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8화

미들 부인의 장례식, 남부편

훈훈해진 거주관과 다르게 신전은 침울한 분위기에 짓눌리고 있은 지 오래였다. 아세쿠토레는 미들 부인의 사망 이후로 제대로 잠을 못 자다가 쓰려졌고, 카리타스는 그 이후 혼자 뒷수습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녔다. 사건 현장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현장을 목격한 인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사건 경위서, 기타 등등의 잡다한 서류들 사이에서 카리타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다.

‘장례식도 내가 갔지.’

신전 주도의 사업에서 왕당파 귀족이 사망한 사건이니만큼 궁의 압박이 있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사업주도자가 아세쿠토레라 사건 직후엔 국왕의 추궁이 없었다. 하지만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전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리라 생각한 교황이 매일 같이 회의를 열었고, 그 회의가 끝나고 나면 별 의미도 없는 종이 더미들이 쌓였다. 카리타스는 미들 부인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갔던 두코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주일 뒤, 카리타스의 책상 위엔 왕당파 귀족들의 항의 문서가 서류 더미 옆에 한가득 쌓여있었다. 기도가 끝난 뒤 돌아온 카리타스는 그 꼴을 보고 잠깐 한숨을 쉬었다가 시종에게 아페를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아페가 다급히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카리타스의 방을 한 번 들여다보더니 입을 닫았다.

“…저게 전부 귀족들의 항의 문서인가요?”

“예, 아마도 당신을 피해서 교회만 공격하기 위해 머리를 좀 썼을 겁니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리겠네요. 몸은 괜찮아지셨습니까?”

“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당신께서 더 피곤하시잖아요. 제가 하겠습니다.”

카리타스는 뻑뻑한 눈을 문지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저걸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떠넘기려고 부른 게 아니라 같이 하자고 부른 겁니다.”

먼저 걸어 들어간 카리타스를 따라 아페도 발을 들였다. 간단하게 절차를 설명한 카리타스는 바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아페는 느리지만 꼼꼼하게 카리타스가 가르쳐준 대로 그를 따랐다. 그러던 중 서류들 사이에 파묻힌 봉투 한 장을 발견한 아페가 그것을 집어 들어 카리타스에게 내밀었다.

“이거… 편지인가요? 서류들 사이에 파묻힌 것 같아요.”

“이리 주시죠. 지금 당장은 어차피 답변을 못 할 테니까요.”

봉투의 상단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카리타스에게.’라고 적혀있었다. 북부에서 사용하는 봉투가 항상 똑같았기에 굳이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적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폰은 항상 봉투 하단에 자신이 보냈다고 적어두었다.

‘얼마 전에 도착했나 보네, 다음부턴 책상 위가 아니라 다른 데 따로 두라고 해야겠어.’

빠르게 봉투를 받아든 카리타스는 그것을 서랍 제일 위 칸에 넣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잠깐 열려있는 서랍을 훔쳐본 아페는 그 서랍장이 거의 비어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지만 물어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 오늘 하루 만에 끝나긴 했네요. 내일 각 가문에 답신을 보내는 건 저 혼자 해도 괜찮지요? 얼른 쉬세요. 제 일인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리타스는 초췌해진 아페의 얼굴을 보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카리타스가 더 많이 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아페가 더 괴로워 보였다.

“미들 부인의 일은 사고였습니다.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고 제방 사업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니 그런 것으로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곧바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카리타스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페를 발견하고 놀라서 굳어버렸다. 결재가 완료된 서류를 챙기고 있던 시종들도 그것을 알아채고 얼어붙었고, 간신히 먼저 정신을 차린 카리타스가 눈짓으로 그들을 재촉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사업을 주도하지 않았더라면,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잖아요.”

작은 목소리에 후회가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흘러나왔다. 아페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등을 돌렸고, 굳이 붙잡지 않은 카리타스는 혼자뿐인 방에서 서랍을 열었다.

조심스레 편지를 뜯어보니 편지지가 세 장이 빡빡하게 들어가 있었고, 아직 내용은 전혀 몰랐지만, 그 광경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카리타스였다. 아까까지 심각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단 채 카리타스는 쭉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서임식을 마치고 나서 피데이스라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람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 쓰인 부분에선 잠깐 입꼬리가 내려가긴 했지만, 또래도 아니고 족히 열다섯은 많아 보인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게 아니고서야 집행자인 시도폰을 건드리려고 들진 않을 테니까.

그 부분 이후로 다소 긴장한 채, 편지를 읽은 카리타스는 마지막 장, 마지막 단어까지 읽고 나서야 찡그린 눈에서 힘을 뺐다. 다행히 별로 이상한 점이라거나 위험한 일은 없었다. 시도폰이 북부에서 잘 적응하고 있으며 신성력을 사용하는 법도 착실하게 발전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시도폰이 안전하려면 힘을 잘 사용하는 게 맞지만…, 찜찜해. 이게 정말 그 애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어.’

답장을 쓰려고 펜을 든 카리타스는 무슨 내용을 쓸 것인지를 삼십 분 동안 고민하다가 다시 펜을 내려놓았다. 미들 부인의 사고 때문에 그 외의 일이랄 게 거의 없었고, 그 이전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일기장에 뭐라도 써두었나 싶어서 펼쳐보았지만 바빠서 그런지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 같은 내용뿐이었다.

결국, 카리타스는 안전 취약 지대에 제방 사업을 하느라 바빴다는 내용을 두 문장에 걸쳐 쓰고는 종이를 도로 서랍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보충해서 써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인의 사고를 수습하고 국왕과의 일이 다 끝났을 땐 여름의 끝물이 되어있었고, 답장을 받지 못한 폰의 편지가 두 통이 쌓여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깨운 카리타스가 겨우 편지를 보내고 침대 위에 쓰러졌다.

‘이대론 안 돼. 시도폰을 다시 만나기 전에 과로사로 먼저 죽겠어. 빨리 아페를 쓸 만하게 만들어야 좀 쉴 수 있겠네.’

하지만 카리타스는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뒤에 인정하게 되었고, 이후로 아페는 카리타스를 대놓고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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