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나엘

안드로이드를 위한 여행 안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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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뷔자데(vu jade)

…….

깜박, 깜빡 전기가 나간 전등처럼 혜운은 눈을 뜨고 감기를 반복했다.

티끌 하나 없는 흰 벽이 혜운과 마주했다. 혜운은 일어난 다음 자신이 할 일을 알았다. 어제도 한 일이니까. 혜운에게는 오늘도 별다른 것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혜운은 삐걱 소리를 내는 오래된 철제 프레임 침대에서 일어나 손목 위에 있는 바코드를 기계에 가져다 댔다. 삑-. 짧은 기계음 소리와 함께 확인되었다는 문구가 떴다. 곧이어 굳게 닫혔던 철제문이 열리며 ‘도우미 로봇’ 이라고 적혀있는 안드로이드가 혜운의 앞에 식사로 보이는 음식을 올려두었다. 도우미 로봇은 혜운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고 혜운은 숟가락을 들어 식판 위의 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정확히는 밀어 넣었다는 말이 더 가깝다. 혜운은 의무적으로 턱을 움직이는 저작운동을 하며 음식물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그가 식판 위에 있는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도우미 로봇은 떠나지 않았다. 달그락거리며 수저와 식판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어제 검사 받고 뭐했지?’

혜운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려 눈을 부릅떴다. 어제 검은 통로를 통과하고, 선생님께 키와 몸무게, 채혈하고…. 그 뒤에 잠이 들었었는데. 가만히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도우미 로봇이 즉각적으로 경고음을 내보냈다. 달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가 들리지 않자, 경고음을 보낸 것이었다. 혜운은 골을 울리는 기계음 소리와 함께 다시 젓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식금치’ 라는 초록색 채소가 혜운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다시 찾아오는 침묵과 함께 혜운은 무거운 입술을 떨어트렸다.

“어제 언제 방에 돌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어?”

“120시 94분입니다.”

“그래, 알았어.”

“E-043H, 30분 내로 섭취하지 않을시 긴급 조치가 취해집니다.”

도우미 로봇의 경고음과 동시에 혜운이 쥐고 있던 수저가 다시 느릿하게 움직였다. 주인이 던져준 먹이를 먹는 기분이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옆방에 있는 아이도, 그 옆에 있는 아이도, 저와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혜운이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입안에서 불쾌하게 움직이는 음식물이 오늘따라 까끌까끌했다. 식사를 마친 혜운은 어제와 똑같이 입을 벌리고 그들에게 검사를 받았다. 그들이 떠난 방은 정적에 삼켜졌다.

혜운은 오늘은 일기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혜운은 새까만 별들이 있는 유리창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한 생각에 혜운은 흠칫 놀랐다. 왜? 영양가 있는 식사, 푹신한 침대, 깔끔한 옷.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다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혜운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채워졌다가, 이내 폭발하듯 혜성이 하나 떨어졌다. 도망가야 해.

어디로? 어떻게? 책상에 앉아 읽지 않으려고 했던 일기장을 펼쳤다. 어제의 일기에도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도망가야 해. 이런 말을 내가 썼었나? 그런 기억은 없었다. 일기장을 앞으로 넘기는 소리가 빠르게 들렸다. 그 전날에도, 그전에도, 혜운의 일기장에는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같은 말, 같은 글씨체.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펜을 들어 같은 말을 써 내려갔다. 도망가야 해. 그리고 혜운은 이번에는 다른 한 장을 넘겨 다른 말을 적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혜운은 서둘러 종이를 찢어 아주 작게 접었다.

오늘 혜운의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어쩌면 어떤 별보다도 빠르게.

***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가 의자에서 일어나 손목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 문을 나섰다. 혜운의 발걸음에도 점차 속도가 붙었다. 오늘은 다른 이유였다. 숙소가 있는 긴 복도를 지나, 거대한 광장을 지나고, 별이 가득 보이는 투명한 돔을 지나면 연구소가 있었다. 숨이 찼다. 아니, 어쩌면 마음이 벅찬 것일지도 몰랐다. 혜운은 손목에 있는 바코드를 입구에 한 번 더 가져다 댔다. 삑, 익숙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여혜운이라는 이름이 공중에 뜨며 문이 열렸다.

여혜운 Yeo Hyewoon

16세 남

실험체 E-043H

확인되었습니다.

혜운은 자신과 같은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아이들의 뒤에 줄을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며 우르르 혜운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나왔다. 그 사람과 눈이 또다시 마주쳤다. 이건 분명 어제도 있었던 일이다. 아니, 어쩌면 매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낯설고도 낯익은. 아니, 매일 겪었지만, 오늘 처음 마주하는 것 같은, 뷔자데(vu jade)처럼. 혜운은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수많은 아이가 밀고 당겨지며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만 더,

눈이 멀 것 같은 파란 波瀾에 손을 뻗었다. 잡힌 손에 서둘러 잔뜩 구겨진 종이가 미끄러지듯 넘어갔다. 마침내. 눈이 또다시 마주친 그 소년은 뭐라고 말하려던 것 같았다. 입 모양이 소리를 만들어내기 전에, 혜운은 뒤에 서있는 사람들에 밀려 소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02. 그 소년

방에 돌아온 소년은 참았던 호흡을 길게 터트렸다. 손안에 들린 구겨진 쪽지가 낯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연구소에서 가장 유명한 애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그 애. 어딘가 시선을 끄는, 그 애가 준 쪽지였다. 소년은 천천히 여러 번 접힌 쪽지를 펼쳤다.

오늘 101시에. 휴게소 앞에서 봐.

믿을 수 없는 말에 소년은 여러번 같은 문장을 읽어내려야했다.‘지구’로 떠나기까지 단 7일. 선택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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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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