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예] 겨울맞이

손 타는 것

영원 by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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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쓴 글

어치치치치치치 겨울 유녜

늦은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했다. 예현은 반쯤 뜬 눈을 겨우 손으로 비비며 일어난다. 옷장 정리를 미룰 만한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집 안의 난방을 벌써 돌렸기 때문인지 큰 추위는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살짝 열어놓은 창가로 들어온 바람에 몸을 한 번 떨어야 했다. 운이 누누이 진작 정리 좀 하라고 잔소리하던 게 떠올랐다. 진작 좀 정리할 걸 그랬다. 예현은 느리게 숨을 내뱉었다가 일어난다. 침구를 천천히 정리한다. 윤처럼 완벽히 각을 맞춰 정리하진 않지만, 나름 잘 개켜두었던 거 같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예현의 소리를 아까부터 듣던 윤은 예현의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너 또 정리 안 했냐?”

“내일 할 거야.”

“오늘 해라. 너 오늘 드물게 쉬는 날이잖아.”

“네가 해주면 안 돼?”

“너 왜 점점 최아미 닮아가냐?”

 

아미가 뭐. 내가 또 뭐. 예현은 입술을 잠깐 비죽였다가 윤의 정리벽을 기억하곤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거지. 매번 제때 정리하지 않아 혼이 나면서도 느리게 정리하곤 하는 저와 아미에게 윤은 작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니까. 예현은 뺨을 한 번 긁적인다. 저리 딱 잘라 말할 줄은 몰랐는데. 미국 시절에도 계절감에 맞추어 옷과 침구, 집의 분위기를 바꾸는 건 대부분 윤의 몫이었고 예현은 자연스럽게 윤의 손길이 닿는 집에 익숙해졌더란다. 제가 엉성하게 정리해 둔 걸 윤은 내버려두지 않았고, 못내 그게 서운했던 나는 점점 손을 안 대게 되었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런 것에 서운함을 느낀다기보단, 새삼스레 내 손과 품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 예현은 부러 모르는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띤청, 모르는 척. 예현이 숱하게 윤의 인생에 끼워 넣은 것. 예현은 부러 찬 바닥에 제 발을 내려둔 채 윤의 반응을 관찰한다. 인상을 찌푸리고, 곧 실내화 하나를 가져다준다. 어제 기절하듯 잠들었더니 신발도 안 신었냔 핀잔이 돌아온다. 예현은 못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예상했던 딱 그만큼 네가 나에게 기울어진 거 같아서. 아미와는 다른 방향으로, 다른 방식으로 또 기울어진 채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져서. 예현이 실없이 웃는다. 윤이 인상을 찌푸린다.

 

“왜 웃냐, 너?”

“그냥. 좋아서.”

“이젠 잔소리까지 달게 들리시나 봅니다.”

 

그럴 리가. 예현은 방과 옷장을 정리하기 전까지 받게 될 말과 시선을 잠시 가늠하다가 곧 웃던 표정을 지웠다. 윤의 잔소리는 달기보단 칼같이 느껴질 뿐인데. 어디에서 사랑을 느끼란 말인지. 예현은 윤이 저를 놀리고 있단 걸 깨닫곤 그를 잠시 흘겨보았다. 다만 묵묵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을 보면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겨두고 있단 사실을 떠올려 얌전히 눈을 유순히 떴다. 막 국그릇에 떠진 소고기뭇국을 거절하고 싶진 않다. 오랜만에 맑게 끓인 국에 밥, 언제 만들었는지 냉장고를 채워 놓았던 반찬들을 늘어뜨리고 아직 꿈나라에 빠진 아미를 깨우러 간다. 수저를 놓고 물을 꺼내고, 예쁘게 구워진 계란말이 옆에 케첩을 짜는 것 정도가 예현의 일이다. 오늘 아침부터 등짝을 맞는 아미의 짜증 어린 목소리와 투정, 윤의 무심한 말. 아. 소고기뭇국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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