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7화

두코와 미들 부인

“두코가 왜 저렇게 사색이 돼서 뛰어가는 거야?”

휑하니 열려있는 두코의 방을 힐끔 들여다본 코지는 얼떨떨한 표정의 프라이에에게 물었다.

“아…, 가족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들었는데 자세하게 설명해주진 않더라고. 두코도 혼란스러운데 침착한 척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더 캐묻지는 않았어.”

코지는 저를 교회에 맡긴 부모님을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들이 어디 사는지, 살아는 있는지도 모르는데 두코는 계속 가족들과 교류를 해왔던 걸까, 아니 지금 질투할 때가 아니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

항상 장난스레 웃고 떠드는 두코만 봐서 그런지 저렇게 여유가 없어 보이는 두코는 어색했다. 코지가 중얼거린 말에 프라이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후, 초췌한 표정으로 돌아온 두코는 복도를 지나가던 프라이에를 붙잡고 북부 기사단은 몇 살부터 지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간 수행 말고 정식 입단 말하는 거지? 그거… 열일곱 살부터 가능한 거로 아는데. 그나저나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됐어, 설명하기 힘들어.”

쌀쌀맞은 말을 던진 두코는 프라이에가 붙잡기도 전에 제 방으로 들어갔다. 프라이에는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등을 돌렸고, 두 사람이 다시 대화한 건 일주일 뒤였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얼굴을 볼 기회는 무수히 많았지만, 두코가 좀처럼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아서 프라이에는 골머리를 앓았다. 두코의 룸메이트는 자신도 말을 못 걸겠다며 프라이에에게 사과했다.

“아냐,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두코도 마음이 괜찮아지면 다시 이야기하려고 할 거야. 원체 말 많은 성격이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라이에는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두코가 이대로 입을 열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고민과 기사단 입단 나이를 물어본 것 때문에 생긴 의문이 프라이에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코지 네가 뭘 좀 해줬으면 좋겠어.”

“…일단 여기선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아.”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던 코지는 도서실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프라이에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오랜만에 의욕적인 표정이었던 프라이에가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도서관장의 눈꼬리가 삐쭉 올라가는 걸 봐버렸기 때문인데, 프라이에는 자신이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한창 정오의 햇살이 따끔해, 두 사람은 그림자가 진 복도 끝에 섰다.

“두코 이야기하는 거지? 근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거창한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 내가 하면 오해받기 쉬운 일이라.”

불길한 말에 코지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프라이에를 올려다봤다. 잘못했다간 코지에게 엄청난 오해를 살 것 같은 분위기라 프라이에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거, 두코 방 책상에 두고 와줄래?”

빠르게 프라이에가 건넨 것은 편지 봉투와 예쁜 끈으로 묶여있는 주머니였다.

“편지는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이건 뭐야? 안에 작은 게 여러 개 들어있는 것 같은데.”

“시장에 나갈 수 있을 때 사뒀던 단 것들이야, 먹고 힘내면 좋을 것 같아서 같이 주려고. 빈손으로 부탁할 순 없으니까 네 것도 따로 챙겼어.”

그러고 부스럭거리는 주머니가 두 개였다. 코지는 녹색 끈이 달린 주머니를 제 손가방에 넣고 프라이에에게 언제 주면 되는 거냐고 물었다.

“되도록 빨리해줬으면 좋겠어. 오래 저런 상태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그건 그래. 두코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나도 슬슬 무서워. 표정은 사람 하나 죽이고 온 거 같은데 해야 할 건 꼬박꼬박하고 있으니까 주교님들도 뭐라고 못 하시고.”

프라이에는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프라이에와 헤어진 코지는 도서실에 들러, 읽던 책을 빌리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손가방을 두고 두코의 방으로 향하던 코지는 얀과 마주치는 바람에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뭐야, 네가 여기서 뭐 해?”

“심부름이야. 프라이에가 이거 전해달라고 부탁해서 가는 중.”

프라이에의 이름이 불리자 얀은 몸서리치며 코지를 빠르게 지나쳤다. 얀이 일으킨 바람에 시원해진 코지가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방문을 작게 두드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기에 코지는 무사히 두코의 책상에 물건들을 올려두고 나왔다. 한 번 더 복도를 둘러보고, 코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얀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기억해냈다.

‘아 옛날에 프라이에한테 혼났었지.’

얀과 센이 아직 폰과 코지에게 시비를 걸었던 시절, 프라이에가 한바탕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곤 말리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폰도 화를 못 이겨서 괜히 끼어들지 말고 가라고 얘기했는데, 프라이에는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사태를 마무리했었다.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시도폰을 제외하고 모두가 돌아왔던 날, 그는 유일하게 코지의 물음에 대답해주기도 했었다. 마차가 들어가는 창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두코와 함께 와서 코지를 건물 안으로 데려가기도 했었다. 더운 여름에 겨울 일을 생각하니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까…. 물론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가면 안 되지만 이번만은 봐주세요.’

허공에다 대고 기도한 코지는 누가 볼 새라 빠르게 다리를 놀렸고 얼마 안 있어, 방 주인이 돌아왔다. 두코는 거주관을 떠났던 삼 일 내내 제정신으로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알았기에 제 책상 위에 선물이라고 할 게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하고 바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가라앉은 두코가 고개를 들고 책상을 확인한 것은 룸메이트가 그를 깨웠을 때였다.

“네 책상 위에 있는 거 뭐야? 먹을 거야?”

“무슨 소리야….”

어색하게 자신에게 미소짓고 있는 룸메이트에게 미안해서라도 두코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비척비척 걸어간 두코는 익숙한 필기체를 발견하고 한숨을 쉬었다. 편지는 지나치고 바로 주머니부터 열어보니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온갖 군것질거리들이 담겨있었고, 두코는 하나를 꺼내어 룸메이트에게 건넸다. 그리고 하나를 더 꺼내서 제 입에 집어넣은 채 편지 봉투를 뜯었다. 구구절절 두코를 걱정하는 말이 가득한 편지에 답지 않게 짜증이 일었던 두코는 입에 문 사탕을 신경질적으로 씹었고, 따각따각 울리는 소리에 그의 룸메이트는 내용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이거 누가 두고 갔는지 알아? 아, 아니야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저녁 훈련이 곧 시작할 텐데 어디 가려고?”

문을 열려던 두코는 문고리를 잡은 손을 도로 놓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네. 곧 저녁 훈련이구나, 그럼 찾으러 나갈 필요는 없겠어…. 나가기 전에 깨워줘, 좀만 더 잘래.”

더는 대화를 하기 싫다는 듯,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두코였다. 그의 룸메이트는 조용히 옷을 정돈하고 읽던 책이나 마저 읽기로 했다.

 

훈련이 끝나고 두코는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프라이에는 검을 정리하고 다친 아이들을 도와주느라 두코를 바로 따라갈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훈련소 문에 걸쇠를 걸어 잠그고 나오며 한숨을 쉬었다.

“더럽게 오래 기다리게 하네.”

“엄마야 깜짝이야. 미안, 기다리고 있었구나.”

기둥 그림자에 숨어있던 두코가 불쑥 튀어나왔다. 두코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프라이에는 막상 그를 마주하니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죄 없는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겨우 그가 건넨 한 마디는 편지에서 가장 자주 나왔던 것이었다.

“괜찮아?”

“뭐가?”

“네가 3일 동안 거주관을 비우게 한 일, 잘 해결됐냐고.”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어.”

말문이 막힌 프라이에는 무슨 일이었길래 그렇냐고 물었다. 훈련이 끝난 시간대였지만 해가 지지 않아서 더운 공기가 여전했고, 두코는 짜증스럽게 땀을 닦으며 프라이에의 걱정 어린 시선을 피했다.

“사실 이거 말하려고 기다렸는데, 그렇게까지 날 챙기지 마. 네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네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고.”

둘 사이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두코는 아무런 대답도 없는 프라이에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아래로 내린 시선을 유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도망치려던 두코는 등 뒤에서 들린 분노 가득한 목소리에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사람이 걱정했는데 말하는 꼴이 왜 그래? 그래, 걱정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내가 그렇게 해서 부담스럽다는 건 알겠어. 근데 사람이 어, 걱정 좀 할 수도 있지, 어차피 같이 사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그거 참견하는 게 그렇게 아니꼬웠냐?”

“어, 아니꼬워, 엄청.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진짜 가족도 아니잖아, 다른 놈들은 잠깐 눈치 보고 말던데 왜 너만 이렇게 꾸준히 날 건드리냐고.”

“진짜 가족이라니 너 의절했다며, 나도 마찬가진데. 그래서 난 너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근데 우리는 너한텐 가족도 아니었다는 거네?”

아차 싶었던 두코가 뒤돌았지만, 여전히 프라이에를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두코를 앞에 두고 프라이에는 한숨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됐다. 그렇게 싫다는데 계속 뭐라 하면 안 되겠지. 알아서 해.”

그 말을 끝으로 프라이에가 돌아섰다. 혼자 남겨진 두코는 자신이 흘리고 있는 게 땀일 거라며 그것을 대충 닦고 말았다. 그런데 땀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는 데다, 얼굴이 홧홧해지기까지 해서 도저히 이게 눈물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축축하게 젖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은 두코는 복잡한 마음이 추슬러질 때까지 돌아가지 못하겠다 생각했다. 해가 지고 야간 기도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두코는 훈련소 앞 그 복도에 주저앉아있었다. 울기도 지쳐서 멍하니 어둑한 정원만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작은 빛이 아롱거렸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들어가.”

애써 쌀쌀맞은 말투를 흉내 냈지만, 내용은 촛불처럼 따뜻한 말이었다. 프라이에는 이미 푹 젖은 두코의 수건을 걷어내고 새 수건을 두코의 머리에 덮어주었다.

“일어날 수 있어? 아 안 되겠네, 다리가 다 풀렸잖아.”

두코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자리에 주저앉아 기우뚱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고, 무릎 세우고 앉아봐. 여기, 촛불도 좀 들고 있고.”

프라이에는 얌전히 지시에 따르는 두코에게 낮은 촛대를 넘겨주고 천천히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당황한 두코가 쉰 목소리로 뭐라고 했지만, 프라이에는 혀를 찰 뿐이었다.

“목소리도 그렇게 쉬어서는 걷지도 못하고….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속상하다 속상해.”

굳어있는 두코를 그대로 들어 올린 프라이에는, 촛대가 흔들리지 않게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며 숙소로 걸어갔다. 규칙적인 발걸음에 맞춰 촛불이 흔들렸다. 두코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아까보단 멀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무 작은 목소리라, 시야 확보를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있던 프라이에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응? 미안, 뭐라고 했는지 안 들렸어.”

바짝 다가온 프라이에의 얼굴에 두코는 놀라서 촛대를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 내가 크게 말할게. 떨어져 봐, 큼. 음…, 미안해. 걱정해줬는데 자세하게 설명도 못 해주고 심한 말까지 해서.”

“그래, 네 말이 심하긴 했어. 정말로 내가 걱정하는 게 그렇게 싫었어?”

복잡한 심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던 두코는 촛대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비비 꼬았다.

“그게 싫었던 게 아니야, 정확하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러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는 건?”

“꽤 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네 어깨가 떨어지지 않을까?”

“농담이었어. 사실 말 안 해줘도 돼. 그냥 네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서 물어봤던 거야, 같이 생각하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는 문제도 있으니까…. 근데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안 물어볼게.”

두코는 고맙다고 대답하며 굳어있던 몸을 살짝 풀었다. 그대로 프라이에 쪽으로 조금 더 기댄 채,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정에 못 이겨서 전부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잠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까와는 다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숙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을 수 있지?”

“응, 고마웠어. 근데 너 기도 도중에 나온 거 아냐?”

“너 찾으러 간다니까 빼주셨어. 방에서 쉬고 있다고 말해줄게. 푹 쉬어.”

프라이에는 촛대를 들고 곧장 기도실로 향했고 두코는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아래엔 지난 외출 때 본가에서 받아온 짐이 처음 상태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두코는 짐 가방을 열어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닫을까 생각했다.

‘아냐, 짐을 정리하면 마음도 좀 정리되겠지.’

가방 안엔 고급스러운 재질의 옷과 영지의 특산품이 가득 담겨있었고, 그 중간엔 사제와 어울리지 않는 보석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코가 한숨을 쉬며 보석함을 열어보았고 거기엔 어머니의 초상화가 작게 그려져 있는 종이가 한 장 들어가 있었다. 물론 그 종이는 아래에 꽤 많은 보석을 깔고 앉아있었고, 두코는 그 모습이 실제 어머니와 다른 바 없다고 느꼈다.

‘그래 봤자, 죽을 땐 아무것도 못 들고 가잖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었는데요.’

얼마 전, 투르스 거리에서 미들 부인이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제방 작업을 진행 중이던 인부가 물 위에 뜬 천 조각들을 수상히 여겨 가까이 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신고 있던 구두에 진흙이 묻어 있었기에, 발을 잘못 헛디뎌 물에 빠졌고 깊은 수심 때문에 탈출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인부의 부름을 들은 아세쿠토레가 부인을 알아보자마자 신전에 이 사실을 알렸고, 영지에 내려가 있던 대공과 그의 자식들이 신전으로 달려가 신원이 확인되었다. 타살의 흔적이 없었기에 따로 부검 등의 절차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인의 가족들이 시신을 훼손하길 원하지 않았기에 미들 부인의 장례식이 바로 영지에서 진행되었다.

두코가 받았던 편지는 그 소식을 알리며,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라고 강요했다. 두코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두세 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 번 읽은 것만으로는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연거푸 읽고 나서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부인의 시신은 물에 오래 있지 않았는지 살아생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코가 본, 관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일단 그러했고, 미들 부인은 성가시게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처럼 멀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오랜만에 두코가 부인을 어머니라고 부른 날이었다. 평소였다면 크게 혼이 났을 장난이었지만 부인은 회초리도 들지 않았고, 소리를 높여 두코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관에 누워 자신에게 바치는 헌사를 즐기다가, 흙에 덮여 영원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두코는 모든 과정에서 이방인이었지만 동시에 내부인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영지에 도착했을 땐 자리를 찾지 못해 허둥지둥 돌아다녔다. 두코를 알아본 집사의 안내로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인도받았을 땐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거주관에서 누리지 못했던 안락함과 게으름을 마음껏 즐기진 못하면서도 거절하진 못했고,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을 어색하게나마 받아들이려고 하는 가족에게 애정을 느끼다가도 그 집에서 당한 일을 떠올리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진정한 가족이란 뭘까?’

삼 일 내내 두코를 괴롭힌 질문이 여전히 질척하게 그의 등에 붙어있었다. 피로 이어져서 강제로나마 십몇 년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가족과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 거주관의 아이들을 천칭의 양쪽에 두고 보았을 때, 자신은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아마 부인의 장례식이 아니었더라면 길고 긴 고민 끝에 거주관 아이들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코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 채 거주관으로 돌아왔다.

“하….”

한숨을 쉬며, 두코는 보석함을 닫았다. 하지만 부인이 그려진 종이는 따로 노트에 끼워두었다. 보라색 가죽으로 감싼 그것은, 어느 날 프라이에가 선물해준 노트였다. 부인에 대해 좋은 기억이라곤 정말 어릴 적의 것들과 간간이 보여준 미소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종이를 구기거나 버릴 수 없었다.

잃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아서 집을 나왔고, 얼마 간은 정말 해방감에 고양되어있었으며, 이후로는 그들을 거의 잊고 지냈다. 가끔 돌아오라는 편지를 읽어도 그들의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았고 귀찮다는 생각에 답장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영영 잃고 나니 한 번이라도 답장해야 했던 게 아닐까, 얼굴이라도 한 번 마주하러 가야 했던 게 아닐까? 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것들을 다 처분하면 얼마 정도 되려나…. 앞으로 입을 일도 없을 텐데.’

옷가지를 뒤적이던 두코는 착잡한 눈으로 그것들을 다시 정리했다. 특산품인 과일은 아이들한테 대충 던져주면 알아서 잘 나눠 먹을 것이다. 그는 과일만 따로 빼두고 가방을 닫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었다. 드드득- 소리와 함께 가방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찬송가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거주관의 아이들은 전부 거기에 모여있을 것이다. 언제든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신만 제외하고.

결국은 거주관으로 돌아왔으니 진정한 가족으로 아이들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두코는 자신이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지 않냐는 의문도 계속 품고 있었다. 출신, 가정사, 거주관에 들어온 이유 중, 아무것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데, 자신을 받아주기만 바란다면 그건 정말 양심을 저버린 짓거리가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면 안 되나? 그러려고 나왔는데.’

어느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두코였다.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혈연들은 성가셨고 거주관 아이들의 친절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코는 차라리 오드샤처럼 학교에 갔으면 좋았으려나 생각하다가 그의 첫인상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고갯짓을 멈추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는 척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두코 위로 작은 불빛이 쏟아졌다. 작은 목소리로 룸메이트가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고 있네, 무슨 일 있으면 말할 게.”

“응, 너도 잘 자고.”

상대방은 역시나 프라이에였다. 문이 소리 없이 닫혔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안 자고 있었지?”

“들켰네, 어떻게 알았대.”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뭐. 그래도 자는 척하는 것 같아서 넘어갔어. 프라이에랑 잘 이야기했어?”

“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진실은 꼭꼭 숨겨두리라 생각했는데 또 이런 걱정을 들었더니 마음이 들뜬다. 두코는 속으로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를 계속 외우다가 입을 열었다.

“응, 잘 이야기했어. 프라이에가 내 생각보다 날 많이 걱정했더라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부끄러운 말을 많이 해서 아깐 자는 척했어.”

“그렇지, 그런 말은 하고 나면 상대방 얼굴 보기 괜히 민망하더라. 그래도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야. 부담스러워할까 봐 자주 말하진 못했지만 걱정했거든.”

“…고마워. 얼른 자, 피곤하지 않아? 내일 기상 당번 우리잖아.”

“아 맞네. 너도 잘자, 좋은 꿈 꿔.”

“너도.”

이윽고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두코는 마음을 놓았다.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진정한 가족을 결정하는 건 조금 미뤄도 되지 않을까? 여름밤의 미적지근한 공기 때문에 조금 뒤척이던 두코는 어느새 잠들었다. 다음날부터, 평소만큼은 아니더라도 밝아진 두코의 모습에 거주관 아이들은 안심하며 일상을 보냈다. 두코의 룸메이트, 가넷은 지나가던 프라이에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프라이에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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