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義

영웅을 위한 진혼가

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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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9k5J9Q4vBI?si=MQ3DcidxDzbypkUZ

단어로 표현된 감정은 유한하지만, 모든 감정이 단어로 한정되어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 애증, 우정. 그것은 관계 속의 감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세상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과 그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定義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언제나 모두가 묻는다.

영웅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定義

①술어의 의미를 명백히 밝히어개념의 내용을 한정하는 일. 계설. 뜻매김

②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를 들어 그것이 체계 중에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고, 또 다시 종차를 들어 그 개념과 동위의 개념에서 구별하는 일

 구원받는 자들에게 묻자 그는 이제 신과 같이 떠받들어지는 존재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하긴 그 누구라도 그를 신이라고 볼 만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모험가는 누구도 상대하지 못한 신을 토벌하고,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며, 세상을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렸다. 다만 그들의 기도가 야만신과 같은 숭배자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영웅만이 유일하게 신에게 대적하는 자였으나, 만약 그가 신이 되어버린다면 유일무이했던 토벌자라는 그 이름을 또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인간은 무지해서 시간이 지나면 신을 그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도구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면 영웅은 당신들이 신이라는 존재로 정의한다면 자신이 여태껏 토벌해온 신들에게서 자신을 비춰볼 것이다. 특히나 만들어졌던 신이라면 마주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의 신앙이라는 건 언제나 무서운 법이었다. 영웅이 무서워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으나 그 무게가 다른 것이라 감히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을 뿐.

 함께하는 자들에게 물었다. 그는 여러의미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그 필요성의 정의에 대해서 영웅은 언제나 고민한다. 자신이 하이델린에게 선택받지 않았다면 초월하는 힘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영웅을 찾으려 하지도, 어쩌면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 자리에 누군가가 대신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자신은 무엇이 될지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함께하는 자들은 침묵이 많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영웅이 알게 되는 것은 대체로 일의 막바지 실행만이 남았을 때 뿐이었다. 이럴 때 또한 영웅은 자신의 의미를 고민한다. 새벽은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 떠오름에 빛을 가해줄 존재가 없었던 것 뿐이었던 것일까.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다. 영웅이라는 이름만 부여받았을 뿐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구원자보다는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시켜 줄 자라는 조금 더 단순한 명칭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어둠에 묻는다. 대답의 다양성은 오히려 이 곳이 각양각색이었다. 방해되는 자, 언젠가 빛으로 멸망을 불러올 자, 싸워보고 싶은 자. 확실한 건 그가 서 있는 쪽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봐주더라도 영웅은 세상과 떠나간 자들은 너무나 사랑해서 어둠에 발을 디딜 생각을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어둠 중 하나는 답한다. 그 영혼은 빛나기를 예전부터 그리 빛나서 눈을 돌리려고 해도 돌릴 수가 없는 빛이라고. 이해자는 놀랍다고 해야 할까 어둠 쪽에서 영웅을 이해하는 경우가 꽤 다반사였다. 빛 쪽의 이들은 자신들이 살기에 급급해서 영웅을 앞세워 살아나가기 그만이지만. 어둠은 자신들을 방해하는 영웅을 막거나 없애버려야 했기에, 자세히 알아보거나 혹은 이해관계를 맺어 어둠 쪽으로 이끌려는 시도도 해 보였다. 

 이해관계를 바꾸어 몇 번이고 물었을 그 질문들을 영웅에게 묻는다. 그에게 세상에 대한 정의를, 주변 이들에 대한 정의를,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정의를. 그리고 영웅의 존재에게 정의를.

 영웅은 세상을 밤하늘이라고 정의한다. 아침이 밝으면 태양의 빛으로 별들의 반짝임은 가려져 버리지만 그렇다고 별들이 반짝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말이다. 이것은 주변 이들에 대한 정의와도 마찬가지였다. 영웅이라는 강한 빛에 주변의 반짝임이 가려져 버리긴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것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의도 모두 내려버리고 만다. 영웅은 자신을 모두를 가리고 마는 강한 빛이라고 칭한다. 모든 것은 과하면 좋지 않은 것인데 자신은 어둠이 되지 못하니 그저 강력한 빛이 돼버려 주변 이들을 가려버리고 만다. 

 영웅은 너무나도 자애롭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자애롭다기 보다는… 그는 자기혐오가 심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일 것이다. 보통 가장 정상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아 눈살 찌푸려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영웅은 오히려 남을 가려버리는 자- 등의 이야기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다. 싫은 소리도 장난이 아니라면 진심을 담은 소리를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걱정한다 언젠가 저 속이 곪고 곪아 썩기까지 해버린다면 그는 정녕 영웅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 걱정도 우스운 것이었다 그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영웅의 존재의 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가 마음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 그러한 이유였다. 그가 머무를 곳은 없었고, 마음을 내줄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 이 세상의 정의는 실은 반짝이는 밤하늘이 아닌 구름도, 별도 없는 공허한 밤하늘이었을 것이리라.

 결국 정의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단어의 의미가 변색하고 퇴색해버리니 말이다. 당장 자신들의 눈앞에 무엇이 놓인 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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