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1부 외전(1)

코지

창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덮쳐 미약하게 남아있던 잠기운조차 달아났다. 온열 기구를 끄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평소에 들리던 칭얼거림이 들리지 않는 게 어색했다. 깨워야 일어나는 녀석이 수행단 생활은 잘 할 수 있는지 걱정됐지만, 수행 첫 달은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시도폰의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반대로, 똑같이 소식이 없어도 카리타스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만만한 성격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저런 애가 시도폰이랑만 대화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는다고 말하면 누가 믿으려나.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북부의 텃세든 훈련이든 견뎌내는 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좀 불안한 게, 시도폰이 무모한 짓을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카리타스가 말리면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냐고.

아침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도 이런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기도에 집중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북부에 간 사람들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에요.’

생활 업무를 마치고 나면 자유 시간이었다. 겨울이라 농사를 짓지도 않고 빨래도 자주 하지 않았기에 생활 업무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짐을 챙기고 살짝 뭉친 어깨를 두드리며 주방을 나섰다. 손에 묻은 물을 옷에 닦아내고 복도로 나서자 아침보다는 온화해진, 그렇지만 여전히 한랭한 바람이 불었다. 남부는 온화한 기후를 가진 땅답게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바람은 강하게 불어서 이렇게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는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기운을 견뎌야 했다.

조심스레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포근하게 나를 반겼다. 방명록을 작성하고 적당한 자리에 필기구를 내려두었다. 도서관장님께서 문 옆에 배치된 책상에 들러, 내 이름을 확인하시길래 살짝 뒤로 뺀 의자에 두꺼운 겉옷을 걸쳐두고 아까 도서관 안내판에서 발견한 서가로 발을 옮겼다.

나는 꿈과 관련된 책을 찾으려 신화, 설화, 전설, 예언 등과 관련된 서가들을 돌아 몇 권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해몽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세간에 다양하게 알려져 있었지만, 시도폰이 떠나기 전에 꿨던 그 꿈은 그런 것들로 해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내 개인적인 불안감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 나를 쿡쿡 찔렀다.

어떤 단어를 중점으로 그 꿈을 해석해야 하는지도 문제였다. ‘쫓긴다’, ‘호수(물)에 빠진다.’ 같은 문장은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하얀 손’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고 ‘빨간 꽃’은 같은 빨간 꽃이라 해도 꽃의 종류마다 의미가 천차만별이라 찾아봤자 의미가 없었다.

 

책을 네다섯 권 쌓아두고 몰두하느라 끙끙거리는 동안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이 넓은 도서관에 자리가 여기밖에 없을 리는 없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니 익숙한 얼굴이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무슨 책들을 그렇게 열심히 봐?”

센이 웬일로 혼자 있었다. 혹시 얀은 아직 책을 고르고 있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까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은 훈련하러 갔어. 아무리 친하다지만 항상 같이 있는 건 아니거든.”

그렇게 대답하는 센의 손엔 교회의 의식을 정리한 책이 들려있었다. 공부하려고 빌려온 것인지 종이와 펜도 함께였다.

“아하…난 뒤숭숭한 꿈을 꿔서 해몽을 해보려고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있었어. 시인이 한 얘기부터 성인이 남긴 이야기까지 다 훑었는데도 모르겠더라.”

그는 내 대답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자리는 피했기 때문에 같은 책상엔 우리만 앉아있었는데 센은 그것을 확인한 모양인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바짝 당겨 앉아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경고했다.

“너 그거 잘못하면 이단으로 오해받는 거 알고 있냐? 이단자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고 사람들 선동하고 다니니까, 그쪽 책은 금지된 게 많잖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꿈을 통해서 예언을 들었다는 성인들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센은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것은 의식이 있을 때 듣는 예언뿐이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성인들의 예지몽은 교회가 이렇게 안정되기 전, 신께 기도드릴 수 있는 곳이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라 여겨진다고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대로 돌려놓기엔 아직 해석이 안 됐는데, 어떡하지?”

“어떤 꿈이었는데?”

“그건….”

대충 불길한 꿈이라고 둘러대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남한테 이야기해도 될까? 망설이는 내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센은 공부하고 있을 테니 생각이 정리되면 말해달라며 책을 펼쳤다. 책에는 작은 글씨와 그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졌다. 다행히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서 옆에서 잠깐 지켜보아도 내용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다 센이 책장을 넘기자,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 건물 2층에서 아래로 붉은 꽃잎을 뿌리는 사람들이 그려진 삽화였다. 미술의 형식 이름 같은 건 잘 모르지만 그림의 구도는 건물의 2층과 1층을 한 번에 보여주는 수직적인 모양이었다. 내가 본 꽃잎들은 물속에서 떠올랐기에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저 현장 속 1층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신의 사도 중 으뜸인 이가 죽은 지 50일이 되던 날, 성령이 되어 돌아와 많은 이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사라지셨다. 이날을 기려 그에게 구원받은 영혼의 수만큼의 붉은 꽃잎을 뿌려 그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기도록 하였으니, 이를 오순절이라 한다. 여기서 붉은 꽃잎은 사도의 피를 의미하는 거지?”

“맞아, 남부에서는 주로 장미꽃을 사용하는데 북부에서는 장미가 자라지 않아서 오순절엔 북부 기사단이 남부로 내려오지.”

나는 영혼이 구원받는 날에 대한 암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그의 책과 내 책을 번갈아 가면서 봤지만 ‘하얀 것이 쫓아오는 상황’은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 없었더라면 센에게 호수에 빠진 부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얀이 오기 전까지 계속 여기서 공부할 예정이라는 센을 두고 자리를 정리했다.

 

책을 제자리에 꽂고 문을 열자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공기가 반쯤 감긴 눈을 때렸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간신히 복도를 걸어가자 저 앞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렌! 간만이에요, 신전으로 근무지 옮긴 거 아니었어요?”

“아, 너냐?”

렌은 품에 안고 있던 장작더미를 바닥으로 내리고 허리를 폈다. 오래 들고 있었던 것인지 허리에선 우두둑-하고 살벌한 소리가 났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고 렌은 폰에게 하던 것처럼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원래는 신전에서 근무하는 게 맞는데 북부 수행 기간엔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내가 지원했어. 폰은 어딨냐?”

“걔는 북부 수행 갔어요. 열 살 되자마자 갈 거라고 벼르더니 정말 가버렸어요.”

“같이 가지, 둘이 같이 가면 힘든 것도 좀 견딜 만할 텐데.”

“저 없어도 괜찮을 거예요. 이번에 성녀님도 가셨잖아요, 안전엔 문제없겠죠.”

“친구라고 해도 항상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긴 하지,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봐라.”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던 렌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장작을 들고 주방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뛰어 돌아온 그는 따라오라고 말하며 어딘가로 먼저 걸어갔다. 얼떨떨한 상태로 따라서 가다가 보니 익숙한 길을 지나쳤다.

“여기 빨래방 가는 길 아니에요? 아, 이쪽?”

“빨래방 옆에 있는 곳이야. 여기서 우리가 입는 옷을 만들고 염색도 할 수 있지. 가을에 수확한 작물들로 겨우내 옷을 만들고 있어. 주방에 들르기 전에 여기 먼저 와서 장작을 전달해 주고 왔었거든.”

온열 기구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이 조용히 실을 잣고 있었다. 그 옆의 사람들은 방 가장자리의 방직기에 앉아 부지런히 천을 짜고 방직기 아래엔 실타래가 가득 쌓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묵언 수행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 같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렌,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잠시만 이쪽도 봐야 해.”

평소답지 않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렌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았던 게 신경 쓰였나 보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곳으로 향하면서 렌은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라고 말했고 지시대로 따랐음에도 독한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다.

“접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큰소리로 렌이 묻자 웅얼거리는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후끈한 연기가 터지듯 퍼졌다. 코와 입을 하얀 두건으로 가린 작업자가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얼떨떨한 내 손을 붙잡고 렌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장작은 가져다주셨잖습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이 친구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염색 작업을 보여주려고 한번 데려와 봤습니다.”

“호, 북부 수행 기간은 확실히 건물이 조용하긴 하덥니다. 아직 천을 넣기 전이니 딱 좋은 때에 맞춰서 오셨네요.”

펄펄 끓는 뜨거운 솥 아래에는 나무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온열 기구로는 공기를 적당히 데울 수 있으니 주방처럼 강한 열이 필요한 곳에선 나무를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센 불이 필요한 작업일 줄은 몰랐다.

“지금 작업할 천은 북부 기사단 평상복을 지을 때 사용됩니다. 푸른빛이 아주 예술적이죠. 진하게 색을 우려내기 위해 오래 끓여야 한다는 게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염색하고 나면 아름다운 천이 된답니다.”

“여기서 천을 염색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주 단순한 이유인데, 북부에서는 이 염료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옷을 만들어서 오순절 행사 때 기사단이 남부로 내려오면 들려서 돌려보내지요. 오순절 때만 그러는 건 아니고 정기연락 때마다 부족한 물품이 있으면 만들어 보냅니다.”

“그렇군요….”

“이쯤이면 준비가 된 것 같은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작업자는 두건을 더 단단히 매고 손에 낀 장갑을 점검하더니 천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그것을 파란 물이 펄펄 끓는 항아리에 집어넣고 막대기로 푹푹 찔렀다. 물속에서 천이 비틀리면서 파란 물을 쭉쭉 빨아들였다.

“이렇게 넣어서 몇십 분 동안 뒀다가 물로 세탁합니다. 매염은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서 바로 물로 세탁해도 문제없지요. 그러고 나면 천을 말려줍니다. 이제 침방에 넘기면 저희의 일은 끝이 나는 겁니다.”

“다 말린 천은 볼 수 있나요?”

“그건 렌 님이 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천을 마저 염색해야 해서 안내해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맞아, 궁금하면 안내해줄게.”

고개를 끄덕이자 렌은 밖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작업하시던 분들께 인사드리고 나와 침방으로 향하자, 입구 쪽 장롱에 천이 쌓여있는 게 보였다. 색별로 구분이 되어있었는데 남부 사제 평상복에 사용되는 진한 살구색의 천부터 우리가 입고 있는 염색되지 않은 천까지 열을 맞춰서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그, 옷을 만드는 것까진 궁금하지 않아서 여기서 돌아가도 될 것 같아요.”

말하고 나서 너무 단호하게 말했나 걱정했지만, 렌은 개의치 않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렇냐, 기분은 좀 어때? 나아졌으면 해서 데려온 거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 시도폰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이야기할 사람도 많으니까 너무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는 나중에 또 보자며 급하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유가 없는 상황인데도 도와주러 온 거였구나. 솔직히 해결된 건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도 할 만한 일이 있는지 찾아봐야지. 폰이 편지를 보내면 답장할 거리는 있어야 할 테니까. 방으로 돌아오자 입구에 옹기종기 서 있던 유치부 애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한 명씩 책을 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차례로 읽어줄 테니까 기다려! 뭐야, 이런 책은 어디서 가지고 온 거야?”

그저 책을 읽어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넘어갔다. 조용했던 방이 시끌시끌해지니 좀 살 것 같았다. 카리는 늘 혼자였다고 했는데 북부에서는 이렇게 소란스럽게 지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북부에 있을 동안은 폰을 그 애에게 양보해줘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름 시끌벅적한 날들을 보내며 나는 두 통의 편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중에 나에게 도착한 편지는 한 통뿐이었다. 카리타스의 이름이 적힌 봉투만 받아들었을 땐 당황스러워서, 편지를 전해준 얀을 붙잡고 시도폰에게 온 건 없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얀은 들고 있던 빈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였다.

“미안, 나도 의아해서 찾아봤는데 시도폰한테서 온 건 없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급한 마음에 카리타스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지만, 멧돼지 수프가 의외로 맛있었다거나 폰이 귀족 출신 사제와 싸웠다가 화해했다는 일상 이야기뿐이었다. 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편지지가 동났다는 변명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편지 뒷장이나 봉투에 뭐라고 적혀있는 건가?’

하얀 편지지 뒷장엔 낙서조차 없었고 봉투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편지지와 봉투만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얀이 답장은 내일 받으러 오겠다며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적막한 방에서 나는 카리타스의 편지에 답장을 썼지만, 수행이 끝나고 폰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 애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한 나는 그 애를 붙잡고 시도폰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미안, 그 애는 북부에 남아있기로 했어. 다치거나, 아프거나 한 건 아니야. 그러니 걱정하진 않아도 돼.’라는 대답이 끝이었다.

“카리타스는?”

“여기 오기 전에 신전에 들러서 먼저 내렸어. 지금은 그 애를 찾아가도 만나기 힘들 거야.”

프라이에는 난처한 얼굴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비슷한 표정의 아이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북부 기사들은 묵묵히 보급품을 실어나르기 바빴고 시도폰을 아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대장급으로 보이는 사람을 붙들자 그도 프라이에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묘하게 뿌듯한 느낌이 묻어나오는 말투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제 친구를 데려가셨잖아요, 돌려주세요. 편지도 못 받아봤는데 이러는 게 어딨어요? 걔 없으면 전 혼자…라고요.”

“….”

그는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짐을 다 실었는지 기사들은 하나둘 말 위에 올라타 대열을 갖추었고 ‘베론 님, 준비 완료했습니다.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에 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토를 잡아 어떻게든 대답을 들으려고 했지만,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왜 그 애만 혼자 돌아오지 못하는데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이유라도 알려줄 수 있는 거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대체!”

마지막엔 거의 울부짖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사단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몰아 저 너머로 가버렸고, 나는 아무도 남지 않은 입구에 서서 빈 마차가 천천히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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