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一夏)_월견열차 분석
;무수히 많은 너와 나의 교차점에서
새까만 밤하늘 한가운데 하얗게 번진 보름달 한 점
일렁거리는 별빛 아래에서 조용히 출발하는 열차 하나
차창 바깥은 어두워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어
허연 입김을 후우 불고선 그 위에 웃는 얼굴을 그렸어
나는 차창에 앉아 밖을 본다. 창문 너머로 번져버리는 보름달과 별빛들 사이 시야는 어두컴컴하다. 달과 별은 이정표이자 희망을 상징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 것들이 불투명하고 이지러진 자리, 이곳은 나 - 너 뿐인 고독한 세계다. 열차는 이내 출발하고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세상을 내달리는 것은 앞선 고독의 확장이다.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자들은 희망을 갈구하고는 한다. 희망조차 제대로 투사하지 못하는 창문에 입김을 불고, 그 위에 웃는 얼굴을 그리는 것은 어찌보면 희망에 대한 갈구로도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세상 속 자의적인 희망이나마 찾기에는 별 빛 차창 밖 아스라이 멀기에 아이러니컬하다.
맞은편의 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등 위에 살며시 네 손바닥을 포갰어
나는 맞은편의 「너」는 내 손등 위에 손바닥을 포갠다. 이 어둠 속 함께 나아갈 이가 있다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너는, 정말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 말이 없는 순간에 포갠 손바닥의 온기는 약간의 불안감을 풍긴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위안과 불안 사이에서 공명한다.
아아, 덜컹거리는 야간열차
기적소리가 울리면 저 멀리서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상상을 해
자, 이대로 종착역까지 갈까
유난히 긴 밤이다
언제나 함께니까 이 손을 놓지마
다 거짓말이라 해도...
열차는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기적 소리가 울리고,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상상은 언듯 낭만적이지만, 너와 둘이서 선 세상이 어두컴컴하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함께 있더라도 이 밤이 유난히 길게만 느껴진다. 고독과 고통의 지연 속에서 종착역까지의 가는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괜찮을 거다. 네가 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모두 다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쓸쓸하게도 그 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왜?
교실에 두고온 편지도 칠판에 잔뜩 그린 낙서도
불규칙적인 흔들림에 점점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
차갑게 식은 유리창과 김이 피어오르는 인스턴트 커피
차창 풍경 위에 반사된 그곳엔 너의 모습이 없었어
교실에 편지도 두고왔고 낙서도 잔뜩 그렸다고 하니, 아마 화자에겐 특별했던 날을 지나서 오는 길인듯 하다. 그렇지만 불규칙적인 흔들림에 기억은 점차 멀어져간다. 흔들리는 기억, 그 것은 아마 불안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좀먹는 불안 때문인지, 덜컹거리는 기차의 움직임 때문인지, 화자는 흔들린다. 그 앞에 놓여있는 것은 김이 피어오르는 따듯한 인스턴트 커피다. 커피의 온기는 차갑게 식은 유리창에 잔뜩 김 서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양가적인 감정과 현실 속은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모호함 속에서 너의 모습이 없다고 말한다. 즉 나는 너의 존재를 말하면서도, 너의 모습이 없다는 고백을 의도적으로 교차시킨다.
그 것은 명징한 주저함이다.
아아, 빨라져가는 야간열차
어느새 내린 빗방울도 저 별들도 하얀 가로선이 되어 저 뒤로 가네
아아, 겁먹은 너를 보고 있으면 용기가 서지 않아
조그마한 네 손을 힘껏 꼬옥 쥐어본다
열차는 점점 가속한다. 갈 길 모르는 화자의 마음과는 별개로 어딘가로 향해 나아만 간다. 이 지점은 분명 불안의 확장일 것이다. 어느새 내린 빗방울이 창을 두들기고, 별들 마저도 열차를 따라가지 못하며 하얀 가로선 되어 지나친다. 시야는 점점 더 불투명해질 것이고, 이정표가 되어 주어야 할 별들은 스쳐지나가며 관망할 뿐이다. 이 불안과 주저 속 나는 겁먹은 너의 손을 꼭 쥐어본다. 특이하게도 앞서서는 「너」가 손을 쥐었지만, 지금은 「내」가 너의 손을 꼬옥 쥔다. 이 부분은 작품 전반적으로 나와 너를 모호하게 만드는 묘사 중 하나기도 한다. 주저와 불안 사이 겁먹어버린 존재는 그렇게 나와 너로 분리하여 위로하려 하지만 여의치는 않다.
새까만 밤하늘 한가운데 하얗게 퍼진 보름달 한 점
일렁거리는 별빛 아래에서 열차는 날아
아아, 밤공기를 가르는 열차
중력을 잊은 무거운 내 감정도 풍선처럼 밤하늘 위로 날아가네
넌 다음역에서 내려야겠지 아침이 밝아오면
하얀 눈사람처럼 나는 떠나야하니까
그래도 달리는 야간열차
이대로 평생 멈추지 않는다면 그 눈물도 내가 닦아줄 수 있을 텐데
어둡고 길 잃은 밤 속 열차는 이제 날아오른다. 보름달은 여전히 번져있고 별빛은 일렁거린다. 어디로 가는 걸까. 갈 길은 여전히 모르는 채다. 하지만 날아오르는 열차 따라, 나의 마음은 무겁지만, 중력을 잊은 듯이 풍선처럼 밤하늘 위로 날아간다. 그렇다고 가벼워질까? 너는 다음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떠나가는 사람은 나다. 이 오묘한 교차 속에서도 야간열차는 달린다. 여기서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주체는 누굴까. 그리고 왜 평생 멈추지 않아야만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걸까? 이 모호한 너와 나의 교차점은 이 지점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침이 오면 이 어둠이 씻겨내려갈 것이고 갈 길은 명징해질 것이며 나는 떠나야 할 것이다. 이 지점은 일종의 반전처럼 화자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 그렇게 밤을 함께한 너는 나이며 나는 너다. 그렇게 도식을 정리할 때 약간의 비약을 더한다면, 너에 대한 사랑과 나의 방황이 뒤섞여 형상화된 것, 그 것이 너아닐까?
아아, 텅 비어버린 맞은편 자리
차창 밖에 남겨진 널 향해 손 흔들고 살며시 입을 맞춘다
차가운 감촉.
그렇게 너이되 너가 아닌 너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입을 맞춘다.
비록 그 것이 차가운 감촉만을 느끼게 하며 현실로 돌아오게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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