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
저도 의미가 있나요?
“…하하.”
그런 생각이 든다.
너와 나는 어쩌면 이미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헛웃음. 혹은 자조. 비웃음일지도 모른다. 감정들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때는 꼭 소리가 난다. 흐느끼는 소리, 숨을 참는 소리, 혹은 웃음 소리.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온다. 지금 끔찍한 상황이네, 우리 둘 다에게… 그런 실없는 소리를 내뱉고 싶어질 만큼 지금 이 상황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내가 있다. 표현한다면, 현실감이 없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어디서 틀렸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틀렸다는 말에 끝없이 아득해진다.
최선을 다할게요.
그 문장 자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 말을 입에 담을 때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사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서 그대로 졸도해버릴 것 같았는데, 그 순간을 넘길 수 있는 말은 그것 말고는 알 수 없었다. 뱉어내고, 삼켜냈으나 도저히 씹어낼 수는 없었던 말이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더 잘할 수 없음에도.
언젠가부터는 그 말을 뱉어내는 순간 느꼈다. 이대로 끝이구나. 예정된 실망이 제게로 쏟아질 날을 기다리며 매일을 시한부 환자 같은 낯으로 버텨낸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하루도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아간 적이 없다. 목구멍에 음식물을 넣을 때마다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치는 법을 몰라서 하나씩 더 실망할 말을 뱉어내고, 후회하고…
“…네가 싫어하는 그 서, 성격 말이야….”
겨우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정말이지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습다. 더 깎일 자존심이 있었다는 게 놀랍고, 더 슬플 일이 있었다는 것도, 이 모든 일이 모든 사람을 혐오하는 제 ■■■가 아닌 오로지 네 입에서 쏟아진 말로 이루어진 비극이라는 것이 놀랍다. 상처라는 건 가까운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는, 어느날 정말 우연히 만난 사람의 말도 아플 수 있구나.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차라리 네가 모두를 싫어했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네가, 내가 못났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했다면 좋았을걸. 손톱을 세워 제 허벅지를 긁어내린다. 혹시 울어버린다면 통증 탓이라고 둘러대기 위해서였다. 하얗고 삐쩍 마른 다리에 생기는 붉은 색 자국에 헛웃음을 뱉어낸다. 이렇게 힘을 짜내도 고작 이정도의 아픔인데. 도대체 사람들은 말 하나에 얼마나 많은 힘을 투자하는걸까?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내야…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는걸까?
“…나도 싫어해. ”
“부, 분석적이고, 확인 받고 싶어하고, 미움받기 싫어하지만 결국은 치, 치밀하지 못한 그 성격… 그 중에 본질적인 건 단 하나밖에 어, 없어. 전부 만들어진거야. 전부…”
“…조, 좋은 배우가 되, 되고 싶어서…”
정답은 평생을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다. 모두가 정답을 아는걸까? 나에게만 어려운 걸까? 나만 이렇게 살아가기 버거운거라면, 나는 왜… 나는 뭐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망가졌다는 생각만 든다. 모든 사람들이 다 틀렸다고 말했으니까, 노력했다. 정말 죽을만큼 노력했다. 그게 뭐든지, 정말 무엇이든지 간에. 겨우 정답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버거워서, 힘들어서. 그래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답에서 숨이 막혀서, 다른 정답이 있을거라고 믿었다. 나는 영영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네가 말하는 나는, 역시나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미움받는,
본래의 나조차 아닌,
완벽한 실패작일 뿐이라서…
숨이 턱 막힌다.
“…잘나고 못나고가 무, 무슨 상관이냐니…”
“…그러게, 모, 모르겠어. 뭐가 주, 중요한지. 모든 사람과 내가 저, 전부 다 다른 이유로 맞지 아, 않아서…”
나는 무수히 많은 정답 중에서 오답만을 찾아내는 사람이라서. 맞은 게 하나도 없는 빵점자리 시험지라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정답으로 채우려고 해도 결국 내 정답은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아.
내 정답은 결국 오답이잖아.
언제나, 남은 나의 평생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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