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애_ 아무것도 아닌 날(Happy Unbirthday) 분석
; 가장 평범한 날의 행복을 박제하는 법.
내겐 참 어려운 일들을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해내.
아주 어렸을 적서부터 나는
내 몫의 삶에 있어 부외자였네.
우리네 사회는 점점 병들어가며 그에 대한 해열제는 마땅치 않다. 위정자들은 스스로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를 방조한다. 그렇지만 사람에겐 저마다 주어진 인생이 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과거는 후회스러우며 현재는 어려운, 보통은 그런 삶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간다. 다만 그 삶에 목적을 부여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살아갈 자격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여기서 화자는 삶에 있어 부외자라고 말하며, 어려운 일들에 대해 고백한다. 여기서 부외자가 함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병들어가는 사회 속에서 방향을 잃은 조타수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강조되는 건 바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다.
다들 멋대로 이별을 말하고
새로운 인연에 몸담고
잊고 잃고 그런 걸 거듭하며 나아가는구나.
나만이 성장하지 못한 채 모두 떠나간 거리에
남아서 웃고 울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해,
그뿐,
인 거구나.
누군가는 말없이 떠나간다. 그 것은 남겨진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인연에 몸담는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잊고 잃고 그 것을 한없이 거듭해가며 나아간다. 누군가는 적어도, 그렇다. 그 것은 그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의 종류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화자에게는 그것이 한없이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떠나간 사람을 붙잡으려하며, 새로운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못한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거리에서 남아 혼자 웃고 울고만 있다. 그것은 차마 완성되지 못한 어른 아이같은 모양새다.
조증 같은 상태로 잠들지 못하고 반눈으로 지새며 새벽이 밝기를 기다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렇게 나는 조증 같은 상태로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밝기를 기다린다. 여기서 조증은 비정상적인 고양감과 흥분 등 잠들지 못하는 상태를 유발하는 동기다. 동시에 삶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반추하게 만들며 논리적 비양을 통해 부정적인 결론만을 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굴레처럼 짊어지게 만드는 화자의 밤은 반눈을 뜬 채 지새울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일은 찾아온다. 새벽이 찾아오면 창 밖은 밝아올 것이고 아침이 올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견뎌내는 삶이란 어떤 고독일까.
보통 같은 행복을 느끼지 못해도 어쩌다가 한번은 내일을 바랄 수 있다면,
나름 또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어,
날 사랑할 수 있어.
보통 같은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에서 오는 행복이며,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이의 자세다. 그러나 화자는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없다. 멍들고 망가진 가슴을 앓으며 밤을 지새다가, 문득 내일이 찾아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면 갖게되는 본능 같은 것이다. 즉 희망을 갖는 것이 천부인권인 것처럼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말한다. 내일이 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아무것도 아닌 날을 기념해 오늘은 사진을 찍자.
아무것도 아닌 내가 렌즈 너머를 보고 웃고 있었어.
세상의 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날의 반복이며,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 존재 A임을 받아들인다면 조금은 편안해질까?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가장 보통의 날, 보통의 존재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신을 박제하고자 한다. 그 근원 동기는 희망이다. 어쩌다가 내일이 오는 것을 바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욕망. 그것은 분명 희망일 것이다.
다들 멋대로 무언갈 바라고 제풀에 혼자 실망하고
잊고 잃고 그런 걸 거듭하며 나아가는구나.
인연은 다가가고 떠나가는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반목하고 충돌한다. 단지 서로를 배려하며 관계를 조율할 뿐이다. 하지만 그 일들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제풀에 실망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잊고 잃고 그런 걸 거듭하며 나아간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들 아무 데도 가지 못해,
그뿐인 거였구나.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서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면서 하루를 지새워,
모두가 그러하듯이.
다만 화자는 스스로가 짊어져야 하는 굴레를 집어 던져버리고, 먼 곳으로 도망치는 것을 욕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만서도 아무데도 가지 못해 현재에 묶여 있다. 그것은 과거로의 무기력한 회피도, 미래로의 무책임한 도망침도 아니다. 현재에 대해 사고 하고, 그리고 욕망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서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는 어른 아이같은 화자의 독백은 자신의 삶이 과거의 자신에게 부끄러운 사람람이라는 고백이다.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통해 지탱하는 삶. 그것은 일종의 희망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 그것은 ‘현재를 마주함’이라고 할 수 있다.
채워질 수 없었던 커다란 외로움을 평생토록 안고서 살아가야만 한대도,
의외로 나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 사랑할 수 있어.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맹목되지도, 과거에 매몰되지도 않은 채 현재를 수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지만 다시 말하면 그 외로움이야말로 현재를 함께해주는 러닝 메이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화자는 말한다. 의외로 나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그리고 사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을 기념해 오늘은 사진을 찍자.
아무것도 아닌 내가 렌즈 너머를 보고 웃고 있었어.
태어나지 않은 날을 기념해 오늘은 파티를 하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앨범 속에 고이 남겨두었어.
아무것도 아닌 날과 나는 그렇게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된다. 그것은 괴로워함을 수용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끊어낼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화자에게 인연은 어려운 숙제같은 것일테고, 현재는 괴로움의 연속일 것이다. 다른 이처럼 잊고 잃고 그렇게 반복해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직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이야말로, 자신에게 있어 가장 보통의 존재라고 선언한 순간 그것은 의미 없어진다. 화자가 기념하고자하는 것은, 사람에 대해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인연을 떠나보내고 새로이 만나고, 그런 일들을 반복해나가고 거듭해나가지 않는 - 혹은 어려워하는 자신을 가장 보통의 존재로 선언하는 일이다. 남들이 뭐라하든 자신은 자신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사진을 찍고 파티를 한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된 스스로를 축하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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