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k Me
드림
https://youtu.be/rPQw6WgwEYQ?si=NyXw5O5XoVYFdjpS
눈앞에 놓여있는 찻잔에는 막 내려 향이 진하게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놓여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말한다 이 것에는 독이 타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말로만 들어서는 정녕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마셔보는 방법밖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제 목숨이 아까우니 입도 대지 않을테지만, 꼭 직접 마셔보고서야 독임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올곧은 영웅과 오래된 마법사이자 재앙. 가장 닮은 것 같으면서도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둘이 이 자리에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서로가 독이라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야 그것을 진실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자들은 그런 이야기 정도야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진실을 판단할 상황이 시간이 충분치 않고, 당장 눈앞에 이뤄야 할 목표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만약 그들에게 충분한 상황과 시간이 쥐어져 있다면 독이라고 명명된 상대를 입에 머금고 이해관계에 놓아질 수 있는가.
짚고 가야 할 것은 그들이 입에 머금게 된 독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명칭 하는 것인지이다. 독이라는 것이 그저 사전적으로 의미하자면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이지만, 세상을 살며 독이라 명칭되는 것은 꽤 여러 개니 말이다. 사람을 독이라 칭할 수도 있는 것처럼 어느 감정도 독이라고 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성을 필요로한 순간에 감정이 우선시 되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끔 되는 경우가 생기고 말아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그 감정은 분노가 될 수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외에도 여럿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감정들은 서로를 해친다는 부분에서는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니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 아닐 테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이 나고, 행동을 멈칫거리게 되고, 왜인지 이상한 느낌을 가지는 그런 감정. 우리는 대체로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올바른 명칭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분명 우리가 이야기하고 정의하는 것보다 무언가 방대한 것을 담고 있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독이라는 단어에 담긴 것은 사랑이었다. 모두가 영웅의 사랑을 행복을 응원해주고 싶다지만 그 상대가 만약 자신들의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이고, 그 존재 때문에 영웅이 망설이거나 최악의 상황으로 그와 뜻을 함께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면 더 이상 모든 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세계의 안온과 영웅의 사랑을 저울질 하자니 너무나도 확고히 보이는 결과가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을 감당한 영웅의 의견을 제외한 사람들의 소리였기에 지극히 이기적인 저울질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생각보다 닮은 부분이 많은 존재들이었다. 예를 들어 많은 시간을 살아온 존재라던가,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라던가, 혹은 그 등에 짊어진 운명과 신념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라던가. 물론 일치하다가 아닌 닮은 것이라 니베이아가 살아온 시간과 에메트셀크가 살아온 시간을 같은 축에 놓기에는 너무나도 초월적인 차이라는 점. 니베이아의 신뢰는 내보이는 면이 다른 사람을 한정하지만 에메트셀크는 아예 신뢰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던가 말이다. 단 하나 일치하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등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니베이아에게는 원초세계를 지켜낼 빛의 전사라는 운명이, 에메트셀크에게는 이 모든 세계를 합쳐 모든 것을 되돌려 내야만 하는 운명이. 두 사람의 운명은 무게를 잴 수 조차 없으니 저울에 올려놓는다면 서로 저울하기는 커녕 너무나도 무거워 저 바닥 아래를 뚫고 내려가버릴 것이다.
이 다음의 문제는 이들에게 서로를 이해할 충분한 상황과 시간이 쥐어지게 된다면의 경우이다. 가끔은 닮은 사람을 싫어하는 이른바 동족혐오라는 단어도 있을 정도로 서로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과연 이들은 그럼에도 서로를 자신의 경계 안에 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달라질 게 없는 것인지. 나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원 안에 서로를 들일 것이라고,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사랑이라는 독보다 더욱 지독한 것은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성이 가장 앞서나가는 것. 그리고 그 둘이기에 결국 끝까지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이다.
니베이아는 에메트셀크를 이해한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한다. 자신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그가 보내온 시간과 빗대지면 갓 태어난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래 산다는 것은 꽤 허울 좋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직접 살아온 본인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오래 살다 보면 가지고 있던 신념이 퇴색과 변색을 거쳐 옳지 못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좋은 일도 충분히 많았지만 그만큼 힘든 일들도 모두 견뎌내고 기억으로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니베이아는 꽤 오랜 시간을 도망쳐왔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1개의 재해를 넘긴 것도 기적이라 여기겠지만 그는 무려 2개의 재해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던 이였다. 그 누구보다 재해가 닥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고 세상이 무너져가는 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도망쳐왔던 것이다. 재해의 근본적인 문제는 갈라져 나간 다른 세계가 무너지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이후의 문제는 인간들이었다. 제 6재해 때 대홍수가 일어났음에도 사람들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정령들이 분노하여 더욱 혼란스러운 세계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멸망과 발전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은 기계를 발전 시켜나갔고 또한 제국이 나타났다. 결국 제국은 제 7재해를 일으키고야 말았고 그는 또한 보았다 이어져 온 새벽이 어떻게 세상을 지켜냈는지. 그런 제국과의 전쟁은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았고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에메트셀크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왜 이런 짓들을 벌였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는 이야기 하지는 않더라도 그로 인하여 짓밟힌 생명을, 떠나보낸 것들에 너무나도 괴롭고 이 별을 너무나도 사랑하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의 주변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이 별을 사랑하는 사람 정도 뿐이었다.
그 사람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꽤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영혼 때문에 에메트셀크는 니베이아에게 기대를 걸었고, 기회를 남겨주었고, 여지를 주었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그 영혼 때문에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에메트셀크가 그 영혼이 아니고 더 올바르게 그를 바라보았다면 그들은 더 같은 이해 선상에 놓여있을 수 있었을 텐데말이다. 그럼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머릿 속에 남아버린 것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찻잔에 입을 대고서야 다른 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에메트셀크가 독임을 알았지만 그저 머금고 웃고야 만다. 자신에게 이성이 조금 더 앞세워져서 다행이라고,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그가 계속하여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았으니까. 만약 이성이 앞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이해하다 못해 그들의 편에 서고 말겠지. 그렇지만 자신의 뒤에 남겨진 것이 무엇이고, 등을 받쳐준 자들이 누군지 알기에 독에 취하여도 언제나 그랬듯이 그 마음에 칼을 꽂고 있어야 할 곳을 지킨다.
에메트셀크는 자각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영웅에게서 그 사람의 영혼을 마주한 순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오래되어 변색될만도 하지만 온전히 가지고 있는 그때의 추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워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하고 하면 코 끝이 아리고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추억.
수 많은 빛들이 저물어가고, 셀 수도 없이 반복한 그때의 멸망을 언제까지고 반복하며 명계에 사랑받는 자는 자신의 등 뒤에 남겨진 신념과 아씨엔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한다. 그 뒤에 짊어진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언제나 굽은 그 등으로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 등이 가끔 펴질 때가 있었으니 어딘가에서 낮잠을 잘 때라던가 혹은 영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미묘한 차이지만 한결 가벼워 보인다는 느낌은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영웅에게서 그 사람을 빗대어 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본인은 모르더라도 어쩌면 자신이 가진 것을 눈앞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 생각대로 영웅은 이해는 하고 있었다, 이해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긍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물론 에메트셀크는 그에 대해 긍정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빨리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낮잠만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에메트셀크는 영웅의 존재가 독임을 인지하고 있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는 가장 오래된 마법사이자 재앙이니, 그런 그가 그런 것 즈음 정도는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독에 취하자 한 이유는 인간에게 쥐어진 망각이라는 축복을 그나마라도 가지고 싶어서, 향수를 가지고 있어서, 한 순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래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일 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망각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니 이 얼마나 괴로운 존재일까. 망각은 의외로 축복이었으니 그것은 에메트셀크에게만이 아닌 니베이아에게도 필요한 축복이었다. 그러나 니베이아에게 에메트셀크라는 독은 마실 수록 잊고 싶은 것들을 강하게 새기게 해주는 존재였고, 에메트셀크에게 니베이아는 향수를 자극하지만 지금 눈앞의 빛이 강하여 완전히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베일로 희미하게 가려 다른 것들을 잊게 해주는 듯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입에 머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멈추지 않는다 발걸음이 느려지더라도.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케 하는 초월적인 힘이었고,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일반적인 사람에게 쥐어졌을 때 이야기였기에 두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야 하는 감정이었다. 서로에게 진심이 되는 순간 그들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적어도 이런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길 바랬다면 영웅과 재앙이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어야 한다. 신들이 그들을 사랑한다면, 다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게 해주겠지. 그렇다면 그때야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들 또한 서로에게 진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운명이라는 것은 잔혹하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지금의 세상에서는 아니었다. 영웅과 재앙, 닮으면서도 정반대이고, 사랑이지만 사랑이 아닌 존재들, 그래도 독에 취하는 자들. 독이 담긴 차는 달면서도 썼고 모든 것을 망각하게 하면서도 자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찻잔에는 그런 꼬릿말표가 달려있었다 'Drink Me'이라고.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온 이상한 능력을 갖춘 물약들처럼 말이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