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ng By. (1)

They are in NYC.

자급자족 by 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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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력이 딸려서 짧게 끊어서 올리려고 합니다.

* 김범수의 <지나가다>를 들으며 떠오른 연성이었습니다.

* 저의 짧은 영어 실력을 용서해 주세요.

* 짧은 퇴고만 거쳤습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

노래 링크


차디찬 바람이 도시를 가득 에워쌌다. 옷깃을 여며도 코트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성탄 연휴를 기념하는 듯이 거리를 가득 메운 따스한 조명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이 추위를 잠시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수많은 인파 사이에 정환은 혼자서 길을 걷고 있었다. 연말 명절 시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뉴욕 맨해튼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연인 혹은 친구 그도 아니라면 가족. 모두가 다른 이와 함께 걸어가는 그 길에 정환은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온 그날부터 정환은 계속 혼자였다. 그러니 특별히 더 외로울 일도 없었다. 그저 그리운 사람은 있을 뿐이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푸른색의 하늘. 아직 시간이 6시도 되지 않았는데 겨울의 저녁은 이다지 빨리도 찾아온다. 하얀 점 하나가 내려온다. 팔랑팔랑. 그러다 정환의 눈 아래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차갑다. 눈이 온다. 정환은 손을 뻗어 내려오는 눈송이를 받았다. 작은 눈송이가 손에 닿으니 차가운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 좋았다. 문득 그 눈송이처럼 새하얀 사람이 떠올랐다. 매일 그리워하는 그 사람.

“김수겸”

정환은 입술을 조금 벌려 그리운 그 이름을 불러본다. 새하얀 피부와 잘 어우러지는 가늘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암갈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 속눈썹이 길고 그 아래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형형했으며 생기가 넘쳐흐르는 사람. 또 그리워진다. 그의 또랑또랑한 음색으로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생각했다.

“이정환”

환청이었을까? 아니다. 분명 들었다. 누군가 정환을 부른다. 또박또박하고 정확하게. 이 이국땅에서 대체 누가 자신의 이름을 이다지도 정확하게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목소리. 매일 그리워하고 그리워한 그 목소리다.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 목소리다. 정환은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맨해튼 거리의 수많은 인파는 정환의 목적을 방해하려는 듯 그의 시야를 가렸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리 사이에서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마치 그 자리만 빛이 나듯이. “Excuse me”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지만 그의 몸짓은 사람들을 밀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발이 점점 빨라지고 몸의 중심도 잡히질 않는다. 심장이 뛴다. 몰려드는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니 점점 더 선명해진다. 손을 뻗어 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정환은 확신한다. 이 손이 바로 목소리의 주인임을. 바로 김수겸.

“Merry Christmas”

수겸이 정환을 보며 웃었다. 비단결처럼 고운 암갈색의 머리카락. 눈처럼 새하얀 피부. 청아한 목소리. 그리고 봄의 햇살보다도 더 화창한 미소. 정환은 잡은 손을 끌어당겨 그를 품에 안았다. 아아, 꿈이 아니다. 품에 안은 온기도 감촉도 그리고 코끝으로 전해지는 수겸의 향기도 모두 현실이다. 정환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아주 많이 그리워했음이다.

“보고 싶었어.”

“아아…, 나도”

수겸이 정환의 등을 도닥인다.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이브였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음에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여전히 익숙했다. 마치 그와 매일 함께해 왔던 것처럼. 서늘한 뉴욕의 아침 공기에 정환이 잠에서 깨니 어느새, 수겸이 일어나 커피포트 한가득 커피를 내려놓았다. 온 집안에 커피 향이 가득했다. 시차로 잠을 이루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해가 채 뜨지 못해 푸르스름한 새벽녘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뭐 평소에도 부지런한 타입이긴 했지만…. 정환은 코끝에 맴도는 커피 향기를 따라 천천히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를 신었다. 창가에서 전해오는 찬 공기가 여전히 시리다. 그러나 평소의 아침과는 다르다.

“좋은 아침.”

정환이 고개를 수겸의 어깨에 파묻고 아직은 잠에서 깨기 어려운 듯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단단한 두 팔이 수겸의 허리춤을 감싸고 오랜만에 재회한 연인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이 싫다는 듯 수겸의 등을 정환의 가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안았다. 따뜻했다. 아, 그래. 오늘 아침이 평소보다는 덜 시리고 추운 이유는 아마도 그가 있기 때문이다.

“아아…, 늦잠이야.”

“네가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겠지.”

“그렇지 않아. 난 꽤 잘 잤어.”

단호하게 정환의 말을 끊는 것을 보니 고집은 여전하다. 그냥 그러면 그렇다고 인정해 주면 좀 좋은가. 뭐, 그런 면이 좋았다. 수겸의 목덜미와 어깨에서 나는 그리웠던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고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어 커피잔에 가득 커피를 담았다. 포트의 주둥이를 따라 곡선을 만들며 내려오는 검은 커피가 거실 창에 비치는 노란빛 아침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커피는 어떻게 찾았어?”

“어? 그냥, 늘 여기 있었으니까.”

수겸이 별 시답잖은 질문을 한다는 듯 피식 웃으며 컵을 가져와 남은 커피를 따랐다. 정환은 그런 수겸을 바라보며 조리대에 몸을 기대어 조심히 잔을 감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뜻했고 고소했다.

 


연말을 맞이하는 뉴욕은 항상 분주했다. 전 세계에서 연말을 맞이해 저마다의 추억을 쌓으러 오는 인파까지 섞이는 통에 뉴욕의 거리는 어디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환이 자주 방문하는 이 커피숍은 비교적 한산하다는 것이다. 정환이 공부하는 대학의 근처에 위치하여 긴 겨울의 연휴를 맞이한 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그러니 학교 근처의 상점들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이 시기에 맞춰 휴가를 떠나는 사장님들도 많은데 다행히 단골 커피숍의 사장님은 정환의 방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커피 마시고 또 마시려고?”

‘그냥 너와 오고 싶었던 곳이었어.’라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그 말이 나오지 않아 괜히 손으로 입만 가리고 헛기침만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솔직하지 못한 남자다. 이정환이라는 사내는. 이곳에서 혼자 브런치 메뉴를 먹을 때마다 매번 수겸과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 횟수를 가늠한다면 아마 수겸도 적지 않게 당황하며 또 한편으론 좋아할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이 부끄러워 쉽사리 나오질 않았다.

“Two Plates of Pancakes with maple syrup and extra whipped cream. And two cups of coffee, please.”

팬케이크가 나온 상태를 보고-분명 정환은 엑스트라 휘핑크림을 올렸으니-수겸이 타박을 놓으면, 이 집의 휘핑크림은 꼭 추가해야 할 정도로 예술적임을 겁먹지 말고 이야기해 주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아니, 일단 포크로 뚝 떠서 입에다가 물리면 수겸도 이해할 것이다. 분명.

접시 가득 담긴 팬케이크와 커피가 테이블에 하나씩 올려지는 것을 보고 정환은 마음속으로 계획한 대로 일단 포크를 잡고 저 산처럼 쌓인 크림의 제일 위를 떠서 수겸의 입으로….

“맛있겠네. 얼른 먹자.”

“어?”

이상했다. 평소의 수겸이라면 분명 몸 관리를 안 하고 이렇게 단것을 또 먹으려는 것이냐며 정환에게 애정 어린 것은 알지만, 조금은 듣기에는 버거운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의 수겸은 그저 웃으며 맛있게 먹자고 말한다. 수겸이 정환을 보고 웃으며 말하니 정환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사르르 올라왔다. 그래, 사랑이란 그러한 것이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를 향한 염려도 걱정도 잠시 접어두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사이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만큼 더디게 흐르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행이라면 수겸이 전혀 시차 적응으로 고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정환과 뉴욕에 계속 살았던 사람처럼, 수겸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정환이 살아오던 뉴욕의 삶에 녹아 있었다. 그런 와중 수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정환이 잠시 분주했던 이유는 이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좋아할 만한 그리고 이 찬란한 도시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꼭 수겸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겸이 이 도시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정환은 잘 알고 있었다. 농구. 그렇다면 NBA. 직접 뛸 수는 없으니 직접 관람하며 경기장이 열기를 느끼는 것. 문제는 경기표였다. 평소에도 경기 티켓팅이 쉬운 일은 아닌데, 미국의 대명절 시즌에 표를 구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만 여겼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구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정환의 학교 친구가 정환에게 농구 보러 갈 생각이 있냐며-본인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어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표라나-정환의 손에 닉스 경기의 표를 두 장 잡아주었을 때, 정환은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이 표를 보고 환하게 웃을 수겸을 떠올리니 도무지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팔불출이라 놀리라면 놀리라지. 아무 상관 없다. 그런 놀림 따위.

“농구 경기? 그래. 네가 좋으면.”

내가 좋으면 이라고? 어째 그 말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정환의 가슴에 이물감처럼 자리했다. 내가 좋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수겸이 네가 좋아할 것이기에 기꺼이 표를 가져온 것인데. 평소의 김수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인데, 어째서…?

 

지잉- 지직-

 

정환의 귓가에 기계음이 들렸다. 작지만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불쾌한 소리이기에 정환이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수겸이 놀라 어디 아프냐며 물었지만, 정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서운한 마음이 갑자기 복받치면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그저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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