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놀

바위섬.

백호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많은 먼지들은 들어갈 곳을 찾아 어지럽게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태중지역을 잊어버린 것들은 지고의 순리에 따라 결국 물로 흘러간다. 물과 물은 흘러 하늘로 떠오르고 다시 떨어져 지면에 스미고 위에서 뿌려지는 낙숫물이 되어 다시 이 흐름에 편승한다. 그러니까 백호 역시 이 곳에 흘러들게 된 것은 어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저 자연의 순리, 인간이 비록 위대함을 접어두는 존재라곤 한다지만 결국 어떤 거대한 흐름을 따라 따라 펴지고 만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호가 그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백호가 이 상황이 기묘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깨달았을 때에는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이 딛은 검은 바위섬에 팔을 올리고 자신을 어떤 그을음처럼 내려다보고 있을 때다. 백호가 말한다. 눈이 흑진주 같네. 그것을 실제로 본 적 없으나 아주 오래 전에 주워들은 소리를 섬기듯이. 거대한 것은 백호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건지 의미 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가 새벽달 거스러미가 채워지는 것 처럼 웃는다. 그것과의 첫 대면이었다.

바위섬.

백호는 어부의 아들이다. 시간이 나면 그물을 수선하고 무게추를 매만지고 비늘을 떼어내며 가시와 내장을 솜씨 좋게 배에서 훑어낼 줄 안다는 말이다. 낚시보단 작살질이 익숙하니 배의 키 잡는 것 보단 선원이 되어 물고기를 쓸어담는 것이 어울리겠다. 그는 말하자면 흐름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이다. 아직은 그렇다. 별 문제가 없다면 백호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자신도 작은 배 한 척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에 나가 뭍의 일을 돌볼 것이다. 어머니 바다라는 존경심 어린 말을 시작으로 하는 기도문을 머리에 쑤셔넣고 손에 묻은 바다의 짠 비린내가 체향인 줄 알며 살아가리라. 머리카락은 바닷바람으로 상해 끝이 누렇게 색이 빠질지언정 그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은 바다의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바다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는 흔한 바다의 인간이 될 것이다. 허나 일생은 폭포의 굴곡처럼 어떻게 꺾일지 모르는 날의 연속이기에 흐름도 무엇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백호의 인생도 다를 바 없다. 그저 어느 한 구석이… 조금 특이해질 뿐이다. 

여기에서 백호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그저 평소 가던 길을 가던 것 뿐이었는데 불쑥 나타난 것 같은 검은 바위섬을 보아버렸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그 섬은 정말로 그 곳에 언제나 있었다는 것 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는데 백호에게는 이 파도의 균열같이 급작스러운 것이었고 한번 가보기나 해볼까 하며 헤엄을 쳤다는 것을 누구에게 말할텐가? 말한다면 과연 누가 믿어주며 누가 보아줄 것인가? 마치 산중에 뻗은 기암처럼 당당한 자태의 섬을, 짧지만은 않은 거리의 물살을 헤쳐갈라 온 몸으로 그 곳을 독파한 백호는 젖은 몸을 끌어당겨 섬 위로 올라갔었다. 신발 없는 눅눅한 살갗에 바위 특유의 서늘하고 무거운 감각이 와닿았다. 아주 조금 서늘하였으나 그것이 이질감을 느끼게 두지는 않았다. 그냥 백호가 봐왔던 수많은 돌들로 이루어진 어떤 것이었다. 오래 입은 티셔츠의 자락을 잡아 비틀어 물기를 짜내면서 백호는 천천히 그 넓은 돌 위를 걸어다녔다. 그렇게 큰 섬은 아니었지만 중앙에 거대하게 솟은 것 따위가 있어서 저 반대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백호는 그대로 걸음을 옮긴다. 차닥차닥 하고 젖은 피부가 마른 것을 적시고 떨어지는 습윤한 소음이 철썩이는 물결의 흐름 속에 좀먹히기를 몇 번, 넓은 보폭으로 얼마 안 되는 순간을 휘돌아 몸을 움직이자 보이는 것은 이 섬만한 몸이다.

머리는 먹색. 어쩌면 해초를 잔뜩 뭉쳐놓은 것 같은 암녹색. 흠뻑 젖은 머리칼은 뒤로 넘겼으나 조금 길어서 목덜미의 상부를 조금 덮는다. 파도를 맞으며 물기를 먹은 어깨는 푸르스름한 진주빛. 창백하고 파리하고 거대한 사람이 바위섬에 팔을 올려 머리를 괴어두고 있었다. 그 형태 자체가 인간에 준했지만 인간은 본디 모방과 재생산의 동물이 아니었는지. 이 생물이 숨을 쉬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 처럼 날개뼈가 아주 완만하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음에도 백호의 눈에는 그것이 자연물이 빚어놓은 어떤 조상彫像처럼 보였다. 이것이 무엇이지? 인간이 아님을 인지하고 그것이 생물이라는 것까지 사고가 뻗으면 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진대 백호는 계속해서 걸었다. 걸어서, 그것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손을 얹어 팔뚝의 어느 부분에 체온을 전했다. 아주 차가웠다. 아니, 미적지근했다. 인간의 체온보다는 낮았지만 그것이 원래 차가운 것이 아니라 찬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지면 아래에 뜨겁게 가라앉은 피를 숨긴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 그 때 백호는 확신했다. 인어구나.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백호는 안광이 뚜렷한 검은 눈이 자신을 내려다봄을 인지했을 때, 어쩐지 혀가 굳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뇌를 거치지 않고 어떤 말이 흘러나왔다. 눈이 흑진주 같네. 철썩. 파도라기에 지나치게 거대한 소리. 백호는 눈을 굴려 주변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것은 저것이 내는 소리다. 양 팔이 여기에 붙어있고 머리 또한 여기에 있음에도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건, 아마 거대한 지느러미가 있다는 말이겠지. 인어의 뼈는 물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아주 무겁고 빼곡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소리가 이렇게 커다란 것인가? 백호는 한참을 그것과 시선을 마주한 채 있다가 그것이 먼저 접었던 손을 풀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것에 풀어졌다. 뭐지? 하는 얼굴에 그것은 가볍게 손가락 끝만 흔들었다. 그 모양새가 무언가를 흉내라도 내는 모양이다. 일단 계속 흔들어대고 있어니 정신이 사나워서라도 멈추고 싶다. 백호는 엉겹결에 자기 얼굴 반만한 새끼손가락의 첫마디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것이 웃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손가락을 흔들더니 뒤로 빼냈다. 백호가 몸이 딸려가기 전에 손가락을 잡았던 것을 놓아주었다. 최초의 악수는 생각보다 재미없게 지나갔다.

텀벙. 하는 소리는 파도 소리에 쉽게 묻힌다. 그 뒤로도 백호는 한번씩 바위섬이 눈가 가장가리에 걸릴 때 마다 그 섬에 찾아갔다. 대체로 낮에서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였다. 인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끔 뻐끔대며 보조를 맞추듯 무언가를 시도하기는 했다. 옆목에 꽉 닫힌 아가미는 숨을 참는지 가끔씩 물 안에 들어가 오분여를 있다가 다시 나오곤 했다. 백호가 그것을 부르는 것은 한정적이다. 야. 너. 이봐. 진주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것에는 원래의 이름을 부르고자 하는 것이 백호의 본 마음이었으므로(이건 본인도 모르는 부분이다.) 이름을 물었으나 그것은 쉬이 답을 주지 않았다. 못하는 것인가? 인어라지만 물고기가 붙은 시점에서 언어체계가 다른 것은 아닐까? 당연지사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쩌면 기운 빨릴 일이지만 강백호는 그런 것 따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고 할 수 없다면 해낼 때 까지 하도록 노력한다. 종국에 그런 마음으로 임한다면 무엇이든 해내고야 만다는 것을, 백호는 어느날 그물을 들고 와 천천히 수선하면서, 그물의 느슨해진 코 따위를 만지작대면서 혼자만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것은 오늘도 바위섬에 팔을 올리고 몸의 힘을 느슨하게 뺀 뒤 백호가 그물을 고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투박스럽고 무거운 돌들이 그물의 끝에 달려 있었다. 저게 바닥으로 내려가면 물고기는 땅과 그물 사이에 뒤엉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그저 무력하게 딸려올라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그물과 백호를 번갈아보다가, 백호가 말을 시작하자 굴리던 눈을 한쪽으로 고정한다. 

야, 나 너를 만나고 나서 말야, 난 그물이 작살보다 심한 짓을 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그물을 고치면서. 작살을 뚫리면 끝이지만 그물을 비늘을 벗기고 엉키지 않냐. 거기에서 팔딱거리는 놈들을 보고 있으면 왜 힘이 드는지 몰랐었거든, 그런데. 

그것은 젖은 상박에 뺨을 기댄 채 백호를 바라보고 있다가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울리지 않는 목소리는 거품처럼 흩어져서 어떤 진동도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저 입이 빠끔 열려셔 경구개의 우둘투둘한 부분이 아주 파리한 보랏빛을 띄고 있다는 것을, 백호는 그것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상황을 아주 재미있어 한다는 것도. 그물의 고리를 걸고 걸고 또 걸어 잡아당기면 하나의 원이 만들어지며 손을 움직대기를 한참, 그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오라는 모양으로. 백호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물을 달라는 거야? 묻자 그것은 찡그리듯이 얼굴을 구겼는데 그것이 아주 싫다는 모양은 아니고 그저 의사표현의 하나였던 것 같다. 백호는 그물과 그것을 번갈아보다가 그물을 한 쪽에 내려두고 그것의 손 위로 발을 내딛었다. 아, 손바닥 위에 올라간다는 것이 관념적이 아닌 세상은 정말 멋지지. 백호는 한 손을 자신을 받치고 한 손은 자신의 위로 차양처럼 오목한 뚜껑처럼 만든 그것의 손바닥 주름을 보며 그 살 위에 털썩 앉았다. 미지근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물 안으로 들어갔다. 죽이려는 건가? 그물을 고쳐서? 그러나 죽이는 것의 표정 치곤 아주 온건했다. 폐가 터질 것 처럼 숨을 들이마시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종간 초대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바다는 차갑다. 백호는 몸을 휘감는 어떤 흐름 따위를 느꼈지만 끝물엔 옷마저도 띄워버리는 채움에 순응한다. 팔을 뻗어 그것의 손가락을 끌어안으면 그것은 위를 덮은 손을 걷어내고 자신의 가슴팍으로 백호를 담아낸 손바닥을 끌어와 단단히 등을 받치도록 만들었다. 무거운 지느러미가 움직거리며 나는 포말의 소음은 물 속에서 하나의 흔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즈음. 들리니? 백호는 울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눈을 떴다. 그것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물막을 낀 눈으로는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귀 깊은 곳 까지 물이 들어차고서야 그 말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이 아래야. 가느스름하게 드는 빛으로 심해의 크레이터가 백호에게 다가온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활은 다르겠지. 조금씩 짜그라드는 폐로 백호는 손가락을 끌어안은 채 조그만 공기방울을 코로 뱉어내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런데 너를 데리고 갈 순 없어. 그 말을 하며 그것은 바다의 어느 선까지 내려갔던 몸을 차근차근 되짚으며 몸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무 연약하거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 위로 올라가면서 그것은 말한다. 물이 아주 얕아질 즈음에, 그건 그렇고, 난 호열이야. 그것이 태양빛을 머리 위에 주고 말했다. 너 계속 물어보더라. 그리고 물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서, 야. 백호는 자신이 아주 익사하기 직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갈급하게 호흡하는 백호를, 호열은 검지 끝으로 그의 등판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면서 손바닥 위로 물을 토해내는 것을 도왔다. 절대 불가한 것들이 있다. 서로간 마주해선 안되는 것들이 있듯이. 그러나 이름을 알아버린 순간 그 것들에 어떤 형태가 나오지 않던가. 그걸 거절할 수 있던가… 우선 백호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손바닥 아래로 내려와서. 솟아오른 바위 위에 두 발을 제대로 선 다음. 그러고 나서. 백호는 양 팔을 벌린다. 해바라기가 태양의 궤적을 훔쳐버리는 모양으로. 그리고 호열의 아랫턱을 붙들고 입을 맞추었다.

완전히 물에 젖은 몸을. 가깝게 다가온 얼굴은 자신을 압박하지 않고 그저 내려줄 뿐이다.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면 백호는 고개를 치들어 윗입술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야 입을 누를 수 있게 된다. 입맞춤이라는 이름을 너무나도 미약하고 서늘해서, 백호는 이 짭짜름하다 못해 쓰기까지 한 바닷물의 맛을 쉽게 잊기는 어렵겠다는 예감을 한다. 주름을 핥고 살짝 물면 목안의 흔들림 따위가 들리지 않는 진동으로 백호의 몸을 고스란히 뚫고 지나간다. 부족하지만 충만하다는 이중적인 감각에 사로잡혀서 백호는 호열의 열 손가락이 자신의 등판 뒷편을 부드럽게 감싸는 울타리처럼 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 백호는 생각한다. 나의 일상 한 부분은 영구하게 ‘잃어버린’ 상태로 남을 것이라고. 거대한 바다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빛이 조금은 들어서 흐릿한 청보랏빛 인영만이 일렁거리던 심해의 왕국을 상상하면서, 그보다 가슴을 쩡쩡 때리는 다정스러운 말씨 따위를 제정신으로 맞이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면.

성장은 상실과 등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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