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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베타, 감마… 람다까지 총 열한 곳에 달하는 숫자의 워치 포인트. 델타는 이미 들개가 날렸고, 알파는 대심도이기에 최후순위로 밀려난다. 엥게브레트 갱도의 워치 포인트도 밀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여덟 곳이 남아 있었다. 이구아수와 들개는 벨리우스 지방을 떠돌며 착실하게 워치 포인트를 부숴 나갔다.
코랄이 역류하고, 가끔은 지역 일대가 날아가기도 하고, 그 짓을 세 번쯤 반복했을 땐 활성 상태 코랄의 역류로 인한 폭발을 막는 방법을 찾았다. 다만 워치 포인트를 부수는 이인조에 대한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하면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전투를 치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생존자는 워치 포인트에 대해 증언했고, 그것은 워치 포인트를 점거중인 세력들이 경계하기에 충분했다.
“하아… 이젠 셰르파를 매수하기도 힘드네. 아예 노획을 해야하나…”
“…근접전을 치르는 방법도 있다.”
“그건 너 같은 놈이나 되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건데?”
—삐이익
“여어, 내방자. 꽤나 힘들어보이네.”
그때 갑자기, 통신이 들어온다. 외부 회선으로부터의 일방적인 통신. 그리고 들개를 이리 부르는 여성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월터 같은 주인을 만난 걸 유감이라 했지만… 역시 개는 그런 곳이라도 집을 나가면 고생하는 모양이야.”
[메인 시스템, 전투 모드 기동.]
부스터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온다. 둘은 전투 모드를 활성화하고 레이더를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점이 화면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상대는 둘이다.
“너는…!”
신더 칼라와 채티 스틱의 기체 둘이 그들 앞에 착륙했다. 중량 기체 특유의 육중한 구동, 땅 아래가 크게 울렸다.
“채티가 말해준 이후로도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역시 변이 파형이 붙은 모양이야.”
“뭐, 월터 꼬맹이가 한 말도 있으니 받아들여주고는 싶지만… 순순히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칼라의 AC, 풀 코스가 화려한 색을 내며 전투 모드에 돌입한다. 양 어깨에 달린 날개같은 다연장 미사일이 흉흉했다.
“젠장, 이래서 도저들과는…!!”
수많은 격발음과 함께 스무 발에 달하는 미사일이 일제히 발사됐다. 그것들은 들개를 향해 날았다. 들개는 회피 기동으로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고 칼라에게 돌진했다.
“이구아수, 서커스를.”
“저걸 안 죽이고 제압할 방법이 있긴 해?!”
“레드 건, 봐줄 필요는 없다.”
채티 스틱의 기체, 서커스가 재빠르게 다가온다. 엘카노제 경량 탱크 파츠. 칼라의 탄막 지원이 없어도 RaD의 인물들은 귀찮은 상대였다. 빠른 기동으로 말 그대로 서커스를 하듯 공격을 피하고, 다시 다가오고, 높은 화력의 무기로 한 방. 빠르게 치고 멀어지는 특유의 기동이 눈에 거슬렸다. 상성이 나빴다. 흘끔, 이구아수는 들개 쪽을 비추는 화면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놈도 제법 고전하는 듯했다.
“어이, 들개! 교대하자!”
“레드 건, 무슨—”
이구아수는 그리 말하며 서커스를 뒤로하고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헤드 브링어가 풀 코스를 걷어찼다.
“경량기는 경량기끼리 놀라고—!!”
기습적으로 날아와 꽂힌 발차기에 비틀거리는 풀 코스. 거기에 헤드 브링어의 레이저 대거가 추격타로 틀어박혔다.
“기습이라니 실망스러운걸… 그래도, 판단력은 합격점이야.”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칼라는 아직 여유가 있는 듯 보였다. 미사일의 격발음이 울린다. 이구아수는 집요하게 칼라에게 달려들었다. 상대가 중량 기체라면, 멜란더 C3 프레임을 쓰는 헤드 브링어가 한참은 더 빨랐다. 탄막을 멋대로 갈기지 못하도록 들러붙는다. 들개를 보며 배운 싸움 방식이었다.
“하하…!”
칼라가 웃는다. 웃음은 전염되어, 이구아수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다.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타고 흐르며 심장이 멋대로 날뛰었다. 미사일을 피하고, 때론 맞아가며 상대방에게 닿는다. 터너는 이미 탄환이 다해 던져버렸다. 커티스도 곧 끝을 보인다. 칼라도, 미사일이 동났는지 등판의 미사일을 뜯어낸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풀 코스는 이어서 두 손에 든 무기마저 집어던진다. 이구아수도 칼라를 따라 손에 남은 것들을 내던졌다. 마침내 미시간에게서부터 배웠던 것이 빛을 발할 시간이다.
이제부턴 단순한 난타전이었다.
*
“좋아, 내방자. 네 친구도 제법 마음에 드네. 루비콘 전체를 적으로 돌릴 만큼 배짱은 있는 녀석이니… 네가 우리 사명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고, 우선 뭐가 필요하지?”
칼라는 상쾌한 얼굴로 씩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 옆에 놓인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된 풀 코스와 헤드 브링어와는 영 딴판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구아수였다.
“전부.”
칼라는 그 말에 코웃음쳤다. 그러나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강행군에 식량도 탄환도 모조리 바닥을 드러냈고, 앞으로의 지하 봉쇄 계획에 밀어넣어야 할 자원도 상상 이상이었다. 막말로, 둘은 패기만 가지고서 무모한 일에 뛰어든 꼴이었다. 코랄의 일부를 폭발물로서 사용한다면 대심도를 메워버릴 화력을 충당할 수야 있겠지만, 그걸 에어가 허용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녀와 아직 상의조차 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렇기에, 오버시어가 호의를 내보이는 지금이 기회였다. 그들에게서 물자를 제공받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코랄에 불을 질러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불필요한 것들 아닌가. 그리고 칼라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좋아, 어디 한번 너희가 하고싶은 대로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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