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배저

[윤힐] 블랙배저 전력 60분: 캠퍼스AU

비움 by 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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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생 최윤X복학생 힐데베르트

어지러이 섞인 각종 음식 냄새와 오물의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는 한 골목,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휙 지나가자 너나할 것 없이 뒤를 돌아본다.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조급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남자는 독특한 머리색만큼이나 독특한 홍채 색을 지니고 있었다. 힐데베르트는 출신지에 대한 질문을 지겹도록 듣게 한 황금색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골목도 2년만인가. 술집이 빼곡히 자리잡은 이 거리에서 참으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더랬다. 남부럽지 않은 주량이건만 갓 성인이 된 스무살의 패기는 항상 간과 정신을 푹 절여놓곤 했다. 종강 총회 때는 유독 군기를 잡던 한 선배에게 "교수님보다 더 꼰대같음.“이라는 말을 내뱉었다가 남은 한 학기가 꽤 고달파지기도 했다. 정작 발언의 당사자는 그 날의 기억이 모조리 날아간 상태였지만.

오늘은 새로운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예전만큼 막무가내로 권하는 사람은 적을테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앞으로 많은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할 후배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적당히 마셔야겠다고 다짐하며 들어선 익숙한 가게. 코를 찌르는 부대찌개 냄새와 유리잔이 부서질 듯 건배를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자, 힐데베르트의 얼굴을 알아본 선배가 아는 체를 해온다.

“야,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반가운 음성이 들려온다. 아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는 달리, 낯이 익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여럿이었다. 눈을 접어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앞쪽에서 호기심어린 시선이 따라붙는다.

미처 빠지지 못한 젖살과 똘망똘망한 눈빛. 올해 신입생들인가보다.

귀엽네. 고작 2, 3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애기같은지. 힐데는 홀린 듯 하얀 머리칼과 금빛 눈동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신입생들을 향해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중 일부는 어색하게 마주 웃어주었지만, 대부분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내가 불편하게 만든건가?

어쩐지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에 울적해진 힐데베르트였지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술자리에 합류하며 울적함은 금세 저 멀리 날려버렸다.

쉴 새 없이 잔을 부딪히고, 수없이 자기소개를 되풀이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제 앞으로 빈 맥주잔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힐데가 번쩍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서 마시던 동기는 어디가고 낯선 이가 앉아있었다. 안광없는 새까만 눈동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도 한 잔 주십시오, 선배님.”

앳된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요한 눈빛에 잠시 얼이 빠져있던 힐데베르트는 재촉하듯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신입생이었구나.

잔을 채워주며 슬쩍 얼굴을 훑어보니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이목구비가 꽤나 미남형이다. 앳된 얼굴들 속에서도 눈에 띠는 생김새라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제 앞의 후배 양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자리 떨어져있는 신입생 무리들과도 묘하게 벽이 쳐져있는 느낌이었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이름이 뭐야?”

“최 윤이라고 합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잔을 부딪힌 후, 가득 채워진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탁, 맞은 편에 내려놓은 잔이 깔끔히 비워진 것으로 보아 술이 약한 편은 아닌 듯 했다.

윤은 그 이후로 딱히 더 말을 붙여오지는 않았다. 후배들과는 어떻게 대화하더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다보니, 군대 후임에게 호구조사를 하듯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깨달은 힐데베르트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치만 나도 후배가 처음이라고!

쓸데없는 말은 칼같이 쳐낼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윤은 의외로 묻는 말에는 성실히 대답해주는 편이었다. 안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때때로 맥주를 홀짝이며 “선배님은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얼굴에 와닿는 시선이 따갑다. 대화 내내 끈질기게 달라붙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자꾸만 괜스레 시선을 내리깔았다. 취한건지, 원래 습관이 그런건지, 윤은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은 채 뚫어져라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잠시 시선을 떼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길어지는 침묵과 열렬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불쑥 속에 있던 말을 꺼내들었다.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별다른 기대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박박 긁어모은 사회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여태 지켜본 결과, 눈 앞의 후배는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아 딱히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많죠. 선배님한테 관심이 많아서요.”

풉.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입에 대고 있던 잔 속에 술을 작게 뿜었다. 켈록켈록, 따가운 탄산이 기도로 넘어가 숨넘어갈 듯 기침을 하는 제 밑으로 휴지가 불쑥 들이밀어진다. 그리곤 턱 밑으로 흐르는 술을 슥슥 가볍게 닦아낸다. 볼 일을 끝내고 도로 자리에 앉은 후배가 이번에는 물컵을 내민다.

얼결에 컵을 받아들고 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더듬더듬 손으로 턱을 더듬자 물기하나 없이 메마른 얼굴이 만져진다. 이게 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초점없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제각기 떠들기 바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고… 고맙다….”

힐데는 쥐어짜내듯 감사 인사를 건네고 고개를 돌린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윤의 시선이 어쩔 줄 모르고 허공을 배회하는 눈동자와 유달리 붉어진 귓가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날, 힐데베르트는 잔뜩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후배를 기어이 자취방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게 쫓고 쫒기는 기나긴 추격전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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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전설의 오리너구리

    사랑의 시작이군요 스무살 최윤이면 분명 만취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부사수 잡겠다고 고문까지 당하며 쇼를 하던 그 최윤이랑 이름이 같아서 그런가... 쟤도 왠지 취한척 하고 선배님 잡아먹으려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탓이죠? 제가 스무살짜리를 너무 나쁘게 보고있죠!?ㅋㅋㅋㅋㅋ 여튼 힐데 힘내라.. 넌 코꿰였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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