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기반 자캐커플] 원이비

[원이비] Coincidence

(FF14 기반 자캐커플) 원이가 이비에게 냅다 프로포즈

Dreaming Blue by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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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빌릴게.”

“오호, 드디어 결심했군?”

“어차피 썩어나는 돈, 이럴 때 아낌없이 부어야지.”

“훌륭한 마음가짐이네."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손님 한 명이 나가자, 주점 안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이제 둘 뿐이었다. 어질러진 테이블 위를 치우며 마감을 준비하는 주인장과, 바 근처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잔을 기울이는 마지막 손님 하나. 문을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일어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손님이 거슬릴 법도 하건만 주점 주인은 개의치 않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가족처럼 느껴지는 단골 손님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운영해 온 주점에서 주인이 두 번이 바뀌도록 꾸준히 매출을 보태주는 큰 손.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술을 병째로 털어갔다. 이 주점이 가게 규모에 비해 술 저장고가 제법 큰 이유는 사실상 저 손님 때문이었다. 든든하게 채워놓지 않으면 그가 다녀간 직후엔 다음날 팔 술조차 남아나지 않았으므로.

“음, 슬슬 그만 마셔야겠다.”

그러므로 최근 그가 술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은 주인장의 얼굴에 주름살을 더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오늘의 그는 겨우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잔을 내려놓았다. 세계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발길이 뜸했을 때조차―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면서도―보드카로 다섯 병은 가볍게 마시고 가던 사람이었는데.

비에라치고도 제법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니 건강관리를 위해 줄이는 건가, 넌지시 물어봤을 때 그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수줍음’. 그래, 그것은 분명 수줍음이었다. 그에게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망설임, 부끄러움, 그러나 그것을 덮으며 피어오르는 기쁨과 행복. 감정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채 보기 드문 서투름을 내보이며 그가 대답하기를,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이델린 맙소사. 이렇다 보니 농담 삼아 말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상대는 주점 주인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만큼, 아쉬움을 삼키고 기꺼이 도울 생각이었다.

“언제 비워주면 되겠나?”

“2주 후 저녁쯤에. 구체적인 시간은 조만간 다시 알려주러 올게. 사람을 더 구해봐야 알거든.”

“뭐? 두 사람분의 음식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더니?”

“다섯 배 정도만 더 최선을 다해 준비해 봐. 돈은 오십 배로 줄 테니까.”

“저희 주점을 선택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러엄. 여기 아니면 안 되니까, 힘내 줘?”

씩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장신의 비에라를 보며 주점 주인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사정이라,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없을까요?’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시끄러운 주점의 소음을 뚫고 들려왔다. 이런 변두리 마을의 주점에 찾아올 일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인상의 미코테 아가씨는 연신 주위를 힐끔거렸지만 불안한 기색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긴장보다는 신중에 가까웠다. 보기와는 달리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정보를 요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날의 기억은 별일이 없었음에도 주점 주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마도,

‘지금 여기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저 친구일걸!’

‘아 정말~ 나이 얘기는 하지 말자고 했잖아~’

‘그럼 경험이 많다고 해두지.’

그러면 늘 그랬던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그는 웃었다. 헤실거리는 모습이 해맑다 못해 언뜻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겉모습에 자주 속아 넘어갔다. 낯선 아가씨는 분명 그와 초면일 텐데도, 경계를 풀지 않은 채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는 점에서 보통 인물은 아닌듯싶었다.

‘주인장! 여기 시원한 걸로 한 잔 추가!’

역시나 바로 작업 들어가는군. 킬킬거리며 방금 딴 술통에서 나온 맥주를 잔에 가득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언뜻 꽤 진지한 얘기가 오가는 듯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 한 귀로 흘렸다. 괜히 엿듣다 들켰다간 그에게 장난스러운, 그러나 꽤 짓궂은 응징을 받을 터였다.

재미있게도, 그다음 잔부터는 낯선 아가씨가 그의 몫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가 취한 틈을 노리고 싶었던 걸까?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주문을 받는 동안 신나서 히죽거리는 그의 낯은 제삼자가 보기에도 얄미운 구석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날 얼굴이 익은 채로 먼저 나가는 건 아가씨 쪽이었다. 은근슬쩍 부축하며 함께 나갔던 그는, 글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로도 꾸준하게 그 아가씨와 같이 주점에 들렀다. 사이가 제법 가까워 보였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주점 주인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평소처럼 가볍게 어울리다 흘려보내는 태도가 아니었다. 제대로 꿰였군.

하지만 그게 이렇게나 빨리 연심으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 애초에, ‘그’가 사랑을 하기로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주점 주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나무판에 글자를 대충 휘갈겼다. ‘별빛 6월 23일 : 점심까지 영업합니다.’ 벽 어딘가에 잘 보이게 걸어두고 손님들에게 넌지시 알릴 생각이었다. 물론, 주인공이 들어온다면 얼른 빼서 숨길 수 있도록 손 닿는 곳에…… 그래, 저기가 좋겠군. 못질하는 소리가 텅 빈 주점 안을 울렸다.

다음 날,

“제게 맡겨주셔서 영광이에요.”

훌쩍거리다 급기야 손수건을 꺼내 코를 킁 푸는 음유시인을 내려다보며, 그와 동행하던 암흑기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다들 이런 일에 영광이라고 하는건지….”

“’왜’?? 정말로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메느피나께서도 감탄할 세기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정작 본인은… 읍!”

“제발, 목소리 좀, 낮춰.”

황급히 음유시인의 입을 틀어막은 암흑기사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낯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눈길이 잠시 쏠렸다가 암흑기사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자 금방 흩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암흑기사는 음유시인을 잠시 노려보다가, 시선이 마주친 음유시인이 흠칫 놀라자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그는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면 괜찮은 것 같아?”

“네? 아, 네. 생각보다 작사에도 재능이 있으시네요.”

“네가 이것저것 많이 도와줘서 편했지 뭐.”

“제가 알려드린 박자와 음은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틈틈이 연습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당장 내일도 만나서 연습하자.”

“내일은 제가 바쁜데…….”

중얼거리며 생각 없이 올려다본 암흑기사의 얼굴엔 거의 본 적 없는 간절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음유시인은 웃음을 꾹 참고 어깨를 으쓱였다.

“없으면 만들어 보겠습니다. 연락할게요.”

“넌 역시 최고의 음유시인이야. 근데 내가 말해준 것들, 어디 다른 데서 얘기하면 안 된다?”

“아쉽네요. 노래하면 몇백은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허. 대신 내가 몇 달은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후원금을 넣어줄게.”

“기억 말소를 아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농담처럼 주고받고 있지만 음유시인은 속으로 정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만큼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들려준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전부가 아니기에 더욱 궁금했다. 얼마나 굉장한 감정이, 생각이, 마음이 오갔을까! 가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르는 이야기로 어떻게 진심을 담겠냐’는 말로 우겨서 들어낸, 아니 뜯어낸 것에 가까운 이야기가 여운이 되어 음유시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그때, 겨우 정신을 차려서 밀어냈는데……’

‘와, 너무하셨네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

장난스러운 반박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게 좀 전의 일이었다. 함께 파티로 몇몇 임무들을 같이 수행하면서 파악한 암흑기사의 평소 성격으로는 상상도 못 했던 얘기들을 연달아 들으니 정말로 그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감격스러웠다. 사랑이란, 역시, 대단한 것이다!

좋아하는 늦잠을 자지도 못한 채로 아침부터 대뜸 연락받고 끌려 나와 연신 하품을 해대던 음유시인은 그렇게 암흑기사의 사정을 듣고서부터는 언제 피곤했냐는 듯 흥분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가사를 짓고, 음을 만들고, 한 소절씩 천천히 부르며 가르치고 연습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서야 집을 나오며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었고, 음유시인은 다시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주륵 흘렸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암흑기사는 알 바 아니었다.

“왜, 왜 울어 갑자기?”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음유시인들은 정말… 감성이 풍부하구나.”

“제가 보기엔 당신이 너무 둔한 거예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넋을 놓고 걷는 음유시인 옆에서 암흑기사는 좀 전에 함께 만들어 낸 노래를 끊임없이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려는 음유시인을 암흑기사가 반사적으로 가볍게 낚아챘다. 문제라면 암흑기사도 마음은 전혀 딴 곳에 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음유시인은 셔츠 뒤쪽이 붙들린 채로 한동안 허공에 떠 있어야 했다.

“내려주세요….”

“아, 미안.”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던 둘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계속해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하루는 꽃집에 한참 틀어박혀 있다가 나왔고, 다른 하루는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곳의 별장에 들이닥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던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리기도 했다. 배달부 모그리가 그를 여러 번 찾았다. 공식적으로는 맡은 임무가 따로 없는데도 수상쩍은 연락을 받고 갑자기 자리를 비우곤 했다.

“원 씨, 요새 많이 바쁜가 봐요?”

“응? 으응, 일이 좀 있어.”

“저한텐 말 못 해주시는 일인가요?”

“미안, 비밀 유지가 정말 중요한 건이라서.”

덫에 걸린 듯 꼼짝도 못 하고 시선을 마주한 채로 굳은 원의 눈동자에서 의외로 거짓은 읽어낼 수 없었다. 이비는 못마땅하다는 듯 원을 잠시 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그를 지나쳐 갔다. 원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꾹 다물었다. 잡으려고 뻗은 팔을 애써 거두어 숨겼다. 며칠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자는 원의 제안에 이비는 오랜만에 들떠 있었다. 약속 장소는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원과 처음 만났던 주점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멋들어진 대형 레스토랑에서의 데이트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쪽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누가 함께하느냐니까.

나무로 된 문을 가볍게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간 주점 안에서 이비는 기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게다가 분명 방금, 소리가 잠깐 멈췄지? 주위를 둘러보니 한참 북적거릴 시간대인데도 평소보다 주점 안의 손님 수가 적었다. 기껏해야 열 명쯤 될까. 다시 잔잔한 말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자연스레 섞이며 위화감은 덜해졌지만 그래도 수상쩍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이비, 여기야!”

원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비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힐끔 바라보는 방향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함께 던전을 공략했던 파티원, 자주 들렀던 가게의 주인, 종종 원과 함께 합석해서 노는 술친구, 도와주고서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들었던 마을 주민… 어라, 정말로 다 아는 얼굴이잖아.

이비가 경계하는 것을 눈치챈 원이 웃음을 꾹 삼켰다. 촉이 너무 좋아. 그래도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예상 못 했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제일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고, 이비가 좋아하는 술을 시키고, 자신의 잔엔 술인 척 맹물만 채워 들이키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가장 완벽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주점 한편에 마련된 작은 무대 위에는 역시 익히 아는 얼굴의 음유시인이 있었다. 요즘 대도시에서 유행한다는 노래 한 곡을 끝마친 음유시인은 박수 속에서 인사한 후, 숨을 고르고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곡은, 이번에 여기서 처음 선보이는 곡입니다. 무려 한 사람을 위한 헌정곡이에요. 로맨틱하죠?”

그동안 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비의 경계심은 많이 풀어져 있었다. 무대를 바라보며 별생각 없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비를 힐끔거리며 원은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희게 질린 주먹이 잘게 떨렸다. 원은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이 곡을 만들 때 굉장한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무대 위로 모셔볼게요.”

음유시인의 과장된 몸짓이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하자 당황한 이비는 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원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멍한 시선이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동시다발적으로 박수와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늘 느긋하게 걷던 원이 그답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후다닥 무대 위로 오르더니 그제야 이비쪽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미안함과 장난스러움과 기대감이 그의 두 눈 가득히 반짝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는 답을 바로 알아차렸지만 믿기 어려워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크흠, 이렇게 무대에 서 보는 건 또 처음이네. 초대에 응해줘서 고마워, 모두 다.”

‘내 휴가를 돌려내!’라는 누군가의 야유에 원은 ‘이따 정산해 줄게!’라고 받아쳤다. 테이블 쪽에서 작게 또 웃음이 터졌다.

“기다려 준 이비에게는 몇 번이고 사과해도 모자랄 테지만, 지금은 먼저 고맙다고 말할게.”

이비 쪽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한 원은 속삭이듯이 덧붙였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음유시인이 미소 지으며 악기를 고쳐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몇 박자 후에 떨리는 원의 목소리가 첫 소절을 노래했다.

♪ 누군가 손 잡으려 하면

♪ 항상 망설여졌지

원은 얼른 작게 큼큼거리며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내가 상처가 될까 봐

♪ 내게 상처가 될까 봐

♪ 내 마음도 이미 알고 있는 걸

♪ 이렇게 보낼 순 없다는 걸

밝은 녹음을 담은 눈이 이비를 향한 채로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 눈을 보고 내 말을 들어줘

♪ 더 이상의 망설임이 싫어

♪ 아무 말 못 한 채

♪ 내 남은 시간들 보내야 한다면

♪ 의미 없는 시간일 뿐

때 이른 박수가 어디선가 터져 나왔다가 뚝 그쳤다. 끝난 거 아니야? 라는 머쓱한 중얼거림과 아냐! 라고 답하는 원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번갈아 오갔다.

♪ 상처를 움츠리듯이 속에 없는 말들로

♪ 웃으며 멀어지는 길 내 마음 더 아파 오는데

♪ 내 마음도 이미 알고 있는 걸

♪ 이렇게 보낼 순 없다는 걸

♪ 눈을 보고 내 말을 들어줘

♪ 더 이상의 망설임이 싫어

♪ 아무 말 못 한 채

♪ 내 남은 시간들 보내야 한다면

♪ 의미 없는 시간일 뿐

잠시 연주가 길게 이어졌다. 이번에는 눈치껏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원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이비를 향해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한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천천히 열린 그의 입에서 조금 더 힘이 실린 노래가 흘러나왔다.

♪ 우연을 지나 너에게 다가가 인연으로 함께 가고 싶어

♪ 이대로 멀어져 나 홀로 시간들 돌아가고 싶지 않아

♪ 그대가 너무 좋은걸

잔잔한 연주가 이어지다가 잦아들며 마무리됐다. 끝을 알리듯 음유시인이 먼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환호성, 휘파람, 칭찬과 감탄, 모든 소리가 따뜻한 응원을 싣고 두 사람을 둘러싸며 울렸다.

그때 어디선가 불쑥 화려한 꽃다발이 원의 옆에서 튀어나왔다. ‘이걸 잊으면 어떡해!’ ‘아차.’ 허둥지둥 받아 들었다. 하필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꾹 누른 채로, 원은 천천히 꽃다발을 이비 쪽으로 내밀었다.

후끈한 열기를 모두가 느끼고 있다면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서 가장 뜨거운 온도를, 사랑을 담은 시선이 곧게 뻗어 이비에게 닿았다.

“감히 너의 연인이 되고 싶어. 허락해 줄래?”


원본 글 : https://www.notion.so/parang/Coincidence-6517c49512c0497b8b0916379c427875?pvs=4

에서 약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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