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를 위한 여행 안내서
작업곡
어서오세요, 꿈의 도시 아르테미스Artemis 에!
00. 여혜운.
…….
깜박, 깜빡 전기가 나간 전등처럼 혜운은 눈을 뜨고 감기를 반복했다.
티끌 하나 없는 흰 벽이 혜운과 마주했다. 혜운은 일어난 다음 자신이 할 일을 알았다. 어제도 한 일이니까. 혜운에게는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혜운은 삐걱 소리를 내는 오래된 철제 프레임 침대에서 일어나 손목 위에 있는 바코드를 기계에 가져다 댔다. 삑-. 짧은 기계음 소리와 함께 확인되었다는 문구가 떴다. 곧이어 굳게 닫혔던 철제문이 열리며 ‘도우미 로봇‘ 이라고 적혀있는 안드로이드가 혜운의 앞에 식사로 보이는 음식을 올려두었다. 도우미 로봇은 혜운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고 혜운은 숟가락을 들어 식판 위의 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정확히는 밀어 넣었다는 말이 더 가깝다. 혜운은 의무적으로 턱을 움직이는 저작운동을 하며 음식물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그가 식판 위에 있는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도우미 로봇은 떠나지 않았다. 달그락거리며 수저와 식판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
…….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다가 초록색 채소가 담겨있는 칸에서 멈췄다. 지구인들이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브로-콜리? 블로콜리?’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생각에 잠긴 혜운이 젓가락질을 멈추자 로봇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재촉하는 소리를 냈다. 혜운은 식사를 완전히 마치지 않으면 도우미 로봇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식판을 다 비우지 않거나, 먹지 않겠다고 그들의 기준에 ‘난동’ 을 부리면 로봇들은 혜운의 턱을 붙잡아 벌려 무엇인지 모르는 액체를 식도에 억지로 꽂아놓고는 했다. 꿀렁거리는 액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혜운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식사였다.
혜운은 ‘블로콜리’를 집어 입속에 씹어 삼켰다. 감각 기관을 타고 올라오는 역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로봇의 존재를 인지하고 혜운은 좁아진 미간을 이내 폈다. 마침내 음식을 씹던 턱이 멈추며 다가오는 로봇의 앞에 혜운은 입을 벌렸다. 기계 팔이 다가와 그의 입안 구석구석을 확인하고, 양치라고 불리는 작업을 끝낸 후에야 혜운에게서 떨어졌다. 이후에는 안드로이드는 그의 방에서 흔적을 감췄다. 방에 혼자 남겨진 혜운의 시선은 방 벽에 걸린 시계를 향했다.
89시 126분.
점심시간까지 약 3시간이 남았다. 그에게 주어진 할 일은 점심시간 이후부터 시작이니 지금은 자유 시간이었다. 혜운은 방에서 주로 일기를 썼다. 일기라고 하기도 민망한 글이지만, 그냥 하루에 대한 소감이었다. 혜운은 오늘 식사는 맛없었으니까, 내일은 맛있길 바란다는 그런 시답지 않은 글들을 써내려갔다. 글을 써내려가는 연필을 멈추고 혜운은 창 밖을 바라봤다.
새까만 하늘과 ‘별’ 이라고 불리는 유성이 돌아다니는 하늘이 변함없이 지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혜운의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갔다.
***
점심시간.
하얗게 도색된 의자에서 일어난 혜운은 매번 그랬듯이 손목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 문을 나섰다. 바깥에는 혜운과 같은 인간이 많았다. 물론 인간이라고 부르기 모호한 것들이 많았지만. 혜운의 발걸음에 점치 속도가 붙었다. 혜운이 목적지에서 가장 먼 곳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있는 긴 복도를 지나, 거대한 광장을 지나고, 별이 가득 보이는 투명한 돔을 지나면 연구소가 있었다. 그들이 연구소라고 부르는 곳은 혜운의 방처럼 새하앴다. 연구소에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혜운의 방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처럼 손목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 됐다. 삑, 익숙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여혜운이라는 이름이 공중에 뜨며 문이 열렸다.
여혜운 Yeo Hyewoon
16세 남
실험체 E-043H
확인되었습니다.
혜운은 자신과 같은 하얀 옷을 입고 서있는 아이들의 뒤에 줄을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며 우르르 혜운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나왔다. 아니, 아이들이라기에는 혜운보다 조금 더 큰 사람도 보였다. 자신보다 키가 십오 센티미터는 커 보이는 사람과 혜운은 눈이 마주쳤다. 어제도 있었던 일이다. 일기장에 쓰려고 했는데 깜박했던 그 사람이었다. 이름은 잘 몰랐다.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데 이름을 어떻게 보나. 혜운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새파란 파랑만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채로.
이늑고 혜운이 서 있는 줄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뒷 사람이 등을 밀며 앞으로 빨리 가라고 성화였다. 혜운은 새하얀 옷의 수십 명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런 게 구름이 이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이따금 하곤 했다. 비록 구름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혜운이 구름에 대해 아는 것은 ‘하얀색’ ‘공기’ ‘안개와 비슷함’ 책에서 본 몇 단어뿐이었다. 두 줄로 서서 차례차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빛 한줄기 없는 통로에 들어가 신체를 소독했다. 아이들에게 ‘검은 통로’ 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특이한 점은 레이저로 몸 구석을 소독한다는 점이었다. 그냥 겁먹을 것 없이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됐다. 나오면 항상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검은 통로에서 나온 혜운이 해야 할 일은 신체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얘들이나 다른 어른들 말로는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갈 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거랬나. 안에 들어가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방 주사 빼고는 가만히 있으면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알아서 검사를 해주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부분은 사소한 부분이었다.
혜운은 안내 방송이 나오는 스피커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운은 스피커에서 자신의 실험체 번호인 E-043H라고 소리가 나오면 배정된 방에 들어가야 했다. E 로 시작하는 번호는 이제 막 호명하기 시작한 거 같았다. 혜운이 알고 있는 번호는 H,V,M,J,S,U,N 그리고 혜운의 E 까지. 어떤 철자로 시작하는지는 모르지만 꽤 다양하게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었다. 혜운은 벽에 기댄 채 앉아 저린 다리를 주먹으로 콩콩 두들겼다.
- E-043H, E-043H 들어오세요.
스피커의 음성에 따라 혜운은 ‘검사실 E ’ 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제 뭐했더라. 채혈하고, 치아 검사하고, 시력이랑… …. 손가락을 접으며 생각하고 있으면 혜운의 몸은 어느덧 도착해있었다. 혜운이 알기에는 이 연구소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1. 인간의 신체검사는 인간이 담당할 것.
2.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반드시 아침,저녁,점심을 반드시 먹이고 충분한 운동량을 지킬 것.
세 번째는… 뭐였더라? 지구에 관련된 거였던 것 같은데. 이내 짝, 하는 손바닥 두 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혜운은 생각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흰 가운의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혜운아, 오늘도 어제랑 똑같이 할 거야. 알고 있지?”
“네, 선생님.”
“우선 키랑 몸무게부터 재자.”
“네.”
녀석,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말을 덧붙이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혜운은 익숙한 듯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키와 몸무게를 재는 곳에 가서 바르게 허리를 펴고 섰다. 근데 이거 매일 재는 거 의미가 있나? 어제랑 다른 거 없을 텐데. 혜운의 생각과 무색하게 수치를 확인하고 따라오는 선생님의 웃음이 그의 의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네모난 플라스틱이 정수리 위를 툭하고 건들고 지나간 자리에는 키가 3cm 나 커져있었다.
“혜운아, 진짜 많이 자랐다. 선생님이랑 처음 만났을 때 얼마였는지 기억나?”
“…120? 모르겠는데요.”
“132cm. 그때도 평균보다 컸는데, 지금도 평균보다 훨씬 크네. 지금 나이에 172이면 엄청나게 큰 거야, 보통 네 나이 때 애들은 이렇게 안 큰데.”
“…그런가? 잘 모르겠어요.”
“네 또래를 많이 안 봐서 그래.”
선생님은 능숙하게 혜운의 팔을 몇 번 두들기더니 쉽게 채혈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을 멈췄다. 주사기에 따라나오는 붉은색의 피가 신기했다. 저걸로 내 건강 정보를 알 수 있단 말이지. 주사기 바늘이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봤다. 짧은 유리관에 담긴 붉은 색의 액체가 찰랑거렸다. 나중에 저런 일을 하고 싶을지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채혈이 끝난 뒤에 혜운은 주사를 맞았다. 바늘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기분이 익숙하다 못해 간지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얇은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는 알코올이 흠뻑 적셔진 솜으로 꾹 눌러야했다. 이 다음에는 치아 검사였나? 혜운은 급격하게 밀려오는 피로와 귀찮음에 한숨을 쉬었다. 몇 십분 째 누워만 있다 보니 두 눈이 자꾸만 무겁게 감겼다. 혜운은 졸린 목소리로 선생님, 저 자도 돼요? 하고 물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의식을 잃은 것일지도 몰랐다.
침묵이 방 안에 찾아왔다. 의료기기들과 펜이 종이 위에 그려지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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