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焉
칠흑의 반역자
https://youtu.be/Z-9lDJlWNW4?si=_zsqQVTVaewpErcY
영웅은 외관만으로는 나이를 짐작 할 수 없는 이였다. 그럼에도 참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뎌지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사별, 감정의 소모. 모험가라는 명칭이 영웅으로 바뀌고,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고 보통은 감당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게 되는 그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걱정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문장은 언제나 불변하지 않는 것이었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그런 것들을 믿었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결국 오만이고 기만이었다고 지금에서야 깨닫고 만 것이다.
이렇게 일이 문제가 된 것은 제 1세계로 넘어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몸에 빛을 축적하던 도중에서였다. 이 전보다 점점 더 늘어가는 수면의 양에 슬슬 하나둘 그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눈 감고 있던 것, 그것은 영웅은 초월한 자이기에 한계점을 알 수 없어 그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가장 오래되었으며, 우리의 편이 아니지만 우리의 곁에 있으며, 이 세상의 파멸을 이끌 자가 우리들의 심장을 찌른다.
" 이 지경이 되어도 결국 너희들은 이 자한테 맡기는 것 밖에 못하는 자들 뿐이군. 이 자가 없었으면 진즉에 원초세계는 멸망했겠군 그래? 게다가 이 자도 너희들한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것을 보니 안 봐도 뻔하군. "
모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 꺼내지 못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지. 맞는 말이다. 영웅이 아니었다면 원초세계는 몇 번이고 멸망하고 남았을 곳이었다. 언제나 분란이 일어나고 의견이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던 곳.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고 해결한 것 또한 영웅이었다. 그런데 저 자의 얼굴은 왜 한심한 것이 아닌 왜 분노가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저 자는 영웅이 없어지면 이득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나? … 어찌 되었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기로 했다. 영웅의 수면은 더 이상 보통의 수면이 아닌 마치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 그나마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듯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웅이 잠든 지 1주일이 지났다. 이렇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적은 없었는데. 수정공은 눈에 띄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새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를 본래 크리스탈 타워라고 불리던 곳 안 마련된 곳에 눕히고 모두가 그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야슈톨라와 위리앙제와 수정공은 수정공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서적들과 그에 그치지 않고 이 곳에 존재하는 모든 서적들을 끌어모으듯이 읽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알피노와 알리제 그리고 산크레드와 린은 일 메그, 아므 아랭, 율모어 등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설의 무언가-같은 느낌의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무엇 하나 즈음은 도움이 되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해서.
영웅이 잠든 지 2주가 되어간다. 그의 속에서 빛은 여전히 넘실거렸고 우리는 그 넘실거리는 빛의 잔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 결국 해결 방법을 찾지는 못하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자가 영웅이 잠든 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디선가 또 잠이나 자고 있겠거니 싶다, 언제나 굽은 등과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을 방해할 사람도, 간섭할 사람도 지금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 곳에는 고요와 침묵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언쟁을 나눌 자도, 그것을 말릴 자도 없는 불편한 침묵 속 모두가 잠든 영웅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차라리 빈다 만약 영웅이 이 고통 속에서 도망치기 위하여 깨지 않는 것이라면, 그가 몽중의 하늘 아래에서나마 행복하길 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그에게 바라왔으니까. 그러니…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즈음은 바래도 되는 것이겠지.
운명이라는 단어를 나는 지독히도 싫어했다. 주어진 것이라는 게 무엇인지, 인간들은 왜 그런 단어에 기대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인지. 그래서 그는 영웅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물론 하나의 이유만이 아닌 복잡한 여러 가지 것들이 얽혀있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영웅이 되는 것이 운명, 이 별이 살아남는 것도 멸망하는 것도 운명, 누군가가 죽는 것도 운명 그러니 받아들이거나 이겨내라는 그 모습들. 직설적으로 이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은유적으로 이러한 의미들을 내포한 문장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그것도 그 자를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저 은은한 웃음을 담은 채 그렇다며 가만히 듣고 있는 그 자의 모습을 보고 떠올리자니 목덜미가 당겨오는 것만 같다. 물론 그가 잠에 든 후에는 그런 문장들을 언제 이야기했냐는 듯이 모두가 발 벗고 그를 깨우기 위해 나선다. 별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는 것들뿐이다.
잠든 지금이 방해 받지 않고 모든 일들을 실행할 수 있는데, 나는 왜 선택에 기로에 놓인 듯한 모습인지. 걸리는 것이 딱 하나. 그 영혼 때문에, 그 흔적 때문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였는데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후회할 짓들만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래서야 되다만 것들과 별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만 듣게 생겼군.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은 그 자가 잠든 지 약 3주가 되어가는 시기였다. 빛을 물리치는 어둠의 전사가 혜성처럼 나타나 먼지 한 올 없이 안 보이게 되니 누군가는 그가 죽었다던가, 혹은 도망쳤다던가라는 이야기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입은 한없이 가벼워서 낮잠을 자려고 하면 저 나불거리는 입들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만 돌아다니며 몇 번이나 귓가에 들려오는 것인지. 죽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밤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직접 그가 어떤지 어쩌면 어떤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빛이 가장 잘 들 것만 같아 절대 가고 싶지 않았던- 영웅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빛이 있는 낮은 싫기에 느지막이 그 자가 찾아온 어둠이 깔린 밤에 들어와 건재한 이 곳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분명 같은 어둠 속임에도 나의 모든 것은 매번, 매일 하나같이 멸망해 갔는데 그저 우리의 파편일 뿐인 너희들은…. 그 시끄러운 녀석들도 이 늦은 시간까지 시끄럽지 않았기에, 시끄러운 것은 내 머릿속이니 그것을 부여잡고 영웅의 앞에 서니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숨이 쉬는 소리는 들렸으니 여전히 죽은 것은 아닌 죽은 듯이 자는 모습을 보자 하니 지금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한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축적된 빛은 여전히 일렁이고 영혼 또한 여기저기 금 간 듯한, 이러다가 언제라도 숨을 쉬지 않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분명히 좋아해야 할 일인데 허무하게 이 자의 영혼이 명계로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게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불필요하고 그저 방해물일 뿐인 감각이 나를 감싸고 원인인 너는 너 또한 다른 이들과 다름 없이 파편일 뿐인데 나의 이성을 흐트러뜨리고 마는 것인지. 되다만 것들이 들었으면 자신들의 언어로 하는 사랑이라고 단순히 정의해버렸겠지. 사랑보다는 더 복잡한 것이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영웅을 아끼지 않으니 말이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바라보니 언제 잠들었냐는 듯 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이 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적막은 한동안 이어졌고 어차피 대화가 있던 사이는 아니었으니, 가만히 있자니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이 거슬려 두 눈을 덮어버린다. 시간은 여전히 새벽이었고 다른 이들이 네가 깨어난 것을 듣는다면 금세 시끄러워 지는 것은 분명하고 내가 있었다는 것까지 듣게 된다면 뭔가 더 잔뜩 꼬이게 되어버리겠지. 그러니
" 놀랍게도 세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동도 트지 않았으니 잠이나 더 자라, 네가 얼마나 잔 건 중요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
꿰뚫는 눈과 그걸 가리는 자라니 웃긴 조합이다. 너와 내 존재는 서로 붙어있기만 해도 모든 것이 웃긴 것으로 치부 되어버리니 결국에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멸망을 막으려는 자와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하려는 자가 대립하니, 그래 결국에 누구 하나는 사라져야 평행한 저울처럼 이치가 맞는 것이 아니겠어. 그러니 종언인 것이다 죽어서야 끝나는 이 이야기가 말이다.
영웅은 한 달만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그가 일어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겠지. 일어나자마자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멸망을 한시라도 막기 위하여 또 그를 앞세운다. 시기를 일부로 딱 맞추기라도 한 것인지 옷깃 한자락 보이지도 않던 마법사가 다시금 존재를 드러냈다. 알 수 없는 자였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가지고 있는 감정을 최후가 되더라도 알 수 없겠지. 그런데 왜인지 영웅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지 말이다. 그가 독심술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마법사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세상에 밤은 이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빛은 우리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다. 싸움이 끝난 영웅은 이따금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무언가 전하지 못한 말들이라도 있는 것인지, 움찔하다가는 언젠가 함께 갔던 그 심해의 색을 띈 눈을 하곤 하였다. 이런 생각이 불경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자와 영웅은 어딘가 닮으면서도 닮지 않은 것이… 모호한 것이었다.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를 잃었다-라고 생각하니 영웅의 모습은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함께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결국에는 하나가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당신들의 관계는 종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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