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언스위트 달링
* 오따꾸 명절 화이트데이 지각 연성
* 가볍고 짧음
***
양호열은 단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를 다년간 지켜본 강백호의 판단이었다. 백호군단이 뭉쳐다니는 동안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지만, 학교나 바깥에서 흔히 부르길 ‘양아치’라고 하는 존재이기에 섣불리 접근하는 존재도 없었고, 다들 좋아하는 여자친구 한 번 사귀어보질 않아서-못한 게 아니라 안 한거다! 사랑이 중요한가, 의리가 중요하지!- 매년 돌아오는 이벤트와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군것질을 해도 아이스크림은 먹었지만 초콜릿이라던가, 사탕같은 과자는 먹지 않는 걸로 봐서 확실했다.
그렇다고 강백호도 단 걸 좋아하냐 하면 굳이 따지면 ‘아니?’ 였다. 누군가 자신을 위한 선물로 준 것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이며 감사히 먹는 정도지, 굳이 돈을 주고 사먹는 편은 아니었다. 밥을 사준다고 하면 땡큐베리머치 였지만.
자, 그렇다면.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한 주먹을 산 건. 어째서?
***
양호열은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강백호는 오랫동안 그를 봐왔기에 그의 취향을 알고 있었다. 달고, 끈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약올리는 용도로 엿을 사는 건 봤어도 먹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까만 팥앙금이 가득한 하얀 찹쌀떡을 먹는 건 본 적 있다. 하얗고 까만게 꼭 지같은 걸 먹는다 싶었다. 겨울에는 찹쌀떡과 호빵이 제맛이라고 하며 호빵을 자주 입에 물곤 했는데. 어라. 그러고보니 호빵도 하얗고 까맣지 않나?
진짜 꼭 지같은 걸 좋아하네.
구매한 사탕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조금 과장해서 양호열의 머리통만한 손이 어설프게 사탕의 막대를 한곳으로 모았다. 사탕이 너무 작아서 불편했다. 제 손이 큰 건 생각 안하고.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사탕 막대를 모아 붉은 끈으로 묶는다. 나름 여기저기 물어보고 배우긴 했는데, 리본을 묶는 손길이 엉성하다. 리본을 계속 묶었다가, 풀었다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기도 하고. 예쁘게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한숨을 푹 내쉰다. 모아놓은 사탕들을 거칠게 흩어놓는다. 앓는 소리를 내며 책상 위로 이마를 박았다. 묵직한 통증이 파고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마에 닿는 책상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뜬 강백호가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엉망으로 흩어놓은 사탕들을 다시 모은다. 막대를 모으고, 빨간 끈으로 리본을 다시 묶는다. 묶었다가, 풀었다가. 리본을 손가락 끝마디에 감았다 풀어내는 강백호의 귀끝이 붉다. 빨간 리본끈처럼.
***
“응?”
양호열이 눈을 깜빡인다. 강백호는 음! 하며 양호열에게 손을 더 내보인다. 양호열이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강백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본다.
“이게 뭐야, 백호야?”
하며 물어오는 목소리가 자상하다. 양호열의 물음에 강백호는 답한다.
“화이트데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이걸 왜 나에게?”
양호열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초콜릿이라던가, 사탕이라던가 하는 그런 달짝지근하고 끈적한 디저트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강백호는 양호열이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챙겨본 적 없는 화이트데이랍시고 양호열에게 사탕을 묶어 만든 사탕꽃다발을 내민다. 불쑥. 하고.
양호열이 강백호를 올려다보았다. 붉은기 도는 피부 위로 붉은 홍조가 덧씌워져있다. 사탕꽃다발을 내민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다부진 시선이 강렬하면서도, 떨리고 있었다. 그저 편의점에서도 파는 막대 달린 사탕들을 모아 붉은 끈으로 리본을 묶어낸 아주 단촐한 사탕 꽃다발을 본다. 강백호스러운, 화이트데이 선물.
“이걸 왜 나에게 주는거야, 백호야?”
“네가… 좋으니까.”
“내가 좋아?”
“그래.”
“한번도 이런거 준 적 없었잖아. 나를 최근에 좋아하게 된 거야?”
“…….”
강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양호열은 내밀어진 손을, 사탕꽃다발을 쳐다만 볼 뿐 받지 않았다. 슬쩍 다른 곳을 한번 봤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인다. 강백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양호열은 받을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그래도.
“널 좋아한 건 그전부터야.”
“…….”
“네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어. 이런 돈 버리는 상술행사같은거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이걸 산 거야? 내가 이런 상술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내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가 주고 싶으니까. 먹지 않아도 돼. 네가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냥 이걸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버리면 아까운데.”
강백호는 떨리지만 단단한 시선으로 양호열을 본다. 양호열이 그런 강백호를 본다.
“나를 언제부터 좋아했어?”
“농구부에 들어가서, 네가 끝까지 내 뒤에서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부터.”
“그건 다른 녀석들도 함께했잖아.”
“그 녀석들은… 그 녀석들의 응원과, 네 응원은 달라.”
“…….”
“네가 하는 응원은 나에게 힘을 줘. 소연이가 나를 농구로 이끌었던 것처럼, 내가 농구하다 가로막힐 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줘.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도 나는 몰라. 나는 그저, 네 응원이 단순한 응원이 아니게 느껴졌을 때부터 네가 좋았어.”
양호열은 대답이 없었다. 눈을 깜빡이며 강백호의 말을 듣는다.
“네가…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나를 단순히 응원만 한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마음을 받아달라고 할 생각은 없어. 너를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화이트데이라고 하니까. 핑계 삼아서 너에게 주는 거야.”
“응, 그렇구나.”
양호열이 강백호가 내민 사탕꽃다발을 받아든다. 진짜 꽃다발인 것마냥 그 위로 코를 대어 냄새를 맡는다. 강백호가 마른침을 다시 삼켰다. 양호열이 빙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백호야.”
“응.”
“너 다 틀렸어.”
“누… 눗?”
양호열이 사탕꽃다발 속 사탕 하나를 빼낸다. 자연스럽게 사탕껍질을 깐다. 그 위로 냄새를 맡는다. 음, 레몬맛. 동그란 사탕이 양호열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강백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사탕을 입에 물고, 양호열이 말한다.
“나 단 거 좋아해.”
“눗?”
“이런 행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눗…….”
“네가 주는 거니까 좋아.”
“눗?!”
“그리고 나 단순히 너 응원하는 거 아냐.”
“…엉?”
양호열이 말할 때마다 새큼한 레몬향이 났다. 강백호가 코를 씰룩인다. 양호열이 자연스럽게 사탕 하나를 더 꺼낸다. 껍질을 까낸다. 음, 이건 콜라맛인가? 멍하게 벌어진 강백호의 입 안에 사탕을 물린다. 강백호의 입이 합 다물린다. 약한 콜라맛이 입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널 좋아하니까 열심히 응원하는 거야.”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양호열이 제가 물고 있던 사탕을 쏙 빼고, 강백호의 입 속에 들어가있던 사탕 역시 쏙 뺀다. 서로의 사탕을 바꿔서, 서로의 입 안에 넣는다. 양호열의 입 안을 맴돌던 레몬향에 콜라향이 덮이고, 강백호의 입 안을 맴돌던 콜라향에 레몬향이 섞여든다. 사탕이 미지근하다. 놀란 강백호를 보며 양호열이 씩 웃는다.
“네가 주는 거니까. 좋다고, 백호야.”
나도 좋다는 뜻이야.
다음에는 핑계가 없어도 돼, 백호야.
네가 주는 건 모두 내게 달콤할테니까.
양호열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
강백호가 주는 단 맛은 빼고.
좋아하지 않는다.
-fin.
댓글 1
밥먹는 래서판다
너무 달아 이 빠질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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