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배저 2차

[예현힐데] 총사령관이 크리처빔을 맞았는데 - 1

제목수정될수있음 / 1월 아이소 목표

두시전에자자 by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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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현은 손을 들어 제 귓바퀴 뒤쪽을 만지작거렸다. 불룩 튀어나온 뼈 위로 덮인 살갗에 굳은살같이 우둘투둘한 것이 잡힌다. 기분은… 다소 어지럽다.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타인의 존재가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거리에 쏟아져나온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기분? 아니, 그런 희망차고 밝은 기분은 아니다. 따지자면 1차 전쟁 시절 병사로서 사열해 있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조용하지만 적대적인, 날카로운 기류.

누군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히 느껴졌다. 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멀리서 복도를 걸어 오던 잭 블랙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이내 평소와 같은 얼굴을 했다. 예현은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들어와.”

“예.”

귀 뒤쪽이 자꾸 신경 쓰였다. 잭은 예현의 집무실에 들어와 책상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약제와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기척을 지우는 약입니다. 보통 이 정도 양이면… 한 달 정도 유지될 겁니다.”

“응. 수고해줘서 고마워.”

“이런 경우에도 효과가 적용될 지는 잘 모르겠군요. 평범한 인간에게 투여하는 경우 조금 졸린 정도라고 하니, 효과가 없더라도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해 보면 알겠지. 질문이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기척을 지운다는 건… 내가 다른 사람을 느끼는 것도 차단되는 건가?”

“맞습니다. 아, 혹시 지금.”

“응. 꽤 소란스럽네.”

“그렇습니까.”

잭이 주사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현은 잭을 빤히 보다 그냥 생각한 것을 얘기하기로 했다.

“혹시 뭔가 할 말이 있어?”

아까부터 전혀 눈을 맞춰오고 있지 않았다. 잠시 손을 멈춘 잭이 예현의 말에 답했다. 

“…저희 동족의 경우, 유양돌기의 기관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지요. 다만 걷기와 말하기를 배우는 것처럼, 이 기관을 다루는 것 또한….”

“결론부터 말해줄래?”

“감정전이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감정전이. 예전에 듣긴 했는데… 그 주사로 감정전이는 제한이 되지 않는거야?”

“네. 그건 제어가 가능하니 이런 식으로 차단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감정전이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힐데가 예전에… 잭?”

늘 사회성 좋은 미소를 유지하던 잭의 표정이 미묘하게 깨져 있었다. 예현은 그가 작게 ‘그 힐데가?’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 않다. 예현은 이것이 예상보다 큰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사를 맞은 부분을 누르고 있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잭의 표정은 뭔가… 무엇인가 무례한 생각 따위를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정도로 당혹스러운 일인 걸까… 잠시 후, 잭은 기척이 확실히 지워졌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운전이나 복잡한 조작이 필요한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럴게. 아, 혹시 감정전이 컨트롤…이란 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자 터득할 수도 있는 거야?”

“혹 지금 총사령관께서 내보내고 있는 감정이 느껴지십니까?”

예현은 곰곰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전혀 모르겠어.”

“어려우실 겁니다. 어린 동족들 또한 자신이 내보내는 감정을 감각하는 것부터 연습하곤 하니까요.”

“으음…….”

하긴, 없었던 기관이니까. 비유하자면 꼬리 같은 게 생긴 기분이다. 그러나 그 비유에서 예현은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처음 형체변동무기를 접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뇌파 조정이라니, 뇌에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생각했었지.

“그러면, 도와줄 수 있어?”

예현의 말에 잭이 싱긋 웃었다.

“글쎄요, 저보다는 힐데베르트가 더 적당한 인사일 것 같군요.”

“근거는?”

“감정전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게 근거가 될 수 있어?”

“충분하지요. 그는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아니, 책임까지 져야 할 일이냐고…….

잭을 돌려보내고 예현은 전날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그래도 피해자가 자신 하나뿐인 것이 다행이었다. 과학동 전체에 그것이 번졌다면… 코어 밖의 타이탄들이 엄청나게 동요했겠지. 그런 측면은 조금 흥미로웠을 테지만, 아무튼 불필요한 혼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꽤 졸렸다. 기척을 지우는 약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피곤이 겹쳐 그런 것일지도… 둘 다인가. 예현은 일정을 잠시 확인하고 수뇌부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현. 예현.”

몇 시지.

“예현. 집에 가서 자자. 태워 줄게.”

예현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잠깐만 잘 생각이었는데… 창밖이 이미 컴컴했다. 반사적으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예현?”

졸린 눈꺼풀을 겨우 들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다정한 금빛 눈동자.

단잠을 자고 일어나 대부의 눈을 마주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미소가 배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힐데. 여긴 어떻게….”

그런데 힐데의 얼굴빛이 점점 흙빛으로 변했다.

“어, 음. 카이, 잭…이. 가보라고 해서… 왔더니.”

“…힐데?”

그는 이제 확연하게 뚝딱거린다. 흰 머리 사이로 새빨갛게 물든 귀 끝이 선명하게 보였다.

“보과좐, 아니, 보좌관님이. 음.”

“…힐데.”

“네, 아니… 그게.”

예현은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아니, 아니야. 그게 네 잘못은.”

“잭 블랙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긴 했는데. 심한가요?”

“카이, 잭이?... 아, 약을 가지고 간다고… 그럼 기척은, 아… 그렇구나.”

힐데베르트가 띄엄띄엄 말했다. 완전히 정신이 없어 보이는 모양새에 예현은 한숨을 쉬었다.

“힐데. 오늘은 여기서 잘게요. 전 괜찮아요.”

“예현….”

“지금 저를 태우고 운전하시면 사고 날 것 같은데요… 그래 보입니다.”

힐데베르트가 마른세수를 했다. 예현은 몸을 움츠리다가 이불을 덮어썼다.

“…이렇게 해도 딱히 못 막는 거죠?”

“……응…….”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예현은 이불 밖으로 얼굴을 다시 내밀었다. 힐데는 이제 거의 문 가까이까지 멀어져 있었다…. 대자는 작게 한숨 쉬고 그의 대부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힌트 같은 거 없을까요? 제가 연습할게요.”

“글쎄, 나도 좀… 오래되어서. 알잖아. 나는 오래 살았고….”

“그래도, 간단한 거라도요. 풀어놓을 때랑 아닐 때랑 뭔가 다른 점이라던가.”

“아, 으음.”

힐데베르트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굉장히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예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내가 너에게 잠깐 감정전이를 해도 될까? 정말 워낙 오래되어서, 해봐야 감각을 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허락을 구할 일인가. 하긴 예전에 감정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성교육과 흡사하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미루어… 음, 힐데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는 상관 없어요.”

“미안해. 진짜 조금만 할게….”

그리고 잠시 후, 예현은 한 번도 겪지 못한 생경한 감각을 느꼈다.

“됐다.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그 강렬한 감각은 몇 초 만에 끊겼으나, 예현은 그 순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감각이구나. 타인의 감정을 전이 받는 것은 묵직한 액체에 잠겨 드는 느낌, 아니, 그보다는… 상대의 살갗 안쪽, 창자까지 파고들어 어루만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정도로 내밀한 거였나? 잭은 비위가 좋은 거야, 뭐야? 대부의 반응이 오히려 정상인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전이 받은 타인의 감정, 그것도 대부의 감정은… 숨 막히게 따스하고 다정했다. 당신이 나를 빈틈 없이 친애함을 알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를, 뭐랄까, 닫는 느낌으로… 예현?”

예현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인지한 힐데가 당황하여 예현에게 다가왔다. 예현은 손사래를 치며 몸을 뒤로 물렀다. 

“괜찮… 괜찮아요. 처음 느끼는 감각이라, 조금 놀라서….”

“미안해. 내가 너무…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진짜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

힐데가 몸을 멈칫 했다. 예현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도 꿋꿋이 말했다.

“버거우시잖아요. 서- 설명 해주셨으니까, 제가 혼자 좀 해 볼게요….”

힐데베르트는 한참 예현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현은 결국 힐데베르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대부는… 분명 전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제 감정이 줄줄 새고 있을 테니….

“알겠어. 그래도 필요하면 연락해야 해. 언제든 괜찮으니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예현은 제 무릎을 당겨 안았다.

다정함이 서글프다니 다른 이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건네준 사랑의 모양은 자신이 그에게 건네고자 하는 사랑과 선명히 다르기에, 이예현은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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