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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심융해

크리주나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사랑은 신과 인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사랑하는 것이죠.

그러니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면,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위해 존재한다. 신이 인간에 의해 존재한다면,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 의해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


있잖아, 아르주나. 네가 죽는 꿈을 꿨어.

계기는 정말로 하잘 것 없어. 탐욕스러운 두료다나가 유디스티라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다 못해 너희 형제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다섯 개의 마을조차도 주지 않겠다더구나. 쿠루의 장로들과 내가 몇 번이나 설득을 시도해봤지만 그것도 허사였어. 카르나와 아슈바타만, 비슈마와 드로나를 등에 업은 그는 허영에 가득 차서는 도통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지. 결국은 너희들 판다바와 카우라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어. 너는 이 동족상잔의 비극에 몹시도 안타까워했지만 솔직히 나는 상관없었어. 쿠루 족의 내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진 일이었으니까.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인 것을, 구태여 안타까워할 일이 무어 있겠니? 그저 내가 걱정하는 것이 있다면 이 사소한 일이 너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어. 너는 누구보다 상냥한 아이니, 전쟁의 참상 속에서 너의 살과 영혼은 깎여버릴 것이 분명했지.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친척들과 벗들,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들의 죽음 같은 것에 말이야. 하지만 그 또한 필요한 일.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지나가야만 하는 길임에 틀림없어. 그렇기에 나는 너를 전장으로 들여보냈어. 몇 번이나 되묻고, 주저하고, 고뇌하는 너의 마음을 다잡게 하면서.

그것이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가 전쟁을 이겨내고, 끝내 누구보다도 빛나는 영광과 명예를 쟁취하는 미래를 몇 번이나 보았으니까. 그리 될 것이 자명했지.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던 것인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들리고,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지날수록 광활한 쿠룩셰트라 평원은 크샤트리아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어. 병사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였지. 그 중에는 모르는 이들도 있었고, 잘 아는 이들도 있었을 거야. 그중에도 익숙한 이들의 얼굴은 너의 가슴을 후벼팠겠지. 이라반이, 아비만유가, 가토트카차가, 드로나가 그랬을 터야. 그것은 수많은 전쟁을 수행했던 비자야, 너라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을 테고. 목숨과도 같이 여기던 다르마마저 무너지기 시작하였으니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었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아. 그래.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만한 일이었겠지. 분명 그랬을 거야.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이 꿈에 나타나서 너를 괴롭혔을까? 혹은 즐거웠던 지난 날의 기억이 너를 후벼팠을까? 아내들의 눈물이, 병사들의 한탄이, 너를 몰아갔을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방관하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유가 무엇이었든 너는 홀로 천막을 나섰어.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어. 나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완전한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때로는 나조차도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그것 앞에서 나는 무력할 수밖에 없어.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기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저 짐작할 수나 있을 뿐이었지. 저 드높은 신성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관점에서는 한 인간의 죽음조차도 사소한 일이었으니……. 한 인간, 그래. 아르주나라는 이름의 한 명의 인간이 어떤 이유에서든 홀로 전장에 나서기를 선택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는 것조차도 아주 사소한 일이었겠지.

하지만 파르타, 내가 어찌 너를 한 인간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니.

나는 기억한다. 너의 시신을 보고 울부짖던 너의 형제들을, 나의 가슴을 몇 번이고 치면서 책망하던 너의 아내들을, 비탄에 잠겨 주저앉던 병사들을. 참으로 모두가 너의 죽음에 슬퍼했다. 내게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너를 바라보았어.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는 너를, 따뜻한 체온조차 느껴지지 않는 너를,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지도 못할 너를. 너를 살아가게 하지 못할 것이라면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고, 네가 불러주지 않는다면 나의 이름은 어째서 존재할까?

나는 세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존재해.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해.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나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

그러니 이런 세상은 없던 걸로 하자.

나는 너를 품에 안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단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비명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것은 꿈이었을까, 혹은 사라져간 한 세상의 기억이었을까? 나의 꿈은 현재와 과거, 미래와 다른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니 그것이 무엇이었는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노릇이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어.

나는 어떤 세상에서도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은 올바른 세계를 위해.

그러니 오늘도 좋은 꿈을 꾸길, 파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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