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다나] 장례식

이영싫이 완결나기 전에 썼습니다.

사반세기 by 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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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와의 첫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그것을 아쉬워해본적 없었다.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앞으로도 지겹도록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사람과의 사소한 과거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특히 그처럼 사소한것에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무심한 성격이라면.

"서장님."

그러나 그런 그라도 오늘 지금 만큼은 그 사소한 사실이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로웠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너? 은행에서 처음 보고 스카웃을 결심했지.) 던졌던, 기억나지 않는 첫만남이 기억속에 없는 것이 울만큼 억울해졌다.

"서장님."

그때는 서장과 부하직원이 아니라, 히어로와 일반시민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아쉬워졌다.

"대답... 해주세요."

기억나지도 않는 첫 만남이 그리운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사사는 저 답지 않게 굵은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리며 오열하는 후배를 바라보았다. 후배에게는 처음 겪은 동료의 죽음일 것이다. 자신도 한팀이었던 선배들이 죽었을때 저렇게 울었던가. 그때의 감정은 너무나 격렬하고 특이해서 과거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없었다. 슬픈것은 아니지만, 마냥 슬퍼만 하기에는 자신은 살아있었다. 

나가의 손아귀가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하고 장례식장 바닥만을 긁었다. 무엇을 쥐고 싶어하는 것인지 나가 그 스스로도 몰랐다.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 설사 지구 최강이라는 말도 안되는 품질 보증 딱지가 붙은 자신이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을 것 같던 여자의 혼이라고 쥐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사사는 떨리는 나가의 등에 손바닥을 얹어 두드려 주고 싶었다. 의지가 되던 상사의 죽음은 그도 무척 슬프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후배를 위로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까마귀 인간인 그의 본능이 경고했다.

그리고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을 이용하고자 하는 개인 혹은 단체는 그 수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가장 강하다 할지라도, 그 힘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세력도 카리스마도 경험도 없는 고등학생은 이용을 당할 운명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를 가장 처음 발견한것은 그렇다할 욕심도 없으며, 능력자라는 관점에서 보았을때 지극히 상식적인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였다. 무엇보다고 그녀는 적어도 무력이라는 점에서 그 생물처럼 최고라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생물의 목을 죄고 방향을 일러주는 족쇄였으나, 그것은 느슨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든든한 가장 '최선'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족쇄가 풀렸다.

스푼에 남은 이들, 같은 팀인 혜나와 사사를 포함한, 이들 중에서 다나보다 나가에게 가까운 이들은 있다. 하지만 다나보다 나가에게 의지가 될만큼 강한 이는 없었다. 그의 손 대신에 자신의 손을 더럽히겠다고, 그가 하지 못한 일이라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스푼은 나가의 새로운 족쇄가 되어 줄 수 없다.

사사의 손은 나가의 몸에 닿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는 듯 나가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신이 히어로임을, 아니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었다.

바다를 가르고 지형을 바꾸는 힘을 가진 나가가 택할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았다. 깊고 깊은 심해, 높고 높은 상공. 숨조차 쉬기 힘든 곳에 다달아서야 나가는 비로소 제 울분을 토할 수 있었다.

"죽고 싶어요."

서장님. 죽는다면 서장님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사조차 짐작하지 못한 또 다른 사정이 있다면, 뜬금없게도 나가는 다나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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