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62…레이븐, 들리나? 대체 무슨…”

대심도 바깥으로 나온 이후, 에어는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재밍을 그제서야 해지했다. 들개의 주인으로부터 곧바로 통신이 연결된다. 아르카부스의 대장급 인사들도, 레드 건도 죽지 않았다. 들개의 일방적인 의뢰 거절에 그는 제법 당황한 듯 보였다.

“월터, 더 나은 결말을 찾아 보겠습니다.”

“그게 무슨—”

뚝, 그대로 통신이 끊기는 소리가 났다.

“야, 그대로 끊어도 되는 거냐?”

“…”

“다시 연결 해 미친놈아! 얘기는 똑바로 하라고, 진짜 짜증나게 굴지 말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통신이 복구된다.

“621…”

“…월터. 코랄도, 당신도 잃고싶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앞으로 코랄이 초래할 파탄을 염려해 그것들을 불태우기로 선택했습니다. 다만…”

“…코랄의 증식을 억제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녀 또한 동의했습니다.”

“월터, 당신도 그 공존을 위해 양보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워치 포인트의 제거에 앞서 그들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벨리우스 남부, 오염된 시가지. 들개도 이미 알고 있는 곳일 터였다.

“이곳은…”

“너도 알고 있겠지. 발람의 포로가 수용된 곳이다.”

루비코니언의 반발을 막기 위한 열쇠 중 하나. 포로를 빼와야 한다면 모두의 시선이 워치 포인트-알파에 집중된 지금이 적기였다. 레드 건의 병력이 대심도로 차출됨에 따라 시가지를 감시하는 인원이 절반 가량 줄어있었다. 다른 부대원들의 감시마저 피해 구해야 할 인물이 있었다.

“이미 한 번 해방 전선에 공격당해 포로가 여럿 탈출한 걸로 아는데… 용케 이 양반은 아직도 여기 붙잡아 뒀군.”

발람의 포로 수용소에는 많은 인사가 있었다. 다목적댐 전후로 구출을 시도하는 움직임 또한 많았다. 다만 대상의 입지, 그 위상에 의해 발람은 필사적으로 그의 탈출을 막아내었다. 이젠 레드 건의 한 인물에 의해 빼앗기게 되겠지만.

“해방 전선의 수장, 수부 돌마얀. 네 협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인간을 수용한 컨테이너 한구석에 앉은 노인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형형하고, 포로의 신분임에도 여전히 기가 눌리지 않았다. 어두운 컨테이너 안에서 그의 두 눈만이 빛났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코랄 릴리즈를 막는 것이 네 사명이겠지. 너는 그저 모든 일이 다 끝난 뒤, 한 마디만 해 주면 된다.”

코랄 릴리즈. 그 말에 노인의 눈썹이 꿈틀댄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세리아, 그 주사위를 던지면, …인류는 아직. 노인과 그들의 입장은 일치한다. 세 명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코랄과 인류의 분리, 그리고 릴리즈의 저지.

“코랄을 필두로 한 종교의 창시자이니, 다른 이들의 말보다 설득력이 있겠지.”

이구아수가 노인을 일으키고자 손을 내뻗는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팔을 꺾는다. 이구아수는 순식간에 제압당해 바닥 위를 굴렀다. 들개는 주춤하다 이내 덤벼들 준비를 한다.

“씨발, 진짜 구해줘도 지랄을—”

“…이구아수, 군복을 입은 채 말하면 누구라도 심문인 줄 알 겁니다.”

“하다 하다 이젠 내가 레드 건인 게 문제라고?”

“…세리아?”

노인의 손아귀에서 힘이 풀린다. 그는 에어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노인의 목소리가 떨린다.

“세리아, 너인가… 너는 50년 전에, 죽은 줄로…”

“…미안합니다, 돌마얀. 저는 당신이 아는 이가 아니에요.”

에어는 담담히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노인은 질끈 눈을 감고서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래, 젊은이들. 너희가 바라는 게 뭔가?”

*

워치 포인트의 파괴 공작. 그 첫 번째 대상은 중앙 빙원에 위치한 엥게브레트 갱도였다. 갱도의 가장 깊은 곳에 처박힌, 노후화된 워치 포인트.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AC기체 둘, 확인. 다들 전투 준비!”

“웜 슬레이어가 여긴 무슨 일이지? 아직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게 남았나?!”

행성 봉쇄 기구가 루비콘-3에서 물러난 지금, 갱도를 장악한 것은 루비콘 해방 전선이라는 점이었다.

“일이라는 게 쉽게 풀리는 법 한 번이 없군…”

이미 시야 내에는 연료 탱크가 여럿 보인다. 웅웅거리는 이명이 옅게 들려온다. 워치 포인트에서 뽑아낸 코랄이 그 안에 들어있는 듯 했다.

“이구아수, 죽이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헤드 브링어는 무기를 꺼내든다. 전투 준비를 끝마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해방 전선의 노란색 AC. 새끼 손가락이었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우리 있나니!”

그가 익히 들은 구절을 연호한다. 상대의 뒤로도 MT가 십 수대가 서있다. AC를 필두로, 해방 전선의 병력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부 갱도 밖으로 꺼져—!!”

이구아수는 짜증스럽게 소리 질렀다. 목적이 좋아봤자였다. 싸움을 중재해 줄 법한 돌마얀은 이 곳에 없고, 들개는 이번엔 해방 전선과 연줄이 없으며, 그는 외성 기업의 인물이다. 이구아수는 날아오는 AC의 머리에 레이저 대거를 박아넣고, 그대로 뒤를 잡아 AC의 등판을 걷어찼다. 자연스럽게 들개는 MT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

“이게 단가? 에이 씨,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구아수는 MT의 잔해를 갱도 밖으로 끌어내며 중얼거렸다. 생명 신호가 잡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워치 포인트든 코랄이 든 탱크든, 어느쪽이든 그것들을 부수면 그걸로 주변 존재들에겐 치명적일 터였다. 활성 상태의 코랄은 주위의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인간에게 또한 유해하다. 거기에 해방 전선의 인사가 휘말려 죽게 된다면 루비코니언으로부터의 반발 또한 크게 될 터였다.

‘이미 워치 포인트를 모조리 조져버린다는 의뢰를 수락한 순간부터 어느 진영으로부터든 아웃이긴 하다만…’

아무튼 이것으로 인명 구조는 끝이었다. 이젠 코랄을 구조할 차례였다. 이구아수는 들개가 정리해놓은 길을 따라 갱도의 최심부로 날아들었다. 지맥을 따라 흐르는 코랄의 이명이 점점 선명해져갔다.

“이구아수, 이걸 부수면 코랄들이 터져나올 거다. 그리고 갱도 내의 모든 것을 부식시키겠지.”

들개는 로더 4의 손에 쥐여진 총구 끝으로 워치 포인트를 가리켰다.

“알고 있어.”

“내가 하겠다. 너는 먼저 연료 탱크에 든 코랄들을 꺼내면서 이동해라.”

“꼴에 지금 배려라고 하는 거냐?”

로더 4의 헤드가 끄덕인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굴 얕잡아 보고 있어… 짜증이 나긴 하지만 확실히 들개보다 코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그로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딴 곳에서 코랄에 휩쓸려 죽는 건 사양이다.

그는 한발 앞서 갱도의 출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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