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FF14 글스터디 3월

연인들이 사랑을 재확인 하는 날. 바야흐로 화이트데이었다. 테시아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자신에게 사탕을 건내는 그라하 티아라니! 상상만으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티내면 불편하겠지. 테시아는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차분한 척 손을 달달 떨며 홍차를 마셨다. 산크레드가 왜그렇게 떠냐며 물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게 있다며 대충 얼버무린 테시아는 두 손을 꼼지락 거리며 주변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라하 성격상 사람 많은 곳에서 주진 않겠지. 단 둘이 있을 때를 노리자고 다짐하며 식어가는 홍차를 마셨다.

페테시아가 이상하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답지않게 뜨거운 홍차에 혀를 데이지 않나, 알리제가 건넨 쿠키를 떨어트리질 않나. 무언가에 쫓기듯 안절부절 못하지 않나… 산크레드는 평소와 다른 테시아를 바라보며 옆자리에 앉아있던 야슈톨라에게 속삭였다.

“그라하와 싸웠나?”

“설마요. 그랬다면 이 곳은 커르다스보다 추웠겠죠.”

“역시 그렇지…”

“야, 다 들리거든.”

그래서, 싸웠나요? 야슈톨라가 웃으며 물었다. 안싸웠어. 테시아가 담백하게 답했다. 여전히 라하가 있는 방쪽을 힐끔거리는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그라하를 기다리는 거겠죠. 한참동안 안나오고 있으니까요. 걱정이라도 되는거겠죠. 정말 진득한 연인이네요. 야슈톨라가 놀리듯 말했다. 테시아는 그런 야슈톨라를 한 번 쏘아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놀림은 얼마든지 당해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자신에게 수줍은 표정으로 사탕을 건내는 라하를 생각한 테시아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며 소근거리는 산크레드를 한 대 때려준 후에야 테시아는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산크레드는 여느 때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건물 안이 싸늘했다. 꽃샘추위인가. 창 밖을 열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따뜻한 햇살이 마중을 나왔다. 밖은 따뜻한 것 같은데, 건물 안이 이상하리만치 추웠다. 착각인가? 휴게소로 향한 산크레드는 추위의 이유를 알았다. 어제는 그렇게 헤실거리던 페테시아의 표정이 얼음장 같았던 것이다. 말 없이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는 테시아의 주변 온도는 뚝 떨어진 상태였다. 쟨 또 왜저래. 모르겠어, 어제 밤부터 저상태던데. 알리제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산크레드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이런 일은 늘 자신의 몫이었다.

“무슨 일 있어? 이러다 얼어죽겠어.”

“………았어.”

“뭐?”

“사탕을 못받았어!”

“…사탕?”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휴게소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테시아를 바라봤다. 테시아는 시선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씨익 거리며 두 주먹을 쥐고 부들거리고 있었다. 화이트데이인데, 아무것도 못받았다고! 억울하다는 듯이 산크레드를 쏘아본 테시아가 외쳤다. 분노로 가득한 영웅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는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화이트, 데이? 정자세로 뻣뻣하게 서있던 산크레드는 맥이 풀린 듯 의문을 표했다. 화이트데이가 뭐야? 알리제였다. 휴게소에 있던 사람들의 의문을 받은 테시아도 그제서야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 화이트데이를, 몰라? 새벽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꿈벅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화이트데이는 말이지? 발렌티온 데이에 여성에게 초콜렛을 받은 남성들이 보답으로 사탕을 주는 날이야. 내가 살던 섬나라에서는 유행하던 날이었는데, 에오르제아에는 없었구나…”

“그런 날이 있을 줄이야, 역시 세계는 넓고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네.”

“정말, 그럼 그라하에게 사탕을 못 받아서 그렇게 꿍해있던거야?”

“으응… 어쩐지 부끄럽네, 없을줄은 몰랐어.”

테시아는 수줍게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눈을 부라리던 여성이 수줍어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간극이란… 산크레드는 좀 전의 시선을 상기 시키고는 소름이 돋은 두 팔을 쓸었다. 그럼 그라하가 나오면 사탕을 달라고 해. 화내지 말고… 한숨을 쉬며 산크레드가 말했다. 어쨌든 별 일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던 차였다. 누가 그라하를 불러와. 빨리 해결하고 밥이나 먹자고. 내 의견은 안듣는거야? 테시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당사자에게 대놓고 사탕을 달라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페테시아 루누에게는 연인에게 지난번에 초콜렛을 줬으니 이번엔 네가 사탕을 달라고 할 정도로의 뻔뻔함은 없었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쿠루루가 웃으며 자리를 뜬지 오래였고, 테시아는 귀와 꼬리를 팔랑거리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가증스럽기 짝이없는 모습이었다. 사랑에 빠진 영웅이 연인에게 할 말을 고민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꼴이란. 야슈톨라와 산크레드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 생각하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으니 문 밖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라하였다. 쿠루루가 무슨 말을 전했는지 라하는 진중한 표정으로 테시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움찔하는 테시아의 두 어깨를 잡은 라하가 테시아, 괜찮아? 라며 물어왔다.

“쿠루루, 그라하에게 뭐라고 했길래 저래?”

“응? 별 말 안했어. 라하의 연인이 고뇌로 몸져 누우려 한다고 밖에 안했는 걸.”

“별 말 맞잖아!”

“자, 우리는 자리를 피해주도록 할까요. 우리의 영웅님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놀리지 마…”

그렇게 일행은 문 밖으로 나갔다. 휴게실에 있는건 그라하 티아와 페테시아 루누 단 둘 뿐이었다. 라하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려 했고, 안타깝게도 테시아는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서 있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설명을 해줘야 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는 테시아를 향해 라하가 입을 열었다. 별 일 없었어? 늦게 나와서 미안해. 생각보다 연구가 늦어져서… 말 끝을 흐리는 라하를 보며 테시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오래 안기다렸어. 음, 사실 기다리긴 했는데, 이젠 괜찮아. 어쩐지 아련하게 말하는 모습에 라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기분은 왜 안좋았어? 내가 늦게 나와서 그래?”

“어? 기분 안좋은지 어떻게 알았어?”

“척 보면 알지. 표정이 어두웠는 걸. 쿠루루가 네 상태가 좋지 않다고 전해주기도 했고…”

“으음, 사실은 말이지, 내가 살던 곳에 화이트데이라는게 있었는데…”

테시아는 웅얼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테시아는 부끄러워지면 말을 웅얼거렸지. 그렇게 생각하며 영웅의 말을 경청했다. 테시아가 잠시 몸담았던 섬나라, 샬로스 라고 했던가. 얘기를 들을수록 흥미로운 나라다. 조사할 가치를 느끼며 그의 말을 전부 들었다. 그러니까 발렌티온데이의 보답, 같은건가. 확실히 받으면 보답을 하는게 좋겠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던 라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졸지에 혼자가 된 테시아는 눈을 꿈뻑이며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어쩐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다. 식탁에 있던 쿠키는 가루가 된지 오래였다. 널부러진 가루들을 꾹꾹 누르며 기다리던 때였다. 문이 다시 열리며 라하가 들어왔다. 숨을 꽤나 헐떡거리는게 뛰어갔다온 모양이다. 테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따랐다. 그리고는 여전히 숨을 가쁘게 쉬는 라하에게 건냈다. 라하는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숨을 내뱉었다. 그제서야 조금 진정이 됐는지 컵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테시아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테시아가 가장 좋아하는 웃음이다- 꽃 한 송이를 건낸다.

“…흰, 장미?”

“넌 단 걸 싫어하잖아.”

“그렇긴 한데, 이거 구하려고 그렇게 뛰어간거야?”

“…별로야?”

아니, 좋아. 살짝 붉어진 얼굴로 꽃을 받아든 테시아는 꽃에 코를 가까이 했다. 장미향보단 바람의 냄새가 났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져 살짝 몸을 떨었다. 날이 따뜻해도 올드 샬레이안이었다. 북해의 바람은 결코 따스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라하가 말을 걸어왔다. 흰 장미의 꽃말을 알아? 여전히 꽃을 바라보던 테시아가 답했다. 글쎄, 꽃말은 잘 몰라서. 존경이란 뜻이야. 늘 존경하고, 동경하는 네게 꼭 전해주고 싶었어. 화이트데이… 라는게 아니더라도 말이야. 웃으며 말하는 라하를 테시아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바라봤다. 어쩜 이렇게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고작 사탕 하나 못받았다고 꿍해져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얼굴을 붉힌 테시아는 라하를 꽉 끌어안았다. 자신의 연인이 사랑스러워 참을수가 없었다. 라하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마주 안아 주었다. 평소 스킨십을 잘 안하는 테시아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그리 생각하며 테시아를 토닥였다. 앞으로도 내가 모르는 걸 많이 알려줘. 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네가 오랫동안 날 기다리지 않도록. 테시아의 이마에 따스한 온기가 내렸다. 하루 지난,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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