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제자들

1화

차원 이동

주현은 원래 21세기 지구에서 아주 잘살고 있던 평범한 30대 남성이었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법이나 부리며 신의 존재에 익숙한 그런 삶을 태어났을 때부터 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제는 다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지구에서의 삶은 주현이 33살의 어느 날을 맞이했을 때 한 존재로 인해 박살 났다.


“그럼 내일 봐!”

“안 봐!”

푸하하하!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다음 날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이라 먼저 가 봐야 하는 주현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매정한 말에 상처받은 척 흑흑거렸다. 친구들은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주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장 술판에 뛰어들었다.

술집을 나오자 주현을 둘러싸고 있던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는 금세 없어져 버렸다. 주현은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며 밤길을 느릿하게 걸어갔다. 주현의 눈에 버스 정류장에 걸린 ‘빌리리아 연대기’ 광고가 보였다. 주현과 친구가 만든 세 번째 텍스트 알피지 게임이었다. 주현이 친구와 창업한 것도 이제 7년째였다. 7년 전, 한국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갓 졸업했던 두 사람은 취업하기 전 딱 1년만 스타트업을 해보기로 했다. 기본 자금은 정부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돈으로 했다. 어차피 직원도 주현과 친구, 두 명뿐이었다. 그렇게 텍스트 알피지 게임을 개발해 큰 기대 없이 모 게임 구매 사이트에 등록한 두 사람은 4개월이 지나자 갑자기 올라가는 수익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당시에는 사람들 취향이 갑자기 바뀌었나 싶은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갑자기 수익이 올라갔던 이유가 모 SNS에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익이 오른 것은 좋지만, 덕분에 느긋하게 작업하고 있던 시나리오들을 황급히 써야 했던 두 사람은 거의 날벼락을 맞은 거나 다름없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주현은 친구를 달래고 어르고 혼내고 해서 6개월 만에 시나리오 4개를 집필했다. 대학도 졸업해서 시간도 많겠다, 거리낄 게 없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주현은 첫 번째 텍스트 알피지 게임 ‘Peaceful Village’를 떠올렸다. 처음 만든 게임이라 그런지 출시된 지 7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모든 캐릭터가 선명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Peaceful Village’는 잔잔한 힐링 게임이었다. 루트를 잘못 타면 주인공과 조연들이 싹 다 죽는 배드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메인은 아니었다. 당연히 게임 소개는 힐링 게임이니만큼 배드 엔딩을 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가끔 이 루트를 탄 유저들이 ‘힐링 게임이라며요ㅜㅜㅜㅜㅜ’, ‘이게 힐링이라고???? 킬링이잖아요!!!!!!!’ …등의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대부분의 유저가 힐링 엔딩을 봤다. 그래서 종종 튀어 나오는 울부짖는 유저들은 소수의 의견으로 취급 받았다.

업데이트를 통해 삽화를 추가하면서 수익은 더 늘었다. 주현은 그걸 보며 ‘역시 글보단 그림이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했다. 뭐, 그것도 이제 다 옛날이다.

주현은 긴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심에서 바라보아서 그런지 별이 하나도 없었다.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서 보는 밤하늘은 별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다시 앞을 보는데, 시스템 창 하나가 그의 눈앞에 떴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고 싶으세요????]

“뭐야 이건.”

[뭐긴요, 시스템 창이죠!]

“……? 시스템 창?”

무심코 던진 말에 대답이 돌아오자 주현의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시스템 창은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현의 시야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활발한 움직임에 음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나고 발랄한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주현은 시스템 창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시스템 창을 통과하려는 그 순간, 반투명하던 창이 불투명하게 변하더니 주현의 머리가 쾅, 하고 시스템 창과 부딪혔다.

“악,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앗, 죄송해요ㅠㅠ 그렇지만 제 말에도 대답 안 하고 가려고 하시길래!]

“대답해 줘야 할 게 뭐가 있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싶으시냐고 여쭤봤잖아요!]

“아…….”

그랬지. 시스템 창의 현란한 스텝에 까먹었지만. 주현은 고민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을 섭렵한 주현의 감이 여기서 어떤 제안이라도 수락한다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현은 감을 무시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째서예요!!!!!ㅠㅠㅠㅠ 밤하늘 이쁜데ㅠㅠㅠㅠㅠㅠ]

“어딘데. 알려줘, 가게.”

[…….]

역시나. 주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시스템 창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확 숙인 채 지나가려고 했다. 불투명해진 채 셔터처럼 잽싼 움직임으로 내려온 시스템 창에 머리만 아프고 탈출은 실패했지만 말이다.

“수상한 애 말을 따를쏘냐.”

[……정말요?]

“당연한 거 아니야? 네 말 따랐다가 뭔 일이 생길 줄 알고.”

[힝…….]

어디서 귀여운 척을. 주현은 얼굴을 찡그렸다가 풀었다. 지금 시스템 창과 10분째 씨름 중이었다. 나 집 가서 자야 한다고! 내일 출근이라고! 직장인에 가까운 프리랜서는 집에 가서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몰라준 시스템 창은 끈질기게 주현에게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추천 중이었다. 결국 주현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밤하늘 보러 가자!”

[헉, 정말요? 야호! 잠시만요~]

시스템 창은 주현의 대답을 듣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게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아서, 주현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창과 방패의 대결 중이었는데 갑자기 상대가 사라져 막을 게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집에 가는 것을 방해할 장애물이 없기에 주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발을 떼는 순간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상한 오두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주현은 그제야 감을 무시하고 시스템 창의 제안을 수락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의 주변은 이상한 오두막이었다. 그리고 창문 너머 밤하늘은 아주…… 반짝거렸다.

주현은 머리를 부여잡고 싶었다. 별을 보고 싶긴 했는데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시스템 창은 어디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제발 사라져 줬으면 했던 게 지금은 그 존재가 절실했다.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시스템 창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이쯤 되자 주현은 시스템 창이 사실 깜짝 카메라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 창문을 열고 나가면 지구 어딘가의 오두막인 거지……. 오두막이 있을 정도면 유럽이나 러시아가 아닐까…….

주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았다. 문은 바로 뒤에 있었다. 그저 무생물일 뿐인 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던 그는 반색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파지직!

그리고 찌르르 통하는 전기에 황급히 손을 뗐다. 평범한 갈색 문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파란색 마법진이 비쳤다.

“……이게 뭐야.”

주현은 이 상황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아니, 확실했다. 이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주현과 친구의 첫 작품인 ‘Peaceful Villag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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