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순간

FF14 글스터디 2월

싸움의 시작은 사소했다. 임무에서 끝마치고 온 테시아는 전에 없을 정도로 예민했다. 무슨 일 있었어? 알리제의 질문에도 그저 웃으며 자리를 잡은 테시아는 조용히 자신의 무기를 손질했다. 라하는 그런 테시아를 빤히 바라봤다. 예민해진 테시아도 신경쓰였지만, 상처가 없음에도 찢겨있는 옷이 신경쓰였다. 그래, 나의 영웅은 죽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됐다. 자신은 죽지 않는다며 서슴없이 몸을 던지니까. 그래서 라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테시아, 몸 좀 아껴줬으면 좋겠어.”

“어? ...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갑작스런 라하의 말에 테시아는 커다란 눈을 꿈벅였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하는 서운하다는 듯이 귀를 늘어트리며 테시아에게 다가간다. 왜 말을 그렇게 해? 걱정해서 그러는거야, 테시아. 연인이잖아. 라하의 말에 테시아가 표정을 빠르게 굳혔다. 테시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인이어도 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늘 앞장 서서 싸워왔고,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온 사람이었다. 부상을 입는 건 당연한거 아닌가? 몸을 아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테시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경 꺼, 라하. 이건 내 문제야. 강하게 말하는 테시아에 라하 또한 얼굴을 찌푸렸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다치거나, 위험한 일을 할 때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왜, 너는, 그렇게 얘기해?”

“나는 경우가 다르니까 그러는거야, 너희랑 틀리니까!”

 

라하의 투정 아닌 투정에 테시아는 질린다는 듯이 소리치고는 후회했다. 답지않게 감정적으로 굴었다. 테시아의 말에 라하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테시아의 곁을 지나 문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자기 잘못을 깨달을 테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지만, 라하에겐 닿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흔들린다. 어두워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테시아는 무기 손질을 계속 하려 했지만 계속 같은 부분만 문지를 뿐이었다. 한심한 일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새벽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랑싸움은 나가서 해주겠어요? 야슈톨라가 흥얼거리 듯 말했다. 테시아가 노려보며 사랑싸움으로 보여? 라고 물으니 야슈톨라는 농담이라며 웃었다.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테시아에게 산크레드가 말했다.

 

“이번엔 네가 심했어, 페테시아 루누. 우리는 라하 편이야.”

“왜? 내가 너희랑 다른건 맞잖아….”

 

테시아에겐 그것이 당연했다. 그런 삶이었으니까. 자신은 스승의 덕으로 두 번째 삶을 받았고, 그 이후로 분에 겨운 삶을 살아왔다. 세상 어느 누가 불사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몸이니까, 당연히 전선에 서는거야. 그래 왔으니까…, 그게 왜 걱정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어. 너희와 나는 목숨의 경중이 다르잖아…. 울적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산크레드는 한숨쉬듯 웃으며 말했다. 라하도, 우리도, 그런 것과 상관 없이 그냥 네가 걱정되는 거야. 페테시아 루누. 너라는 인간이 무너져 내릴까봐 걱정하는거라고.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의 테시아를 보고 야슈톨라는 조용히 입을 뗐다.

 

“우리가 당신처럼 불사의 존재가 되어 당신처럼 이리저리 치여가 망가져도 좋나요? 당신만큼이나 정신과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쓴 소리를 안 할 자신이 있다면, 그라하에게 화내도 좋아요.”

 

테시아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어째서 라하가, 새벽이 늘 자신에게 애정어린 쓴 소리를 하는지. 말없이 들고 있던 무기를 집어넣은 테시아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한편 라하는 지식인의 항구를 떠돌고 있었다. 두서없이 부둣가를 맴돌다 동상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했나? 하지만 연인이잖아. 그런 이기심이 올라왔다. 라하는 테시아를 동정했다. 자신들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 아직도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사랑스러웠지만 안타까웠다. 보듬어주고 싶었다.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랑하니 욕심부리고 싶었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라하는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테시아에게 서운했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사랑스러운 발소리에 귀를 세우며 신경을 쏟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테시아는 라하의 옆자리에 슬며시 앉으며 물었다.

 

“라하, 화났어?”

“...응, 화났어.”

 

거짓말이다. 그라하 티아는 페테시아 루누에게 화를 낼 수 없다. 자신은 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테시아는 담담하게 대답하는 라하를 보며 귀를 늘어트렸다. 그러고는 웅얼거리듯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앞에 서야하는 입장이었고, 지켜야하는 것들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되어 있는 사람이야. 거기엔 너도 있어, 라하. 네가 강하던 약하던 나에게는 네가 지켜야할 존재니까… 그래서 늘 앞서 나간거였어. 으음, 솔직히 산크레드가 한 말은 모르겠고 야슈톨라가 한 말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그래도 너흴 이해해보려 할게. 너희를 사랑하니까.”

 

테시아는 라하를 바라보며 담백하게 웃었다. 라하는 저 담백한 웃음이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늘 하던 생각이었다. 라하는 사랑스런 제 연인을 빤히 바라보다 홀린 듯 말했다. 미안해, 화 안 났어. 내가 어떻게 너에게 화를 내겠어. 테시아는 생각도 못한 반응에 두 눈을 꿈뻑이며 바라봤다. 그조차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라하가 이어 말했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모르면서 너무 가볍게 이야기한 것 같아. 그래도… 내가 널 걱정할 수 있게 해줄래? 라하의 말에 테시아는 맑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야, 라하. 너랑…, 새벽만 할 수 있는 거야. 너흰 나의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 웃는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소중하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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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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