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으로 빠져들다
그 날도 새벽제비는 몇 일째 동굴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블레이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래. 그 날도 새벽제비는 동굴에 들어갔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랐다. 블레이드가 새벽제비에게 소리쳤다.
그래, 그래서 그 아이도 무언가에서 도망가려고 보육원에 맡긴 거겠죠!
새벽제비의 표정이 굳는 것을 쉘터가 보여주었다. 그러나 굳으면 뭐 어쩔 것인가. 새벽제비는 지금껏 블레이드와의 대화를 피해왔다. 피하는 것은 그의 성격이었다. 답답했다.
아니에요? 아니면 저하고 말을 해요. 우리 계속 어긋나고만 있잖아요. 그토록 예민한 당신이 못 느꼈을 리가 없습니다.
새벽제비는 딱딱한 표정 그대로 돌아섰다.
또 도망입니까? 지겹지도 않아요?
그렇게 그는 집 밖으로 나갔다. 그 때 새벽제비는 슈였다. 블레이드는 한숨을 내쉬면서 식탁에 대충 걸터앉았다. 오래된 식탁은 위태로운 소리를 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새벽제비는 블레이드를 피해왔다. 슈일 때도 그랬지만, 하이옌일 때는 아주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버렸다. 다녀온다는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동굴의 흙먼지를 쓸고 정리하며 새들이 둥지를 못 틀게 했다. 슈가, 하이옌이, 새벽제비가……. 도시에서 살겠노라고 블레이드에게 말했을 때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새벽제비가 갸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이 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는게 힘들다.
그리고 블레이드의 뺨을 서글프게 감싸주었다. 입맞춤을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새벽제비는 방금보다 더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때문에 매일매일을 견딘단다. 너를 매일매일 보고싶어서.
도시의 언어는 새벽제비의 언어가 아니었다. 블레이드는 그 때 그걸 알았다. 그를 위한다면 새벽제비를 동굴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알았다. 그를 견디게 하는 것이 블레이드이지만, 동시에 그를 괴롭히는 것도……. 블레이드 자신임을, 알았다. 블레이드는 그래서 해결하고 싶었다. 동굴에 같이 가서 자연을 즐기다 돌아오자고. 그러나 새벽제비는 계속 회피하기만 했고 급기야 블레이드 몰래 동굴로 가 며칠 씩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새벽제비가 가출했을 때, 블레이드는 울며 삼 일 동안 그를 찾아다녔다.
당신은 겁쟁이에 비겁자에요.
블레이드가 참다 못해 새벽제비에게 말했다.
당신은 약하고, 아이를 온전히 지켜낼 수도 없는데 욕심을 부렸고, 의무를 회피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기 연민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고 앉아있죠. 그래, 그래서 그 아이도.
새벽제비는 얼굴을 굳히고 바르르 떨었다. 덫에 걸린 새가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도 무언가에서 도망가려고 보육원에 맡기기로 결정한 거겠죠.
새벽제비의 손이 꽉 주먹을 쥐었다. 한 대 친다면 기꺼이 맞아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제비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선택을 했다. 새벽제비는, 슈는, 그대로 블레이드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그 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동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지만, 블레이드는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무시했다. 대신 단지 내 화단에 허락을 구하고 꽃씨를 다섯 송이 심었다. 쉘터의 도움으로 꽃씨 설명을 읽을 수 있었고, 심은 곳 마다 작은 팻말을 꽂아 보지 않아도 물을 줄 수 있게 해놨다. 부드러운 흙에서 부드러운 싹이 피어났다. 블레이드는 손 끝으로 그것을 만질 수 있었다.
쉘터, 이것을 비춰줘.
어지럼증이 곧 그를 덮쳤다. 그러나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방금 뿌린 물을 맞은 새싹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곡된 색깔, 울렁거림,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경이로웠다. 작은 새싹이 다섯 송이 늘어서있었다. 같은 단지에서 사는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저마다 칭찬을 했다. 블레이드는 그 속에 새벽제비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가 돌아온다면 화단을 가꿀 수 있게 중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벽제비는 화단에서 꽃이 피어날 때 까지 오지 않았다.
곧 꽃이 필거야.
블레이드가 쉘터에게 말했다. 쉘터는 말이 없었다. 그의 고스트는 항상 말을 안 했다. 추측으로는, 블레이드가 고장났을 때 고스트도 망가지며 음성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정말이었을까. 정말이 아니면 어쩔 것인가. 쉘터는 말을 하기 싫어했고, 블레이드는 그를 받아들였다.
꽃이 피면, 그걸 꺾어서 새벽제비에게 가야겠어.
그리고 쉘터를 받아들인 것처럼 새벽제비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 명은 나서야했다. 새벽제비는 회피하는 성격이니 자신이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수 밖에 없었다. 블레이드는 항상 자기가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이 불만이었다만, 항상 그는 잘 참아왔다. 꽃봉오리는 이틀 뒤에 만개했다. 컵처럼 생긴 꽃이었다. 뒤집어서 본다면 드레스 같기도 했다. 그는 무언가를 길러낸 것이 처음이었다. 새벽제비가 보았다면 자랑스러워했을까. 블레이드는 꽃의 향기를 맡고, 꽃잎을 만지며 자신이 길러낸 것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줄기를 무참하게 잘라 꺾어버렸다. 끈적한 진액이 손에 묻었다. 희게 뜬 풀냄새가 진동했다. 불쾌했다. 쉘터를 통해 본 손가락에는 별 다른 것이 묻어있지 않아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하며 바지에 손을 슥슥 문댔다.
동굴 속에서는 기괴한 냄새가 났다. 블레이드의 후각은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그도 눈치챌 수 있었다. 낮게 앓는 소리. 새벽제비는 아프다! 그는 아파서 블레이드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블레이드는 새벽제비에게 고스트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남은 절벽을 올라갔다. 거의 다 와서 두어번 떨어질 뻔 하기도 했다.
새벽제비……. 슈? 하이옌?
새벽제비는 동굴 그늘 안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쉘터는 동굴 안을 꼼꼼하게 비춰주었다. 블레이드는 잠시 멈추고 이미지들을 받아들였다. 동굴 바닥과 벽에 새까맣게 눌러붙은 액체가 묻어있었다. 블레이드는 쉘터에게 자신의 시야와 일치하게 이미지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시야가 움직이면서 어마어마하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있죠? 괜찮으면 답 해줘요.
블레이드는 꽃을 바닥에 놓았다.
당신에게 보여줄 것도 있고,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어요.
그 말에 새벽제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동굴 벽에 몸을 기대며 몸을 웅크렸다. 색깔이 온전하지 않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세피아 빛으로 바랜 저것은 피였다. 바닥에 묻은 까만 액체도, 새벽제비의 입가를 타고 흐른 것도, 옷을 온통 물들이고 있는 것도, 다 피였다. 블레이드는 당황해 손을 짚었다. 그 바람에 바닥에 놓은 꽃이 짓뭉개져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블레이드가 덜덜 떨었다. 새벽제비의 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늘에 가린 타르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네가 없는 동안,
새벽제비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지쳐있었지만 뿌듯함과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블레이드는 믿지 않았다.
해산을 했단다.
달려오는 사람. 긴 망토와 한쪽 팔에 안은 아이, 정신이 나간 듯 광기로 번득이는 눈. 블레이드는 팔을 뻗어 그 사람을 멈춰세웠다. 순순히 멈추지는 않았다. 그를 뚫고 나가려 몸부림쳤다. 그렇게 몸부림 칠 때 마다 옆구리에서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졌다.
디어……!
블레이드가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소리쳤다.
디어 스승님께서 보냈습니다, 새벽제비!
잘못 된 사람을 찾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눈에서 차차 이성이 돌아왔다. 치료도 못하고 아이를 빼내 무작정 달려 도망가던 수호자는 아는 이름이 들리자 일순 긴장이 풀렸는지 크게 휘청였다.
빨리, 정신 차리세요.
블레이드는 힘을 모아 자신의 육신을 연장해 방벽을 펼쳤다. 반투명한 벽이 그들과 몰락자 무리를 가로막았다. 새벽제비는 비틀거리며 아이를 데리고 안전하게 섰고, 새벽제비의 고스트는 빠르게 그를 치료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새벽제비는 아이를 키우겠노라 선언했지만, 블레이드는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새벽제비는 그 날 도시에 처음 들어갔다.
그래. 아이를 사람들 손에 맡기는게 좋을 것 같구나.
블레이드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이는 안전하게 자랄 것이고, 우리는 함께 적을 막아냈다. 며칠 뒤 블레이드는 새벽제비와 디어가 말하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딱히 엿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부주의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준비를 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안 했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 상황이 닥치면 최선을 다 하는 수 밖에.
나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슈. 자네는 그럼 왜 항상 회한에 젖어있나?
새벽제비가 한참만에 말했다.
글쎄.
블레이드는 그 대화를 생각했다. 새벽제비는 블레이드를 보다가 지쳤는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혀 수호자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블레이드가 트로이메라이를 찾았지만, 멜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블레이드는 새벽제비를 곱게 눕히고,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었다. 숨소리는 고르고 따듯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먹다 남긴 이상한 핏덩어리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역겨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역겨운 것은 새벽제비의 품에 안겨있었다. 저건 뭐란 말인가.
블레이드는 짓뭉개진 꽃을 들고 절벽 위 언덕에 갔다. 새벽제비는 다섯 개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낳은 것을 기르고 있었다. 애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블레이드는 꽃 잔해를 새벽제비에게 건넸다. 새벽제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블레이드는 새벽제비의 품에서 불길한 것을 뺏어 불로 지져버렸다. 그것은 구물거렸지만 비명소리나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새벽제비가 비명을 지르고 울었다.
당신은 이것을 왜 기르려 합니까? 이건 불길하고 불쌍한 존재입니다.
블레이드가 덩어리를 바다에 던져 빠뜨려버렸다. 새벽제비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어차피 후회하고 슬퍼할거잖아요. 그리고 그런 감정을 피하려 어딘가로 달려갈 것 아닙니까.
블레이드는 새벽제비의 머리카락을 한웅큼 잡아 단도로 끊어냈다. 손에 끈적한 진액이 묻고 희게 뜬 풀냄새가 났다. 블레이드는 엉켜붙은 머리를 자신의 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당신은 돌아올 수 밖에 없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새벽제비는 소름돋게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블레이드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네 명예니?
블레이드는 자신의 명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슈의 질문을 무시하고 뒤돌아 자신의 도약선으로 갔다. 목줄은 그의 손에 있었다. 그는 새벽제비를 깨뜨릴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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