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수레바퀴
FF14 글 스터디 1월
나쁜 꿈을 꾸었다. 과거의 잔재들이 보여주는 환각. 페테시아 루누는 눈을 깜빡이며 그 것들을 바라봤다. 지독한 장난이다.
떨어지는 불꽃들,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눈 앞에서 스러지는 생명들까지…. 테시아는 참혹하고도 익숙한 풍경이라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검과 창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분수같은 피를 뿜어대며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생각보다 생생한 감각에 자신의 뺨을 꼬집어 보고는 어이가 없는지 힘없는 웃음을 내뱉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걸음을 옮겼다. 저기서는 루가딘이었던 선배가 머리가 터져서 죽었지. 저기는 엘레젠 선배가 심장을 꿰뚫려 죽었고…. 그런 무던한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세상에 빠르게 점멸하더니 시점이 바뀌었다. 당황한 테시아가 두 눈을 꿈뻑이며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잊고싶던 과거. 제국군에게 양 팔을 결박당해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랑했던 스승, 테누반이었다. 갑자기 왜? 충격에 스승을 바라만 보는데 테누반이 자신의 뒤를 향해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질렀다.
“테시아!”
소리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하게도, 과거의 자신이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짧은 머리, 스승이 소중하게 땋아준 조금 긴 한 가닥 땋은 머리까지. 오만과 편협심으로 가득 찼던 과거의 자신을 보고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이 왔다. 나는 죽는다. 아니, 죽을 것이다. 제국인이었던 배신자 테누반에게 절망을 주기 위해, 증오스러운 에오르제아의 모험가를 없애기 위해. 높게 치켜든 칼날이 ‘나’의 목을 꿰뚫는다. 검을 빼내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두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진다. 내가 죽는 순간을 본다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스승을 바라봤다. 스승의 표정 또한 일그러져 있었고, 그 표정은 아마도 지금 나의 표정과 별 반 다를 것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오열하는 스승을 절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테시아는, 순간 이 기억은 자신이 모르는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는다. 그렇다면 이 기억은 나의 기억인가, 스승의 잔해인가.
“안돼, 아가…”
단숨에 제국군을 뿌리치고 달려와 자신이었던 것을 들어올리는 스승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천구의를 들어올리는 모습.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테시아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지 마세요, 제발.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각과 함께 닿지 못할 문장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결국 이긴 건 스승이었다. 운명을 비틀어 자신의 제자를 살리고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테시아는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허상이 보여주는 진실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앉아 있는 테시아의 주변이 점멸하며 주위가 어두워졌다. 주변이 바뀐지도 모른 체 공허한 눈빛으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절된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았다. 순간 어깨에 낯선 감각과 함께 소름이 끼친다. 어때, 테시아.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 익숙한 스승의 목소리로 조곤 거리는 것을 향해 고개를 들어 뒤돌아보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박수가 커지는 것을 느끼며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뒤편에서 빛이 쏟아져 내린다. 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야. 테시아는 강한 빛과 함께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를 들으며 꿈 속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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