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목의 밤

상뱅 /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 단편 「살아있는 목」의 설정 일부 차용함

동네에서 토막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군요. 피해자의 머리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긴 항도니까 바다에 버려졌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어딘가의 항구에, 테트라포드 틈 사이에 숨겨졌을지도요. 갯강구들한테는 잔치겠네요.

 그렇게 여상히 넘길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매일 신문 지면의 사건사고에 일일이 공감하고 울고 웃는 건 아니잖아요? 운 나쁘게 토막난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겠지요.

 뭐, 상관 없었습니다. 제 일상은 그대로 평온했으니까요. 어느 날 귀갓길에 버려진 아이스박스를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람의 머리가 거기 담겨 있었습니다. 네, 사람의 머리가요. 고전을 인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은쟁반이나 사랑의 맛이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요. 아직 입을 맞춰보지는 않았거든요. 

 그나저나 이 사람, 살해당한 거 아니었나요? 일그러짐 없이 고요한 표정인데요. 핏기 없는 뺨은 밀랍처럼 하얗게 굳어 있었어요. 눈은 가볍게 감겨 있었고요. 잘 뻗은 입매가 시원스러웠지만 꾹 다물린 모양은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 입 안 쪽에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주위를 몇 번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 본 머리의 무게는 농구공보다 무거운 것 같았습니다. 7호 농구공이 대략 600g이니까, 그보다 여덟 배나 아홉 배 정도? 고사용 돼지 머리도 생각나더라고요. 차가운 고깃덩어리라는 점은 뭐 비슷하네요.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가늘고 부드러웠습니다. 의외로 머리가 긴 편이더군요. 귀 뒤로 넘겨질 정도로요. 머리와 몸이 멀쩡히 붙어 있었더라면 뒷머리도 목덜미까지 닿았겠죠. 움직이거나 뛸 때마다 까만 머리칼이 흔들리면 더욱 재빨라 보이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그냥 이발하러 갈 타이밍을 놓쳤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건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네요.

 옛날 시뮬레이션 게임이 생각난다고요? 아니면 동화가? 어느 쪽이든 교양의 영역이네요. 저희 집에는 화분 같은 거 안 놔둡니다. 예전에 열대어를 키웠던 어항은 있지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어항이 있었어요. 어항에 머리를 넣으면 되겠군요. 저는 그대로 머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CCTV가 별로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아참, 핏물이 흥건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네요. 이미 흘릴 피는 다 흘러나와서 그런가 봅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저는 가슴 가까이 머리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니, 그가 제 심장 소리를 들어주기를 바랐어요. 혹시 첫눈에 반했냐는 질문 같은 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제 입으로 말하기엔 좀 쑥스럽군요…. 

 창고에서 어항을 찾아서 꺼내고, 깨끗이 씻고,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놓고, 물을 채우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자꾸 미소가 지어졌어요. 처음 열대어를 분양받아 올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요.

 이 모든 과정을 그가 지켜보지는 않았습니다. 소파 위에 놔뒀거든요. 아, 집에 데려온 손님을 내버려두는 게 예의가 아닌 줄은 압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무료한 시간을 혼자 견딜 줄 아는 사람 같았어요. 아까보다 표정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네, 기분 탓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착각하지 않았어요. 확실히 보았습니다. 물에 잠길 때에도 그는 눈을 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사이에 눈을 떴네요. 검은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 다시 보니 의외로 선이 가느다란 편이었네요. 그렇지만 딱히 유약하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쌍꺼풀은 없고, 살짝 치켜올라간 눈매가 민활한 인상을 줍니다. 입은 여전히 다물고 있었어요. 어딘가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런, 전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물 속에서 머리카락이 한들거립니다. 어항에 따로 수초 같은 걸 둘 필요는 없겠어요. 열대어의 지느러미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보기 좋았습니다. 잘린 부분의 피부도 너덜거리지 않고 단면이 깔끔해 보였어요. 잡아서 들고 쳐다보면 싫어하겠죠, 아무래도.

 그의 시선이 저를 따라다니는 게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그를 보면 그도 저를 봅니다. 저희는 서로 관찰하고 관찰당하고 있다고 해도 되겠군요. 그는 제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저희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물 속에서 썩어 뭉그러지기 시작하지 않았냐고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여전히 그는 창백한 얼굴로 물 속을 부유합니다. 그냥 머리만 떠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건 그래요. 결여의 미학이라고 합시다. 몸이 없어도 보기 좋잖아요. 솔직히 열대어보단 마리모에 더 가까운 느낌이긴 하네요.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물을 갈아줄 때에는 그를 잡아서 들어올립니다. 제 손길을 피해서 도망치지는 않아요. 그 다음에는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를 닦아 보송보송하게 만들어 줍니다. 양 손으로 턱을 긁듯이 만져 주면 눈을 감고 조금씩 움찔거리죠. 꽤나 귀엽습니다. 어차피 어항 속으로 들어가면 도로 젖을 텐데 무의미한 일 아니냐고요? 네, 그것도 맞습니다. 사실 그를 좀 더 만지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는 처음보다 경계심도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았어요. 물 속에선 소리가 잘 안 들릴 것 같아서 수첩에 글씨를 써 가며 필담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만화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좋아하는데…. 저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해 막연한 상상을, 덧붙인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과거와 사연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혹시 열대어 사료를 주면 먹을까요?

 그래서 사료를 줘 보았습니다. 며칠 동안 놔둬도 안 먹더라고요. 오히려 저를 무어라 말하기 힘든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불어터진 사료 알갱이를 건지려던 저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게 반응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기쁘고 반가울 정도였어요. 확실히 물고기와는 다르네요. 

 하지만 그 입술이 만들어낸 세 음절은 별로 반갑지 않았습니다. ‘죽여줘’라고 했거든요. 제 시선을 확실히 느꼈는지, 그는 연거푸 입술을 달싹였습니다. ‘제발’, ‘부탁이야’, ‘날 죽여줘’.

 아무래도 사료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다 해도 죽여달라고 할 것까지는…. 그런데 한 번 죽은 사람이 다시 죽는다는 게 가능하긴 한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생각은 다른 것 같군요. 아니면 망치로 곤죽이 될 때까지 후려쳐 달라는 걸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걸요. 차마 그런 폭력적인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원한다고 하더라도요.

 소매를 걷고 어항에 팔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가 각오한 것처럼 눈을 감았어요. 아니, 앞머리에 붙은 알갱이를 떼 주려던 건데요. 뭘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알갱이가 잘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덕에 물에 잠긴 그를 여기저기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앞머리를 쓸어보다 정수리로, 정수리에서 뒷통수로, 그러다 목의 단면을…. 뻥 뚫린 구멍은 식도고 딱딱한 부분은 척추겠죠.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건 좀 추행하는 것 같잖아요.

 잠깐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한테는 그랬어요. 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그를 꺼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낼 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더라고요. 문득 그가 살해당할 때도 이런 표정이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살해당한 이유는 글쎄요, 저야 모르죠. 어차피 저는 경찰도 탐정도 아니니…. 

 몇 번 더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의 입장은 변함없이 확고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보통은 이쯤 되었을 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존중하며 평행선을 걸어가자고 타협합니다. 그리고 그건 설득에 실패했단 얘기밖에 더 되지 않지요. 사실 제가 그의 의사를 무시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굳이 해봤자 손가락을 깨무는 정도? 하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어요. 일부러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바다로 보내달라고요. 휘발유를 붓고 불태우거나 다짐육으로 만들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나눠담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네요. 아, 토막났던 사람한테 이런 예시를 드는 게 좀 부적절하긴 한 것 같지만요. 

 네, 빠른 타결입니다. 가끔은 포기하거나 타협해야만 하는 것도 있는 법이죠. 인생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 손으로 그를 망가트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럴 일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가 없으면 다시 평온하고 공허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계속해서 그가 생각날 거고요. 이런 마음을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술 안 합니다. 술 마시고 자전거 타는 짓은 더더욱 안 하고요. 저는 법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선량한 시민이라니까요. 멀쩡한 정신머리는 덤이지요.

 그렇게 저희는 한밤의 바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네요. 평소보다 말쑥하게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더플백을 끼고요. 물론 더플백 안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물기는 잘 닦고 말렸어요. 그가 바깥을 보고 싶어할지도 몰라서 지퍼를 조금 열어두었습니다. 움직이는 서슬과 밤바람에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네요. 달도, 별도 없는 밤이지만 나트륨등의 불빛은 환합니다. 

 언젠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일 거예요. 저는 그와 짧지만 서로의 인생을 바꿔 놓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저를 인정해 주고 원하던 걸 포기하지 않도록 말해 주었던 것 같아요. 아마 불빛 때문에 든 착각일 겁니다. 제가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가짜 기억이겠죠. 노란색이 너무 밝아서 뇌를 들쑤시고 찔러대는 느낌이네요.

 어느새인가 그는 눈을 감은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요.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군요. 점점 차갑고 낯선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깨어났던 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분명히 제 망상은 아니었는데요. 어떤 불가사의한 법칙의 작용이었을까요? 역시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그를 다시 어항에 담그면 눈을 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기도,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아요. 마저 바다로 갑시다. 그를 위해서요. 그를 보내줄 물녘으로요. 어딘가의 해변이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저만의 비밀로 둘 거니까요. 

 저 새까맣고 매끄러운 물결 속으로 들어가면 영영 볼 수 없을 거예요. 파도가 그의 흔적을 거둬가고 지울 겁니다. 흰 포말이 일어났다가 곧 사그라들겠죠. 제 얼굴과 옷자락에 튄 거품도 잠시 남았다가 또 사라지겠네요. 그저 그뿐입니다.

 그가 제 손을 떠나 부드럽게 미끄러집니다. 안녕. 또 볼 순 없을 거예요. 

 저희 동네에서 일어난 토막 살인 사건은 지금도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피해자의 머리도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제목은 쏜애플의 살아있는 너의 밤을 패러디했고 소제목에 쓴 대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호러만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 살아있는 목이라는 단편의 설정과 플롯을 일부 돚거... 아니 차용했읍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 ..+ 2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