖은 해변을 따라 움직였다. 물을 먹어 묵직한 공기가 사방을 채운다. 하나미치는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앞으로 뻗는 내내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에 휩싸인다. 그러니까 이제 이 걸음이 더이상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감각 따위. 그리고 대체로 그런 것은 들어맞는 경우가 맞아서, 하나미치가 생각하기를, ‘몸이 차갑다’는 생각까지 사고가 다다랐을 때 이미 물 안에 허리를 넣은 채였다.

 

누구의 문제인가? 아마 누구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대자연의 광활함에 인간은 뇌의 존재이유를 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파생된 이가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인간사회 불편한 자해의 연장이 아닌 순전히 압도당하여 품에 파고들고자 하는 일도 불편함인가? 그렇다면 하나미치는, 지금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가는 것일까? 등판을 젖게 만드는 싸늘한 바다의 가운데에서 하나미치는 슬리퍼 한 짝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쩐지 그 슬리퍼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하나미치는 돌연 몸을 숙여 허리까지 오던 물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바다는 짜고 차가웠다. 그리고 아주 어두웠다. 수경이 있었다면 좀 시야가 나았을지도 모르겠으나 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미치는 당장 수경이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비정상적인 사고다. 여기에 누구도 하나미치의 그런 흐름을 고쳐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하나미치는 연속해서 이 말도 안되는 생각을 확장시켜나간다. 숨이 막히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 귀가 먹먹한데,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몸이 몸으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어귀에 서서 하나미치는 까딱거리는 전등처럼 눈을 깜빡였다. 온 세상의 물이 몸의 틈새를 채우며 유영을 돕는 듯 하다. 했다. 떠오른다. 폐까지 침입하지 못한 물은 기도에서 역류하여 입 밖으로 뱉어진다. 둥그렇게 말리는 허리. 인간 최후의 보루인 생존의식이 물렁거리는 물 위에서 하나미치의 척추를 자극한다. 파도 소리에 덮이는 기침이 그걸 쓸어주는 손길을 만났을 때, 하나미치는 바닷물이 짜다는 것이 쓰다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 누군가 나를 토닥이고 있다. 달래고 어루만지고 있다. 슬리퍼 두 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하나미치는 물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밤바다 위의 하늘은 심해어의 발광체 같은 별이 떠서 모든 검은 것들 위에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어떤 형체. 말로 설명하기에 기이한 본질성의 무언가가 하나미치를 본다. 하나미치는. 이게 뭐지, 라는 생각 이전에, 그러니까 누구세요, 가 아니라,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 자체로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 시간에 물에 들어오면 안 돼. 너는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잖아.

 

아닌 것 같은데, 가 아니라 아니잖아. 사실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말이 하나미치의 머리에 웅웅거리며 들어온다. 흔히들 자연발생한 짐승들이 그러하듯 살과 살을 마주대어 진동시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하나미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미치가 아는 무슨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아는 상식에 끼워 넣을 부분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하나미치는 끔찍할 정도로 건강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걸 바라보았다. 

말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그건 몸을 흔들흔들 하더니 서서히 움직였다. 아주 좋은 자동차를 매끄럽게 운전하는 것 같은 부드러움이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미치는 직접 타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하나미치가 아는 것들 중에 제일 좋은 ‘승차감’ 이라는 것으로 대체어를 쓸 수 있겠다. 하나미치는 본인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약간의 멀미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구역질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이건 멀미라기엔 생리적인 불안감에서 기인한 구토반사에 가까웠다. 동물이 도주하고자 할 때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속을 게워내는 행위를 하나미치는 똑같이 경험하려 들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코앞에서 하나미치는, 해변에 도착했다.

 

파도가 모래를 만나 흰 거품을 만들며 으스러졌다. 방금 전 까지 물 안에서 허우적대던 것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듯 하나미치는 도저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모래바닥에 주저앉은 채 넋을 놓고 바다를 보았다. 자신을 ‘얹어서’ 여기까지 ‘들고 온’ 어떤 ‘거대한 것’ 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알 수는 있었다.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다고. 아직. 그건 사라지지 않았노라고. 저 멀리서 자신이 바다에 또 들어올지에 대한 시선을 꺼낸 채 이 뭍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라는 사실을. 하나미치는 그걸 알아서 난생 처음으로 뼈가 시리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하나미치는 오금에 힘이 들어온다는걸 느낄 즈음에야 엉거주춤 일어나 올 때와 같은 길을 따라 바다를 등지고 걸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도 쉼없이 뒤돌아 바다를 보았다. 모래가 아닌 단단한 땅에 맨 발이 닿았을 즈음에야 하나미치는 자신의 뒷머리에 달라붙던 시선이 떨어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첫 대면은 익사에 준했다.

 

그 뒤로 하나미치가 바다에 간 것은 약 이 주가 지난 뒤였다. 물가의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바닷가의 청소년들이란 쉬이 그 반짝거리는 낭만에 젖는 편은 아니다. 낭만이란 모를 때에 피어나는 비밀로 공유되는 성질이 있지 않던가. 학교에 오가고 집에 있고, 밀려있는 어떤 일들을 하면서 틈이 나면, 하나미치는 그 야밤중 익사체가 될 뻔한 일을 떠올리곤 했다. 차갑고 물컹거리는 비정제된 형태와 가닿았던 시선. 비상식적인 것 이전에 죽음으로 파생된 기억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다. 한창 예민할 감수성의 청소년에게는 그것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곤 한다. 하나미치 역시 그 법칙을 피하지는 못했다. 당연하다. 인간이니까. 그가 어떤 피를 타고 났던간 바탕은 공통적인 바 머리가 어느정도 굵어질 때 까지는 누구도 빠지지 않고 이 계단을 찬찬히 밟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미치는 다시 밤중에 산책을 나온다. 부친이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고 연락을 해왔던 때였다. 그 날 쫄딱 젖어 왔을 때 누구의 탓도 아닌 일이지만 그가 죽을 뻔 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어서 하나미치는 그에게 아주 크게 혼이 났었다. 하나미치의 일생 그렇게 혼나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어지간히 놀라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놀라지 않았다면 그의 나이 열 여섯 울고도 남았을 모양이다. 하여서 하나미치는 늦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잠에 들라는 다정한 말을 전화통 너머로 들으며 배배 꼬인 고무선을 만지작거렸다. 알겠다는 답을 입 밖에 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하나미치는 다시 현관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쩌면 성급한 동작, 그러나 아주 신중한 태도로.

 

바다가 눈 앞에 있다.

 

물결은 여전히 젖은 바위가 같은 어두운 빛. 낮과 달리 찬란하거나 다정하다거나 온화해보이거나 하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당장의 밤바다는 입술을 벌려 목구멍을 보이는 것 같은 어떤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이 구멍 안에 들어갔던 것을, 목젖을 치든 벽을 쑤시든 해서 살아왔다 그거지? 하나미치는 여기에서 판단을 하나 잘못했다. 하나미치 스스로가 목구멍을 눌러 살아돌아온 것이 아니다. 목구멍 자체가 조여져 그를 뱉어낸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알아냈냐면.

 

너.

 

하나미치는 짠 물을 대량으로 먹어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내면서 소리를 느꼈다. 위액도 무엇도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딱 하나만 닿았다. 너. 그리고 말은 이어진다. 이해를 못 한거야? 단어 자체는 부드러웠지만 어투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미치는 그것이 어떤 소년들의 모양과 닮았다고 느꼈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여름날의 맨 몸. 한창 자라거나 자랄 기회를 어중간하게 넘겨버린 단생종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것이 소금기로 하나미치의 입안에 남았다. 깔깔했다. 내일 아침에는 혓바늘이 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미치는 물 위에 드러누웠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 당장 하나미치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하나미치도 안다. 이것은 떠올라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부력으로 둥실거리는 것이 아니라 물 자체가 하나미치를 받아내고 있는 형태를 띄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다.

 

하나미치가 하늘을 본다. 정확하게는 물 너머로 투과된 하늘을 보았다. 울렁거리며 기울어지는 하늘이 이쪽으로 내려온다. 렌즈를 끼운 것과 같은 어중간한 흐름이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하나미치는 이것이 꿈이라던가 미쳤다던가 하는 것이 아닌 또렷한 현실임을 다시한번 인지했다. 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 망설임도 무엇도 아닌 거스러미같은 소리의 형태가 바구니 안에 든 자그마한 자갈을 쏟아내는 것 처럼 몸으로 쏟아졌다. 하나미치는 잠시 눈을 감는다. 

야, 너 목소리 되게 특이하다. 여기에서 목소리라는 표현은 알맞은 규격이 아니지만 하나미치의 입장에서 이것이 제일 선명한 말이므로 이 표현을 빌렸겠지, 필시 그럴 것이다. 물은 꿀렁거리다가 다시 천천히 유영한다. 몸 안에서 흐르는 행위도 이런 말을 써도 괜찮을까?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알맞는 단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우리의 기준에 맞는 말을 쓰기로 했다. 하나미치는. 그것을 본다. 그것 역시 하나미치를 본다. 한 번은 보았고 오늘이 두번째라는걸 부정하지 않는 양 하나미치는 이제 그것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다. 콩콩 뛰는 심장이 죽음에 임계했던 감각을 떠올리며 당장은 어떤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다. 너 뭐야? 하나미치의 말은 직선적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따졌을 때, 단어를 고르는 동작을 하듯 둥글게 물방울을 튕겼다. 하나미치의 젖은 뺨에 새 물자국이 남는다. 뭘로 보이는데? 되묻는 말에 하나미치는 헹 소리를 냈다. 물이 물이지 뭐. 그것은 몸을 부르르 떨어대더니 잠시 뒤 다시 소리를 냈다. 맞는 말이긴 하네. 그리고 다시 파도는 하나미치를 쓸어 해변의 미아로 만들었다. 하나미치가 몇번이고 파도를 발로 찼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확신하기를, 두번째 대면은 또렷한 인사다.

 

 

그 날 이후 하나미치는 간이 조금 커졌다. 부친의 일이 바빠진 틈을 타 하나미치는 밤산책을 나간다는 핑계로 바다로 향했고 그 때마다 부스러지는 파도를 헤치고 허벅지를 넘어 허리까지 물이 자신을 감싸도록 바다를 가르며 걸었다. 그리고 바닷물이 가슴 윗부분을 압박하기 직전에 하나미치는 물에 들려 떠올랐다. 그것은 안에서 거품을 내며 못마땅하다는 투의 대체행동을 보였지만 하나미치는 그것을 부러 무시했다. 그래, 자극하듯 무시하는 체를 했다. 모든 말의 시작은 한결같았다: 너 뭐야? 그것은 시비도 아니고 비아냥도 아니고 그저 순수한 의문에서 왔던 것이다. 그것이 서른 여섯번 쯤 반복되었을 때, 그건 좀 피곤하다는 투로 하나미치를 다시한번 들어올리면서 말 했다. 

너,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 거냐? 여지껏 답 없이 자신을 해변으로 밀어내기만 했던 존재가 되물어오는 것에 하나미치는 고조되는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미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호기심을 거두지 않았다. 만났는데 이름 묻는건 당연한 것 아니냐? 하나미치의 말에 그것은 꿀렁꿀렁 몸을 움직이다가 결국 한숨처럼 -그것이 맞는 말인지, 거듭 말하지만 잘 알지 못하겠다.- 대양 양자에 평평할 평을 써서 요헤이. 이름이야? 비슷해. 성씨는? 없어. 그럼 이름이 더 있다는 말 아냐. 있지. 그런데 의미는 좀 달라. 뭐 이름이 있으면 똑바르게 말해야 할 것 아냐. 

바락바락 떠드는 소리에 꾸물거리던 소리는 다시 자리를 잡는다. 요헤이. 열기로 끝나는 이름일까? 하나미치는 음차며 뭐며 그런 멋들어진 것들엔 문외한이어서 그저 그 이름 자체가 주는 둥글둥글하고 혀 위에서 굴러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성공한다. 부정당하지 않는 특이성에 물은 굼실거리며 다시 해변가로 하나미치를 끌고 가 얹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여태까지 밀어낸다는 감각과는 아주 다른 면이 있다. 하나미치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야. 나 내일 또 온다? 척척하게 젖어버린 옷을 구겨 물을 짜내면서 큰 일을 해낸 아이 특유의 명랑한 얼굴을 한 채 텀벙텀벙 물을 가르며 뭍으로 사라지는 등을 바다는 기억한다.

그렇다면 이건 몇번째 대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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