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O

하레 크리슈나

크리주나

야다바의 수장이자 드와르카의 왕, 비슈누의 현신인 크리슈나가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드와르카 내에서나 암암리에 돌던 이 소문은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더니 순식간에 인도 아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열흘 무렵이 지났을 때에는 이미 이 건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손에 꼽을 정도로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인 드와르카와 관련된 사실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할 터였는데 당대에 살아있는 최고신의 현신이라는 그 크리슈나와 관련된 일이기까지 했으니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 중 누군가는 걱정으로,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또 누군가는 악의적인 마음으로 말을 덧붙였을 터였으니, 그 결과 소문은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윤색되고야 말았다. 어딘가에서는 크리슈나가 만 명이 넘는 아내들과 노니느라 정신이 없어 국무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가 하면, 어딘가에서는 그가 신의 진노를 사 얼굴이 몹시 추하게 변한 나머지 방 안에 틀어박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심지어는 그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마저 떠돌았다. 소문의 근원지였던 드와르카는 차라리 평화로운 편이었으나ㅡ대부분의 야다바족들은 그들의 지도자가 또 어린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유를 찾아 떠도는가보다 생각했다ㅡ드와르카의 적국과 우방국을 불문하고 머나먼 곳에 자리한 나라들은 혼란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은 하스티나푸라와 인드라프라스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인드라프라스타 왕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소문이 처음 들려온 날 궁전이 통째로 뒤집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왕인 유디스티라의 경우 어쩌면 그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휘청이며 혼절할 뻔한 것을 그 뒤에 서 있던 비마가 잡아주어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른 형제들이나 왕대비 쿤티 또한 대경실색하기로는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여장을 꾸려 다같이 드와르카로 향할 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온갖 약재에 마차까지 모든 준비가 끝났을 무렵이었다. 유디스티라가 막 마차에 몸을 실으려던 찰나 드와르카로부터 급히 사신이 도착해 크리슈나의 전언을 일렀다. 그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크리슈나 자신은 이와 같은 헛소문이 퍼진 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이를 종식시키고자 오늘 드와르카 국민들 앞에 섰으니 곧 이에 대한 소문이 전해지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방국들은 괜한 걱정을 내려놓아도 좋다는 말이 그 뒤를 이었다. 사신의 전언을 듣고 유디스티라는 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들 형제들은 겨우 마주보며 미소를 짓곤 왕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끝내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던 유디스티라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아우이자 크리슈나의 영원한 벗인 아르주나에게 그를 만나뵙고 무사를 확인하고 오라고 명을 내렸다. 아르주나 역시 크리슈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터라 곧바로 명을 받아들이고 단신으로 드와르카로 떠났다. 그것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쉬지 않고 제 애마를 보챈 덕에 아르주나는 예상보다도 빠른 시일 내에 드와르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와르카의 성벽은 언제나처럼 웅장했지만 그 앞을 지키는 보초들의 분위기는 여느 때보다도 삼엄한 것 같았다. 그들은 성문 앞에 늘어선 외지인들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더니 아르주나의 얼굴을 보고는 화색을 지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쩍 한 손으로 아르주나를 가까이 불렀다. 아르주나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그들이 애써 목소리를 낮추곤 말했다.

“아르주나 님! 아르주나 님이 맞으시지요?”

“그렇습니다. 나의 친우 크리슈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드와르카는 평안합니까?”

“말도 마십시오. 요 근래 퍼진 소문 덕에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드와르카 내부야 그나마 괜찮았는데, 외지인들이 갑자기 몰려들어서는……. 그래도 얼마 전 크리슈나 님께서 군중들 앞에 모습을 보인 뒤로는 많이 잠잠해졌습니다.”

“크리슈나는 괜찮던가요?”

“예에. 얼굴색도 좋고,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영 모습을 보이지 않으셔서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다른 분들도 잘 만나주지 않으신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르주나 님께서 와주셨으니 걱정을 덜었습니다. 분명 아르주나 님이라면 만나주실 테니까요. 부디 그 분께서 안녕하신지 확인해주세요.”

“물론입니다. 그걸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을요. 무슨 일이 있든 해결해내겠습니다.”

아르주나의 단언에 보초들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인드라프라스타에서 왕족이 찾아오셨다!” 하고 외치고는 곧장 아르주나를 드와르카 성채 내부로 들여보냈다. 아르주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는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서둘러 드와르카 왕궁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크리슈나에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얼마 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으니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계속 두문불출하고 타인과 만나기를 거부하는 걸까? 그런 모습은 크리슈나 답지 않았다. 크리슈나에게는 왕족답지 않게 자유로운 구석이 있었다. 그는 자주 제 형인 발라라마나 다른 의원들의 눈을 피해 저와 함께 왕궁을 빠져나와 시장을 걷거나 숲에서 노닐곤 했다. 본래라면 군중들을 모아두고 그 앞에서 모습을 보이기보다도 아무렇잖게 시장을 걸어다니며 인사하거나 식사를 때우고 피리를 연주했을 것이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긴 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떤 문제란 말인가? 대체 무엇이 비슈누의 화신인 그를 곤란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동안 아르주나는 드와르카 왕궁 앞에 도착했다. 아르주나가 드와르카에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발라라마와 수바드라가 왕궁의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여느 때와 달리 얼굴에 묘한 근심이 묻어나는 것도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수바드라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여 아르주나를 바라보았지만 아르주나는 눈치채지 못한 듯 곧바로 발라라마 쪽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발라라마 님, 수바드라 님. 저의 벗 크리슈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어서 와라, 아르주나.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구나. 일단 따라오도록 해라. 크리슈나의 방으로 안내해주마.”

크리슈나의 방이라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아르주나는 구태여 그들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르주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라라마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수바드라도 아르주나의 뒤에서 따라왔다. 언제 보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웅장한 왕궁의 내부가 아르주나를 반겨주듯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났다. 아르주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크리슈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무슨 일이라면 있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큰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요?”

“큰일이라면 큰일이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뜬구름만 잡는 소리에 아르주나의 미간이 살짝 좁혀들어갔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발라라마는 크리슈나와 마찬가지로 쉬이 무언가를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아르주나는 발라라마에게서 무언가를 캐묻기를 포기하고 제 뒷쪽의 수바드라를 바라보았다. 수바드라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아무 말도 잇지 않고 다시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수바드라를 괴롭히지 마라. 그 애는 너만큼이나 알고 있는 게 없으니.”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농이다. 도착했구나.”

그 말대로였다. 발라라마가 걸음을 멈춘 곳 앞에는 익숙해 마지 않은 크리슈나의 방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르주나는 당장이라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만 했다. 아르주나 쪽을 잠시 바라보던 발라라마가 성큼 발걸음을 옮기곤 크리슈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방 안쪽에서 낮으면서도 청아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슈나였다. 나다, 크리슈나. 아르주나와 수바드라도 함께 있다. 발라라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크리슈나가 말했다. 아르주나? 아르주나가 살짝 입을 열었다가 발라라마 쪽을 곁눈질했다. 발라라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대답했다.

“예, 접니다. 크리슈나. 당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파르타? 정말 파르타니?”

“예. 그렇고 말고요. 크리슈나. 당신의 파르타입니다.”

“파르타…….”

크리슈나의 한숨 같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아르주나는 조바심이 나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고야 말았다.

“케샤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당신의 방에 들어가도 될까요? 당신이 너무도 걱정이 됩니다. 당신을 만나야만 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요.”

“파르타.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너를 들여보내기엔…….”

“제발요, 케샤브. 저를 내칠 셈인가요? 당신이 어떤 상황이든,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습니다. 죽을 병에 걸려 있다면 저도 함께하면 될 것이고, 세상 무엇보다 추해져있다 할지라도 제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모습의 당신이든 제게서 당신을 빼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파르타…….”

어느새 크리슈나는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듯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발라라마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르주나와 문 쪽을 흘겨보았다. 케샤브……♡. 파르타……♡. 두 사람은 이미 저들만의 세상에 빠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수바드라는…… 제 작은 오라비를 질투해야 좋을지, 아니면 그 덕에 아르주나와 잠시나마 함께 있을 수 있단 사실에 감사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가엾은 수바드라. 발라라마는 지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알겠어. 그럼 아르주나만 들여보내고, 형과 수바드라는 돌아가. 아르주나나 내가 나가거나 누군가를 부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고.”

“알겠다. 그럼 우린 이만 가자, 수바드라.”

“네, 네에. 그럼 안녕히, 아르주나 님…….”

수바드라는 발라라마에 이끌려 반대편 복도로 떠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지 연신 뒤쪽을 돌아보았다. 아르주나는 그녀가 돌아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수바드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으면서, 수바드라가 마음에 든 거니?”

살짝 토라진 것도 같은 목소리였다. 아르주나는 놀라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잊은 채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리가요, 크리슈나. 여성분께는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당신도…….”

“농담이야. 파르타. 너는 정말이지 놀리는 재미가 있구나.”

“크리슈나!”

“그래서, 들어오지 않을 거니? 너를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야.”

“아, 물론……저어, 들어가도 되는 거지요?”

“응, 뭐, 준비는 다 해두었으니까.”

준비? 아르주나가 의아하게 여기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리곤 커다란 손이 그의 팔을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쿵.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방의 문이 닫혔다. 아르주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가 제 눈앞의 인영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완연한 청년의 모습이면서도 마치 소년처럼 개구지게 웃는 모습은 결코 다른 누구와 헷갈릴 수가 없었다. 제 오랜 벗이자 최고의 스승인 크리슈나였다. 그는 보초병에게 들었다시피 안색이 나쁘기는 커녕 언제나와 같은 생기로 넘치고 있었다. 어딘가 다친 것 같지도 않고, 소문처럼 추해지지도 않았고, 그냥 그는……크리슈나였다.

“크리슈나!”

“오랜만이구나, 아르주나. 정말이지 보고싶었단다. 어디, 간만에 한 번 안아볼까?”

“와앗, 크리슈나, 잠깐만요.”

크리슈나가 몇 번이나 끌어안고 몸을 들어올리려 하는 통에 아르주나는 몇 번이나 휘청여야만 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모습에 아르주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크리슈나도 참. 저를 늘 어린애 대하듯이 한다니까요. 나이 차이가 그리 나지도 않으면서…….”

“뭐, 어쩌겠니. 네가 이해하렴. 화신이란 변덕스러운 존재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할 말이 없는데요…….”

아르주나가 멋쩍게 꼼지락거리자 크리슈나는 쿡쿡 소리내어 웃었다. 눈앞에 보이는 크리슈나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고, 또, 괜찮아보였다. 무언가가 살짝 어색해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르주나는 가만히 크리슈나 쪽을 바라보았다. 크리슈나도 아르주나의 시선을 느낀 듯 제 벗을 마주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아르주나?”

“아뇨, 괜찮아 보이시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어째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걸까, 하고.”

“때로는 허황된 소문이 돌기도 하는 법이지. 왕이라는 직책도 참 피곤하지. 잠시 방 안에서 피리 연주에 몰두할 새도 없다니까.”

그렇다면 그동안 방에서 피리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크리슈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본인도 말했듯이 그에게는 영 변덕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뭘까. 이 묘한 어색함은. 뭔가 초조해보이는 것도 같고, 뭔가 평소와는 다른 것도 같은…….

“크리슈나.”

“응?”

“그 기다란 관은 뭔가요?”

“뭐긴,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관이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쓰는. 너도 유디스티라를 수행하니 알고 있을 것 아니니?”

“네. 알고 있지만, 당신이 제 앞에서 그런 관을 쓰는 일은 드물지 않나 싶어서요. 왕관은 불편하다며, 늘 공작깃 하나만 꽂고 계셨는데…….”

“…….”

“크리슈나?”

그때 크리슈나의 왕관 위로 무언가가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크리슈나의 머리칼과 같은 검은색의 무언가였는데, 아르주나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더욱 격하게 쫑긋……쫑긋? 부드러운 털 같은 무언가가 크리슈나의 왕관 너머로…….

“와, 와아아,”

“아르주나, 쉿.”

크리슈나가 성큼 다가와 아르주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이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난처해보였고, 그의 눈이 도르르 굴러가는 것에 맞춰 왕관 위의 털뭉치도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다. 크리슈나의 손에 틀어막힌 아르주나의 입이 몇 번이나 우물거리자 크리슈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소리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겠니?” 하고 속삭였다. 아르주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슈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떼어냈다.

“……크리슈나?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게……말하자면 복잡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얼마가 걸리든 괜찮아요. 설명해주세요. 그러니까…… 그 관에 있는 건…….”

크리슈나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관을 벗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보았던 검은 색의 털에 휩싸인 무언가가 축 내려앉았다. 크리슈나는 민망한 듯 관을 짚고 있던 두 손으로 그것을 가리듯 붙잡았다. 그 손틈 사이로 보이는 그것은 마치……동물의 귀를 닮아 있었다.

“귀……인가요?”

“응. 아마도 토끼의 귀일 거라고 생각해.”

“토끼인가요. 어째서? 저주 같은 건가요?”

“저주라고 할까. 일종의 만트라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은데……. 뭐, 간단히 말하자면 나를 찬양하는 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먼 미래의 언어, 먼 미래의 일이 지금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야. 아무튼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무언가 충돌돼서 생긴 문제니까 아마 몇 주 정도만 지나면 나아질 거야. 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 보이기 민망한 정도의 문제일 뿐이니까……. 아르주나?”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말이 이어지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크리슈나의 관이 있던 곳, 그러니까, 지금은 쫑긋거리는 토끼의 귀가 자리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 처져만 있던 귀는 크리슈나가 말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쫑긋거리고 있었는데 아르주나는 홀린 듯 그것을 보고 있었다. 올려다보는 눈은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마냥 초롱초롱했다. 크리슈나는 잠시 아르주나를 보더니 큰 소리가 나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놀란 아르주나가 튀어오르듯 몸을 움찔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신기해서……. 실례를…….”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신기한 일은 맞으니까. 그냥……보기 좀 그렇지?”

“아뇨, 그럴리가요. 그러니까. 저어.”

“그러니까?”

크리슈나가 의아하단 듯 고개를 기울이자 이번에는 아르주나의 눈이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힐끔 크리슈나를 쳐다보아도 말을 돌릴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한참을 어물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가, 감히……귀엽다고……생각했습니다.”

아르주나의 작은 목소리를 기어이 잡아챈 크리슈나가 잠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숙인 아르주나는 이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서야 크리슈나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고, 거의 동시에 두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거의 파닥거리듯이 귀가 움직일 정도였지만 얼굴을 가린 아르주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르주나, 하고 제게 말을 걸어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뿐이었다.

“아르주나.”

“죄, 죄송합니다. 크리슈나. 그러니까 전…….”

“으응, 아니, 괜찮아. 자. 아르주나. 손 떼고, 내 얼굴 좀 보련?”

“제가 감히…….”

“괜찮다니까.“

우물쭈물거리던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채근에 못 이기고 얼굴을 가리던 손을 치웠다. 조심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저를 바라보고 있는 크리슈나의 모습이 보였다. 황급히 다시 눈을 내리깔자 크리슈나가 양 손으로 아르주나의 뺨을 잡고는 제 쪽으로 눈을 맞추도록 했다.

“아르주나.”

“예, 크리슈나.”

“내가 귀엽니?”

“…….”

“드와르카의 왕이자 비슈누의 화신에게 귀엽다니. 이것 참, 이런 불경한 말을 꺼낸 자를 어찌 해야 좋을까. 삼대를 멸해야 할까, 그 친족들에게 전부 벌을 내려야할까?”

“죄, 죄송합니다. 크리슈나. 이건 오로지 저만의…….”

“이제야 눈을 맞춰주는구나.”

아르주나가 입을 다물었다. 크리슈나는 무엇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농담이란다. 내가 네게 그럴 리가 있겠니? 아무리 내가 변덕이 심한들 네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니. 아아, 정말. 하지만 놀랐어. 네가 괴물 보듯이 할까봐 걱정했는데, 귀엽다는 소리를 들을 줄은 아무리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는 당신이야말로……제가 당신을 괴물 보듯이 할 리가 없잖아요.”

“뭐,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니까.”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니?”

이제 아르주나의 얼굴은 어두운 피부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크리슈나는 조금 전까지 보였던 초조함이라곤 온데간데 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아르주나를 내려다보았다. 아, 저 눈. 크리슈나는 늘 이랬다. 언제나 아무렇잖게 사랑을 입에 담고, 애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그것이 농에 불과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장 너무한 점은, 그 모든 것이 거짓이며 과장 하나 없는 진짜배기라는 것이었다. 아르주나는 가끔씩 그가 건네는 무거운 감정에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거대한 밤하늘이 오로지 저만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르주나는 애써 홱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친구로서, 그리고 유디스티라 왕의 전령으로서 당신이 무사하시단 것을 확인해서 기쁩니다. 크리슈나. 이제 명을 수행했으니 저는 왕께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누구 마음대로?”

“네?”

“원, 아르주나. 내가 너를 이렇게 보낼 리가 없잖니.”

크리슈나는 그리 말하면서 아르주나를 슬금슬금 뒤쪽으로 몰아갔다. 연신 뒷걸음질치던 그가 다리에 무언가 닿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뒤쪽으로 쓰러져 푹신한 것에 몸이 파묻힌 다음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드와르카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의 가장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는 늦은 지 오래였다. 크리슈나가 그를 가두듯 몸을 교차하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웠다. 당장이라도 닿을 것만 같은 낯에 두근, 두근, 소리내어 심장이 뛰었다. 크리슈나가 눈을 휘어접듯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있지, 아르주나. 내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리고는 아르주나의 드러난 살갗을 서늘한 손으로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것도 간만인데, 침대 사정도 모르면 내가 많이 아쉬울 것 같거든. 내 욕심에 어울려주지 않겠니?”

아르주나는 입을 몇 번이나 벙긋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네……. 아주 작은 목소리가 뒤를 이었고, 크리슈나는 언제나와 같이 그의 목소리를 잡아챘다. 그는 무엇보다도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제 사촌이자 친우이며 제자에게 입맞췄다. 긴 입맞춤이 뒤따랐고, 침대의 가림막이 그들의 모습을 가렸다.

아마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은 행복할 것이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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