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빛 멸망

2년전. 지구는 멸망했다. 아니, 따지자면 멸망보다는 지구 스스로 선택했다고나할까.

by 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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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동료의 시체를 땅에 파묻었다. 이로써, 완벽히 나 혼자다. 이녀석들은 묻어줄 동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할 것 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나 혼자남았으니까, 날 묻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삽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방금 망가졌다. 굳은 땅을 너무 열중적으로 판 탓이였다. 덕분에 내 무덤을 팔 수단이 없어졌다.

이렇게된다면 내가 유령이 되서 스스로 내 시체를 묻어야하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을까? 유령이 된다면 삽의 영혼도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삽의 영혼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도 아니면 이 식물들이 가련하게 쓰러져 죽은 날 집어삼키길 기다려야겠지. 그렇게되면 내 꼴은 정말 말이 아닐거다. 차갑게 식어 살포시 눈을 감고있는 내 몸은 푸른 이끼가 자라나 알아볼수 없게될거다.

누군가가 날 발견한다면 이렇게 외치겠지. 저런, 불쌍해라! 내가 마치 식물에 먹혀가는 것들을 바라볼때 떠올린 생각마냥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더 불쌍하다. 내 잘난 얼굴을 못보게될터니까.

... 하하, 나는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작게 내뱉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건 시시한 생각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진짜로 나는 누가 묻어주나. 내 스스로 내가 들어갈 무덤을 준비해야하겠지, 아무래도 그 방법 뿐이다. 여러 생각이 슬며시 머리속에 떠올랐다. 나는 히죽 웃었다. 웃기게도 저런 생각이 들자 동료를 묻어주는 목적 이외에도 색다른 마지막 목적을 찾은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다, 이해한다. 다소 뒤틀린 생각이라는 거.

이런 생각을 무덤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떠올리고 있다는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지문으로 읽는게 아니라 정말로 내 모습이 두 눈으로 생생히 보인다면 말이다. 그런 사람은 없겠지. 하하, 이런 생각이나 하고있다니. 나 스스로도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알아봐줄 사람은 없다. 뭐 어쩌겠는가. 이 세상에는 나 혼자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도 슬퍼해줄 하나 없는 세계, 그것이 현실이다.


2년전. 지구는 멸망했다. 아니, 따지자면 멸망보다는 지구 스스로 선택했다고나할까. 뭐랄까, 뭐라고 표현해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럴줄 알았으면 책이나 좀 읽어두는건데. 지금은 이미 늦었겠지. 어느날부터인가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 풀이 2년전 무렵, 도시를 덮쳤다. 도서관도 덮쳤겠지. 잘라내고, 또 잘라내도 조금만 지나도 다시 무섭게 자라나 인간을 삼켰다. 그렇게 지구는 녹빛 멸망에 집어삼켜졌다. 최근까지야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으나, 그들도 곧 녹빛에 먹혀 죽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흔들거리는 흔들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가 남겨두고간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췄다. 의자가 지독히도 흔들거렸다. 멀미가 없는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연달아들리더니 잔잔한 노래 몇곡이 흘러나왔다. 이런게 나았다. 어제는 이상한 트로트가 흘러나왔었지. 누구 취향인지 몰라도, 참 이상하단 말이야. 나는 트로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몸이라고. 고상한 클래식이면 모를까. 아니다, 그것도 많이 들으면 잠이 올거다. 이른 시간부터 다시 잠에 드는건 좋지않다.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면 어쩌려고!

어쨌든 그렇다. 나는 트로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어울리지않게 너무 시끄럽다. 좀 듣기좋은 노래라면 몰라도, 가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오는건 반대다. 트로트 라는 장르 자체는 나쁘지않지만 상황이랑도 안 어울리고, 어쩌구 저쩌구... 다시 이야기가 반복되는 기분이라 내 선에서 적당히 끊었다. 참, 나도 센스있다니까. 나는 가끔 자화자찬에 빠진다. 지금처럼. 그리고 꽤 객관적인 편이다. 방금의 나또한 그랬다. 어쨌든 지금 흘러나오는건 잔잔한 노래이고, 나는 만족스럽게 의자에 앉아 노래를 음미하듯 들었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무덤, 시체, 풀숲. 그런 것들은 이제 지겹다.

언젠가부터 간간히 이런 노래 몇곡이 흘러나올때가 있었다. 노래가 흘러나온다는건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오류로 틀어진걸지도 모르는거고. 동료들이 있었을때는 가끔, 다같이 미친듯이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했다. 나는 아니였지만, 내 동료 중 한명은 춤을 추는걸 좋아했다. 나중에 춤을 추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어차피 세계가 망해서 봐줄사람은 이제 없을걸 알면서도 그녀석은 그랬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응원한다고 이야기해줄걸 그랬나. 얼마못가 노래도, 춤도 못추게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노래 제목이 뭘까. 알게되어도 별 쓸모없을 정보들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궁금했다. 작곡가는 누구지? 아는게 없다는걸 떠올리니까, 별로 궁금하지 않아졌다. 나는 잔잔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라디오에도, 침대에도, 접시에도, 의자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 주변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람은 커녕 동물 한마리도 없었다. 대부분 이미 흡수되어 이끼가 자욱히 핀 시체뿐이였다. 몇은 내 동료였다. 나처럼 살아남은 사람을 찾으러 다니다가 먹혀버린 녀석들이다. 사실 이미 첫날부터 먹혀가고있었던걸지도 모른다. 단지 타이밍이 안 좋았던거겠지.

그녀석들이 먹힌 그날은 오랜만에 몸이 멀쩡한 동물을 발견해 고기를 먹을 수 있던 날인데. 타이밍이 나빴다. 나빴다고 할수밖에 없다. 덕분에 우리는 그놈들의 몫까지 눈물을 흘려가며 먹어치워야했다. 사실 조금은 남겨두었지만 다음날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도 돌아오지않았고, 고기는 냄새가 풀풀나게 썩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그놈들 시체 옆에 버려두고왔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수 있다.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의미일 것이다. 어쨌든간에 그 문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타이밍이 안 좋았다는것이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동료들이 희생되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발견되는건 멸망이 시작된 이후로 고작 열흘 정도였다.


멸망이 시작된 바로 다음날, 모든 국가가 마비되었다. 이끼가 아파트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고, 도로는 온통 우겨진 수풀로 가득했으며, 길거리에는 이끼가 쌓이기 시작했고, 나무는 우거져 숲이 되어 하늘을 가렸으며, 사람들의 절반은 첫날 먹혀버렸다. 하늘에서는 날아가던 새가 우수수 떨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을 덮치는 나무줄기에 비명을 꽥꽥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차에 타있던 사람들은 도로에 우겨진 수풀을 피하려다가 서로 부딫혔고- 부딫히다가 잡아먹혔다. 비명소리와 폭동이 가득한 날이였다. 사람들은 자라는 풀이 얼마나 위협을 가하는지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그때쯤 비명소리가 고요해졌다. 삐잉거리던 차소리는 끊겼고, 밖에는 풀들만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자랐다.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자라난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되는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살짝 열어보았다. 한박자 느리게 켜지긴 했지만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계 중 하나였다. 이녀석도 언젠가는 녹빛으로 뒤덮이겠지. 비록 애지중지 지키고는 있지만 이미 핸드폰은 와이파이도, 아무것도 되지않아 먹통이였다. 오로지 키고 끌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였다. 핸드폰에는 배터리가 10% 정도 남아있었다. 충전기나 보조배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찾아보긴했으나, 이미 다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 마지막 잎새다. 이녀석이 방전되면 나또한 그렇게 되리라.




지직, 흘러나오던 노래가 멈추더니 귀를 찢을듯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다급하게 생각을 멈추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라디오를 끄려했다. 젠장, 맛이 간 기계따위 트는게 아닌데! 가끔 이 망할 고물덩어리는 이렇게 고장나곤 했다. 소리가 좀 잦아들긴했지만 여전히 컸고, 기계는 꺼질줄 몰랐다. 연달아 버튼을 틱틱거렸지만 꺼지지않았고 나는 오랜만에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 제기랄,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기계를 한차례 내려쳤다. 강하게 친건지, 약하게 친건지 분노로 차있는 나로써는 알수가 없다. 그때쯤이였나, 기계가 고장이라도 난듯이 고요해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동안은 멀쩡했는데. 나도 점점 이 고물처럼 맛이 가나보다. 기분이 침울해졌다.



치직, 멍하니 앉아있던 내 주목을 끈것은 라디오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였다. ..들리는 사람 없으세요? 사람의 목소리였다. 고장난게 아니였던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없었다. 사람, 이 얼마만에 듣는 것인지. 비록 몇시간 전까지는 마지막 동료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너무 놀라 숨쉬는 것도 잊고 다급하게 라디오의 음량을 높혔다. 제 목소리가 들린다면, 부디.... 치직, 음량을 높힐수록 목소리가 끊기기 시작해 나는 적당한 크기로 맞추었다. 소리가 작든 크든, 들리기만하면 그만이다. 어쨌든 나는 적당한 음량으로 맞춘후 이끼 낀 라디오를 귀에 대고는 소리를 들었다.

숨을 죽이고 들어보니 그것은 정말 사람의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입을 열고 소리내어 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감격에서 울뻔했다. 눈물 한방울 정도가 내 눈에서 흘러내렸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귀를 귀울이고 열심히 들은 바로는 큰 나무 앞으로 와달라는 뜻 같았다. 큰 나무. 그것은 재앙이 시작된 시발점이였다. 가장 처음으로, 가장 크게 자라난 나무. 그것을 생존자들은 재앙의 뿌리니, 뭐니하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직관적으로 그냥 큰 나무라고 부르는 편이 더 편했다.

라디오의 잡음이 심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뭐 누구든 상관없지만. 나는 급하게 심호흡을 하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사실 할것도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이끼를 털어냈을 뿐이였다. 이끼로 덮힌 거울의 이끼를 때낸 후 거울로 내 모습을 확인했다.

다소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열심히 씻어서인지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봐줄만했다. 내 외모도 어디가지 않는군. 나는 잠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밖으로 나가, 짐을 챙겼다. 돌아오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먹을 것도 챙겼다. 그리고 나가려다가 혹시나 싶어 무기도 챙겼다. 부디 이것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

나는 빠르게 자라나는 나무가지에 붉은 천을 묶었다. 묶는 도중에는 자라는 것이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이런 고전적인 방법은 이제 그만 둬야겠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매달아놓은 천이 서서히 나무에 먹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런.. 그래도 어느정도는 보였다. 그것으로 됐다.

나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 오랜 경험 상,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몸에 좋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툭툭 차며 걸었다. 돌이나, 나무뿌리,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발에 채였다. 나는 그것들을 저 멀리 차며 걷다가, 툭.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뻔했다. 사실 넘어졌다는게 더 맞겠다. 나는 바닥에 넘어졌다.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몸에 새겨진 감각이 나를 일으켰다.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듯 기어오던 나무뿌리들이 내 곁에서 멈추어섰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파악하고나니, 무릎이 욱신거렸다. 조심스럽게 몸 을 숙이고 확인해보니 찢어진 옷 위로 핏방울이 몽글몽글 솓아나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돌에 찍히기라도 했는지, 꽤나 아팠다.

내가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다니. 들떠있었나보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웃겼다. 그러나 금방 기분이 나빠졌다. 내 상처위로 이끼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만 것이다. 이끼로 덮혀 더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이끼가 내 다리를 타고 오르는 감각이 생생했다. 나는 끔찍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바보같은. 나는 바닥을 살폈다. 어떤게 나를 걸고 넘어지게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가지도, 뿌리도, 무섭게 자라나는 식물도 아니였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르게 자라난 이끼가 가득한 얇은 무언가였다. 이건 손가락이다. 그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그것도 먹힌지 얼마 안된 사람의 것이었다. 좀더 살펴보니 나무에 먹혀들어가는 인간의 형체가 보였다. 다리가 먼저 먹혔는지 살려고 기어나가려는듯한 모습이였다. 양 손이 바닥을 긁듯이 하고있었고, 한쪽 팔의 팔꿈치는 힘을 주려고 바닥에 닿아있었기에 몸이 약간 위로 떠있었다. 얼굴이 숙여져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인간힘을 쓰느라 꽤 구겨져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끼덮힌 푸른 손과 팔, 머리카락과 몸통을 보았다. 아무래도 저 시체의 팔에 걸려 넘어진듯 했다. 다리는 이미 나무에 삼켜져 보이지 않았고, 상반신만이 보였다. 나는 어쩐지 이것을 살펴봐야할 것같다는 뇌세포의 명령에 몸을 숙이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라?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에는 익숙한 것이 보였다. 먹혀버린 시체의 옷에는 그또한 이미 먹힌지 오래된 동료녀석이 새겨놓은 자수가 있었다. 그 녀석이 메고있는 가방에도, 옷에도, 장갑에도!

'이걸 새겨놓으면 아무리 못 알아보게 변해도 우리끼리는 알아볼수 있을거야.'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가 뇌를 스쳤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급하게 이끼를 뜯어내야만 했다. 내 몸의 세포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세포 하나 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을 향한체 굳어있는 얼굴을 들었다. 아.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가장 사랑했고, 아끼던, 마지막 동료가 죽기 얼마전 갑자기 사라진 녀석. 나만두고 사라졌던…. 나를 외로움이라는 끔찍한 감정을 느끼게했던 자식. 그 녀석이 눈물을 흘리다가, 미처 눈물이 멎기도 전에 이끼로 덮혀 죽어있었다. 벗어나려고 바둥거리던 모습 그대로 너무나도 생생하게 굳어있어, 나는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외치려는듯이 입이 벌려져있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내가 동료라 부르던 녀석들이 이제없다. 이녀석도 결국에는 죽어있었다. 살아있겠거니, 하고 애써 무시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찾아나섰던 순간을 떠올렸다. 살아있기를 바랬다. 어딘가에서라도 제발. 나는 그 순간 잊으려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급격하게 자라던 나무에 사람들이 먹히던 그날.



내 부모는 차를 타고 나와 내 동생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흥겨운 노래소리가 울리고 나와 동생은 그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고 있었다. 동생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흔들며 춤을 췄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여행지에 거의 다다랐을 쯤이 였을까. 옆에서 걷고있던 사람 한명이 갑자기 툭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동생이 내게 그 사람을 가르키며, 쓰러진게 아니냐고 묻는 순간 앞에서 쾅-! 하는 큰 소리가 나며 끼이이익- 아빠가 몰고, 우리가 타고있던 차는 급정거했다. 앞에 서있던 차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우리는 급정거한 차의 반동으로 인해 앞으로 확, 고꾸라졌다. 안전벨트 때문에 숨이 막혔지만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고 보니, 아빠와 엄마가 앞면 유리창을 바라보며 놀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근거리고 있었다. 아빠는 창문을 내리고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몸을 가운데로 내빼며 확인해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펄펄 나오고 있었다. 충돌 사고인가? 느리게 상황파악을 하고있을때 앞에서 엄마가 괜찮을거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아마 경찰이나 병원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전화 연결음을 듣고있다가 연결이 안된다며 아빠에게 어쩌냐고 물어보았다.

나도 급하게 뒤를 확인해보니, 이미 뒤에도 차로 꽉 차있었다. 그때 우리가 향하던 곳은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곳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차들 사이에 껴있었는데, 동생이 안전벨트를 풀고는 내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무섭다고 말하며 내몸에 기댔다. 걔는 무척 겁이 많았기에, 어린이들도 안 무서워하는 공포영화조차 무서워했다. 밤은 또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침대에 누워있는 그 순간조차 침대 밑에 누가 있는 것 같다며 연신 나에게 확인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동생은 정말 겁이 많았다. 나는 괜찮다고 동생을 토닥였지만 사실 따지자면 나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를 떨칠 수 없었다. 나는 동생과 다르게 공포영화를 잘 봤기에 여행을 오기 전날 밤, 그날도 공포 영화 한개를 보았는데 하필 그 영화가 차사고로 인해 터널에 갇혀버린 사람한테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내용이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는 터널도 아니였지만. 어쨌든 공포영화를 보고난 다음에는 별게 아니여도 괜히 겁이 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용이나 감독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아도 그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든 영화였다. 그때쯤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었고, 차에서 내려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빠는 한숨을 쉬더니, 안전벨트를 풀고 잠시 밖을 보고오겠다며 차문을 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안전벨트를 풀지 말라고 경고했고, 동생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차사고는 꽤 멀리서 일어났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차사고 때문에 사태가 일어난건 아니니, 엄마의 말이 결과적으로 맞았던거다. 잠시 뒤 아빠가 돌아오더니, 주변에 있던 교통경찰이 왔고, 여기를 빠져나가게끔 교통정리를 한다고 했다. 곧 다른 사람도 올것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상황을 묻자 아빠는 엄마에게만 작게 속삭였다. 나는 조용히 귓속말하는 것을 들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모양이였다. 차에 갑자기 수풀이 자라나, 차를 덮쳤고 운전자는 안에서 이미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끼로 덮힌 상태로.

그때까지도 나는, 이 장소를 벗어나 숙소로 가서 놀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이 꽤 심각하긴 했으나, 고작해야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울렸다. 다행히 소방차와 구급차가 들어올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구급차와 소방차들이 온 순간을 기점으로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도로 옆에 있는 가로수들이 천천히 자라기 시작하더니 소방차에 달라붙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놀라 비명을 질렀고, 소방차에 타고있던 대원들은 달라붙은 나무가지를 잘라내려 했으나 그것은 점점 자라 차를 칭칭 감았다. 그 순간, 펑-! 폭발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가 다시 울렸다. 삐삐, 차에서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차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나무들, 급속도로 자라 도로를 삼키기 시작한 풀과 이끼,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들. 아빠는 주변을 살피다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짐을 챙기고 있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무에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겁먹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쨍그랑- 꽃과 식물을 파는 화원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면서 안에서 온갖 식물들이 뒤엉켜 튀어나오자, 혼란스럽게 도망쳤다.

차의 바퀴를 타고 이끼가 오르자, 우리 가족은 결국 차에서 내렸고 주변을 살피다가 2층 건물의 계단으로 성급히 올라갔다. 그러나… 아빠는 우리들이 멀쩡하게 올라갈 수 있게 인파를 해치고 도와주다가 사람들에 밀려 사라졌다. 엄마가 손을 뻗었으나 아빠는 붙잡지 못했다. 그뒤로는 절대 다시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그게 시작이였다.

... 나는 우울함을 견딜 수 없었다. 1차적인 재앙이 끝나고 한참 후에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다행히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꽤 구색을 갖춘 무리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러고 얼마 안 있어서 우리 엄마는 죽었고. 무리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리에서 몰래 아지트를 만들어 음식을 옮겼고. 내 나이 또래의 믿음직한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1년 쯤 지났을까. 무리의 사람들은 하나둘 먹혀갔다. 사람이 더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풀은 끔찍하게 자랐고 먹을 것은 부족했으며, 잠을 자고 서있는 그 순간조차 풀과 이끼로 인해 견뎌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독백을 시작하기 몇일 전, 무리의 사람들은 고작 셋 뿐이였다. 그랬다. 한명은 내가 오늘 묻었던 그 녀석이고. 한명은 내 동생이였다. 내가 발견한 시체가 바로 내 동생의 것이였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체, 입을 막았다. 고통이 섞인 비명이 새어나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가 웃음이 함께 흘러나왔다. 나는 웃고있었다. 미친듯이 웃고있었다. 비명과 웃음소리가 한데 합쳐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듣고있었다면 놀라서 도망쳤을거다.

이 누워있는 시체는 절대 다른 사람이 아니였다. 그 누가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 내 동생이였다. 엄마를 닮은 나를 닮은 눈매, 눈 밑에 있는 점. 나와 똑닮아있었다. 아아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분명히 살아있어야했는데. 계속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이거였나. 나는 한참을 눈물만 흘리다가, 나무와 합쳐진 내 동생을 바라봤다. 표정에 겁이 질려있었다.

나를 부르고 있었을까. 동생이 정말 겁이 많은데, 겁쟁이인데. 나는 살아가기 바빠 그것을 잊고있었다. 나는 들고온 도끼로 동생과 합쳐진 나무를 내려쳤다. 그 녀석은 나무가지를 뒤틀더니, 나를 잡아먹으려 애썼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내려쳤고, 나무는 점점 틈이 생겼다. 결국 우드득, 나무가 부러졌다. 내 승리였다. 나는 다시 조심히 뒤에서 밑부분을 내려쳤고, 그리하여 동생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동생을 들어올리고는 다시 아지트로 가, 동료들을 묻어준 곳 옆에 묻었다. 이제 괜찮을거다.

나는 그 앞에 앉아있다가,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까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까보다 떨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잡음이 잠깐사이에 더 심해진걸까. 나는 잠시 무덤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라디오를 번갈아쳐다봤다. 그래. 아직 포기하기는 일렀다. 나는 다시 내려놓은 짐을 챙겼다. 내 죽은 동료 몫까지, 가족 몫까지 살아남아야한다. 나는 도끼를 챙겼다. 그리고는 도끼를 꽉 움켜쥐었다. 이제부터 이 녀석은 내 목숨을 지켜줄거다. 숲에서 생활하려면 도끼는 필수다. 나는 자라나는 나무를 베어댈 나무꾼이다…. 푸흡,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이미 진작에 그랬을것이다.




나는 다시 터벅터벅 걸었다. 도끼를 움켜쥐고 아무말없이 걷고있는 모습은 흡사 예전에 영화에서 봤던 살인마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 영화에서 살인마는 주인공의 가족을 포함한 13명을 죽였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죽이지못한체 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서 밖으로 나갔고,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나는 절대 영화의 주인공이 될수없었다.

내가 보았던 영화의 주인공은 살아남았고, 일상을 되찾았지만 나는 살아남는다하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세상은 돌이킬수 없을 멸망의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나는 잠시 도끼를 쳐다보다가, 옆에 있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나 자신이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망해가는 세상에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남은뒤 평화롭게 살아갈 녀석이 하나 있지 않던가? 이 지구를 집어삼킨 이 멸망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자. 그리고 나는 그 영화의 제목을 녹빛 멸망이라 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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