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9화

코지의 북부 수행

(앞 시점에서 3년 후입니다)

“짐은 다 챙겼어? 추위도 많이 타는 게 가서 어떡하려고 그러냐~.”

“걱정도 많다! 애 감기 안 걸리게 내가 잘 챙길 거야.”

북부 행 마차에 탄 코지는 제 옆에서 얀에게 쩌렁쩌렁 소리치는 두코를 쳐다보았다. 코지에게 짐을 건네던 센은 두코가 왜 마차에 타고 있는지 물었다.

“그야 북부 기사단에 입단하려고 지. 왜겠어?”

“너 아직 열여섯이잖아? 북부 기사단 입단은 열일곱부터, 정식 기사 서임을 받은 사람만 가능하다고. 아니 잠시만, 기사 서임은 5월이니까 아직 정식 기사도 아닌데?”

“경력직이잖아, 지금 북부에 인원 보충이 필요해서 허락받고 가는 거라고.”

두코는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마차에서 일어섰다가, 흔들리는 마차를 발견한 베론에게 혼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신 사납게 굴지 마라. 두고 가버린다.”

“옙, 부단장님!”

능청스럽게 경례까지 하는 두코였다. 베론은 그 옆에 있는 코지를 흘끔 바라봤다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부단장님, 물자 전부 실었습니다. 아이들 인원만 확인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북부 기사단 단복을 입은 프라이에가 베론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프라이에는 마차에 탄 두 사람을 보며 눈인사를 건넸고 두코는 질투의 눈빛으로, 코지는 안심의 눈빛으로 답했다.

“그래, 명단은 여기 있으니 확인하면 말해다오.”

“직접 확인하시지 않고요?”

“거주관 아이들이라면 자네가 더 잘 알 테니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라이에는 잔뜩 기합이 들어간 얼굴로 인원을 확인했고 아이들에게 부상은 없는지, 따로 챙겨야 할 소지품은 잘 챙겼는지까지 물어본 다음 베론에게 돌아갔다. 곧이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고, 코지는 삼 년 만에 보는 시도폰이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해하며 마차에 기댔다.

“이번에도 어디 들르나요?”

갑자기 줄어드는 마차 속도에 두코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프라이에가 위험하니 들어가라며 핀잔을 줬지만, 두코의 고개는 안으로 들어갈 줄을 몰랐다.

“…우리가 북부 수행 때 카리타스랑 중간에 만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전 일행이랑 중간에서 만날 거야. 3 왕녀님이 이번에 가신다고 하던데.”

“신기하네, 거의 3년 전 상황이랑 비슷하잖아.”

“그래, 이제 알았으니까 빨리 고개 집어넣어.”

건성으로 대답한 두코가 마차 안으로 들어갔고 일행은 신전 사람들과 만난 다음, 여정을 재개했다. 지난번처럼 워프를 타고 이동하면서 두코는 프라이에의 상태가 괜찮은지 종종 살폈다.

“에이, 너무 멀쩡하네.”

“실망했어? 이것도 몇 번 해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

의기양양한 프라이에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던 두코는 표정을 바꾸어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수행단은 한 번만 더 워프하면 기사단 본부에 도착하는 위치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코지는 어느새 제 옆에서 모포를 두른 채 서 있는 아페를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제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발을 꼼지락거리는 사람을 무시할 수 없었던 코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왕녀 저하. 춥지는 않으신가요?”

“아페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질문에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코지는 ‘아페 님’으로 호칭을 수정했지만, 아페는 그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어요. 전 평민이라 이런 거 잘못 말했다간 위험하다고요!’

차마 그렇게 소리칠 수 없었던 코지는 그냥 호칭을 포기하기로 했다.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실까요?”

“그게 저기, 집행자님과 친우라고 들어서요. 그분에 대해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서….”

‘대체 왕녀 저하는 언제 꼬신 거야?’

분명 시도폰이 남부로 왔던 건 3년 전, 기사 서임식 때뿐이었을 텐데. 코지는 아페의 뒤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카리타스의 환영을 잠깐 본 것 같았다. 아페는 정말 시도폰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는지, 좋아하는 음식부터 취미, 성향 등을 마음껏 물어보았다. 알 수 있는 데까지는 열심히 설명한 코지였지만, 머리 한구석에선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미묘한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일단 제가 아는 것은 다 말씀드린 것 같아요. 그 이상은 물어보셔도 저도 모를 거예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왕녀라더니 시도폰이나 내가 평민인 건 신경이 안 쓰이시는 건가?’

아페가 가고 나서야 두코가 코지에게 다가왔다.

“왕녀 저하는 무슨 일이시래?”

“…시도폰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궁금하시대. 근데, 내가 걔 친구라는 거 언니가 말한 거지?”

아직 시도폰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던 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두코는 마지막 질문에 난처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들켰네. 미안, 왕녀 저하께서 하도 궁금해하셔서. 솔직히 말하면 북부 수행 가기 전의 폰이 어땠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몰랐거든. 그냥 활달하고 사고 많이 치는 친구 정도?”

“정확한데,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었을 정도야.”

“부담스러웠구나. 이해해. 신분이 신분이니 얼굴만 마주하는 것도 긴장되지.”

“그걸 알면서 나한테 보내다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애교를 부린 두코에게 황당한 표정으로 답하는 코지였다.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코지가 고개를 들자, 프라이에가 자신과 비슷한 표정으로 두코를 보고 있었다.

“뭐 한 거야?”

“아니, 너한테 한 거 아니라고. 근데 왜 둘 다 그런 표정이야?”

“글쎄다….”

프라이에가 어깨를 으쓱거렸고 코지도 모르쇠 하며 다시 마차로 올라탔다.

 

“와, 저기가 기사단이구나. 되게 외딴곳에 있네.”

“코지, 안 추워? 추위 많이 탄다면서.”

“춥긴 한데 그래도 궁금했던 곳이라…직접 보고 싶었어. 잠시만, 무슨 소리 안 들려?”

“뭐가 굴러오나? 곰이라든가 눈덩이라든가.”

“농담도.”

어느새 북부에 도착한 수행단 일행은 문을 열자마자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보고 싶었어!”

시도폰은 뒤에서 그를 말리려다 실패하고 주저앉은 슈바헨이 보이지 않는지, 해맑은 얼굴로 수행단을 맞았다. 처음엔 무작정 일행을 향해 달리던 시도폰은 마차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코지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쪽으로 똑바로 오는데?”

코지가 당황한 얼굴로 두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두코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되려, 두코는 보고 싶었던 건 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근데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길 거라곤 예상을 못,해서!”

말끝이 심하게 튀었다. 시도폰이 마차 앞에서 급하게 멈추는 바람에 그 기세에 마차가 덜컹하고 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짧은 거리라 그런지 숨을 몰아쉬지도 않고, 폰은 코지에게 잘 지냈냐고 물었다. 처음엔 당황했던 코지도 익숙한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푸핫, 하나도 안 변했네. 당연히 잘 지냈지. 오래간만이야.”

“나는 안 보여?”

두코가 코지의 옆에서 삐쭉 고개를 내밀었다.

“당연히 잘 보이지 근데 언닌 이제 여기서 말뚝 박을 거잖아.”

“아하~이미 잡은 물고기다?”

“그렇지!”

두코가 농담하며 마차에서 뛰어내렸고 폰은 코지가 내려오는 걸 도와주며 두코의 말을 받았다.

“프라이에랑은 이미 인사했지? 아페 저하는… 음, 저쪽에 계시네. 아마 슈바헨 님이 오셔서 안내하실 거야.”

코지는 아페가 폰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해줄까 고민했지만, 카리타스가 아른거려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폰도 아페를 굳이 찾아갈 생각은 없었는지, 신전 쪽 사람들은 흘끗 쳐다보기만 했다.

“바로 들어가면 되나? 우리 땐 인원 점검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고개를 까딱인 두코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거 이제 할 거니까 다들 나 따라와.’라며 프라이에가 앞장서서 어딘가로 향했고 마차에서 내린 채 어수선하게 서 있던 아이들은 그를 따라갔다. 시도폰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걸어갔다가 그를 발견한 슈바헨에게 잡혀갔다.

“나중에 봐~”

그런 폰에게 손을 흔들어준 코지는 기숙관에 도착했다.

“응? 시도폰이랑 카리타스가 썼던 방이네?”

두코가 코지의 방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 말에 코지는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척 봐도 높이가 꽤 있어 보였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코지가 두코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도폰이 여기까지 벽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거지?”

“내려갈 때는 그냥 뛰어내렸어. 올라가는 것만 벽을 탔지, 직접 봤으면 재밌었을 텐데…. 궁금하면 너도 해볼래?”

질겁한 코지가 고개를 저었다. 짐을 다 풀었으면 본관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프라이에의 외침에,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그쪽으로 향했다.

 

본관에 도열한 두코는 두 번째 듣는 주의사항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지만, 헤일로의 기세에 눌린 코지는 잔뜩 긴장해서 공지를 듣는 내내 귀를 쫑긋 세웠다. 헤일로가 큰 소리로 두코를 비롯한 몇 명의 이름을 불렀을 때, 두코는 겨우 귀를 연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이번에 북부 기사단에 자원했다. 정식 기사인 이들도 있고, 아닌 이들도 있지만 다들 훌륭한 수호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단복을 지급할 테니 앞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그렇게 입단 축하로 마무리된 수행단 입관이었다. 냉큼 단복으로 갈아입은 두코는 멋진 척, 코지 앞에서 자세를 잡다가 헤일로가 다가오자 바로 경례했다.

“벌써 각이 잘 잡혔군. 기대하도록 하마.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데려가도 되겠니?”

마지막 말은 코지를 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슈바헨이 아니라 헤일로에게 두코를 보내준 코지는 아이들을 따라 복도를 걷다가 누군가에게 팔을 붙잡혔다.

“이제 자유 시간이지? 그치?”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당연히 알 수 있었기에 코지는 베론의 눈치를 살폈다. 베론은 슈바헨에게 말을 걸며 못 본 척했고, 그제야 코지는 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반가워하는 폰이 걱정됐던 코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별일은 없었는데?”

“정말로?”

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뭐야….”

코지는 제 한쪽 팔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시도폰의 턱을 살짝 밀었다. 그런데도 되려 행복한 표정으로 밀려나진 않는 폰에, 밀어내길 포기한 코지는 얌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코는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갔어?”

“아까 기사단장님이 부르셔서 아직 본관에 있을걸.”

폰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을 멈추었지만, 코지에게서 떨어지진 않았다.

“너 북부 오기 전에 공부했던 거 말인데, 도움이 됐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도폰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응, 물론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예습이 효과가 있더라고. 악마와의 전투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지라든가, 질긴 고기는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지 같은 거. 여기서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워낙 외워야 하는 게 많아서 말이야.”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코지가 대답하자 폰은 이번에도 공부하고 와서 그런 게 궁금했느냐고 되물었다. 코지는 그답지 않게 폰의 시선을 피했다.

“네가 그때 공부하는 거 싫어했잖아. 그런데 억지로 시켰던 것 같아서 미안했어. 이렇게 오래 못 볼 줄 알았으면 붙잡아두고 공부하는 대신에 그냥 같이 놀았어야 했는데….”

폰은 크게 눈을 떴다가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 우리 둘 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몰랐잖아, 그렇게 가정하는 건 의미가 없지. 공부할 때도 같이 있었으니까 그걸로 됐어, 내가 더 자주 남부에 갈 수 있게 노력해 볼 게. 아니면 너도 북부 기사단에 지원할래?”

“추위를 많이 타서 안 돼. 거기다가 난 멧돼지 수육이 딱히 기대되진 않아서.”

폰의 농담에 코지는 표정을 풀고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복도를 나아갔다.

 

한편 줄 끄트머리에서 슈바헨과 이야기하던 아페는 두 사람에게, 정확하게는 한 사람에게 향하려는 시선을 자꾸 거둬야 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아페가 걱정됐는지 슈바헨이 저녁 행사는 쉬겠냐고 물었다.

“저녁 행사라고 하시면….”

“전체 인원이 모여서 식사한 후 기도와 축성까지 할 예정입니다. 시장하실 테니 식사만 하고 돌아가셔도 좋을 듯합니다.”

“축성은 슈바헨 사제님께서 하시지 않나요?”

“오, 아니요. 이젠 저보다 높으신 분이 계시니 제가 하면 아니 되지요. 집행자께서 수행단 한 명 한 명에게 축성을 해주실 겁니다.”

슈바헨의 마지막 말에 아페는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저녁 시간이 기대된다며 아페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폰의 인기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한 슈바헨은 그럼 저녁때 뵙겠다며 아페를 보내주고 사라졌다. 머뭇거리던 아페가 슬금슬금 폰과 코지에게 다가갔다.

“저… 집행자님, 오래 간 만에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3년 전에 뵈었을 땐 되게 조그마했는데 많이 크셨네요.”

“네, 저 열 살이 되자마자 북부에 지원하고 싶어서 열심히 운동도 했답니다.”

시도폰이 아페를 칭찬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던 코지는, 폰이 아페를 너무 동생 대하듯 하고 있지 않나 걱정했다. ‘아무리 신전에 들어오셨다고 해도, 편하게 대해도 되는 건지.’라는 생각으로 코지는 시도폰 옆에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뭐… 난 이제 필요 없다, 이건가? 예상은 했지만, 폰한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자마자 이렇게 되다니.’

대화는 계속 폰과 아페 사이에서만 돌고 돌았다. 폰이 코지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로 말을 돌리기도 했지만, 아페가 눈치 없이 두 사람 사이에 계속 끼어드는 바람에 그런 시도는 흐지부지되었다. 이번엔 제발 코지만 대답하길 바라며, 폰은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코지, 네 방은 어디야? 여자애들은 2층일 텐데.”

“나는 몰랐는데 계단에서 세 번째 방이었어. 두코가 너랑 카리타스가 썼던 방이라고 말해주더라, 너 대체 어떻게 거기서 그럴 생각을 한 거야?”

코지가 폰의 옆구리를 살짝 쳤다. 당연히 폰은 잽싸게 피했고, 거기에 덧붙여 억울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아페는 그런 폰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때, 남부에서 말해줬을 땐 그러려니 했으면서 왜 이제야 이래?”

“그때는 여기 2층이 그렇게까지 높은 줄 몰랐으니까! 세상에, 어떻게 아무리 눈이 온다고 해도….”

“이, 이젠 안 그래. 안 그런다고!”

막 시동을 걸기 시작한 코지의 잔소리를 피하고자, 폰은 잡고 있던 코지의 팔을 놓고 숙소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당연히 아페와 코지 중 폰을 쫓아가서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저 멀리 도망갔던 폰이 기둥 뒤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안 잡아먹어, 왜 이렇게 빨리 도망가는 거야?”

“날랜 게 주특기라 어쩔 수 없어. 너도 훈련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힘내라며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드는 시도폰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코지는 제 옆의 아페를 바라보았는데, 아페는 그런 시도폰조차 멋있게 보였는지 여전히 행복한 눈빛이었다.

‘슬슬 무섭다. 도대체 무슨 콩깍지가 씌면 이렇게 되는 거지.’

“어쩜 저렇게 날래실까요….”

마침 폰도 떨어졌겠다, 코지는 지금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아페 님께선 저희와 같은 숙소를 쓰시나요?”

“네, 슈바헨 님께서 따로 쓰시겠냐 물어보긴 하셨는데 저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단체 생활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서 거절했어요.”

“그러셨군요, 방은 누구와 함께 쓰시게 되셨나요?”

“음…. 아, 마침 저기 오고 있네요.”

아페가 가리킨 것은 어쩐 일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두코였다.


“저하.”

“저하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자꾸 그러시면 저도 본명으로 부를 거예요.”

“…아페 님.”

“네.”

콧노래를 부르며 머리카락을 빗는 아페의 뒤엔 침대에 누워 신세 한탄을 하는 두코가 있었다. 두코는 무슨 꿍꿍이로 여기까지 온 거냐고 물었다. 잠깐 멈칫한 아페는 태연하게 다시 빗질을 계속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건 멈췄다. 본래 말하려던 것을 감춘 아페가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꿍꿍이라고 할 건 없어요. 어린 사제들이 북부로 수행을 떠나는 게 관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제 신전 사람이니 그것에 따랐을 뿐이랍니다. 조금 사심이 있어서 열 살이 되자마자 출발한 거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그 사심이 궁금한 겁니다.”

“그건….”

어느새 빗질을 멈춘 아페였다. 침대에서 일어난 두코는 꼼지락거리는 아페의 뒷모습이 수상해, 가까이 다가갔고 아주 작게 들리는, 떨리는 목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그야, 당연히 집행자님을 보러 온 거죠. 삼 년 전에 잠깐 뵌 게 다였지만 저는 그분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고, 또….”

‘망했네. 어떡하지. 아니, 뭐 애들이니까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겠지.’

시도폰이 눈 오는 날,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갈 수 있게 한 도우미로서 그런 말을 들어버린 두코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을 닫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저녁을 먹기 전까지 두코는 계속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야기의 끄트머리엔 두코가 거의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페가 간신히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만찬에선 다행히 아페의 자리가 슈바헨 쪽에 지정이 되어 있어서, 해방된 두코는 잽싸게 코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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