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나의 작은 고양이

업로드 2023.12.05

* 백호열(+태섭른) 트친을 위한 생일축하연성

* 메인쿤 수인 백호 X 주인 호열(무자각)

* 고냥이 잘 몰라요 랜선으로 예뻐하는 한 동물덕후일 뿐... 모든 것은 뇌내망상이다


작고 꼬질하게 긴 털이 엉켜있는 빨간색 고양이. 그것이 백호를 처음 만난 호열이 생각한 첫인상이었다. 그 날은 어둡고, 춥고, 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퍼붓는 비에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항상 다니는 길. 항상 다니는 시간. 호열은 빗소리에 묻히던 상관없이 휘파람을 불고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주위로 빗방울을 흩뿌렸다. 아무도 없는 시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 다닐 때 우산을 돌려 빗방울을 튀기는 무례한 짓을 할 만한 성정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항상 익숙하게 다니던 길이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어두운 밤하늘, 그리고 퍼붓는 빗줄기에 더욱 어둑한 시야 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붉음이었다. 호열이 가로등 밑에 뭉쳐있는 작고 붉은 덩어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봐도 작았던 덩어리는 가까이 다가가도 그 크기가 눈에 띄게 커지지 않았다. 호열은 우산을 쓴 채 상체를 살짝 굽혔다. 작고 붉은 덩어리가 종이 박스 속에 담겨 있었다. 밭은 호흡을 내뱉으며 있는 힘껏 웅크려 있어 사실 살짝 놀랐다. 종이 박스 날개 한 쪽에 적힌 '데려가 주세요' 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읽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이 날씨에, 이 시간에 이렇게 작은 동물을 버린다고? 퍼붓는 빗줄기는 거세고 차가웠고, 호열의 입가에 절로 입김을 만드는 날씨는 한겨울 중간이었다. 진짜 죽으라고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호열이 웅크린 덩어리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몸을 때리는 빗줄기가 사라져서 그런지 몸을 둥글게 말고 그 안에 얼굴을 숨겼던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잔뜩 젖어 축 처진 긴 털과 함께 흐리지만 까맣게 빛나는 눈을 마주한 순간 숨을 들이킨다. 고양이의 검은 눈은 별 박힌 밤하늘과 닮아있었다. 

호열은 차게 젖은 붉은 덩어리를 품에 안아들었다.


호열은 붉은 고양이에게 백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의 가랑이를 확인한 후-어째서?- 수컷임을 확인하고는 옷을 훌훌 벗고 고양이를 안고 욕실에 들어갔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더니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하악질 몇 번 하더니 찬 몸을 녹여주는 따뜻과 미지근 사이의 온도에 닿은 게 좋은지 우렁차게 그르릉 거린다. 호열은 고양이에게 인간이 쓰는 샴푸를 써도 되는지 고민하다 물로 깨끗하게, 빡빡 여러차례 고양이를 씻어냈다. 물에 쫄딱 젖어 긴 털이 죄다 축 늘어진 탓에 몸이 생각보다 마르고 더 작아보여 괜히 마음이 다급해지는 기분이었다. 뭐라도 먹여야할 것 같아서. 

시원한 바람으로 맞춘 드라이기를 켰을 때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목욕까지는 괜찮았는데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소리로 인해 백호가 뒤집어진 탓이었다. 드라이기를 향해 등을 잔뜩 세우고 애웅대는데 세기의 대결 저리가라였다. 드라이기의 몸통 부분이 백호의 발톱으로 잔뜩 스크래치가 났다.

호열은 백호를 몇 번이나 돌아보고 나서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할 수 있었다. 마트에서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동물 코너에서 고양이 캔을 들여다본다. 고양이 캔이면 캔이지 어떤 건 뭐에 좋고 어떤 건 또 뭐에 좋고… 맛도 다양했다. 사람이 다양한 맛과 건강을 챙긴 음식이며 영양제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하고 고양이 캔이 뭐 이리 많냐고 입술을 비죽인다. 일단 손에 잡히는대로 마트 바구니에 다 쓸어담았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고양이가 환장한다는 짜먹이는 간식도 몇 개 샀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호열은 문가에 서성이는 붉고 작은 고양이를 보며 운명을 느끼고 말았다. 어디서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았는데. 혼자 사는 장소에 친구조차 거의 들이지 않았는데. 비에 쫄딱 젖어 버려진 작고 붉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봤으면 얼마나 봤다고 이 문가에 서성거리면서 자신을 기다리는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괜히 코끝이 시큰거렸다. 외로웠나? 호열은 혼자 치열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바구니를 내려놓고 애옹거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너 절대 안 버려.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붉고 작은 고양이의 긴 꼬리가 살랑 흔들린다. 고양이의 촉촉한 코 끝이 호열의 뺨에 닿아온다.


"수인이네요."

"예?"

백호가 호열의 집에 들어오고, 호열은 백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만난 날이 춥고 비가 오기도 했으니, 백호가 쉴만큼 쉬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수인이라니. 호열이 녹빛이 도는 검은 눈을 멀뚱하게 깜빡였다. 수의사가 제 손에서 벗어나 호열의 손등에 뺨을 부비는 백호를 보며 말했다.

"바로 옆 진료실이 수인 진료실이니까 그쪽으로 가보세요."

"아니, 이 녀석이… 수인이라고요?"

"네."

"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

호열의 말에 백호를 보던 수의사가 말했다.

"수인이라고 날 때부터 수인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아요. 겉모습이 인간과 닮았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거든요. 동물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되고요. 집에서 생활하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서서히 모습을 바꿀 거에요. 비오는 날 밤에 주웠다고 하셨죠?"

"네."

"데려가 달라는 문구가 적힌 박스 채로 버려진 거라면, 인간이든 수인이든 한 번 버려진 기억이 있어 아직까지 보호자분의 집에서 온전하게 안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편한 모습을 보이려면 그만큼 자신의 보금자리가 안전하고, 편하고, 좋아야하는 법이니까요."

"아……."

"시간의 문제일 겁니다. 보호자분의 집에서 지내면서 이 녀석이 완전히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거에요."

수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호열이 백호를 품에 안고 수인을 전문으로 보는 옆 진료실로 향했다. 데스크의 테크니션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수인 진료실로 재접수를 해주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수인들끼리, 혹은 인간과 수인 조합으로 대기실에 앉아있는 이들이 보였다. 개, 고양이, 새를 시작으로 파충류로 보이는 수인도 있었다. 호열은 다시금 눈을 멍하게 깜빡였다. 수인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만 해도 수인과 함께 일하는 곳이었으니까. 인간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도 수인과 함께 사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그게 자신의 경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당황했을 뿐이다. 

수인이면 고양이 캔은 주면 안되는 건가… 많이 사놨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백호의 이름이 불린다. 백호가 귀를 세우고, 호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료실에 들어가 백호를 안은 채로 의자에 앉는다.

"수인인 줄 모르셨다고요."

"아, 네. 데려오고 나서 한 번도 변한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아까 수의사께서 백호가 제 집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수인의 모습을 보일 거라고 하시긴 했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보호자분께서는 빨간 고양이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

호열이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니 고양이라고 하면 하얗고, 까맣고, 혹은 얼룩덜룩하고, 그런 색상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멍한 호열을 보던 의사가 작게 웃었다.

"보통의 색상을 갖지 않았다던가, 동물치고 많이 크거나 하는 경우에 주로 수인을 의심해봐야 해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호열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쥐고 있는 볼펜에 관심을 보이는 백호의 앞에 볼펜 끝을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보호자분이 잘 느끼지 못 했던 것도 이해는 가요. 아무래도 크기가 작죠. 일반 고양이 같이."

의사가 볼펜 끝을 툭툭 건드리는 백호를 부드럽게 잡자, 먉걁껙 하는 것을 기꺼이 들으며 그를 살폈다. 그리고는 다시 호열을 보았다.

"색이 워낙 독특해서 딱 봐도 수인이지만, 이 종, 그러니까 메인쿤의 경우 일반 고양이 중에서도 크기가 제법 큰 편에 속하는데 새끼라고 해도 너무 작아요. 그래서 더 못 느꼈을 수도 있고요."

"안그래도 이리저리 찾아보고 고양이 캔을 계속 챙겨줬는데, 잘 먹는 것에 비해서는 그렇게 눈에 띄게 살 찌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호열은 언뜻 침울해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의사가 그런 호열을 보다 백호의 앞발과 뒷발을 만져보며 말했다.

"밥을 잘 먹는 건 좋은 신호에요. 속설에 고양이가 발이 크면 아주 크게 자란다고들 하는데, 이 녀석 발을 보니 잘 크면 아주 크게 자랄 것 같네요."

"의사가 속설을 얘기하나요?"

"재밌잖아요."

백호를 살피던 것을 끝낸 의사가 백호를 내려놓았다. 백호가 진료 테이블 위에 발이 닿기 무섭게 호열에게 다가갔다.

"수인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동물에 더 가깝습니다. 고양이 캔도 먹을 수 있고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섭취할 때는 사람이 먹는 것보다 간을 좀 더 싱겁게 하시고요. 아. 사람이 먹는 것을 먹일 때는 수인인 상태에서 먹이셔야 합니다. 고양이 캔도 잘 먹긴 하지만요. 그리고 밥을 잘 먹는다고 하니,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수인이 안전을 느끼는 순간부터 아주 무럭무럭 자랄테니까요. 너무 조바심 낼 필요는 없습니다."

"고양이일 때는 고양이 음식만, 수인일 때는 둘 다 가능하다는 건가요?"

"네.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사랑을 주듯이, 수인이어도 똑같이 사랑을 주면 돼요. 수인은 교육을 시키면 사람처럼 말도 가능한데 그게 단순 동물을 기르는 것보다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요?"

"아프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수인에 대한 안내문을 외래에서 챙겨줄 거에요.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거에요. 오늘 방문하실 때 검사했던 부분들은 크게 이상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되고요.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에요.

동물이든, 수인이든.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주세요.

분명 사랑을 주는 만큼 보답을 할 거에요.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알 거든요. 동물도, 수인도.


동물에 더 가깝다곤 했지만 수인 안내문을 보니 인간형으로 있을 때는 보통의 인간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다. 호열은 그래서 이 수인이라는 종족이 동물이라는 건지 인간이라는 건지 헷갈렸다. 동물에 더 가깝다고 했는데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고, 인간이 먹는 것을 먹을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간을 좀 더 싱겁게 해야한다고 했지만, 아무튼. 네발보행하던 동물형에서 인간형으로 변하면 두발보행이 가능하다. 손을 쓸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다. 호열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루밍하는 백호를 보며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일반 고양이가 아닌 수인이라고 들으셨으니, 질문 하나만 할게요.'

'네.'

'수인과 생활한다는 건, 동물에 더 가깝지만 인간과도 가까운 존재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오히려 돈이라던가 주위 환경을 맞춰줘야하는 게 늘어난다고 봐도 무방하죠. 수인이어도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실 건가요?'

'네?'

'수인도 반려동물처럼 반려수인으로 집에서 함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물로서의 모습만을 원하면 곤란하거든요. 동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기도 한 존재라서. 그래서 수인이어도 괜찮다며 키웠다가 인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뒤늦게 버리는 사람도 있죠. 다시 질문할게요.'

이 아이가 수인이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해주실 수 있나요?

호열은 제 발치에 다가와 몸을 부비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긴 털이 호열의 손가락에 부드럽게 섞여들었다. 작고 붉은 고양이를 무릎 위로 올린 호열이 그의 촉촉한 코를 톡 건드리며 말했다.

"내가 데려왔으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게 사나이잖아?"

"먉?"

"네가 앞으로도 그 때처럼 버려질 일은 평생 없다는 뜻이야. 너야 말로 내가 마음에 안든다고 가출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 알았지?"

"깨웅!"


그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더라.

"……."

호열은 멍하게 눈을 떴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호열의 눈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잠버릇이 없는 편이라 정자세로 잠들면 정자세로 눈을 떴었는데. 호열은 엉망으로 사지를 뻗어있는 자신을 느끼고는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르르릉.

"……."

언뜻 들으면 오토바이 엔진 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가 호열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사지가 엉망으로 뻗어있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사지를 엉망으로 뻗게 한 장본인이 마찬가지로 엉망으로 제 사지를 엮어놨으니까. 뻐근한 어깨를 느낀 호열이 고개를 돌렸다. 탄탄한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호열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꽉 끌어안은 이를 불렀다.

"백호야. 나 일하러 가야해."

"눙……."

크게 솟은 삼각형의 붉은 귀가 팔락였다. 분명 호열의 목소리를 듣고 깼을텐데 영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호열이 꿈질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일을 해야 백호 좋아하는 거 잔뜩 사줄 수 있는데."

우렁찬 골골소리를 낸 백호가 그제야 슬그머니 호열의 사지를 엉망으로 엮어놓은 제 팔다리를 거두었다. 몸을 일으킨 호열이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편다. 어깨를 돌려 만져본 뒤 침대를 꽉 채운 크기의 백호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풍성한 붉은 꼬리를 손 끝으로 빗어준다. 백호가 꾸물거리며 호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랑 더 있어라, 호여라."

"돈 벌어야 너 먹여 살린다니까."

"눙……."

백호의 붉은기 도는 팔이 느슨해졌다. 호열이 백호의 뺨에 입을 맞춘 후 침대에서 벗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백호는 호열이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침대 위에서 몸을 뒹굴었다. 귀와 꼬리에서 빠진 털이 호열의 이불에 흔적을 남긴다. 인간의 모습이었던 백호가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씻고 나와 옷을 입고있는 호열에게 다가가 상체를 세워 호열의 허리께에 앞발을 쿡 눌렀다. 호열에게 한줌이었던 크기의 작고 붉은 고양이는, 두 발로 서면 호열의 허리까지 닿아올 정도로 크게 자라있었다. 수인이고, 고양이 중에서도 키와 덩치가 큰 메인쿤이라지만 백호의 크기는 그 평균 규격을 훨씬 넘어선지 오래였다.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시선이 한 데 모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지만 항상 의사는 자신과 방문할 때마다 더 커져가는 백호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호열이 허리에 앞발을 대고 그릉거리는 백호의 턱을 간질여주었다. 

백호를 처음 만날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호열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혼자 살았을 때는 교대근무도 하고, 투잡에 쓰리잡도 하고 지냈었는데 집에 자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작고 붉은 고양이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불규칙한 일상 속에 살던 호열을, 백호가 규칙적인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으로 만든 것이다. 퇴근하자 마자 한눈팔지 않고 집으로 바로 들어오는 바지런하고 참된 집사로.

자신은 토스트기에 들어갔다 나온 빵 한 쪽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 백호는 굶지 않았으면 해 자신이 차려먹을 시간에 백호가 먹을 '풍족한' 아침을 준비해둔 호열이 이제는 무거워 허리가 휘어지게 하는 백호를 겨우 끌어안으며 백호의 식사 테이블로 데려간다. 발 앞으로 꼬리를 말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호열의 셔츠에 백호의 빨간 털이 묻어나왔다. 

"집 잘 보고 얌전히 기다려, 백호야. 오늘 퇴근하면서 간식 사올게. 같이 먹자."

"우리 집은 이 천재 고양이가 잘 지키고 있을테니 걱정 마라!"

"하하. 든든하네."

백호는 제게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문을 나서는 호열을 물끄러미 보았다. 문이 닫히고 창가로 다가간다. 호열이 바깥으로 나와 차에 타고, 그 차가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본다. 호열이 자는 사이에 제 냄새를 다 씌워놨으니 쓸데없는 놈들이 꼬리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병원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백호가 호열이 테크니션과 얘기하는 사이에 배웅을 위해 진료실 밖에 나온 의사에게 슬쩍 물었다.

'근데 왜 우리 올 때마다 그렇게 음흉? 하게 웃는 거냐?'

뚱하게, 하지만 한 편으로 경계의 눈빛으로 말하는 백호에 의사가 웃었다.

'네가 이렇게 자란 게 뭐 때문이라고 생각해?'

'눗?'

'수인은 말이야, 자신의 거주지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알지? 경계가 많은 수인이 이렇게까지 크게 자라는 이유가 뭔지 알아?'

잠시 뜸을 들인 의사가 말을 이었다.

'반려인이 주는 사랑만큼 수인이 자라는 거거든.'

의사가 뿌듯한 얼굴로 호열을 보며 말했다. 백호 역시 호열을 본다.

'네 반려인이자 보호자 말이야. 널 무지무지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조그맣고 한주먹만하던 네가 이렇게까지 크게 자란거지.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정말 다행이구나.'

'…….'

백호의 시선 끝에 호열이 한가득 맺혔다. 입술이 달싹인다.

"내 반려인간."

"내 사랑."

"내 사랑이야."

"호열이는 내 사랑이야."

언젠가의 잠든 호열을 꼭 끌어안으며 백호가 뺨을 부빈다. 제 냄새를 가득 묻힌다. 내 꺼야. 호여리 내 꺼야. 내 사랑이야. 아무한테도 안 줘. 앓는 소리를 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호가 호열을 품에 가득 껴안았다.

내 꺼야. 내 사랑. 

고롱고롱 하는 우렁찬 소리가 호열과 백호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제 냄새를 가득 묻혀 제 것임을 표명한다. 호열은 결코 알 수 없겠지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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