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패스

ELDORADO :: 유용한 이야기들

텔레파시(Telepathy) 또는 정신 감응은 그리스 어 낱말 τηλε를 어원으로 하여, ‘먼 거리’를 의미하는 텔레/tele와 ‘경험’을 뜻하는 파시/πάθη/pathe를 합성한 단어이다. 흔히 정신 감응 현상이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언어나 동작 등을 통하지 않고도 한 사람의 생각, 말, 행동 따위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transmission)되는 초자연현상을 의미하며 위와 같은 현상을 발생시키는 초능력자를 가리켜 텔레패스라 한다. - 생각을 읽는다는 것 On Telepathy(1979), 칼리토 하비에르 Carlito Xavier

인간의 뇌는 1000억개에 달하는 신경 세포와 신경 아교 세포들로 구성되어, 실시간으로 각종 감각 기관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처리한다. 눈, 귀, 코 등 오감으로 인지한 자극은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며, 뇌는 이 전기적 신호를 통해 육체의 반응을 일으키고, 필요시 신호를 저장하였다가 활용한다. 저장된 정보는 축적되어 경험을 이루고, 나아가 그 인격을 구성하는 내용물이 된다. 자극을 처리하고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행동, 수면 중에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의 전송 행위를 흔히 뭉뚱그려 ‘생각’이라고 표현한다. ‘생각’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나, 그 실체는 상호작용 가능한 존재를 가진 일련의 전기 신호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정신 감응의 원리의 반을 이해했음과 다름없다. 정신 감응 능력자에게 사람의 생각이란 시각, 청각, 후각 등 정보 자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염동력자의 능력이 ‘팔이 하나 더 있는’ 현상으로 설명되듯이, 텔레패스의 경우 ‘감각기관이 하나 더 있는’ 현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정신 감응 연구자들에게 이 기관은 ‘제 3의 눈’이라는 별칭으로 흔히 불린다. 제 3의 눈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뇌간에 유착해 형성된 작은 감각 수용체일 수도, 대뇌 피질 일부가 극도로 발달하여 조직한 신경 세포 군집일 수도 있다. 기관이 어떤 형태로 발달하였느냐에  따라 능력자의 정신 감응 방식은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 기능, 즉 제 3의 눈을 통하여만 감지할 수 있는 전자기 파장을 발생시키는 기능 자체는 동일하게 수행한다. 이 전자기 파장을 ‘정신 감응 파장(Telepatic field)’이라고 한다. ‘정신 감응 파장’은 일종의 통신망으로, 파장내에 활성화된 신경 중추- 즉 뇌가 진입하면 제 3의 눈은 해당 신경 중추 안에서 처리되는 전기 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정신 감응 파장의 형태, 넓이와 영향력 역시 능력의 발달 방식이나 숙련도에 따라 변동하며, 일반적으론 능력자의 본체와 가까울수록 강해진다. 정신 감응 능력의 갈래란 바로 위와 같은 특성을 이용한 분류 작업이다.

그렇다면 정신 감응 능력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사례는 파장의 전개 형태에 따라 3가지 분류를 가진다. 능력자를 중심으로 구형으로 전개되는 ‘발산형’, 능력자를 진원지로 하여 원하는 위치를 향해 원추형으로 전개되는 ‘집중형’, 능력자의 신체에 흐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반발장형’이 그것이다.

발산형 파장의 경우,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형태이자 높은 잠재력과 사망율을 동시에 가지는 형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발산형 파장을 가진 능력자는 늦으면 4세에서 빠르면 1세까지 능력 발현을 경험하는데, 이후 감응 파장의 범위가 점차 확장하며 불필요한 정신적 자극에 지속해서 노출된다. 흔히 정신 감응 능력자를 다루는 창작물에서 ‘듣고 싶지 않은 생각들’을 들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현상이 묘사되는 경우를 보았을텐데, 이 현상이 바로 구형 파장 유형의 성장통이다. 막 공감능력을 형성하고 타인과 자신의 구분을 배우는 영유아기에 개화하는 정신 감응은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우선 타인의 생각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사회적/정서적 상호작용의 장애, 언어성 및 비언어성 의사소통의 장애, 상동적인 행동 등 자폐 증상을 발현한다. 아이 스스로가 타인의 생각을 차단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8세에서 12세가 지나면 비로소 이러한 장애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지는데, 이때가 되어서야 아이와의 의사소통이 원할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발산형 파장 능력자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산형 파장 능력자가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을 마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많은 발산형 파장 능력자는 최소한 4년 이상 유지되는 긴 장애 아동 육아 스트레스로 부모의 미숙, 심지어는 학대 등으로 빚어진 발달 장애를 경험한다. 아이의 생각 차단 기제가 지나치게 발달한다면 자폐증이 사라지기는 커녕 심화되거나 완전히 굳어지며, 적당한 차단 기제의 작용이 있다고 하여도 스트레스로 격화된 주위의 분위기에 동화하며 조/우울증을 가지게 되는 사례 또한 매우 흔하다. 후자의 경우 특히 문제가 심각한데, 정신 감응 능력자가 우울증을 가지게 되는 경우 주변으로 부정적인 정신 파장을 지속해서 발산하게 되기 때문에 가정 환경, 친우 관계 등 우울증 치료를 위해 존재해야 할 사회 관계의 붕괴를 일으키게 된다.(주위에 ‘우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아이가 있었다면 이런 부정 자아 텔레패스 였을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 자아는 아이의 초능력 성장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자아에 격동을 겪는 사춘기를 올바르게 지내지 못하고 자살, 혹은 범죄, 폭력, 마약과 연관된 죽음으로 이어진다. (위와 같은 통계 자료의 발견은 초인 등록제가 남긴 거의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다.) 성장기를 이겨낸다도 하여도 대부분 그저 남들보다 공감능력이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비능력자가 되며, 발달하지 못한 제 3의 눈은 뇌의 기능 퇴행과 함께 곧 소멸한다. 구형 파장 능력자가 가장 흔한 반면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이유이다. 하지만 해당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극한의 확률을 뚫고 완전한 성장에 이른다면, 능력의 가동 범위 제한은 없고 영향력은 넓다는 장점이 겹쳐 강력한 텔레패스로 군림한다.

집중형 파장은 가장 희귀하게 나타나는 정신 감응의 형태로, 과거 초자연현상학 연구에서는 집중형 파장의 또다른 발달 형태로 분류하였을 정도로 최초 발달을 포착하기가 어렵다. 집중형 파장과 다른 파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파장의 ‘주도성’이다. 집중형 파장 능력자는 빠르면 0세 정도로 급격한 능력의 발현을 경험하는데, 이는 아기가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정신 파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추형 파장의 발달은 욕구의 표출과 상대의 무의식적 수신 및 복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집중형 파장을 보유한 능력자들은 자라나면서 점점 더 명령과 지시에 특화된다. 흔히 ‘눈빛만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능력으로 묘사하는 초자연현상이 바로 이 집중형 탤레패스에 속한다. 때문에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여타 정신 감응 능력자들과는 달리 집중형 능력자는 지배적,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개별에 따라서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아예 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처럼 개인의 자아에서 크게 분화하지 않는 집중형 파장 능력자들은 최종적으로 정신 지배, 조종, 환각, 환시 등의 능력을 나타낸다. 집중형 파장은 타인을 지휘함에 있어서 우수한 자질을 보이기 때문에 아이의 독선적 자아와 공감성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한다면 집단의 리더 혹은 감독관으로서 두각을 보일 수도 있으나, 해소되지 않는다면 도리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초능력 범죄자로 전락하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대의 신경망내에 강한 전기 신호를 주입하는 방식 상 이에 영향을 받은 대상은 심한 피로감, 두통,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을 보이며, 심한 경우 뇌의 부하로 인한 영구적인 손상 혹은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반발장형 파장은 능력자의 몸을 매개체로 향하여 두르듯이 전개되는 형태의 파장으로, 능력이 작동하는 원리 상 통상적인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관측이 어려워 최근에 들어서야 존재가 확인되었다. 아직까지도 반발장형 파장의 최초 발현 시기는 의문이다. 반발장형 파장은 매우 당연하게도 능력자와 상대의 밀접 접촉을 통하여 기능을 발휘하는데, 접촉을 통한 상호작용은 범생물적으로 흔하게 나타나는 지극히 일반적인 행위인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발장형 파장은 앞서 언급한 두 파형보다 월등하게 안정적인 성장을 보장하며, 성장 과정에서 고유한 장애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는 지표도 남기지 않는다. 반발장형 파장 능력자의 흔히 알려진 발현 형태는 바로 ‘정신 측정(Psychometry)’이라고 불리는 접촉 기억 전사 현상이다. 접촉하는 생물의 뇌파, 심지어는 무생물 혹은 공간에 남은 기억을 읽어내는 정신 측정은 다른 파형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고유의 현상으로, 그 특수성 때문에 기존에는 텔레패스와 별개의 능력으로 생각되었다. 최근 측정을 이루는 주체가 능력자의 몸을 두르는 정신파라는 사실이 발견되며 정신 감응 능력의 한 갈래로 편입되었으나, 전사 가능한 뇌파를 남길리 없는 무생물 혹은 공간 자체에서도 발생한 사건을 생생하게 읽어내는 이 능력이 과연 정신 감응의 일부가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반발장형 파장의 발전은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나, 전세계적으로 정신 감응 능력자의 수가 많이 남지 않아 자료 수집에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이는 대다수의 반발장형 파장 능력자들이 본인의 신원을 공개하기 어려운 직군에 종사하고 있어 공개적인 조사가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

정신 감응 능력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면, 왜 이 현상을 일반인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원격 전달 매개체- 즉 전파에 비유하여 설명하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과거 초자연현상학에선 텔레파시를 일종의 ‘생채 전파’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설명이 천천히 학회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전파의 발견 및 기술화 역사 뒤에 숨겨진 정신 감응 능력자들의 비극 때문이다. 전파를 생각한다면 흔히 그 존재를 제시한 맥스웰 방정식, 전파를 발생시킨 헤르츠, 혹은 보다 전문적으로 최초의 전파 통신 장치를 개발한 마르코니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파가 실제로 발견된 배경을 바라보려면 능력자 탄압과 차별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1800년대 중~후반, 당시 영국에는 ‘초인 연구 및 정의 협회(Assembly of Meta-human reserch and clarification)라는 명칭의 초자연학 연구 기관이 존재했다. 현대의 접근 방식과 달리, 당시의 초인 연구는 생체 실험과 해부를 필두로 하는 원시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였는데 (갈바니가 전기 신호를 증명하기 위해 개구리의 다리에 전기를 흘렸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쉬울것이다.) 이때 정신 감응 능력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 3의 눈과 정신 감응 파장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당시 발달하고 있었던 전자기학에 힘입어 협회는 이 파장을 일종의 전자기파라고 정의 내렸으며, 파장이 일으키는 현상들을 바탕으로 공식의 연구를 의뢰한다. 이 파장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등장한 공식이 전자기학의 중추다. 즉, 우리가 현재 전파(Radio wave)라고 인지하는 기술은 정신 감응 능력자의 정신 감응 파장을 인공적으로 모사하기 위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전파의 존재에 대한 공식이 마련된 이후에도, 이 전파를 정신 감응 능력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하기까지는 또다시 정신 감응 능력자의 희생을 불러왔다. 제 3의 눈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텔레패스들이 협회의 해부대 위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전파의 형태로 변환된 정보들이 누락(corrupt)되지 않고 전송 가능한지를 실험하기 위해 송신기의 맞은편에 텔레패스를 묶어놓아 뇌파를 측정하기도 했다. 인간의 두뇌가 강한 정신파가 접촉했을 경우 부작용이 발생하듯, 텔레패스의 두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파수조차 조정되지 않은 강력한 전파-혹은 인공 정신 감응 파장-에 노출된 텔레패스들은 뇌손상을 호소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전파에 대한 연구가 종료되고 기술이 상용화 된 이후에도 정신 감응 능력자들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삽시간에 전세계를 매우기 시작한 통신 전파들이- 그들에겐 마치 하늘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같았던 것이다. 전파의 상용화 이후 전세계 각지에서 뇌손상에 의한 아동 사망률이 급증한 현상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라면 누구나 주머니에 휴대용 텔레패시 장치를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하지만 그 발전이 초능력자들의 목숨을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세상 모든 정보를 손끝에 들고 있음에도 모두가 진실에 무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지일까, 무관심일까?

현대의 정신 감응 능력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1세대 히어로의 ‘빅 3’ 중 하나이자 현대 정신 감응 연구의 창시자인 ‘칼리토 하비에르 Carlito Xavier’는 말년의 대부분을 신생 능력자의 발견과 양육, 보호에 바쳤으며 여기엔 정신 감응 능력자들의 복구에 대한 연구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전파가 정신 감응 아동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연구하고 이에 따른 규제를 마련하는 한편, 능력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발달 장애와 학대, 자아 형성과 능력 성장의 관계 등을 학계에 발표하며 정신 감응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들이 올바르게 성장을 마칠 수 있는 보호 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록 그가 때이른 죽음을 맞으며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이는 몇몇 선진국의 아동보호/복지 체계에서 발달 장애 아동에 대한 초능력 검사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신 감응 능력자의 대부분은 여전히 그 능력을 개화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대부분의 국가는 정신 감응 능력자를 조기에 발견하기는 커녕 해당 아동들에게서 나타나는 장애에 대한 대응을 해주기에도 부족한 복지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설상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한 교육 • 전파가 미흡하여 이용하지 못하는 실상인 탓이다. 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지만, 능력으로 인한 성장통을 경험한 세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사실은 새로이 태어나는 정신 감응 아동 양육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들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대다수의 정신 감응 아동, 청소년들이 여전히 가정 폭력과 우울증 등 충족되지 못한 가정 환경을 경험하다가 죽어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지점을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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