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언약식
행복하세요~
퇴고! 안 함! 그냥! 끼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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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휴가를 보내고 나니 가방 안이 온통 기념품이며 잡동사니로 가득이라 짐을 풀기도 전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선물을 안겨주던 차였다. 한가할 때는 곧잘 어울려 놀던 양배추 요정들에게 줄 것도 제대로 챙겨 동부삼림에 도착했다만 어쩐지 주변이 술렁술렁, 분위기가 묘하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아마도 좋은 의미로. 녹음 사이로 떠다니는 꽃가루라든지 무언가의 씨앗 홀씨라든지와 비슷한 냄새가 둥실둥실 코 끝에 맴돈다. 오늘 아무래도 누군가들의 경사가 있으려나보지. 여기선 그다지 드문 냄새도 아니다. 아직 혼자서는 멧돼지와 나무 정령 사이로 지나갈 수 없는 모험가나 모험가가 아닌 사람들을 태워가려는 사람들로 에테라이트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제 무릎께에 간신히 정수리가 닿는 라라펠의 연미복 꼬리를 밟지 않기 위해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코를 들이킨다. 냄새가 많다. 정말 말 그대로,많았다.
어라?
그는 내내 납작 엎드려있던 개가 간식 냄새라도 맡은 듯 반짝 고개를 든다. 낯선 체취들 틈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익숙했던’ 향이다. 언제까지 익숙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한 번 익숙해졌던 향은 잘 잊지 않는 편이다. 이것저것 냄새도 많고 사람도 많아 신경을 두지 않았던 한 뭉치의 사람들. 그 틈에서 나고 있다. 다만 향은 익숙한데 도무지 얼굴이 떠오르질 않아 고개를 이리저리 모로 기울여본다. 누구지? 누구였더라? 조금 끈적하고 축축한 향유 냄새. 제대로 말리지 않아 지릿한 빨래의 냄새. 모래바람 냄새가 배어있던 시트의 냄새. 그건 전부 기억 나는데 얼굴이,
눈이 마주쳤다.
한참 마주본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쪽은 기억나는 향만 더듬느라 별다른 생각이 없고 저쪽은 ‘이런 날’에 갑작스레 마주한 과거의 임보견과 마주쳐 당황스러웠기 때문일 터다. 둥실둥실한 냄새 틈바구니로 서늘한 냄새가 번진다. 초조해하고 있다. 혹시나 이 눈치 없고 그저 사람이 좋은 개가 당장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달겨들까봐. 하지만 서늘함 뒤로 살며시 파고드는 냄새는 아주 옅지만 분명한 반가움이어서 아예 모른척 할까 싶다가도 마주친 눈으로 깜빡 깜빡 축하 인사만 전해주고 만다. 익숙한 냄새라 반가운건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정작 본체가 기억이 안 나는걸. 거기다 과거 자신을 임보해주었던 이들과는 다시 아는 척을 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기도 했고. 합의라기엔 혼자서 정한거지만 어쨌든 그들도 몇 밤 정도 먹이고 재워주었을 뿐인 개가 몇 년이나 지나 갑작스레 꼬리를 치며 반가워 한다면 퍽 난감할 것이다. 미련없이 몸을 돌려 가려던 길을 재촉하니 뒤쪽에선 다시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서늘한 냄새는 가시고 민들레 홀씨같은 푹신한 냄새가 난다. 안도감이다.
“다행이야,다행~”
좋은 날에 그런 냄새를 풍기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 타인인 척 얼른 사라져 주는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 옛날에 비해 진짜로 좀 똑똑해진 걸지도 몰라. 히죽대며 멀어지는 발걸음의 끝자락을 한 번 더 시선만으로 훑은 이의 진심은 짐작도 하지 못하고서 그는 속으로 다시금 읊조린다.
다행이야,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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