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사진.
백호열
야, 요헤. 하루코 씨가 그러는데 연애 하면 한 장씩 사진 나눠 가진다더라.
으응.
학생증 옆에 끼워두게 한 장 내 놔.
어? 나 사진 없는데? 요헤이는 꽤나 얼이 빠진 얼굴로 턱을 괸 채 앉아있었다만, 당당하다면 지나칠 정도로 당당한 하나미치의 말에 더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보였다. 진짜 바보같은 낯짝이어서 하나미치는 으엑, 소리를 내며 냅다 한쪽에 걸어둔 요헤이의 가방을 탈탈 털기 시작했다. 없긴 왜 없어 인마, 없다니까 바보야, 투닥거리는 소음과 함께 가방 안은 정말 뭐도 ‘없다’ 는 사실을 인지하자 표적이 바뀌었다.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가쿠란을 냅다 벗겼다. 아니, 벗기려고 했다. 뭐하는거야! 이제 하도 웃어가지곤 숫제 우는지 웃는지 분간도 안 가는 얼굴의 요헤이가 거꾸로 뒤집어져 말려올라가는 소매를 붙잡았다. 넌 남자친구 줄 사진 한 장도 안 가지고 다니냐?! 평소에 사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교실은 한창 두 사람의 소란으로 웃음범벅이 되었다. 결국 요헤이가 붙잡은 소매를 놓은 뒤, 뒤집어 털고 바로 털고 똑바로 보고 뒤적뒤적거린 끝에 오른쪽 주머니에서 삼백 이십엔만 갈취한 하나미치는 쳇 하더니 짧게 줄인 가쿠란을 도로 요헤이에게 던져주었다. 아닌 밤 중 소란으로 낄낄대던 요헤이는 얼굴에 가쿠란을 맞으면서도 웃었다. 야, 하나미치. 사진은 없어도 두번째 단추는 줄 수 있는데 줄까? 뭐래. 그건 졸업식에 주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앞자리 덜컹 소리내며 앉은 하나미치는 조금 긴 머리를 슥 쓸어넘겼다. 아. 진짜 되는 일 없네.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던 요헤이는 거꾸로 뒤집힌 가쿠란을 바로 펴 팔을 꿰더니, 흠,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오늘 우리 집 올래? 얼굴은 설렘 한 조각도 걸리지 않은 씩씩한 사내아이 다웠다.
그리고,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나이다.
계절 사진.
미토 요헤이의 집은 정적의 공간이다. 하나미치는 그 이층짜리 중산층을 위한 집에서 기이하게 건조한 심상을 얻곤 했다. 가끔 그를 만나러 오기 위해 들렀을 때 마다 그 집에서는 기척이라는 것이 없다시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생활주거공간이라는 기분보단 그냥 하나의 레고블록을 보는 것 같았다. 예쁘게 꾸미지 못한 하나의… 이미지라고나 해야 하나. 하나미치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요헤이가 그 집 안에서 나오는 것만 보았으므로 그가 그 안에서 살아있다는 당연스러운 전제가 머리에 남지 않았다. 애초에 안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이미지는 더욱 고착되어 갈 뿐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하여서 미토 요헤이와 자택이란 기이하게 엮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가 살아있는 것은 도로와 학교와 가게였던 것이지 집 안에서 늘어져있거나 잠을 자는 장면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요헤이의 일상에서 자신의 부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지만 그걸 넘어선 하나의 독립적인 생활감을 느낀다는 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일부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특별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런 것이다. 그림자가 진 곳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들어와.
요헤이가 흙만 담긴 화분 아래를 들춰서 열쇠를 빼들고 문을 열었을 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집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우측의 낮은 신발장. 그 위의 전화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좁은 복도. 복도 끝의 주방과 거실로 통하는 좌측 통로가 보인다. 정말 전형적인 부부에 자녀 하나에서 둘이 같이 있는 집이다. 그러나 요헤이는 동생도 형도 없는 것 같다. 왜 굳이 같다, 라는 말을 쓰느냐면 그가 하나미치에게 먼저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나미치는 구태여 그걸 물어보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날렵하게 빠진 학생화를 벗고 익숙하게 이층 계단으로 오르는 요헤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나미치는 누가 들을지 모를 목소리로, 실례합니다, 한마디 뱉고선 조금 작아 뒷축을 구겨신은 구두를 벗은 뒤 요헤이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차가운 나무계단은 아무래도 구옥인지 하나미치가 오를 때 마다 비스듬하게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집안은 차가웠다. 가나가와가 바다의 접경이기에 그렇게 서늘하지도 않고, 사실 조금 더운 부근이었다지만 이 건물의 공기는 기이하게 가라앉은 구석이 있었다. 아마 바닥은 어두운 색에 천장과 벽지가 희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둥 떠있는 듯한 공간의 분리성에 하나미치는 어쩐지 모르게 이 집 안에서 요헤이의 등이 아주 흐릿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헤이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걸음으로 이층에 올라와 안쪽 미닫이 문을 열었다. 4조 짜리 다다미 방이 하나미치의 눈에 들어온다. 청소년 한 명이 쓰기에 딱 좋을 정도의 공간이었지만 어쩐지 요헤이와 그 방이 겹쳐지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미치는 넋이 빠진 것 처럼 굴다가 방으로 들어가던 중에 문상인방에 머리를 박았다. 뻑 하는 소리와 함게 몸을 옹송그리면 요헤이가 다가와 으이구, 소리를 하며 벌개진 이마를 두어번 문질러주었다. 하나미치, 괜찮아? 다정스러운 기가 묻은 말에 하나미치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하지 않았다. 민망해서였다. 고개를 숙이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 요헤이의 키득거림이 귀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학생의 공간이었다. 대체로 모든 이들이 사는 공간이 그런 식이었지만 이 방 역시 그랬다. 읽다 만 책이 뒤집어져 있는 좌식 책상과 의자, 옷걸이가 벽 한쪽에 걸려 있고 반쯤 열린 창문 밖에선 느슨하게 기울어진 태양의 밝음이 주홍색으로 익어가고 있다.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머리를 한번 쓸어준 뒤 책상 옆에 납작한 학생가방을 툭 내려두고 곧장 벽에 붙어있는 붙박이장을 열었다. 무릎을 꿇고서 그 안에 상체를 반쯤 밀어넣은 채 잠시간 뒤적대다가 앨범 하나를 꺼냈다. 먼지가 뽀얗게 올라앉은 모양인데 이것이 시간의 부재를 표현한 것인지 순수하게 무늬가 괴상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하나미치는 그저 요헤이의 옆으로 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너희 집 앨범 진짜 신기하다, 했고 요헤이는 그저 코를 한번 찡긋이곤 말았다. 그것이 우울의 감상인지 불쾌의 혼선인지 혹은 순전히 먼지에 코가 간지러워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의 요헤이와 하나미치는 서로가 철저하게 분리된 이방인이었다.
자, 하나미치.
엉?
요헤이는 그렇게 말하곤 바닥에 앨범을 내려놓더니 두꺼운 페이지를 넘겼다. 작은 키의 아이가 흰 볼 캡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찍혀 있었다. 플래시를 터트린 것인지 중앙은 희붐했고 묘하게 주변의 색이 날아가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거 너냐?
하나미치는 검지손가락으로 사진의 한 귀퉁이를 툭툭 두드렸고 요헤이는 멋쩍어 죽겠다는 얼굴로 뭐어, 하고 소리를 끌었다. 한 장에 적게는 두 장 많게는 네 장의 사진이 비뚜름하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춘 줄에 맞춰 붙여져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인지 그저 보관을 험하게 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끄트머리가 누렇게 떠 있었다.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요헤이가 말했다. 학생증에 붙인 사진은 없어. 잃어버렸거든. 중요하지도 않고. 말하는 소리는 선선해서 가을 바람 같이 와닿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좀 고르는 걸로 봐 줘라. 하고 요헤이는 하나미치 쪽으로 앨범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넘기는 손길은 아주 어른스러워서 하나미치는 일순간 뭐 그런 얼굴을 하느냐며 물을 뻔 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하나미치도 어느정도 커버렸으니까.
뒤로 흐를 수록 시간의 경과가 또렷해지는 페이지는 이제 하나의 영상과도 같이 느껴졌다. 사람이 눈으로 들어오는 일들에 유독 온후해진다는 말이 사실이던가. 어떤 심상의 공간을 작은 틀 안에 풀칠하다 못해 박제시켜 놓은 앨범의 귀퉁이를 하나미치는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펴보았다. 요헤이. 소매가 상박의 절반쯤 오는 짧은 반팔을 입은 요헤이. 커다란 자전거의 손잡이를 한번에 다 잡지 못해서 억울해하는 요헤이. 수박을 반으로 나누고 그걸 또 한번 더 나눠서 종국에 자기 머리통보다 큰 수박 조각을 들고 해치우는 요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요헤이. 종이꽃을 올려다가 만들어 붙이는 요헤이. 새 학기를 맞은 요헤이. 어쩌면 새 학교에 간 요헤이. 새 가쿠란을 입은 요헤이. 입학식이라는 글자 앞에 서서 조금 굳은 얼굴을 한. 익숙한 눈빛의 요헤이. 이후의 공백. 계절의 풍광이 하나미치의 면면에 들이닥쳤다. 하나미치는 모든 사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직감한다. 그러나 하나만은 알았다. 여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다.
이 다음은 없네. 절반, 어쩌면 절반 이상 비어버린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던 하나미치가 말했고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면서 말했다. 뭘 기대한거야 이 녀석아. 네 얼굴은 원없이 본 것 같다. 시선을 느른하게 하고 비어버린 곳을 보던 하나미치는 벅벅 뒷머리를 긁었다. 손가락에 감기는 붉은 머리카락은 조금 길어서 어느정도 리젠트를 만들 정도는 되었지만 운동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는 정도의 기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지면에선 말할 수 없으나 대충 그 정도 길이감으로 적당하게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머리를 정돈해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야, 이거 페이지 너무 많이 남지 않았냐. 골몰하는 것 처럼 기울어진 고개와 살짝 내리깔아 아래를 향하는 속눈썹의 각도를 보던 요헤이는 으응, 하고 침음을 흘렸다.
카메라 많이 비싸냐.
비싸지?
얼마나?
요헤이는 고민하는 체 하더니 씩 웃었다. 아주 청량한 웃음이었다.
일단 네 전 재산 삼백엔으로는 렌즈 뚜껑도 못 살걸?
그 말에 하나미치는 요헤이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에 팔을 걸어 숨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죽어라 하는 용의 진심은 아니다. 그저 그것은 어떤 친근감의 표현이다. 왜, 그 나이의 사내 아이들이란 종종 서로를 사냥하듯 짓누르고 쫓고 쫓겨가며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지 않던가. 그것이 지독하게 짐승적인 표현이라는 것에는 부정치 않겠으나 동시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곤 한다. 군집이 흩어지고 다시 풀어지는 일련의…. 하여서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숨통을 팔꿈치 오금으로 틀어지고 껄떡껄떡 오르내리는 사과조각 같은 목울대를 가쿠란 자락 너머로 느끼면서 씨근거렸던 것이다. 야, 뭐라고? 요헤이는 낄낄거리면서도 쉽게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저 탁탁 소리나게 하나미치의 팔꿈치를 두드렸다. 알맹이 빈 항복선언이라 하나미치는 괘씸해서 요헤이의 얼굴에 닿는 모습 곳에 입을 맞췄다. 쪽쪽거리며 낯간지러운 소리가 났다. 그 너그러운 시간의 중반에 결국 요헤이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지독하게 사랑스러운 항복선언이다.
으흐흐 웃으며 떨어진 듯 느슨하게 팔다리가 엉겨붙어 겹쳐누운 두 사람이 다다미의 차가운 공기를 뺨에 대고 있었다. 힘이 풀어져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있었음에도 아주 편안했다. 이 안락함을 이 집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하나미치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아주 깜짝 놀랐다. 감상으로만 남았던 요헤이의 집이 실체가 있다니.
그런데 하나미치, 카메라는 왜. 뭐 찍고 싶은 것이라도 있어?
그 말에 하나미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앨범 아깝잖아. 너 찍어놓게.
요헤이는 잠시, 정말 일 분 일 초를 쪼개놓은 정도의 잠시의 시간 하나미치의 아주 짙고 끝이 사납게 올라간 눈썹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의 두툼한 눈두덩이와 아래가 조금 비는 조금 카키빛이 도는 갈색 눈도 보았다. 너는 모르지. 이 공란은 진실로 나에겐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그저 비어버린 하나의 가장자리라던가 잎을 다 떨구고 미래를 준비하는 겨울 나무의 앙상함 같은 것인데, 너는 하나같이 그 시선을 두려 하는구나. 그러다 요헤이는 웃어버렸다.
야, 너 사진 빼간다면서 사진 넣을 궁리 하면 어쩌냐?
그 즈음 허걱 하는 하나미치의 멍청한 표정을 구경하던 요헤이는 실없이 웃고만 말았고, 그대로 팔을 당겨 하나미치를 품에 안았다. 빠듯하게 차는 것도 아니라 한 짐으로 넘쳐버린 덩치를 어떻게든 꾸역꾸역 안아서 품에 거둔다는 행위는 실로 미련한 부분이었는데 그럼에도 하나미치는 장단을 맞추는 양 (사실 거의 본능에 가까웠겠으나) 그 안에 들어가 만족스러운 온기를 나눴다. 요헤이의 콧등에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 특유의 다정스러운 향내가 닿았다. 그래도 역시 사진 하나 쯤은 나눠가지는게 좋겠는걸. 하면서. 늦은 봄바람의 시간을 즐기다가 생각한 것이다. 사진관의 증명사진이 영 걸린다면 스티커 사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요헤이는 하나미치를 안은 채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으억, 하고 몸이 갑자기 어중간하게 접혀버린 탓에 입 밖으로 소리를 낸 하나미치가 뭐야. 하면서 툴툴거렸다.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머리를 쓱 문질러 정돈해주면서 웃었다. 야, 하나미치. 사진 찍으러 가자.
두 사람은 그렇게 흘러흘러 시내로 향했다. 걸음은 가뿐하고 마음은 빠듯했다. 한바탕 즐기는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이 노래가 나오는지. 호객을 위한 음악은 길거리를 채우고 인파는 득시글거렸다. 오가는 사람의 발만큼이나 사위는 좁아지고 흐름은 뭉특해진다. 두 사람은 가쿠란 차림을 한 채 이리저리 흘러들었다가 저기 학생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쪼르르 따라들어갔다. 게임방이었는데, 저 벽면에 스티커 사진 부스가 세 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막 한 무리가 들어가고 하나가 빈 참이라, 요헤이는 가자 가자, 하고 하나미치의 팔을 끌고 들어갔다.
안은 아주 좁았다. 정확하겐, 하나미치에겐 좁았다. 하기사 이 나라의 모든 건축과 물건이란 아무래도 하나미치에게 꽉 끼거나 넘치거나 머리를 박거나 셋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미치도 어중간하게 몸을 오그려서 그 높이를 맞추었다. 알록달록한 장식과 스티커 따위가 화면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고, 사진을 꾸미는 용으로 보이는 펜 따위가 덜렁거리며 걸려 있었다. 요헤이는 거기에 둥둥 떠 있는 버튼 따위를 쓱 훑어보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을 열었다. 오백엔 짜리 동전을 하나 쩔렁 하고 밀어넣으니 반짝거리는 화면에 서로를 딱 비추고 있었다. 요헤이가 자지러졌다. 둥둥 떠다니는 화면의 한 부분에서 이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뒤집어지다가 우측 상단 위의 숫자가 깜빡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증빙하는 순간 재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너 먼저 찍어라, 어어, 그래, 첫 타자는 요헤이였고, 두번째는 하나미치였다. 나머지 한 장은 화면을 보다 웃다 기절하는 모습을 그대로 찍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사진을 나눠가졌다. 꾸미지는 않았다. 언젠가 꾸밀지도 모르지만, 우선 이 것은 서로 나눠가질 용도였으니까. 둘은 시시덕거리며 부스를 나왔고, 생각보다 경쾌한 시선이 따라붙었고, 하나미치의 학생증 한 쪽에는 조금 싼 티가 나는 배경의 요헤이의 증명사진이 하나 붙게 되었다. 요헤이는 그 것을 한참 보더니 와하학, 한번 소리내 웃곤 자신의 지갑 한쪽에 하나미치의 사진을 끼워넣었다. 서로의 지갑과 학생증 케이스의 어쩐지 엉성한 증명사진이 하나씩 끼워지게 된다.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스칠 때마다 사진관이 영 엉성하네, 하고 말을 덧붙였으나 시내 나들이를 자주 가는 학생들은 알 것이다. 스티커 사진기구나.
그 날 부로 둘에겐 암묵적인 규칙 하나가 생긴다. 계절이 바뀌는 경계마다 각각 한 번씩 스티커 사진기에 들어가서 증명사진처럼 한 번, 요상하게 한 번 꾸민 것으로 찍었다. 하나미치는 자신의 손바닥만한 작은 앨범을 하나 마련했고, 요헤이는 집 안 먼지가 쌓인 앨범을 꺼내 차근차근 앨범에 붙이기 시작했다. 요상하고 싼 맛이 나는 사진을 붙이는 손이 어슷하다. 날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래. 공백의 시간은 채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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