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코마] 비독점계약

코마츠 TS

사반세기 by 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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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IGO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과거라면 그 사람의 과거가 제대로 된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질문은 대단한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선두에 서서 이끌어가는 한 축인 토리코는 그 불문율을 누구보다도 잘 숙지하고 있었다.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하기에 그는 너무나 강했지만, 그의 과거 또한 평탄하지 않았다. 먹고 먹히는 야생의 전쟁터에서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굶주린 배를 움켜쥐었는가. 독이 든 식재조차 구하기 힘들어 제 살을 뜯어 먹었다.

  그렇기에 토리코는 그가 한번도 물은 적 없고, 코마츠가 한번도 말해준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멋대로 상상했다. 식재료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코마츠라면 분명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컸을 것이다. 아마 피가 이어진 제대로된 부모 형제 아래에서 양육되었겠지. 살아남기 위한 협력이 아닌 첫인상으로 시작되는 제대로 된 인간관계. 먹지 않으면 먹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일에 질투를 하거나 시기심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코마츠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상처받고 목숨의 위험을 받을지언정 남을 해하지 못하는 코마츠의 성품은 그에게 기적 그 자체였다. 스스로 인간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에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코마츠는 이상향이었다. 그녀의 곁에 있다면 최소한의 것만 남고 마모된 자신의 인간성도 지킬 수 있을것이다.

  코마츠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자고 있다. 토리코는 흙바닥 위에 바로 깔린 침낭에서 빼꼼 나온 코마츠의 얼굴을 관찰했다. 하루종일 산을 탄것이 체력에 부쳤는지 누가 없어가도 모르게 곤히 자고있다. 좋게 말해도 예쁜 얼굴이 아니다. 생긴걸로만 따지면 남자인 자신이나 써니와 린 남매가 훨씬 보기 좋다. 그러나 보기 좋다고 맛좋은 식재료가 아니라는 것은 미식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침낭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화상과 자상을 덮은 굳은 살. 무거운 조리기구를 다루다가 생긴 단단한 어깨와 팔 근육. 굵어진 손목. 요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남자처럼 짧은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피부. 코마츠는 여자가 아닌 요리인으로서는 다른 이와 비견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자신의 콤비가 될정도로.

  실력과 인간성이 반비례하는 이 세계에서 예외인 코마츠는 소중했다. 토리코는 그런 코마츠를 콤비로 삼은 자신의 운에 만족감을 느끼며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코마츠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바닥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그녀의 가방을 건드렸다. 간단한 양념과 요리도구, 그리고 구르메 케이스로 가득할 가방에 낯선 물건이 보였다.

  찢어질 듯 바스락거리는 종잇장을 조심스럽게 폈다. 코마츠를 제것으로 생각하는 토리코에게 남의 편지를 본다는 죄책감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편지가 아니었다.

 

  유서

 

  그것도 제대로 자필로 적은다음 잊지않고 지장까지 찍은 완벽한 유언장이었다. 그러나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따박따박 적힌 내용은 제대로 준비했다기엔 지나치게 짧았다.

 

  -만약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 모든 재산은 IGO에 환원한다. 

  -XXXX년 X월 X일. 

  -코마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죽기 전에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이나,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요구, 자신의 짧은 삶에 대한 감상, 그 어느것도 없었다. 토리코가 당연히 있을것이라 기대했던, 콤비인 토리코에게조차 따로 남기는 말은 없었다.

  억샌 손아귀에서 유서가 구겨졌다.

  토리코는 유서를 작성한 날짜를 확인했다. 그와 코마츠가 처음으로 헌팅을 갔던 날이다. 가라라 악어. 콤비가 되기 훨씬 전의 헌팅. 토리코는 그제서야 그때 코마츠에게 유서를 쓰도록 충고한것이 자신임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정말로 쓸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이것을 품에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그가 지켜줄 것이니 이런 유서따위 불필요하다. 그때는, 첫 헌팅때는 토리코 자신이 코마츠가 어떤 요리인인지 몰랐기에 유서를 준비하게 한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그럼, 지금은 코마츠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는가?'

 

  뒤통수를 거세가 맞은 감각이다. 제가 알고있는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을 의지하는 코마츠라면 이런 사무적인 유서를 남길리 없다. 하지만 이 단정한 글씨는 분명 코마츠의 필체이며, 그 유서는 코마츠의 가방에서 나왔다. 저가 알고 있던 코마츠는 코마츠가 아닌가.

  토리코는 유서를 봉투째로 모닥불에 던져넣고 눈을 감았다. 내일 헌팅을 위해선 지금 자야한다. 코마츠의 알지 못한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콤비를 깨는건 말도 안된다. 일단은 헌팅을 마치고, 그 식재로 요리를 해먹으며 말을 걸어보자.

 

 

  다음날 새벽, 코마츠는 가방 앞주머니가 열려 있는것을 발견했다. 방수용 비닐 안의 유언장이 사라져있다. 설마 이 숲에 유언장을 노리는 특이한 생물이 살리는 없다. 설사 있더라도 한마리의 맹수인 토리코의 영역 안쪽으로 들어올리가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한 사람.

  

  '새로 작성해야 겠네.'

 

  코마츠는 못 본 척하며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토리코는 만찬을 즐긴 후 남은 식재를 상인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코마츠에게 유서에 관한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코마츠는 그의 요리를 필요로하는 손님들에게 서둘러서 돌아간 참이다. 아마 잠도 자지 못하고 꼬박 하루를 더 요리해야 할것이다.

  뭐 다음에 이야기하면 되겠지.

  오늘도 코마츠는 헤어질때 잔뜩 아쉬운 얼굴로 '토리코씨. 다음 헌팅때에도 꼭 같이가요. 혹시 배가 고프시면 호텔 레스토랑에 들리시고요!'라며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때까지 졸라댔다. 토리코와 코마츠가 콤비사이가 아니였다면 영락없이 헤어지는 연인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양새다.

  어쩌면 코마츠도 린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지.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이 젊고, 능력있으며 잘생겼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코코만큼은 아니지만 사랑한다며 따라붙는 여성팬들도 많은데 모른다면 바보다. 거기에 코마츠가 추가되었다고 달라질 건 아니다. 만약 코마츠가 사랑에 눈이 멀어 선을 넘으려고하면 자신이 새롭게 선을 그으면 된다. 코마츠도 아주 머리가 나쁜편은 아니니 알아서 처신하겠지.

  그런 코마츠가 일부러 그런 유서를 헌팅때 들고왔을리가 없다. 짐작해보건데, 첫 헌팅때 급하게 쓴 유서를 까먹고 아직도 들고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도 이해가 간다. 그땐 콤비도 아니였으니까.

  토리코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편이 덜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불쑥 찾아온 코코가 물었다. "너는 이대로 괜찮은거야?"

  코마츠는 영문을 모르겠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괜찮지 않은것이 무엇이 있을까. 사천왕중의 한명인 토리코와 콤비가 되면서 그전이라면 만나보지 못할 진귀한 식재료를 다루게 되었다. 자신의 요리를 먹은 토리코를 포함한 사람들의 반응도 과분할 정도로 긍정적이다.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최상의 상태이다. 그런데 어째서 코코씨가 안부를 묻는것인가.

  코코는 망설이다가 코마츠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춘 후 다시 물었다. 코마츠는 맞잡은 손을 빼지 않았다.

 

  "토리코는 너를 단순히 콤비로 볼 뿐이야."

 

  싸구려 타블로지에서는 토리코와 코마츠를 엮어, 마치 코마츠를 이 세기의 신데렐라마냥 묘사한다. 팔리는 것을 제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미형에 유명한 미식가와 그와 만나기 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요리사라는 남녀 콤비는 소설을 쓰기에 완벽한 소재였으니까. 만약 정말 토리코와 코마츠가 그 소설마냥 콤비를 넘어선 사이였다면 코코도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말도 안되는 풍문의 희생자는 코마츠가 될것이다.

  코마츠가 토리코를 사랑한다할지라도 토리코는 상관도 하지 않을 것이며, 코마츠가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남의 눈에는 유명인을 앞세워 이름을 높힌다음 남자를 버린 악녀처럼 보일것이다. 코마츠가 사랑하는 남자를 포함해서.

  그리고 코마츠는 상처받겠지.

  코코는 자신의 손을 맞잡는 상냥한 코마츠가 그렇게 되는것을 원치 않았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코마츠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코코는 코마츠의 커다란 눈동자에 집중했다. 검은 동공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코코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십초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코코는 놀랐다. 지금 코마츠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코마츠군."

  "네."

  "토리코는 너를 멋대로 휘두르고 있을뿐이야."

  "코코씨의 독설은 여전하네요."

 

  그래도 토리코를 좋아한다는 의미일까.

  상상만으로도 독이 뇌까지 침범당한 감각이다. 코코는 이대로 코마츠의 눈과 코와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제 집에 가져다 두고 싶어졌다. 독인간이라는 악명과는 다르게 코코는 그루메 헌법에 위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깨끗한 인간이다. 아니 적어도 흔적을 남긴 적은 없었다. 거기에 써니나 제브라와는 다르게 코마츠와 콤비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친적도 없었다. 흔적만 잘 지운다면 그를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도 킷스가 없다면 찾아오기 힘든 외진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참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괴물을 인간으로 보는 '인간' 코마츠였으니까.

  충동을 참고나니 새로운 희망섞인 의문이 떠올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코마츠군도 토리코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것인가?' 그럴리가 없지만. 상냥한 코마츠가, 인간인 코마츠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다. 

 

  "코마츠 쉐프!"

 

  그리고 그 순간 주방에서 누군가가 코마츠를 찾았는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려퍼졌다. 급하게 돌아간 고개에 코코는 아쉬움을 느끼며 손을 놓았다.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는 것이 옳을것 같다. 설사 긍정적인 대답을 듣는다해도 자신은 아직 그것에 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저 코코씨."

  "가 봐."

  "저 식사라도 하고가시는게,"

  "약속이 있어서."

 

  거짓말이지만. 너를 만나러 집에서 나왔다는 것은 숨기고 싶으니까. 코코는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비웃으며 말했다.

 

  "아. 코코씨는 바쁘시니까. 죄송해요."

  "아니야. 그럼 다음에 보자."

  "네!"

 

  코마츠는 급하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복도에 멀뚱히 서있던 코코는 그 뒷모습이 사라지자 비로소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자신은 얼마나 모든 감각을 코마츠에게 집중한 것인가. 얼마나 초조하게 그녀의 반응을 살폈으면, 자신의 영역에 저 위험한 짐승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건가. 그가 살아왔던 먹고 먹히는 세계였다면, 진즉에 짐승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토리코."

 

  꺾이는 코너에 숨어있던 푸른 머리의 거대한 사내가 그제야 제 모습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냈다.

 

  "코코... 너..."

 

  토리코는 자신이 왜 코마츠와 코코의 대화를 들으며 숨었는지, 왜 코마츠가 주방으로 돌아간 지금에서야 몸을 드러내는지 몰랐다. 이성이 아닌 본능이 시킨 행동이었다.

 

  "코마츠에게 무슨 말을 한거야."

  "글쎄."

 

  차마 들릴까 큰 소리를 내지 못한체 토리코는 코코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코코는 힘없이 끌려가며 가볍게 대답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신과 코마츠군 사이의 대화를 전부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비록 그간의 게으름 탓으로 미식가로서의 이름값은 토리코보다 낮다고할지라도 코코 그도 토리코의 형제이자 같은 사천왕중의 한명이었으니까. 

  

  "나는 코마츠군에게 우정의 충고를 해주었을 뿐이야."

 

  코코는 멱살을 잡은 토리코의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엇비슷한 악력이 팽팽하게 대치하다 토리코가 손을 풀면서 끝났다. 

  

  "나가서 이야기하자."

  "못 들었어?"

 

  내가 약속이 있다고 코마츠군에게 말한거, 분명 엿들었을건데? 서로를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가장 잘 아는 형제인 그들이다. 토리코는 코코가 말하지 않은 뒷말을 능히 짐작하였다. 

  그럼 이만. 코코는 끝까지 웃는 모습으로 뒤돌아서 출구로 걸어갔다. 토리코는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혀를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코코를 따라가 끝까지 추궁하는 꼴불견을 보이거나, 애꿎은 코마츠를 향해 화풀이를 할것같았다.

  머리속에서 코마츠의 짧은 유언이 떠나질 않았다.

 

 

  백전노장인 세츠노는 감히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게에 들어오는 애송이를 향해 깔깔 비웃어주었다. 오늘 식당을 열거란 말에 자신의 콤비를 대려오겠다던 놈이 혼자왔으니, 그 사정은 안봐도 뻔했다. 바람을 맞은거지. 천하의 미식 사천왕 토리코가.

  토리코와 코마츠 콤비에 옛날 옛적 자신과 파트너였던 지로를 겹쳐보곤 했던 세츠노에게 이것은 썩 유쾌한 이벤트였다.

 

  "코마츠군과 같이 온다더니?"

 

 코마츠의 몫의 전체까지 입안으로 쓸어담는 토리코를 향해 세츠노는 운을 띄웠다.

 

  "6성 호텔 주방장이라..."

  "이치짱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안가르쳤나 보네."

  "바쁜건 사실인데..."

  "직접 들은건 아닌게지? 코마츠군이 내 초대를 거절할리가 없으니까."

 

  코마츠는 식재료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선배 요리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춘 요리인이니까.

 

  "코코... 그 자식이."

  

  세츠노는 토리코의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이름에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마냥 흥미진진해졌다. 자고로 젊은것들은 이리저리 사랑때문에 마음고생도 해봐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오백년 넘게 산 그녀에게도 인생이란 짧고 아까운 것이었으니까.

 

  "삼각관계인게냐?"

  "엥?"

 

  잔뜩 기대하고 물었는데, 반응은 영 시원찮다. 세츠노는 눈을 모로 떴다.

 

  "벌써 빼앗긴건가. 그래서 콤비 해체 기자회견은 언제 할 예정인게야?"

  "아니 갑자기 왜 그런말이 나오는건데!"

  "코마츠군에게 차였으니, 콤비는 해체지."

  "안차였어! 아니 그 전에 왜 다들 나랑 코마츠를 엮지 못해서 안달인건데! 코코 자식도 그러고!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세츠노는 흥분한 토리코의 입에 방금 완성한 교자 1인분을 통째로 집어 던졌다. 이거 먹고 흥분을 가라 앉힌다음 천천히 말해보라는 의미였다. 

 

  "남녀 사이란 알 수 없는게지. 특히 콤비처럼 서로를 철썩같이 믿고 의지해야하는 사이라면."

  "하지만 코마츠는 예외야."

 

  육즙과 마늘향이 얇은 피 안에서 어우러지는 예술을 느끼며 교자를 꿀떡 삼킨 토리코가 딱잘라 말했다. 코마츠와 자신은 살아온 세계가 다르다. 자신은 짐승이었으며, 코마츠는 인간이다. 써니의 여동생인 린이라면 모를까, 짐승인 자신이 인간과 남녀의 정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예외?"

  "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살아온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요리 잘하는 여자잖아. 콤비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무리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제 아픔을, 과거를, 흉폭함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것이 아닐까. 공감받고 싶어하는건 당연한 욕심이다. 그리고 토리코가 생각했을때, 코마츠에게 그러한 조건은 무리였다. 인간이기에 곁에 두고 싶지만, 인간이기에 연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노인는 어린애 다운 오만한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어린애다운 발상이었다. 인간의 감정이 그렇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였다면 세상은 진즉에 좀더 엉망이 되었겠지. 그리고 그 어린애는 그만큼 사람을 보는 눈도 없었다. 평범이라. 식재료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여자에게 '평범'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리가 없다.

 

  "먹고 먹히는 세계라? 재미있는 말이구나. 그래, 남들이 보기엔 네녀석 포함한 사천왕들은 지옥에서 태어난 악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세츠노에게는 그저 꼬마 도깨비처럼 보일뿐이지만.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던 토리코는 세츠노의 어조의 변화를 감지했다. 

 

  "먹고 먹히는 세상만이 지옥은 아닌게야."

 

  세츠노는 깎을 필요도 없이 닳아버린 코마츠의 뭉툭한 손끝을 생각했다. 그것은 벌써부터 노인인 자신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토리코는 또 다시 코마츠의 짧디 짧은 유언이 생각났다. 어째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코마츠의 유서는 자신의 것과 한자도 틀림없이 똑같았다.

 

 생각에 빠진 토리코에게 세츠노는 마지막 디저트까지 차례대로 대접했고, 그는 그것을 모조리 먹어치운 다음 제 값을 지불하고 나섰다. 발걸음은 자연히 IGO 직속 호텔로 향했다.

 

  방금 만찬 준비를 막 마친 코마츠는 토리코를 기쁘게 맞았다. 토리코는 인사후에 가타부타 말없이 곧바로 물었다. '나와 열애설이 도는게 괜찮아?'라고. 코마츠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대답은 토리코가 기대하거나 원한것이 아니었다.

 

  "아, 그런것까지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단순히 갑작스러운 호의에 대한 감사였다. 열애설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였다.

 

  "하지만 괜찮아요."

 

  코마츠는 정말로 괜찮았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예쁘지 않다. 그렇다고 애교가 많거나 살가운 여성스러운 성격도 아니다. 그런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랑받은 적이 없었다. 동기인 타케와 잠시 사귄적이 있지만, 결국 코마츠의 성격에 질려 차였었다. 사실 그것은 코마츠에게 연애라기 보다는 사랑받지 못한 고아 둘이서 열심히 상처를 햝아주던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렇기에 코마츠는 포기했다. 인간을 사랑하는것도 사랑받는 것도.

  자연히 눈은 매일 다듬고 요리하던 식재로 돌아갔다. 식재만은 그녀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주었다. 일 대 일로 대응되는 관계에 그녀는 빠져들었다. 그렇게 코마츠는 오성 호텔의 쉐프가 되었고, 사천왕인 토리코의 콤비가 되었다.

 

 "정말이에요. 저는 '그런 것'을 포기했는걸요."

 

  코마츠는 한줌의 아쉬움 없이 덧붙였다.

  토리코는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리며 저녁밥은 필요없다고 말꼬리를 돌렸다. 세츠노 할멈의 가게에서 이미 먹었다고. 저만빼고 먹었다며 입을 삐죽 내미는 코마츠에게 토리코는 친절하게 메뉴와 감상을 읊어주었다. 죄다 듣더니 기어코 비슷한 메뉴를 만들어 보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코마츠에게 홀에서 기다리겠다 말한 토리코는 그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자신이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자각했다.

 

  코마츠도 구르메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미식에 매료된 인간'이었다. 재산도, 사랑도, 가족도, 친우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미식'아래에 두는, 미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것도 하찮게 여기며 기꺼이 거세시키는.

  그녀에게 사랑이란 식재에게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거기에 그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녀에게 '평범한 인간'이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평범하다면, 자신도 평범할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자신과 같은 인종임을 깨달은 순간, 제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보답받는 날은 없겠지.

 

  "아... 그래도 코코보다는 나은가."

 

  코마츠가 저를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하지 않으니까. 코리코는 차가운 바닥위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은 후였음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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