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Ensley의 억세게 불운한 하루
그런 날도 있는 법 아니겠어
사람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한 하루가 있는 법이다. 엔슬리 P. 기어하르트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통이 일었던 것이다. 저혈압으로 인한 두통이라고도 보기 어려웠다. 누군가 머릿속에서 야무지게 쥔 주먹으로 짱돌을 쾅쾅 찍어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고통이 차마 생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의 두통이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몸 관리를 하지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그 날만 제외하면 이런 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일만 하는데 스트레스며 힘들 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어찌되었든, 엔슬리의 ‘그날따라 운이 좋지 않는 날’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공구니 톱니바퀴들을 만지다보면 손에 닿는 것이 기계인지, 살아있는 것인지 모호해지는 때가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제 스스로가 기계라고 생각되거나. 하지만 생각해보라.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기상해서, 똑같은 시간에 일자리에 들어가, 똑같은 시간에 밥을 챙겨 먹고, 똑같은 시간 동안 노동을 하는 스스로가 기계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지를. 궁극적인 사람의 형태가 기계와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은 이유다. 각설却說, 그때의 엔슬리는 기계적으로 실험의 이름과, 임상 실험의 회차수, 그리고 이번에 투입 될 모르모트의 종을 외치는 팀원들의 영혼 없는 발표나 들으며, 가엾은 모르모트를 기계에 넣는 걸 지켜고 있었다.
그리고 엔슬리가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미숙한 팀원 하나가 미처 닫지 못한 기계 속에서 새하얀 몸집의 새빨간 눈을 가진 쥐가 튀어나왔다. 생쥐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엔슬리에게 이빨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실험 생쥐의 이빨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고 단단해서… 스치기만 해도 피를 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엔슬리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무사히 그 직전에 몸을 틀어 상처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엔슬리의 실험복 소매에 달려있었던, 어여쁘게 세공된 보석 커프스가 엔슬리를 대신한 생쥐의 희생양이 되었다. 차가운 실험실 바닥에 때에 맞지 않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커프스를 엔슬리는 거칠게 욕이나 몇 번 질겅질겅 씹으며 주워들었고, 나머지 팀원들은 서둘러 실험쥐계의 탕아를 케이지에 집어넣었다.
빌어먹을. 이거 다시 꿰매는 법 모르는데.
아침부터 더욱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엔슬리는 히스테릭하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이만 접고,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어요.
그렇다고 일찍 들어간 엔슬리의 하루가 평탄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공동연구실에 잠시 보관하고 있던 개인 연구작은 누군가 창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퇴근했는지 안의 부품이 상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했고, 수정하던 설계도는 갑작스러운 두통에 만년필이 삐끗해 잉크가 번지고 말았다. 10살때부터 제 손처럼 다루던 공구에 머리카락이 끼어 ―젠장!― 동료가 아무래도 잘라내어야 할 것 같다는 말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배식된 저녁은 형편없었으며, 심지어는 샷을 3번 더 추가해야 그나마 먹을만한 커피마저 그날 커피콩이 뚝하고 떨어져 마실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일을 한 번에 밀려온다던가. 제 꼴이 딱 그 짝이었다.
의무실에 들러 두통약이나 받아온 엔슬리는 제 침대에 누워 마지막으로 걸러 도착한 편지를 확인했다. 형식적인 안부 편지가 지긋지긋했다. 실물은 보지도 못하면서,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꼬불꼬불한 필기체들의 글자들이 꽤나 위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과, 제 언니와, 아카데미 동기생들의 얼굴이 흐릿했다. 안경을 벗고 흐릿해진 시야에 어느새 익숙한 천장이 들어왔다.
….
…….
……….
그토록 좋아하는 일만 하는데.
스트레스며, 힘들 일이며.
그럴 게 어디 있겠어.
….
…….
…….
젠장, 난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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